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네팔에 갔을 때 갸넨드라 국왕은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켜 모든 국무위원을 가택 연금했고, 나라 안의 모든 교통과 통신을 끊어버렸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국가 안의 모든 교통과 통신을 한 번에 끊을 수 있는 스위치 같은 것이 없을 텐데, 네팔에서는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려고 했던 나는 트레킹의 시작점인 루클라로 갈 비행기가 언제 뜰지 몰라 네팔 카트만두 국내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어느 비행기가 언제 뜨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씩 허탕을 치고는 시내를 배회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덕분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
카트만두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은 더르바르 광장이다. 고색창연한 옛 왕궁이 있어서 더 유명하다. 어느 나라나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사람들이 복작거리고 사는 모습이 더 흥미로운 법인데, 네팔도 그랬다. 더르바르 광장은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들르게 돼 있는 필수코스니 들를 수밖에 없었지만, 카트만두에 광장이 더르바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복잡한 시장 거리를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먼지도 많아서 공기가 혼탁했다. 어디론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됐다. 그 골목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그곳은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흰색의 불탑이 있었고, 사방은 고색창연한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방 몇십 미터밖에 안 되는 광장이지만, 조용하고 깨끗하여 혼잡하고 더러운 시장 거리로부터의 피난처 같았다. 그 평화로운 광장에 아이들과 닭들이 놀고 있었고, 주민들은 느긋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며칠 뒤 트레킹을 떠나 결국 에베레스트의 장엄한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더 뇌리에 남는 것은 에베레스트가 아닌 그 작고 평화로운 광장이었다. 광장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평화로움에 잠시 젖어 있었다는 것만으로 내게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감동을 준 또 다른 작은 광장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있는 영웅광장이었다. 이 광장이 어떤 영웅을 기리는지, 무슨 역사가 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구글에 찾아보면 금방 알 수도 있겠지만, 1990년도의 그 감동을 기억하기 위해 다른 기억을 덧씌우지 않고 있다. 한 변의 길이가 100m도 안 되는 이 광장에는 기둥으로 둘러싸인 반원형의 회랑이 있고, 그 위에는 영웅상들이 있었다. 조각상들이 너무나 훌륭해서 아무런 의미도 맥락도 모르는 나를 그렇게 감동시켰다. 광장이라면, 여의도의 5.16광장같이 무조건 크기만 하고 아스팔트로 덮여서 아무런 맥락도 없는 황량한 곳만 보던 나에게, 깊은 역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듯한 영웅광장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후로도 많은 광장을 가봤지만 별 감동을 못 느꼈다.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는 오로지 다국적 기업들의 광고 간판만이 빛나고 있었을 뿐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를 거쳐 학교에 다닌 나 같은 세대에게 광장은 여의도 5.16광장이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한국전쟁 때부터 비행장이 있었다. 김포공항이 생기기 전에는 여의도 비행장이 서울의 관문이었다. 사실 5.16광장도 비행장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넓고 긴 텅 빈 공간을 아스팔트로 포장해놓은 이 광장은 유사시 활주로로 쓰기 위한 것이었으며, 평시에는 국군의날 시가행진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반공궐기대회의 장소이기도 했다. 아마 이 광장에서 김일성은 수도 없이 화형당했을 것이다.
▲ 영화 <갑자기 불꽃처럼>(1980) 속 여의도광장
5.16광장은 아주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광장이었다. 1981년에는 광주항쟁 진압 1주년 기념으로 ‘국풍81, 전국 대학생 민속 국학 큰잔치’라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고, 외국에서 큰 종교지도자가 오면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러던 1997년 5.16광장은 돌연 지금의 여의도공원으로 바뀌었다. 군사적이나 정치적 용도를 벗어버리고 시민의 휴식처가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에서 광장이 정치적으로 사용된 역사의 흔적마저 다 없어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런다고 광장이 정치적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넓은 터에 사람들이 모이면 당연히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관문’이란 뜻을 가진 포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터전, 즉 사이트가 열린다. 인터넷 용어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장소성과 연관되는지, 홈페이지, 웹사이트, 이메일 주소, 포털, 도메인 등등 무엇 하나 장소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들이 더는 광장을 필요로 하지 않고 물리적 장소의 의미가 사라져가다 보니, 디지털 공간에서의 장소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 같다. 특별한 정치 집회 빼고는 사람들은 다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니, 광장도 이제는 디지털화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의 광장이 미분화된 거대한 텅 빈 공간이라면 사이버 광장은 관심 분야와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무한히 세분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그것은 무한히 작은 방으로 나뉘어 있는 광장, 익명성이 보장돼 있기에 서로가 마스크를 쓰고 만나는 광장이다. 본래 광장은 밝은 빛이 쏟아지는 곳이다. 그래서 정치적 성향이 어떻건 다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인터넷 광장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다. 내가 상대하는 것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심지어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 광장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고라’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인터넷 광장은 욕설과 상스런 말이 판치는 하수구가 돼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이버 광장에서 광장공포에 걸린 것 같다. 사람들은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데나 보고 소리 지르거나 자기 방구석에 숨어 있을 뿐이다. 최첨단의 기술로 온갖 알고리즘을 구사하여 만든 인터넷이 어쩌다 광장이 아니라 시궁창이 됐을까? 네티즌들이 광장공포를 극복하고 대명천지로 나설 날은 언제나 올까?
