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처음 뉴욕에 갔을 때, 짐작보다 훨씬 불친절한 뉴욕의 인심에 서글퍼졌던 적이 있다. 특히 가게 간판 앞에 “Don't loiter(어슬렁거리지 마시오)”라는 메모가 붙어 있어 가슴이 뜨끔했다. 여행자의 낭만은 ‘어슬렁거림’에 있는데, 어슬렁거리지도 서성거리지도 두리번거리지도 못하게 하다니. 그들은 물건도 빨리빨리 사지 않으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하는 관광객들이 싫었나 보다. 아직 뉴욕은 911의 충격이 미처 가시지 않았을 때라 낯선 사람에게 더욱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공항에서의 입국 수속만 해도 무려 한 시간 반이 걸렸으니, 그 얼마나 견고한 ‘아메리카의 장벽’이 여행자의 앞길을 가로막았는지. 그들은 마치 세상이 ‘미국’과 ‘미국 아닌 곳’으로 나뉘는 것처럼, 내국인은 전광석화처럼 입국을 허락하고 외국인은 기나긴 기다림의 행렬에 방치해두었다. 장시간 비행과 환승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은 풀죽처럼 흐느적거렸고, 단지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토록 대놓고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것이 무척 속상했다.
내가 미국보다는 유럽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바로 그 ‘두리번거림’과 ‘어슬렁거림’을 허용해주는 개방성 때문이었다. 특히 유럽 어느 도시를 가나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조성된 드넓은 광장에서는 무언가 뚜렷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에펠탑 앞의 광장에서도 사람들은 다들 일제히 등산을 가듯이 에펠탑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에펠탑을 이리도 쳐다보고 저리도 엿보며 어슬렁어슬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여유로움이 참으로 눈부셨다.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 콩코드 광장에도 사람들은 무척이나 북적였지만, 누구 하나 목적 의식적으로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파리 같은 대도시도 이럴진대 소도시의 광장은 어떻겠는가. 작은 도시의 광장에서는 더욱 ‘어슬렁거림’이 환영받는 것만 같았다. 어슬렁거림의 핵심은 특별한 목적 없는 시선이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그저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것 같은 설렘’이 여행자의 어슬렁거림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유럽의 광장에 서 있으면, 한국에서는 매사에 느린 편이었던 내가, 그 수많은 국적의 여행자들 속에서는 가장 바쁘고 빠른 ‘전형적인 한국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광장에서 조금 더 느려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느리고, 더 여유롭게, 내게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덧 바쁘게 셔터를 누르던 손길을 거두고,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그 자리를 즐기는 것’을 천천히 배우기 시작했다.
▲ 베키오 광장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증명받고자 하는 피곤한 두뇌 싸움이 그제야 잠시 휴식시간을 맞는 것. 그것이 광장을 어슬렁거리는 여행자의 기쁨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서 있는 피렌체의 베키오 광장도 잊을 수 없는 광장 TOP 5 안에 드는 곳이다. 베키오 광장은 파리의 콩코드 광장이나 로마의 스페인 광장처럼 넓지도 않은데, 게다가 그곳들 못지않게 사람이 북적거림에도 불구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메두사의 목을 듣고 자랑스럽게 포효하는 페르세우스의 조각상은 물론 그리스 신화의 온갖 캐릭터들이 총출동하여 신화의 향연을 벌이는 곳이기도 하다. 예술과 대중문화, 상점과 시장, 대로와 골목길이 서로 어우러져 서로를 침범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평등한 문화적 용광로이기도 했다. 베키오 광장을 몇 번이나 걷고 또 걸으며, 나는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광장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을 여러 번 느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공간에 살아 숨 쉬는 곳. 뭔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옛것을 해치거나 현재를 무리하게 밀어내버리지 않는 곳의 여유로움과 헐거움이 참으로 좋았다.
