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도시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졌다. 시민 사회의 정치, 경제, 일상 활동의 장소로서 광장은 비워진 여백의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도시의 중심이 광장이었던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의 광장은 전례가 없는 공간이었다. 광장은 시민 사회와 나란히 놓이는 개념이기에 그러한 사회의 도래가 늦었던 과거의 우리에게는 낯선 공간이었던 셈이다. 도시 곳곳에서 ‘광장’이라 이름 붙인 공간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다소 의아한 일이다. 서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2002년 월드컵 폐막 이후 들어선 ‘서울광장’, 2009년 광화문 앞 육조거리 복원과 관련하여 조성된 ‘광화문광장’ 등 광장이라 이름 붙은 대규모 공공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다. 도시의 형성과 함께 역사를 새롭게 써간 유서 깊은 광장들, 그 오랜 시간의 이야기들이 쌓여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명소가 된 서구의 광장과 달리 우리 광장의 역사는 짧다.
한편 우리에게 광장의 역할과 가장 유사한 기능을 했던 공간을 꼽으라면 ‘길’일 것이다. 길은 건축가 승효상의 말처럼 “때로는 좁고 때로는 어둡지만 어떤 곳은 불현듯 넓고 밝아 노천시장으로도 쓰이고 더러는 아이들의 놀이터나 마당으로 혹은 공동체의 집회장으로 쓰인다. 길은 그들에게 그냥 통행의 수단만이 아니라 그들의 공동체적 삶의 기억을 만들며 서로를 엮는 귀중한 공공 영역”이다. 면적을 차지하여 도시 한가운데를 점유했던 서구의 광장과 달리 우리에게는 선의 형태로 흘러가는 유사 광장으로서 길이 있었던 셈이다.
길은 우리에게 광장의 기능을 했다. 집과 마당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마당과 외부 공간의 경계가 흐렸던 장소에서 길은 자연스럽게 사회 구성원의 일상을 담는다. 길의 가장 작은 단위는 골목길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진작가 김기찬의 사진집 『골목길 풍경』에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불과 20~30년 전 도시 곳곳에 혈관처럼 미세하게 퍼져 있던 골목길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 사진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당시 낙후된 환경 뒤에 숨어 있는, 길 위에 펼쳐진 삶의 다양한 양상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 김기찬, <서울 중림동 1988.11>, 1998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 사회에 광장이라 이름 붙은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광장의 기능을 했던 옛 공간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작은 필지 사이사이를 구획하고 연결하던 길들은 그 고유성을 상실하고, 불규칙하지만 유기적으로 도시를 잇던 여러 길은 끊어진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건물의 수명이 짧은 곳이어서, 특히 많은 단독·다세대 주택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아파트 단지가 채운다. 아파트 자체의 운명도 썩 밝지는 않은데, 재건축 연한이 40년에서 30년으로 하향되면서 평균 26년밖에 되지 않은 아파트도 허물어지는 현실이다. 동네 상권을 맡았던 작은 근린 시설들도 복합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필지가 통합되고 거대화된다. 작은 다수가 다양하게 차지하고 있던 도시의 조직들이 뭉개지고, 그나마 존재했던 공공 영역들이 사적 영역으로 포섭된다. 유명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들은 주로 대규모 단지로 조성되어 단지 외부와 내부의 흐름을 차단한다. 도시에 유연하게 반응하던 소규모 조직들이 힘을 잃고 균질화되는 셈이다. 물론 아파트 자체가 거부하기 힘든 현대인의 주거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아파트 전문가인 박철수 교수의 말처럼 문제는 아파트 자체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다. “단지는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 환경이자 사회 환경으로 모습을 바꾼 결과물이다. 다양한 지역을 이어주던 길과 골목이 사라지고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된 거대한 자폐도시가 태어나는 것이다.”