(기술비평가)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인문학의 지평에서 기계를 탐구하고 있는 기계비평가이자 전시기획자다. 재봉틀에서 첨단 제트 엔진에 이르기까지, 작동하는 물건에 관심이 많다. 『우주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 『기계산책자』 등을 펴내고,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우주생활’,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사진의 과학’전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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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ech : 각자만의 광장
이영준
2016-10-04
ㅣ각자만의 광장
2005년 네팔에 갔을 때 갸넨드라 국왕은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켜 모든 국무위원을 가택 연금했고, 나라 안의 모든 교통과 통신을 끊어버렸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국가 안의 모든 교통과 통신을 한 번에 끊을 수 있는 스위치 같은 것이 없을 텐데, 네팔에서는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려고 했던 나는 트레킹의 시작점인 루클라로 갈 비행기가 언제 뜰지 몰라 네팔 카트만두 국내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어느 비행기가 언제 뜨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씩 허탕을 치고는 시내를 배회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덕분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
카트만두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은 더르바르 광장이다. 고색창연한 옛 왕궁이 있어서 더 유명하다. 어느 나라나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사람들이 복작거리고 사는 모습이 더 흥미로운 법인데, 네팔도 그랬다. 더르바르 광장은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들르게 돼 있는 필수코스니 들를 수밖에 없었지만, 카트만두에 광장이 더르바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복잡한 시장 거리를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먼지도 많아서 공기가 혼탁했다. 어디론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됐다. 그 골목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그곳은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흰색의 불탑이 있었고, 사방은 고색창연한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방 몇십 미터밖에 안 되는 광장이지만, 조용하고 깨끗하여 혼잡하고 더러운 시장 거리로부터의 피난처 같았다. 그 평화로운 광장에 아이들과 닭들이 놀고 있었고, 주민들은 느긋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며칠 뒤 트레킹을 떠나 결국 에베레스트의 장엄한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더 뇌리에 남는 것은 에베레스트가 아닌 그 작고 평화로운 광장이었다. 광장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평화로움에 잠시 젖어 있었다는 것만으로 내게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감동을 준 또 다른 작은 광장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있는 영웅광장이었다. 이 광장이 어떤 영웅을 기리는지, 무슨 역사가 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구글에 찾아보면 금방 알 수도 있겠지만, 1990년도의 그 감동을 기억하기 위해 다른 기억을 덧씌우지 않고 있다. 한 변의 길이가 100m도 안 되는 이 광장에는 기둥으로 둘러싸인 반원형의 회랑이 있고, 그 위에는 영웅상들이 있었다. 조각상들이 너무나 훌륭해서 아무런 의미도 맥락도 모르는 나를 그렇게 감동시켰다. 광장이라면, 여의도의 5.16광장같이 무조건 크기만 하고 아스팔트로 덮여서 아무런 맥락도 없는 황량한 곳만 보던 나에게, 깊은 역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듯한 영웅광장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후로도 많은 광장을 가봤지만 별 감동을 못 느꼈다.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는 오로지 다국적 기업들의 광고 간판만이 빛나고 있었을 뿐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를 거쳐 학교에 다닌 나 같은 세대에게 광장은 여의도 5.16광장이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한국전쟁 때부터 비행장이 있었다. 김포공항이 생기기 전에는 여의도 비행장이 서울의 관문이었다. 사실 5.16광장도 비행장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넓고 긴 텅 빈 공간을 아스팔트로 포장해놓은 이 광장은 유사시 활주로로 쓰기 위한 것이었으며, 평시에는 국군의날 시가행진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반공궐기대회의 장소이기도 했다. 아마 이 광장에서 김일성은 수도 없이 화형당했을 것이다.
▲ 영화 <갑자기 불꽃처럼>(1980) 속 여의도광장
5.16광장은 아주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광장이었다. 1981년에는 광주항쟁 진압 1주년 기념으로 ‘국풍81, 전국 대학생 민속 국학 큰잔치’라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고, 외국에서 큰 종교지도자가 오면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러던 1997년 5.16광장은 돌연 지금의 여의도공원으로 바뀌었다. 군사적이나 정치적 용도를 벗어버리고 시민의 휴식처가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에서 광장이 정치적으로 사용된 역사의 흔적마저 다 없어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런다고 광장이 정치적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넓은 터에 사람들이 모이면 당연히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관문’이란 뜻을 가진 포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터전, 즉 사이트가 열린다. 인터넷 용어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장소성과 연관되는지, 홈페이지, 웹사이트, 이메일 주소, 포털, 도메인 등등 무엇 하나 장소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들이 더는 광장을 필요로 하지 않고 물리적 장소의 의미가 사라져가다 보니, 디지털 공간에서의 장소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 같다. 특별한 정치 집회 빼고는 사람들은 다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니, 광장도 이제는 디지털화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의 광장이 미분화된 거대한 텅 빈 공간이라면 사이버 광장은 관심 분야와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무한히 세분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그것은 무한히 작은 방으로 나뉘어 있는 광장, 익명성이 보장돼 있기에 서로가 마스크를 쓰고 만나는 광장이다. 본래 광장은 밝은 빛이 쏟아지는 곳이다. 그래서 정치적 성향이 어떻건 다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인터넷 광장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다. 내가 상대하는 것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심지어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 광장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고라’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인터넷 광장은 욕설과 상스런 말이 판치는 하수구가 돼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이버 광장에서 광장공포에 걸린 것 같다. 사람들은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데나 보고 소리 지르거나 자기 방구석에 숨어 있을 뿐이다. 최첨단의 기술로 온갖 알고리즘을 구사하여 만든 인터넷이 어쩌다 광장이 아니라 시궁창이 됐을까? 네티즌들이 광장공포를 극복하고 대명천지로 나설 날은 언제나 올까?
(기술비평가)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인문학의 지평에서 기계를 탐구하고 있는 기계비평가이자 전시기획자다. 재봉틀에서 첨단 제트 엔진에 이르기까지, 작동하는 물건에 관심이 많다. 『우주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 『기계산책자』 등을 펴내고,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우주생활’,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사진의 과학’전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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