유럽의 여러 광장을 거닐며 나는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을 알게 되었다. 첫째, 진정 행복한 사람들은 노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들은 놀 때 일을 생각하거나, 쉬고 있을 때 걱정거리를 눈빛에 담지 않는다. 유럽의 수많은 광장에서 나는 ‘세상에서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온 힘을 다해서 노는 사람들의 순수한 집중을 보았다. 거기에는 어떤 감동이 있었다. 오히려 디즈니랜드처럼 놀이기구가 너무 많은 것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광장처럼 텅 빈 공간이 많은 곳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를 개발하고, 어른들도 평소와는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둘째, 진정 행복한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타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부모들은 광장에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방임했다. 광장에서 뛰노는 동안에는 아이들에게 별다른 명령이나 규제가 없다. 밥 먹으러 오라고도 하지 않는다. 레스토랑에서 부모들끼리 이미 밥을 다 먹어버렸을 때쯤 그제야 배고픈 아이들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유럽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밥숟가락 들고 따라다니면서 ‘이거 다 먹으면 아이스크림 사줄게’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훈육하지 않는다. 놀 때는 누가 물어가도 모르게 내버려 둔다. 아이들이 진흙탕에 흰옷을 다 버려도, 땅바닥에서 온갖 흙먼지를 묻히며 데굴데굴 굴러도, 진심으로 그냥 놓아둔다. 아기가 발가벗고 광장을 헤집으며 뛰어다니는 것을 내버려 두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노는 시간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부모였고, 그렇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인생 공부를 하고 있었다.
셋째, 행복한 사람들은 ‘작은 것’ 또는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특히 아날로그적인 활동에서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광장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신문을 읽고 낱말 퍼즐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체스 게임을 하며 우리나라 동네 어르신처럼 훈수 두는 사람들도 있다. 앉아서 두는 체스 게임이 아니라 서서 거대한 광장 자체를 게임판으로 삼아 자기 몸체만 한 체스 말을 움직이는 게임도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이런 ‘삶의 여백’이 싱그럽게 살아 숨 쉬는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광장’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노동과 바쁜 일과에서 벗어나 쉬고,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고,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두리번거리며 서성거리는 곳. 또한 아름다운 광장에는 또한 반드시 문화예술의 상징적 조형물이 있다. 위대한 인물의 동상이나 기념비 등이 있는 광장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바로 그런 상징적 조형물들이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시간, 성찰하는 시간을 준다. 베키오 광장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그리스신화의 인물들과 피렌체 르네상스를 이끈 천재들의 조각상이 즐비하다. 베키오 광장에서만 몇 시간 어슬렁거려도 르네상스의 모든 것들을 생각할 ‘마음의 틈’이 생긴다. 산타 크로체 광장에는 단테의 조각상이 늠름하게 서 있고, 톨레도 광장에는 세르반테스의 조각상이 서 있어 돈키호테의 호연지기를 떠올리게 된다.
▲ 톨레도 광장의 세르반테스
광장은 단지 아름답거나 드넓은 장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역사 속 인물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성찰하는 장소, 상상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광장은 아주 훌륭한 세상의 압축도이다. 남녀노소가 다 어울려 지낼 수 있고 인종과 국적 직업이 다양한 수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부딪힌다. 모두가 조금씩은 이방인이기에 누구도 쉽게 이방인을 차별하지 못한다. 모두가 서로에게 이방인이지만 광장이라는 열림과 어울림, 뒤섞임의 공간에서는 피부색도 언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햇살과 바람과 예술과 문화를 누리고 누구도 어떤 공간을 소유하지 않으며 조금씩 순간적으로 욕심 없이 점유할 뿐이다. 모든 것들이 서로의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곳, 모든 존재가 서로가 지닌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상 속의 축제를 만들어가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꿈꾸는 광장의 유토피아이다.
