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 (…)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김광석의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1988년에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영국 유학 중에 작곡하고 부른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끝 대목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높은 대중적 흡인력을 확보한 곡이지만 한편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점도 생겨났다. 다름 아닌 제목 때문이다. 60대 노부부라니? 환갑잔치가 사라지고 고희연도 머쓱해진 마당에 60대에게 노(老)라는 말은 어색함을 넘어 부당하게 들린다.
<가는 세월>의 가수 서유석이 2003년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리메이크하기 위해 원작자인 김목경에게 저작권 허락을 요청했다. 1945년생의 서유석이 마침 60대로 접어든 시기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도무지 <60대 노부부>라는 표현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제목에서 60대를 빼고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로 녹음해 발표했다.
장수사회가 되면서 대중가요에서 늙음이라는 언어가 주는 뉘앙스도 격변 중이다. 우선 과거에 늙음은 젊음과 대립하고 갈등하는 기성 질서와 가치의 상징이었다. 베이비붐 세대 젊음은 역사상 최초로 이것을 고정관념화(化)했다. ‘전쟁 세대의 낡은 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연히 그들이 중심에 서면서 대중음악도 젊음이 지배하고 주도하는 판으로 급속 이동했다.
1930-1940년대에 젊은이들은 ‘아버지 세대’가 시키는 대로 ‘아버지 음악’을 들었다. 이때의 미덕은 ‘대물림’이었다. 하지만 뒷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는 위 아버지 세대와 분리선을 치고 그들만의 젊은 음악을 원했다. 1960-1970년대 가치변화를 향해 치달은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약동하는 로큰롤(rock and roll) 사운드는 궁합이 맞아떨어졌다. 아티스트로 말하자면 나이 든 루이 암스트롱에서 젊디젊은 비틀스와 밥 딜런으로 음악 판의 세대교체가 단행된 것이다.
‘당신의 아들과 딸들은 당신의 통제를 넘어서 있고 / 그대들의 낡은 노선은 빠르게 나이를 먹고 있죠 / 당신이 거들어주지 않을 거라면 새로운 대열에서 빠져주기를! / 왜나면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까요…’ 밥 딜런의 <세상은 변한다(The times they are a-changing)> 중
‘오랜 세월이 지나 내 나이가 들어 머리가 빠진다면 / 그때도 발렌타인 선물을 보내고 생일날에 와인을 보내줄 건가요 / (…)전구가 나갔을 때 퓨즈를 갈아 끼우는 일을 척척할게요 / 당신은 난롯가에서 스웨터를 짜고 / 일요일 아침에는 드라이브를 가죠 / 정원을 가꾸고 잡초를 뽑지요 / 더 뭘 바라요 / 여전히 날 필요로 하고 여전히 날 밥 먹여줄 건가요 / 내 나이 예순넷일 때도…’ 비틀스 <내 나이 예순 넷에(When I’m sixty-four)> 중
1960-1970년대를 산 베이비붐 세대 젊음에게 나이 듦은 두 노래가 말해주듯 ‘퇴물’, ‘완고함’ 아니면 ‘나약’, ‘보호대상’과 같은 다분히 부정성의 의미를 띠었다. 젊음이 음반과 공연을 완히 장악하면서 나이 든 가수들은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물러나야 했다. 실제로 40대 이상의 나이에 인기차트 히트작을 내는 성공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우리의 경우 김수희가 <애모>로 1993년에 톱스타들인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를 꺾고 방송 인기차트에서 1위를 올랐을 때가 마흔 살이었다. 당시 매체들은 ‘간만에 나이든 가수가 젊은 가수를 이겼다!’고 호들갑을 피웠다. 이후 히트곡을 내는 가수의 나이가 갈수록 올라갔다. 패티김(1938년생)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1983년에 발표했을 때 나이 마흔다섯이었으며 최백호 역시 마흔여섯이던 1996년에 <낭만에 대하여>로 모처럼 히트곡을 확보했다. 젊은 래퍼 조피디의 2004년 곡 <친구여>에서 노래를 부르며 진가를 발휘한 인순이는 그 기록을 좀 더 끌어올렸다. 2007년 <거위의 꿈>으로 대박을 쳤을 때 그의 나이, 경이로운(?) 쉰 살이었다.
