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휴대전화 등의 매체를 통해 음악을 접하지만, 미디어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음원은 복제라고 하는 녹음(레코딩)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는 불가피하게 음향 기술적 측면에서 인위적 손질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기술에 지치거나 물린 요즘 사람들이 바라는 ‘내추럴 사운드’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튜디오 기술에 따른 변형 이전의 본연의 소리를 향해 라이브 현장을 찾는다.
‘라이브 현장’이라 하면 근대적 청중을 낳은 콘서트장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한 ‘넓은 마당’이 있다. 음악과 춤은 애초 ‘마당의 놀이’로 출발했다. 사람들이 만나는 이 넓은 마당, 즉 광장에서 울려 퍼진 노래와 연주가 민중의 음악이 되고 ‘다수 대중’의 음악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음악은 콘서트장 아니면 광장 둘 중 하나가 터전인 셈이다.
ㅣ음악은 콘서트장 아니면 광장 둘 중 하나가 터전인 셈이다.
일반 광장 말고 넓든 좁든 역전(驛前) 광장과 같은 교통광장도 있다. 한국 팬들에게 비틀스 이상의 인기를 누린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작 <고향으로 가는 길(Homeward Bound)>에서 역전은 기다림의 공간인 동시에 음악가와 시인이 예술로 대중과 직접 호흡하는 자리로 묘사된다. ‘난 기차역에 앉아 있지 / 목적지로 가는 표는 끊었고 / 하룻밤 공연을 위해 떠나는 / 손에는 가방과 기타를 들고 있고 / 모든 정거장은 시인과 원맨밴드를 위해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다네.’
광장이 사람들이 머물면서 서로의 사연과 처지를 나누고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소통과 만남의 공간이라면, 위 노래처럼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하다. 집회가 있고 대화와 사교가 존재하며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쉼터에 어떻게 음악이 빠지겠는가. 그리고 ‘직접민주주의’의 공간답게 이곳의 음악은 상기한 바대로 녹음 음악보다 직접적이고 따라서 인간적이고 자연적이다. 음악가들은 광장에 어울린 사람들의 숨결과 호흡, 그 대중적 정서를 포착해 작품으로 빚어낸다.
1980년대의 밴드 송골매가 1985년에 발표한 5집 앨범에 수록된 곡 <여의도 광장>은 광장에 대중음악이 품는 1차적 정서, 바로 위대한 ‘사랑과 이별’의 공간임을 알려준다. 노래를 부르는 이봉환의 목소리는 걸걸하지만 왠지 애처롭다. ‘외로운 바람이 불어오는데 / 나 홀로 이곳을 서성이고 있네 / 볼 일도 없는 그 사람을 / 애타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네 / 바람 등불만 찬란하고 / 사나이 마음은 안타깝네 / 여의도 넓은 광장에 돌아서가네 돌아서가네 돌아서가네.’
‘광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아마도 1963년에 나온 연주곡 <워싱턴 광장>일 것이다. 딕시재즈 밴드 ‘빌리지 스톰퍼스’가 발표한 이 곡의 낭만적인 선율에 이끌려 이후 많은 가수가 가사를 붙여 노래 부르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1960년대 중후반 상당한 인기를 누린 그룹 ‘이씨스터즈’다.
▲ 이씨스터즈의 1973년 앨범
‘김씨스터즈’ ‘정씨스터즈’ ‘김치 캣츠’ ‘아리랑 씨스터즈’ 등 당대를 장식한 무수한 전원 여성 그룹(그때도 걸 그룹 천지였다) 가운데 선두였던 이씨스터즈의 <워싱턴 광장>도 <여의도 광장>과 다를 게 없다. 사랑의 설렘이 넘실거린다. 다만 기타의 일종인 ‘벤조(Banjo) 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광장이 다시금 음악의 공간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넓은 광장 한구석에 쓸쓸히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이 가슴 설레네 / 벤조 줄을 울리면서 생각에 젖어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만나보고 싶네. / 메마른 낙엽 흩어지는 저 워싱턴 광장 오고 가는 사람 없어 외롭기 한이 없네 / 돌아갈 생각 하지 않고 벤조만 울리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만나보고 싶네.’
워싱턴 지역은 <워싱턴 광장>의 로맨틱함과 더불어, 역사, 사회적 의미가 주어지는 1963년 4월의 ‘워싱턴 행진’을 연상하게 한다. ‘워싱턴 행진’은 흑인 지위향상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로 향한 운동으로, 흑인공민권 운동의 물꼬를 튼 그 숭고한 행진이다. ‘고용기회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이란 타이틀을 내건 이 행진은 미국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남아 있고, 그들이 집결한 링컨기념관 앞 광장은 민주화의 성지가 됐다. 행사를 주도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여기서 그 유명한 ‘난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로 베이비붐 세대의 양심과 정의를 일깨웠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테이블에 같이 앉는 꿈입니다!”
