1
건물의 노년을 우리는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노년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들의 삶을 타임라인으로 살펴볼 때 가장자리에 도달해가는 어떤 영역을 말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건축물의 수명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라미드와 같은 고대 건축물은 수명이 4500년 가까이 되지만, 한국에서 건축물은 100년은커녕 몇십 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오래전에 세워졌지만 재해나 개발을 이유로 사라진 건축물도 있고, 태생 자체가 임시적인 가설 건물도 있다. 이처럼 건물의 수명은 특정 기준을 세우기가 무척 어렵다. 주어진 조건과 배경에 따라서 건축물은 그 운명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이 대략 80세라면, 한국의 현대 건축물의 평균 수명은 30년 정도가 될 것이다. 고도의 오래된 사찰이나 도심 한복판에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보호받는 여러 고궁 등 이른바 법의 비호를 받고 있는 유서 깊은 전통 건축을 제외하면 말이다.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건축물들의 삶은 참으로 힘겹다. 목재가 아니라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단순히 건물이 자연적으로 수명이 달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건축물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들에 의해 삶을 강제로 박탈당하는 일이 많다는 의미다. 애석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깃들어 오래가는 건물을 보는 것이 어렵다. 소위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건축 유형인 아파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에는 아파트 재건축 연한이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건축의 생애주기에서 30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파트의 평균 수명은 실상 30년을 채우지 못한 26.5년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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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 건축물이 30년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필자가 속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과천관 건립 30주년을 맞이해 여러 전시와 행사를 기획했다. 건립 30년이라는 특별하면서도 드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큐레이터들은 시간이 바꿔놓은 건물의 운명과 수명에 대해 숙고해볼 기회가 있었다. 1986년 과천에 ‘야외조각장을 겸비한 국립 미술관’이 건립되었고, 이 건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이자 과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대중에게 낯설었던 재미건축가 김태수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건축가의 말을 빌리자면 수원의 화성을 닮은 듯했고, 우주에서 불시착한 거대한 우주선 같기도 했다.
미술관의 건립 배경을 짧게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야외조각장을 겸비한 미술관을 건립하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1980년부터 과천관 건립은 구체화되었다. 장소와 건축가 선정에 난항을 거친 후,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수행하며 완공되었다. “건물은 국제적 규모로 하여 근대식으로 짓되 고전미가 나도록 한다. 미술관의 주요 기능인 전시기능, 교육기능, 조사연구기능, 과학적인 보존기능을 강화한다.” 과천관은 이러한 지침에 따라 전문 수장고와 대형 전시장을 마련하여 1986년 개관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도약했다. 과천관은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는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 처음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해온 공공 건축물이다. 건축비평가 박정현의 말처럼 “매 순간이 이행기라 해도 좋을 한국에서 30년 동안 형태와 기능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 이곳은 “한국에서 건축이 살아남은 예외적 현장”이다.
하지만 이 ‘예외적 현장’에서도 갈등은 발생한다. 건축물이 30년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노후화되었기에 여러 기능적 측면에서 새로움을 요구받는다. 특히나 다양하면서도 불확정적인 현대 미술을 수용하기 위한 그릇으로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와 미술관의 역할은 건축의 실험적인 도전을 요청한다. 즉 30년이 된 이 건물은 자신의 삶에서 ‘이립(而立)’을 맞이하자마자 갱생을 요구받는다. 노년을 맞이한 건축물은 새롭게 지어지는 현대적인 미술관 건축과 끊임없이 비교되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전통적’이라는 수식어에 묶여 또 다른 긴장을 맞이하고 있다. 서울시 삼청동 한복판에 새 분관인 서울관이 2013년에 건립되고 미술관 건축 담론의 권력이 이동한 지금, 유행어처럼 호출되는 ‘21세기 미술관’이란 명제는 과천관에서 어떻게 유효할 수 있을까. 오래되어 버린 건물은 관람객에게,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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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건축물의 삶을 반추해보는 전시가 과천관과 온라인 사이트에서 마련되었다. 내년 2월 초까지 진행하는 <상상의 항해>라는 이 전시는 미술관이라는 건축이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전제에 따라 그것의 숨겨진 의미를 재발견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또한 미술관 건축의 삶과 관계, 지속성을 다시 생각해보고, 오래된 건축물에서 무엇을 남기고 기억할지를 생각해보고자 하기 위함이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필자와 기획팀은 나아가 세월이 바꿔놓은 공간과 평범한 건물의 운명을 함께 떠올려보았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일상 속 흔한 건물에 관한 이야기까지 말이다. 예컨대 ‘폐건물에서 왠지 모를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라거나, 낡은 건물을 고쳐 쓰는 건물주의 특별한 사연들, 도시 재생이라는 것에 대한 오해와 착각, 생기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상업 공간의 인테리어’ 등등 일상 속 공간의 사라짐과 그 가장자리에 놓인 건축물의 노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러한 여러 이야기는 프로젝트의 온라인 사이트(www.imaginemmca.org)에 업데이트해가며, 더욱 많은 사람과 공유할 계획이다. 이 이야기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한 건축물의 삶은 어쩌면 인간의 그것보다 좀 더 복잡하고 규정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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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널 : 어떤 건축물의 30년
정다영
2016-11-08