하긴 이해할 만한 것이 이전 대중음악계에서는 나이 서른이 벌써 ‘기성세대 진입단계’에 속하는, 절대 젊지 않은 연배였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분명 성숙보다는 20대와의 작별이 주는 푸석푸석함의 정서에 가깝다. 어쩌면 음악은 20대 청춘의 전유물이라는 등식이 의식 저변에 깔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이 마흔이 늙음의 시작인 초로(初老)로 인식되는 게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양희은은 불혹을 앞두고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라는 노래를 녹음했다.
‘내 나이 마흔 살에는 / (…) 그 빛나는 젊음은 다시 올 수가 없다는 것을 / 이제서야 알겠네…’
양희은은 나중에 “그때 마흔 살은 다시 청춘을 품어보는 게 불가능한, 굉장히 많은 나이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40대라는 연령대는 이 고령화 시대에는 아마도 ‘초절정 젊음’으로 수위를 끌어내려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왕’ 조용필이 증명해준다. 2013년에 그는 자기 세대가 아닌 정반대의 젊은 세대 감성과의 접점을 마련하고자 했다. “내 안의 새로운 나, 다른 나를 찾고 싶다!”는 기자회견에서의 토로처럼 그는 10대와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록, 랩, 브릿팝 음악으로 선회했다. 결과는 <바운스>의 초대형 대박이었다. 이때 나이 예순셋. 사실상 ‘준(準) 할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19집 앨범에 실린 신곡 <바운스>와 <헬로>는 음원차트 1위에 올랐다
‘바운스’ 열풍은 19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대형 스타들에게 순기능으로 작동해 당대의 ‘빅3’로 불린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등이 일제히 컴백해 존재감을 뽐냈다. 그들과 같은 ‘8090’ 아닌 심지어 지금 20대들은 이름마저 생소한 저 옛날의 ‘70’ 가수들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2014년 원조 섹시 가수 김추자가 “늦기 전에, 목소리가 더 망가지기 전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며 은퇴 33년 만에 컴백했다. 2016년에는 <모닥불> <하얀 조가비>의 청순 포크스타 박인희, <바야야> <그대여>의 이정희가 수십 년의 공백을 깨고 그들을 기다리는 팬들 앞에 섰다.
<개여울>과 <휘파람을 부세요>로 유명한 정미조의 경우는 음악과 연을 끊고 화가로 전향, 24년 동안 재직했던 수원대학교 서양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37년 만에 가수로 컴백했다. “교수가 정년퇴임하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원래의 생활 리듬이 깨져버려서 건강이나 활기가 확 수그러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학교를 퇴직하니까 마음이 홀가분했어요. 이제 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거잖아요. 너무 행복한 거예요. 노래도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아서 즐거운 내 기분, 내 목소리대로 노래를 불렀어요.”
이제 노년이라는 말에 따랐던 편견과 몰이해로 ‘젊어진 노년’이 차별당하거나 잠재력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새롭고 활기찬 인식으로 개개의 행복증진이 가능해졌고 이는 경제의 존속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이제 양상은 ‘과거 리즈 시절로 산다!’에서 ‘지금이 전성기다!’로 변했다. ‘올드 보이’와 ‘올드 걸’의 강림이 일상화되고 있다.
서구 음악계의 경우 1942년생의 ‘최고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1946년생 ‘컨트리 여왕’ 돌리 파튼이 있다. 70대인 두 여가수는 전성기인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는 물론 고령이 된 2000년대와 지금 2010년대에도 빌보드 차트 1위 앨범과 상위권 히트송을 내놓고 있다. ‘여섯 차례의 10년’에 인기 레퍼토리를 계속 획득하는 대기록을 써내고 있지만, 이미 고령화 사회가 정착된 미국 음악계에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젊은 대중음악 판에 ‘영(young)한 고령자들’이 동참해 그들만의 원숙함과 멋을 불어넣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크게 ‘문화다양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지금의 20대 가수들도 30-40대에 활동을 마감하는 게 아니라 조용필처럼 60대에 히트작을 수확하며 롱런하는 꿈을 품는다. 앞으로 어느 시점에는 신구의 구분도 희미해져 애들이 애들이 아니고 노인이 따로 없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어찌 좋은 음악에 나이가 있겠는가.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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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o a poco : 노년과 대중음악
임진모
2016-11-03
노년과 대중음악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 (…)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김광석의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1988년에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영국 유학 중에 작곡하고 부른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끝 대목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높은 대중적 흡인력을 확보한 곡이지만 한편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점도 생겨났다. 다름 아닌 제목 때문이다. 60대 노부부라니? 환갑잔치가 사라지고 고희연도 머쓱해진 마당에 60대에게 노(老)라는 말은 어색함을 넘어 부당하게 들린다.