사라진 길은 아파트 단지 내부에서 ‘광장’으로 부활을 꿈꾼다. 예컨대 아파트 단지의 ‘중앙광장’, ‘분수광장’ 같은 곳이다. “아파트의 널찍한 중앙광장은 아파트 단지를 건립할 때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경제 신문의 문구는 광장에 대한 오늘의 통념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광장은 단지의 랜드마크이자 아파트 주민만이 접근 가능한 사유 재산의 일부이다. 광장의 본질이 ‘공공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무엇인가 어긋나는 지점이 있다. 아파트 광장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서울광장, 광화문광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의 광장이란 이름의 공간들은 주로 이벤트의 소비 공간으로 사용된다. 비어 있고 개방된 상태를 견디지 못한 채 끊임없는 프로그램으로 공간을 가동하고 탈색시킨다. 광장은 비어 있지 못하고 길은 사라진다.
▲ “길은 비어 있어야 한다. 길은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개방된 공간이다.
그래서 시민 모두의 것이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 영역이다.”
『빨간 도시』라는 책에 담긴 건축가 서현의 말이 떠오른다. “길은 비어 있어야 한다. 길은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개방된 공간이다. 그래서 시민 모두의 것이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 영역이다.” 사라지는 공공 영역들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한다. 광장이라 치장하고 시민들을 기만하는 공간들을 바라본다. 빠른 속도로 도시와 접속하는 여러 장치가 단절되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내가 매일 오가는 이 도시의 길 위에서 몇 번이나 매섭게 마주치는 크레인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덧 사라져버린 오랜 작은 집들의 옛 자국을 더듬어보지만, 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어 있음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비운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호기로움의 자세이면서, 오랜 시간 어떤 상태로 남겨두며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색하고 홀로 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여 길을 걷지 못하고 광장에 머무르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인터넷과 같은 가상환경이 새로운 이 시대의 광장을 만들었다고들 이야기한다. 온라인상에서는 모든 것이 다 흐를 수 있고, 통하고 있고, 규정하기 힘든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어찌할 수 없는 감각의 불균형 속에서 광장은 불가해 하게 사라져버린다. 지금 폐허가 되어가는 이 도시에서 광장은 ‘모두의 언어’가 되기에 한없이 유약하다.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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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널 : 사라지는 광장들
정다영
2016-10-11
사라지는 광장들
광장은 도시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졌다. 시민 사회의 정치, 경제, 일상 활동의 장소로서 광장은 비워진 여백의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도시의 중심이 광장이었던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의 광장은 전례가 없는 공간이었다. 광장은 시민 사회와 나란히 놓이는 개념이기에 그러한 사회의 도래가 늦었던 과거의 우리에게는 낯선 공간이었던 셈이다. 도시 곳곳에서 ‘광장’이라 이름 붙인 공간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다소 의아한 일이다. 서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2002년 월드컵 폐막 이후 들어선 ‘서울광장’, 2009년 광화문 앞 육조거리 복원과 관련하여 조성된 ‘광화문광장’ 등 광장이라 이름 붙은 대규모 공공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다. 도시의 형성과 함께 역사를 새롭게 써간 유서 깊은 광장들, 그 오랜 시간의 이야기들이 쌓여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명소가 된 서구의 광장과 달리 우리 광장의 역사는 짧다.
한편 우리에게 광장의 역할과 가장 유사한 기능을 했던 공간을 꼽으라면 ‘길’일 것이다. 길은 건축가 승효상의 말처럼 “때로는 좁고 때로는 어둡지만 어떤 곳은 불현듯 넓고 밝아 노천시장으로도 쓰이고 더러는 아이들의 놀이터나 마당으로 혹은 공동체의 집회장으로 쓰인다. 길은 그들에게 그냥 통행의 수단만이 아니라 그들의 공동체적 삶의 기억을 만들며 서로를 엮는 귀중한 공공 영역”이다. 면적을 차지하여 도시 한가운데를 점유했던 서구의 광장과 달리 우리에게는 선의 형태로 흘러가는 유사 광장으로서 길이 있었던 셈이다.