1963년은 바로 민권운동의 메시지를 포크송으로 대변한 밥 딜런, 그리고 여성 포크의 대명사 조안 바에즈가 등장한 해다. 밥 딜런의 명곡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과 조안 바에즈의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워싱턴 행진에 나선 사람들이 집결한 광장에서 불리면서 자유, 평등, 평화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대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단숨에 청춘의 기수가 된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도 이 행진에 참여했다.
우리 승리하리라 / 우리 승리하리라 / 우리 승리하리 그 날에 /
오오, 참 맘으로 / 나는 믿네 / 우리 승리하리라. /
두려움이 없네 / 두려움이 없네.
ㅡ <우리 승리하리라> 중
포탄이 영구히 금지될 때까지 얼마나 전장을 날아야 하나
친구여,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ㅡ <바람만이 아는 대답> 중
광장과 저항가요의 결합은 지금도 지구촌 어디든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1967년 구미의 젊음은 곳곳의 광장에 모여 출세와 불평등에 기대는 기존 체제가 사랑과 평등의 공동체로 변화하기를 호소했다.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으로 불리는 이 현상은 대규모 평화집회이자 퍼포먼스였다. 2011년 금융위기 이후 아랍의 민주화 운동에 이어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로 확산된 흐름도 민중이 운집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도 1986년 민주화 투쟁기에 사람들은 크고 작은 집회지에서 밴드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과 <행진>을 목 놓아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ㅡ <행진> 중
정치사회적 항거의 공간을 떠나서 2002년 서울 도심을 거대한 광장으로 만든 ‘붉은 악마’의 함성은 광장이 갖는 대중의 소통과 동참, 환희의 순수하고 고전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1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로 표현되는 후기산업사회의 ‘단절’ 흐름이 위험수위에 도달하면서 더욱 광장은 새롭게 다가온다.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발달, 재래시장의 부활, 공공건물에 대한 수요증가는 결국 광장에 대한 그리움의 산물이다. 우리는 광장으로 나가야 하고 거기서 함께 노래 불러야 한다.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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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o a poco :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과 소통의 공간
임진모
2016-10-06
ㅣ만나고 헤어지는 사랑과 소통의 공간
우리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휴대전화 등의 매체를 통해 음악을 접하지만, 미디어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음원은 복제라고 하는 녹음(레코딩)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는 불가피하게 음향 기술적 측면에서 인위적 손질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기술에 지치거나 물린 요즘 사람들이 바라는 ‘내추럴 사운드’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튜디오 기술에 따른 변형 이전의 본연의 소리를 향해 라이브 현장을 찾는다.
‘라이브 현장’이라 하면 근대적 청중을 낳은 콘서트장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한 ‘넓은 마당’이 있다. 음악과 춤은 애초 ‘마당의 놀이’로 출발했다. 사람들이 만나는 이 넓은 마당, 즉 광장에서 울려 퍼진 노래와 연주가 민중의 음악이 되고 ‘다수 대중’의 음악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음악은 콘서트장 아니면 광장 둘 중 하나가 터전인 셈이다.
ㅣ음악은 콘서트장 아니면 광장 둘 중 하나가 터전인 셈이다.
일반 광장 말고 넓든 좁든 역전(驛前) 광장과 같은 교통광장도 있다. 한국 팬들에게 비틀스 이상의 인기를 누린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작 <고향으로 가는 길(Homeward Bound)>에서 역전은 기다림의 공간인 동시에 음악가와 시인이 예술로 대중과 직접 호흡하는 자리로 묘사된다.
‘난 기차역에 앉아 있지 / 목적지로 가는 표는 끊었고 / 하룻밤 공연을 위해 떠나는 / 손에는 가방과 기타를 들고 있고 / 모든 정거장은 시인과 원맨밴드를 위해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다네.’
광장이 사람들이 머물면서 서로의 사연과 처지를 나누고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소통과 만남의 공간이라면, 위 노래처럼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하다. 집회가 있고 대화와 사교가 존재하며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쉼터에 어떻게 음악이 빠지겠는가. 그리고 ‘직접민주주의’의 공간답게 이곳의 음악은 상기한 바대로 녹음 음악보다 직접적이고 따라서 인간적이고 자연적이다. 음악가들은 광장에 어울린 사람들의 숨결과 호흡, 그 대중적 정서를 포착해 작품으로 빚어낸다.