<가는 세월>의 가수 서유석이 2003년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리메이크하기 위해 원작자인 김목경에게 저작권 허락을 요청했다. 1945년생의 서유석이 마침 60대로 접어든 시기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도무지 <60대 노부부>라는 표현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제목에서 60대를 빼고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로 녹음해 발표했다.
장수사회가 되면서 대중가요에서 늙음이라는 언어가 주는 뉘앙스도 격변 중이다. 우선 과거에 늙음은 젊음과 대립하고 갈등하는 기성 질서와 가치의 상징이었다. 베이비붐 세대 젊음은 역사상 최초로 이것을 고정관념화(化)했다. ‘전쟁 세대의 낡은 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연히 그들이 중심에 서면서 대중음악도 젊음이 지배하고 주도하는 판으로 급속 이동했다.
1930-1940년대에 젊은이들은 ‘아버지 세대’가 시키는 대로 ‘아버지 음악’을 들었다. 이때의 미덕은 ‘대물림’이었다. 하지만 뒷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는 위 아버지 세대와 분리선을 치고 그들만의 젊은 음악을 원했다. 1960-1970년대 가치변화를 향해 치달은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약동하는 로큰롤(rock and roll) 사운드는 궁합이 맞아떨어졌다. 아티스트로 말하자면 나이 든 루이 암스트롱에서 젊디젊은 비틀스와 밥 딜런으로 음악 판의 세대교체가 단행된 것이다.
‘당신의 아들과 딸들은 당신의 통제를 넘어서 있고 / 그대들의 낡은 노선은 빠르게 나이를 먹고 있죠 / 당신이 거들어주지 않을 거라면 새로운 대열에서 빠져주기를! / 왜나면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까요…’
밥 딜런의 <세상은 변한다(The times they are a-changing)> 중
‘오랜 세월이 지나 내 나이가 들어 머리가 빠진다면 / 그때도 발렌타인 선물을 보내고 생일날에 와인을 보내줄 건가요 / (…)전구가 나갔을 때 퓨즈를 갈아 끼우는 일을 척척할게요 / 당신은 난롯가에서 스웨터를 짜고 / 일요일 아침에는 드라이브를 가죠 / 정원을 가꾸고 잡초를 뽑지요 / 더 뭘 바라요 / 여전히 날 필요로 하고 여전히 날 밥 먹여줄 건가요 / 내 나이 예순넷일 때도…’
비틀스 <내 나이 예순 넷에(When I’m sixty-four)> 중
1960-1970년대를 산 베이비붐 세대 젊음에게 나이 듦은 두 노래가 말해주듯 ‘퇴물’, ‘완고함’ 아니면 ‘나약’, ‘보호대상’과 같은 다분히 부정성의 의미를 띠었다. 젊음이 음반과 공연을 완히 장악하면서 나이 든 가수들은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물러나야 했다. 실제로 40대 이상의 나이에 인기차트 히트작을 내는 성공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우리의 경우 김수희가 <애모>로 1993년에 톱스타들인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를 꺾고 방송 인기차트에서 1위를 올랐을 때가 마흔 살이었다. 당시 매체들은 ‘간만에 나이든 가수가 젊은 가수를 이겼다!’고 호들갑을 피웠다. 이후 히트곡을 내는 가수의 나이가 갈수록 올라갔다. 패티김(1938년생)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1983년에 발표했을 때 나이 마흔다섯이었으며 최백호 역시 마흔여섯이던 1996년에 <낭만에 대하여>로 모처럼 히트곡을 확보했다. 젊은 래퍼 조피디의 2004년 곡 <친구여>에서 노래를 부르며 진가를 발휘한 인순이는 그 기록을 좀 더 끌어올렸다. 2007년 <거위의 꿈>으로 대박을 쳤을 때 그의 나이, 경이로운(?) 쉰 살이었다.