어떤 건축물의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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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노년을 우리는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노년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들의 삶을 타임라인으로 살펴볼 때 가장자리에 도달해가는 어떤 영역을 말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건축물의 수명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라미드와 같은 고대 건축물은 수명이 4500년 가까이 되지만, 한국에서 건축물은 100년은커녕 몇십 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오래전에 세워졌지만 재해나 개발을 이유로 사라진 건축물도 있고, 태생 자체가 임시적인 가설 건물도 있다. 이처럼 건물의 수명은 특정 기준을 세우기가 무척 어렵다. 주어진 조건과 배경에 따라서 건축물은 그 운명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이 대략 80세라면, 한국의 현대 건축물의 평균 수명은 30년 정도가 될 것이다. 고도의 오래된 사찰이나 도심 한복판에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보호받는 여러 고궁 등 이른바 법의 비호를 받고 있는 유서 깊은 전통 건축을 제외하면 말이다.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건축물들의 삶은 참으로 힘겹다. 목재가 아니라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단순히 건물이 자연적으로 수명이 달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건축물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들에 의해 삶을 강제로 박탈당하는 일이 많다는 의미다. 애석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깃들어 오래가는 건물을 보는 것이 어렵다. 소위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건축 유형인 아파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에는 아파트 재건축 연한이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건축의 생애주기에서 30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파트의 평균 수명은 실상 30년을 채우지 못한 26.5년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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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 건축물이 30년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필자가 속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과천관 건립 30주년을 맞이해 여러 전시와 행사를 기획했다. 건립 30년이라는 특별하면서도 드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큐레이터들은 시간이 바꿔놓은 건물의 운명과 수명에 대해 숙고해볼 기회가 있었다. 1986년 과천에 ‘야외조각장을 겸비한 국립 미술관’이 건립되었고, 이 건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이자 과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대중에게 낯설었던 재미건축가 김태수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건축가의 말을 빌리자면 수원의 화성을 닮은 듯했고, 우주에서 불시착한 거대한 우주선 같기도 했다.
미술관의 건립 배경을 짧게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야외조각장을 겸비한 미술관을 건립하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1980년부터 과천관 건립은 구체화되었다. 장소와 건축가 선정에 난항을 거친 후,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수행하며 완공되었다. “건물은 국제적 규모로 하여 근대식으로 짓되 고전미가 나도록 한다. 미술관의 주요 기능인 전시기능, 교육기능, 조사연구기능, 과학적인 보존기능을 강화한다.” 과천관은 이러한 지침에 따라 전문 수장고와 대형 전시장을 마련하여 1986년 개관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도약했다. 과천관은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는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 처음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해온 공공 건축물이다. 건축비평가 박정현의 말처럼 “매 순간이 이행기라 해도 좋을 한국에서 30년 동안 형태와 기능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 이곳은 “한국에서 건축이 살아남은 예외적 현장”이다.
하지만 이 ‘예외적 현장’에서도 갈등은 발생한다. 건축물이 30년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노후화되었기에 여러 기능적 측면에서 새로움을 요구받는다. 특히나 다양하면서도 불확정적인 현대 미술을 수용하기 위한 그릇으로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와 미술관의 역할은 건축의 실험적인 도전을 요청한다. 즉 30년이 된 이 건물은 자신의 삶에서 ‘이립(而立)’을 맞이하자마자 갱생을 요구받는다. 노년을 맞이한 건축물은 새롭게 지어지는 현대적인 미술관 건축과 끊임없이 비교되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전통적’이라는 수식어에 묶여 또 다른 긴장을 맞이하고 있다. 서울시 삼청동 한복판에 새 분관인 서울관이 2013년에 건립되고 미술관 건축 담론의 권력이 이동한 지금, 유행어처럼 호출되는 ‘21세기 미술관’이란 명제는 과천관에서 어떻게 유효할 수 있을까. 오래되어 버린 건물은 관람객에게,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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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건축물의 삶을 반추해보는 전시가 과천관과 온라인 사이트에서 마련되었다. 내년 2월 초까지 진행하는 <상상의 항해>라는 이 전시는 미술관이라는 건축이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전제에 따라 그것의 숨겨진 의미를 재발견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또한 미술관 건축의 삶과 관계, 지속성을 다시 생각해보고, 오래된 건축물에서 무엇을 남기고 기억할지를 생각해보고자 하기 위함이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필자와 기획팀은 나아가 세월이 바꿔놓은 공간과 평범한 건물의 운명을 함께 떠올려보았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일상 속 흔한 건물에 관한 이야기까지 말이다. 예컨대 ‘폐건물에서 왠지 모를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라거나, 낡은 건물을 고쳐 쓰는 건물주의 특별한 사연들, 도시 재생이라는 것에 대한 오해와 착각, 생기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상업 공간의 인테리어’ 등등 일상 속 공간의 사라짐과 그 가장자리에 놓인 건축물의 노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러한 여러 이야기는 프로젝트의 온라인 사이트(www.imaginemmca.org)에 업데이트해가며, 더욱 많은 사람과 공유할 계획이다. 이 이야기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한 건축물의 삶은 어쩌면 인간의 그것보다 좀 더 복잡하고 규정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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