이야기 방랑자 : 어슬렁거림의 행복을 느끼다
유럽의 광장들을 걷다
정여울
2016-10-11
어슬렁거림의 행복을 느끼다
-유럽의 광장들을 걷다-
10여 년 전 처음 뉴욕에 갔을 때, 짐작보다 훨씬 불친절한 뉴욕의 인심에 서글퍼졌던 적이 있다. 특히 가게 간판 앞에 “Don't loiter(어슬렁거리지 마시오)”라는 메모가 붙어 있어 가슴이 뜨끔했다. 여행자의 낭만은 ‘어슬렁거림’에 있는데, 어슬렁거리지도 서성거리지도 두리번거리지도 못하게 하다니. 그들은 물건도 빨리빨리 사지 않으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하는 관광객들이 싫었나 보다. 아직 뉴욕은 911의 충격이 미처 가시지 않았을 때라 낯선 사람에게 더욱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공항에서의 입국 수속만 해도 무려 한 시간 반이 걸렸으니, 그 얼마나 견고한 ‘아메리카의 장벽’이 여행자의 앞길을 가로막았는지. 그들은 마치 세상이 ‘미국’과 ‘미국 아닌 곳’으로 나뉘는 것처럼, 내국인은 전광석화처럼 입국을 허락하고 외국인은 기나긴 기다림의 행렬에 방치해두었다. 장시간 비행과 환승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은 풀죽처럼 흐느적거렸고, 단지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토록 대놓고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것이 무척 속상했다.
내가 미국보다는 유럽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바로 그 ‘두리번거림’과 ‘어슬렁거림’을 허용해주는 개방성 때문이었다. 특히 유럽 어느 도시를 가나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조성된 드넓은 광장에서는 무언가 뚜렷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에펠탑 앞의 광장에서도 사람들은 다들 일제히 등산을 가듯이 에펠탑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에펠탑을 이리도 쳐다보고 저리도 엿보며 어슬렁어슬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여유로움이 참으로 눈부셨다.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 콩코드 광장에도 사람들은 무척이나 북적였지만, 누구 하나 목적 의식적으로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파리 같은 대도시도 이럴진대 소도시의 광장은 어떻겠는가. 작은 도시의 광장에서는 더욱 ‘어슬렁거림’이 환영받는 것만 같았다. 어슬렁거림의 핵심은 특별한 목적 없는 시선이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그저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것 같은 설렘’이 여행자의 어슬렁거림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유럽의 광장에 서 있으면, 한국에서는 매사에 느린 편이었던 내가, 그 수많은 국적의 여행자들 속에서는 가장 바쁘고 빠른 ‘전형적인 한국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광장에서 조금 더 느려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느리고, 더 여유롭게, 내게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덧 바쁘게 셔터를 누르던 손길을 거두고,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그 자리를 즐기는 것’을 천천히 배우기 시작했다.
▲ 베키오 광장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증명받고자 하는 피곤한 두뇌 싸움이 그제야 잠시 휴식시간을 맞는 것. 그것이 광장을 어슬렁거리는 여행자의 기쁨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서 있는 피렌체의 베키오 광장도 잊을 수 없는 광장 TOP 5 안에 드는 곳이다. 베키오 광장은 파리의 콩코드 광장이나 로마의 스페인 광장처럼 넓지도 않은데, 게다가 그곳들 못지않게 사람이 북적거림에도 불구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메두사의 목을 듣고 자랑스럽게 포효하는 페르세우스의 조각상은 물론 그리스 신화의 온갖 캐릭터들이 총출동하여 신화의 향연을 벌이는 곳이기도 하다. 예술과 대중문화, 상점과 시장, 대로와 골목길이 서로 어우러져 서로를 침범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평등한 문화적 용광로이기도 했다. 베키오 광장을 몇 번이나 걷고 또 걸으며, 나는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광장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을 여러 번 느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공간에 살아 숨 쉬는 곳. 뭔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옛것을 해치거나 현재를 무리하게 밀어내버리지 않는 곳의 여유로움과 헐거움이 참으로 좋았다.