하긴 이해할 만한 것이 이전 대중음악계에서는 나이 서른이 벌써 ‘기성세대 진입단계’에 속하는, 절대 젊지 않은 연배였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분명 성숙보다는 20대와의 작별이 주는 푸석푸석함의 정서에 가깝다. 어쩌면 음악은 20대 청춘의 전유물이라는 등식이 의식 저변에 깔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이 마흔이 늙음의 시작인 초로(初老)로 인식되는 게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양희은은 불혹을 앞두고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라는 노래를 녹음했다.
‘내 나이 마흔 살에는 / (…) 그 빛나는 젊음은 다시 올 수가 없다는 것을 / 이제서야 알겠네…’
양희은은 나중에 “그때 마흔 살은 다시 청춘을 품어보는 게 불가능한, 굉장히 많은 나이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40대라는 연령대는 이 고령화 시대에는 아마도 ‘초절정 젊음’으로 수위를 끌어내려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왕’ 조용필이 증명해준다. 2013년에 그는 자기 세대가 아닌 정반대의 젊은 세대 감성과의 접점을 마련하고자 했다. “내 안의 새로운 나, 다른 나를 찾고 싶다!”는 기자회견에서의 토로처럼 그는 10대와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록, 랩, 브릿팝 음악으로 선회했다. 결과는 <바운스>의 초대형 대박이었다. 이때 나이 예순셋. 사실상 ‘준(準) 할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19집 앨범에 실린 신곡 <바운스>와 <헬로>는 음원차트 1위에 올랐다
‘바운스’ 열풍은 19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대형 스타들에게 순기능으로 작동해 당대의 ‘빅3’로 불린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등이 일제히 컴백해 존재감을 뽐냈다. 그들과 같은 ‘8090’ 아닌 심지어 지금 20대들은 이름마저 생소한 저 옛날의 ‘70’ 가수들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2014년 원조 섹시 가수 김추자가 “늦기 전에, 목소리가 더 망가지기 전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며 은퇴 33년 만에 컴백했다. 2016년에는 <모닥불> <하얀 조가비>의 청순 포크스타 박인희, <바야야> <그대여>의 이정희가 수십 년의 공백을 깨고 그들을 기다리는 팬들 앞에 섰다.
<개여울>과 <휘파람을 부세요>로 유명한 정미조의 경우는 음악과 연을 끊고 화가로 전향, 24년 동안 재직했던 수원대학교 서양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37년 만에 가수로 컴백했다. “교수가 정년퇴임하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원래의 생활 리듬이 깨져버려서 건강이나 활기가 확 수그러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학교를 퇴직하니까 마음이 홀가분했어요. 이제 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거잖아요. 너무 행복한 거예요. 노래도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아서 즐거운 내 기분, 내 목소리대로 노래를 불렀어요.”
이제 노년이라는 말에 따랐던 편견과 몰이해로 ‘젊어진 노년’이 차별당하거나 잠재력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새롭고 활기찬 인식으로 개개의 행복증진이 가능해졌고 이는 경제의 존속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이제 양상은 ‘과거 리즈 시절로 산다!’에서 ‘지금이 전성기다!’로 변했다. ‘올드 보이’와 ‘올드 걸’의 강림이 일상화되고 있다.
서구 음악계의 경우 1942년생의 ‘최고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1946년생 ‘컨트리 여왕’ 돌리 파튼이 있다. 70대인 두 여가수는 전성기인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는 물론 고령이 된 2000년대와 지금 2010년대에도 빌보드 차트 1위 앨범과 상위권 히트송을 내놓고 있다. ‘여섯 차례의 10년’에 인기 레퍼토리를 계속 획득하는 대기록을 써내고 있지만, 이미 고령화 사회가 정착된 미국 음악계에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젊은 대중음악 판에 ‘영(young)한 고령자들’이 동참해 그들만의 원숙함과 멋을 불어넣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크게 ‘문화다양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지금의 20대 가수들도 30-40대에 활동을 마감하는 게 아니라 조용필처럼 60대에 히트작을 수확하며 롱런하는 꿈을 품는다. 앞으로 어느 시점에는 신구의 구분도 희미해져 애들이 애들이 아니고 노인이 따로 없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어찌 좋은 음악에 나이가 있겠는가.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Poco a poco : 노년과 대중음악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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