길은 우리에게 광장의 기능을 했다. 집과 마당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마당과 외부 공간의 경계가 흐렸던 장소에서 길은 자연스럽게 사회 구성원의 일상을 담는다. 길의 가장 작은 단위는 골목길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진작가 김기찬의 사진집 『골목길 풍경』에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불과 20~30년 전 도시 곳곳에 혈관처럼 미세하게 퍼져 있던 골목길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 사진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당시 낙후된 환경 뒤에 숨어 있는, 길 위에 펼쳐진 삶의 다양한 양상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 김기찬, <서울 중림동 1988.11>, 1998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 사회에 광장이라 이름 붙은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광장의 기능을 했던 옛 공간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작은 필지 사이사이를 구획하고 연결하던 길들은 그 고유성을 상실하고, 불규칙하지만 유기적으로 도시를 잇던 여러 길은 끊어진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건물의 수명이 짧은 곳이어서, 특히 많은 단독·다세대 주택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아파트 단지가 채운다. 아파트 자체의 운명도 썩 밝지는 않은데, 재건축 연한이 40년에서 30년으로 하향되면서 평균 26년밖에 되지 않은 아파트도 허물어지는 현실이다. 동네 상권을 맡았던 작은 근린 시설들도 복합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필지가 통합되고 거대화된다. 작은 다수가 다양하게 차지하고 있던 도시의 조직들이 뭉개지고, 그나마 존재했던 공공 영역들이 사적 영역으로 포섭된다. 유명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들은 주로 대규모 단지로 조성되어 단지 외부와 내부의 흐름을 차단한다. 도시에 유연하게 반응하던 소규모 조직들이 힘을 잃고 균질화되는 셈이다. 물론 아파트 자체가 거부하기 힘든 현대인의 주거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아파트 전문가인 박철수 교수의 말처럼 문제는 아파트 자체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다. “단지는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 환경이자 사회 환경으로 모습을 바꾼 결과물이다. 다양한 지역을 이어주던 길과 골목이 사라지고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된 거대한 자폐도시가 태어나는 것이다.”
사라진 길은 아파트 단지 내부에서 ‘광장’으로 부활을 꿈꾼다. 예컨대 아파트 단지의 ‘중앙광장’, ‘분수광장’ 같은 곳이다. “아파트의 널찍한 중앙광장은 아파트 단지를 건립할 때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경제 신문의 문구는 광장에 대한 오늘의 통념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광장은 단지의 랜드마크이자 아파트 주민만이 접근 가능한 사유 재산의 일부이다. 광장의 본질이 ‘공공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무엇인가 어긋나는 지점이 있다. 아파트 광장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서울광장, 광화문광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의 광장이란 이름의 공간들은 주로 이벤트의 소비 공간으로 사용된다. 비어 있고 개방된 상태를 견디지 못한 채 끊임없는 프로그램으로 공간을 가동하고 탈색시킨다. 광장은 비어 있지 못하고 길은 사라진다.
▲ “길은 비어 있어야 한다. 길은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개방된 공간이다.
그래서 시민 모두의 것이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 영역이다.”
『빨간 도시』라는 책에 담긴 건축가 서현의 말이 떠오른다. “길은 비어 있어야 한다. 길은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개방된 공간이다. 그래서 시민 모두의 것이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 영역이다.” 사라지는 공공 영역들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한다. 광장이라 치장하고 시민들을 기만하는 공간들을 바라본다. 빠른 속도로 도시와 접속하는 여러 장치가 단절되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내가 매일 오가는 이 도시의 길 위에서 몇 번이나 매섭게 마주치는 크레인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덧 사라져버린 오랜 작은 집들의 옛 자국을 더듬어보지만, 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어 있음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비운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호기로움의 자세이면서, 오랜 시간 어떤 상태로 남겨두며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색하고 홀로 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여 길을 걷지 못하고 광장에 머무르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인터넷과 같은 가상환경이 새로운 이 시대의 광장을 만들었다고들 이야기한다. 온라인상에서는 모든 것이 다 흐를 수 있고, 통하고 있고, 규정하기 힘든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어찌할 수 없는 감각의 불균형 속에서 광장은 불가해 하게 사라져버린다. 지금 폐허가 되어가는 이 도시에서 광장은 ‘모두의 언어’가 되기에 한없이 유약하다.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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