유럽의 여러 광장을 거닐며 나는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을 알게 되었다. 첫째, 진정 행복한 사람들은 노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들은 놀 때 일을 생각하거나, 쉬고 있을 때 걱정거리를 눈빛에 담지 않는다. 유럽의 수많은 광장에서 나는 ‘세상에서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온 힘을 다해서 노는 사람들의 순수한 집중을 보았다. 거기에는 어떤 감동이 있었다. 오히려 디즈니랜드처럼 놀이기구가 너무 많은 것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광장처럼 텅 빈 공간이 많은 곳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를 개발하고, 어른들도 평소와는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둘째, 진정 행복한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타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부모들은 광장에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방임했다. 광장에서 뛰노는 동안에는 아이들에게 별다른 명령이나 규제가 없다. 밥 먹으러 오라고도 하지 않는다. 레스토랑에서 부모들끼리 이미 밥을 다 먹어버렸을 때쯤 그제야 배고픈 아이들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유럽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밥숟가락 들고 따라다니면서 ‘이거 다 먹으면 아이스크림 사줄게’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훈육하지 않는다. 놀 때는 누가 물어가도 모르게 내버려 둔다. 아이들이 진흙탕에 흰옷을 다 버려도, 땅바닥에서 온갖 흙먼지를 묻히며 데굴데굴 굴러도, 진심으로 그냥 놓아둔다. 아기가 발가벗고 광장을 헤집으며 뛰어다니는 것을 내버려 두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노는 시간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부모였고, 그렇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인생 공부를 하고 있었다.
셋째, 행복한 사람들은 ‘작은 것’ 또는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특히 아날로그적인 활동에서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광장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신문을 읽고 낱말 퍼즐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체스 게임을 하며 우리나라 동네 어르신처럼 훈수 두는 사람들도 있다. 앉아서 두는 체스 게임이 아니라 서서 거대한 광장 자체를 게임판으로 삼아 자기 몸체만 한 체스 말을 움직이는 게임도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이런 ‘삶의 여백’이 싱그럽게 살아 숨 쉬는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광장’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노동과 바쁜 일과에서 벗어나 쉬고,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고,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두리번거리며 서성거리는 곳. 또한 아름다운 광장에는 또한 반드시 문화예술의 상징적 조형물이 있다. 위대한 인물의 동상이나 기념비 등이 있는 광장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바로 그런 상징적 조형물들이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시간, 성찰하는 시간을 준다. 베키오 광장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그리스신화의 인물들과 피렌체 르네상스를 이끈 천재들의 조각상이 즐비하다. 베키오 광장에서만 몇 시간 어슬렁거려도 르네상스의 모든 것들을 생각할 ‘마음의 틈’이 생긴다. 산타 크로체 광장에는 단테의 조각상이 늠름하게 서 있고, 톨레도 광장에는 세르반테스의 조각상이 서 있어 돈키호테의 호연지기를 떠올리게 된다.
▲ 톨레도 광장의 세르반테스
광장은 단지 아름답거나 드넓은 장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역사 속 인물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성찰하는 장소, 상상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광장은 아주 훌륭한 세상의 압축도이다. 남녀노소가 다 어울려 지낼 수 있고 인종과 국적 직업이 다양한 수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부딪힌다. 모두가 조금씩은 이방인이기에 누구도 쉽게 이방인을 차별하지 못한다. 모두가 서로에게 이방인이지만 광장이라는 열림과 어울림, 뒤섞임의 공간에서는 피부색도 언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햇살과 바람과 예술과 문화를 누리고 누구도 어떤 공간을 소유하지 않으며 조금씩 순간적으로 욕심 없이 점유할 뿐이다. 모든 것들이 서로의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곳, 모든 존재가 서로가 지닌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상 속의 축제를 만들어가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꿈꾸는 광장의 유토피아이다.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이야기 방랑자 : 어슬렁거림의 행복을 느끼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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