1980년대의 밴드 송골매가 1985년에 발표한 5집 앨범에 수록된 곡 <여의도 광장>은 광장에 대중음악이 품는 1차적 정서, 바로 위대한 ‘사랑과 이별’의 공간임을 알려준다. 노래를 부르는 이봉환의 목소리는 걸걸하지만 왠지 애처롭다.
‘외로운 바람이 불어오는데 / 나 홀로 이곳을 서성이고 있네 / 볼 일도 없는 그 사람을 / 애타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네 / 바람 등불만 찬란하고 / 사나이 마음은 안타깝네 / 여의도 넓은 광장에 돌아서가네 돌아서가네 돌아서가네.’
‘광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아마도 1963년에 나온 연주곡 <워싱턴 광장>일 것이다. 딕시재즈 밴드 ‘빌리지 스톰퍼스’가 발표한 이 곡의 낭만적인 선율에 이끌려 이후 많은 가수가 가사를 붙여 노래 부르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1960년대 중후반 상당한 인기를 누린 그룹 ‘이씨스터즈’다.
▲ 이씨스터즈의 1973년 앨범
‘김씨스터즈’ ‘정씨스터즈’ ‘김치 캣츠’ ‘아리랑 씨스터즈’ 등 당대를 장식한 무수한 전원 여성 그룹(그때도 걸 그룹 천지였다) 가운데 선두였던 이씨스터즈의 <워싱턴 광장>도 <여의도 광장>과 다를 게 없다. 사랑의 설렘이 넘실거린다. 다만 기타의 일종인 ‘벤조(Banjo) 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광장이 다시금 음악의 공간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넓은 광장 한구석에 쓸쓸히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이 가슴 설레네 / 벤조 줄을 울리면서 생각에 젖어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만나보고 싶네. / 메마른 낙엽 흩어지는 저 워싱턴 광장 오고 가는 사람 없어 외롭기 한이 없네 / 돌아갈 생각 하지 않고 벤조만 울리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만나보고 싶네.’
워싱턴 지역은 <워싱턴 광장>의 로맨틱함과 더불어, 역사, 사회적 의미가 주어지는 1963년 4월의 ‘워싱턴 행진’을 연상하게 한다. ‘워싱턴 행진’은 흑인 지위향상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로 향한 운동으로, 흑인공민권 운동의 물꼬를 튼 그 숭고한 행진이다. ‘고용기회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이란 타이틀을 내건 이 행진은 미국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남아 있고, 그들이 집결한 링컨기념관 앞 광장은 민주화의 성지가 됐다. 행사를 주도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여기서 그 유명한 ‘난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로 베이비붐 세대의 양심과 정의를 일깨웠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테이블에 같이 앉는 꿈입니다!”
1963년은 바로 민권운동의 메시지를 포크송으로 대변한 밥 딜런, 그리고 여성 포크의 대명사 조안 바에즈가 등장한 해다. 밥 딜런의 명곡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과 조안 바에즈의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워싱턴 행진에 나선 사람들이 집결한 광장에서 불리면서 자유, 평등, 평화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대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단숨에 청춘의 기수가 된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도 이 행진에 참여했다.
우리 승리하리라 / 우리 승리하리라 / 우리 승리하리 그 날에 /
오오, 참 맘으로 / 나는 믿네 / 우리 승리하리라. /
두려움이 없네 / 두려움이 없네.
ㅡ <우리 승리하리라> 중
포탄이 영구히 금지될 때까지 얼마나 전장을 날아야 하나
친구여,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ㅡ <바람만이 아는 대답> 중
광장과 저항가요의 결합은 지금도 지구촌 어디든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1967년 구미의 젊음은 곳곳의 광장에 모여 출세와 불평등에 기대는 기존 체제가 사랑과 평등의 공동체로 변화하기를 호소했다.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으로 불리는 이 현상은 대규모 평화집회이자 퍼포먼스였다. 2011년 금융위기 이후 아랍의 민주화 운동에 이어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로 확산된 흐름도 민중이 운집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도 1986년 민주화 투쟁기에 사람들은 크고 작은 집회지에서 밴드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과 <행진>을 목 놓아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ㅡ <행진> 중
정치사회적 항거의 공간을 떠나서 2002년 서울 도심을 거대한 광장으로 만든 ‘붉은 악마’의 함성은 광장이 갖는 대중의 소통과 동참, 환희의 순수하고 고전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1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로 표현되는 후기산업사회의 ‘단절’ 흐름이 위험수위에 도달하면서 더욱 광장은 새롭게 다가온다.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발달, 재래시장의 부활, 공공건물에 대한 수요증가는 결국 광장에 대한 그리움의 산물이다. 우리는 광장으로 나가야 하고 거기서 함께 노래 불러야 한다.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 Poco a poco :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과 소통의 공간'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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