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당시 무수한 벽돌 공장으로 가득 찼던 도시 릴은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자 유령의 도시,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도시로 전락해버렸다.
릴 시는 예술가들에게 버려진 공장들을 작업실로 무상 임대했고 도시 중앙에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줬다.
예술가에게 작품 활동을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다수는 ‘자유’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는 자립을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해진다. 세상에는 많은 예술가가 있고, 그들의 작품은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들고 매일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예술가 중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세상의 부는 제한적인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이기에 대부분은 생활고와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자립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물질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예술가들은 자립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기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독특한, 어찌 보면 발칙하기도 한 자립을 이룩한 가난한 예술가들도 많이 있다.
파리 13구, 프랑소와 미테랑 도서관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옛 건물이 하나 눈에 띈다. 파리 남동쪽, 센강 하류에 위치한 이곳의 명칭은 여러 개다. 케드라갸르가 91번지와 프리고가 19번지가 만나는 코너에 위치해 두 개의 주소를 가진 이곳은 이름 대신 지명으로 불리곤 했다. 그러다 신선한 얼음을 도시에 공급하기 위해 파리 시는 얼음저장창고를 이곳에 만들었고, 이곳의 이름은 프리고(Frigo: 프랑스어의 냉장고의 줄임말)가 되었다. 당시 파리에 속하지 않았던 이 동네는 지방으로부터 오는 물자 공급을 위한 기찻길과 창고들이 들어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얼음저장창고에는 얼음을 보관하는 기계들이 가득했는데 지금도 당시 사용하던 거대한 기계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리 13구 프리고의 외부 전경
프리고 내부 계단, 예전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2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작품활동과 전시를 펼치는 파리의 색다른 문화공간이다. 과거 활발한 생산활동 이후 텅 빈 공장 건물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건물의 벽과 입구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몸부림쳤다. 파리 시가 시 소유의 이 건물을 예술가들이 없는 틈을 타 봉쇄하려 들자 예술가들은 아예 자신들의 삶을 이 프리고 건물에서 영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함께 작업하고 수많은 전시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어두컴컴하던 이 건물은 현대인들의 문화놀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프리고에서 거주하는 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 중이다.
파리의 중심에 위치한 또 하나의 건물을 살펴보자. 59번지 리볼리 가는 프랑스 은행 크레디리오네(Credit Lyonnais)가 15년 동안 위치하던 곳이다. 어느 날 대형 화재로 은행 건물 전체가 봉쇄되었다. 건물이 텅 빈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자 KGB라는 이름을 가진 예술가 트리오가 이곳을 접수했다. KGB는 칼렉스(Kalex), 가르파르(Gaspard), 브뤼노(Bruno)라는 세 명의 예술가 이름의 첫 글자를 합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예술계의 KGB라고 부르며 텅 빈 은행 건물을 점령해 작품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악동들로부터 용기를 얻은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하나둘 모여 5층 은행건물의 구석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파리 시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십 명의 예술가들이 괴상한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 퍼포먼스를 펼쳤으며, 이색적인 전시와 패션쇼를 열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감흥을 받은 프랑스의 의상 디자이너 카스텔 바작은 자신의 패션쇼를 이곳에서 열었고, 수많은 변호사가 예술가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협력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건물 진압, 철거, 봉쇄, 그리고 예술가들의 저항 소동, 긴 법정 싸움, 그리고 파리 시장과의 협상을 통해 결국 파리 시는 이 은행 건물을 구매 후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대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예술가들의 승리로 긴 싸움의 막이 내려진 것이다. 거리 예술가 세명의 불법 점령을 통해 시작된 스쿠아트(Squart: 스쿼트Squat와 예술Art의 합성어) 프로젝트, 현재 이곳은 누구든 문을 열고 들어와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파리의 문턱 낮은 미술관이나 다름없다.
1. 리볼리가 59번지 스쿠아트 전경
2. 스쿠아트 내부의 계단, 이곳에서 많은 패션쇼가 열렸다.
스쿼트squat는 ‘불법 점거하다’라는 뜻으로 버려지거나 빈 건물을 점령하는 행위를 말한다. 건물이나 토지 소유권이나 무시하는 이 행위는 엄연한 범죄 행위다. 빈 공장 건물을 점령하던 집 없는 노동자들로 인한 사회문제를 의미하던 이 단어는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예술문화운동으로 거듭났다. 1980년대 파리의 몇몇 가난한 예술가들이 시작한 스쿠아트는 현재 파리 전역에 20여 개가 넘는다. 타인에 의해 결정되고 매일 기계처럼 일하며 항상 정해진 법칙을 따라야 하는 일상은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에너지를 불어넣지 못한다. 스쿠아트 운동의 선구자 중 하나인 알터나시옹의 모하메드 벤라쉬는 이와 같은 고정관념의 반성과 성찰이 스쿠아트 운동의 근본을 이루며 스쿠아트에는 자립과 자유, 저항과 연대가 있다고 말한다. 현재 스쿠아트는 프랑스의 굵직한 시립미술관들과 함께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갖가지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본격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스쿠아트 대표와 인터뷰 중인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드라노에, 2000년
스쿠아트 운동의 패기가 남다르다고 하여 모든 예술가가 불법 점령을 시도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혼돈의 한가운데서 몸살을 앓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스쿠아트 운동을 통해 자립에 성공한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극명하다. 예술혼을 불사르기 위한 자유를 갈구한다면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시도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 예술가에게 자유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뿐 아니라 자립을 위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쉬지 말고 생산해야 한다.
스쿠아트 내부 전경
그리고 어찌 됐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시가 존재한다는 것은 예술가들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쇠락한 도시나 동네를 예술가들이 접수하면 그 장소는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되찾는다. 산업혁명 당시 무수한 벽돌 공장으로 가득 찼던 도시 릴은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자 유령의 도시,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도시로 전락해버렸다. 릴 시는 예술가들에게 버려진 공장들을 작업실로 무상 임대했고 도시 중앙에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줬다.
도시 변두리의 기분 나쁜 인상을 풍기던 소호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들이 하나둘 작업 공간을 그곳에 만들자 문화 상류층들이 하나둘 소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소호는 가장 세련되고 힙한 문화가 살아 있는 동네가 되었다. 만화 영화 <라따뚜이>에서 거만하고 빈정대기 좋아하는 음식 평론가 ‘이고’는 생쥐가 만든 라따뚜이 요리에 감동받아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훌륭한 예술가는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 경제에만 집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화와 예술을 보듬는 사회로 거듭난다면 예술가들의 수월한 자립이 가능해질 것이고 이후 진보한 문화와 예술의 사회를 통해 경제적 발전 또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이 뭐라고 : 자립의 예술
지은경
2016-09-29
쇠락한 도시나 동네를 예술가들이 접수하면 그 장소는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되찾는다.
산업혁명 당시 무수한 벽돌 공장으로 가득 찼던 도시 릴은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자 유령의 도시,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도시로 전락해버렸다.
릴 시는 예술가들에게 버려진 공장들을 작업실로 무상 임대했고 도시 중앙에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줬다.
예술가에게 작품 활동을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다수는 ‘자유’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는 자립을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해진다. 세상에는 많은 예술가가 있고, 그들의 작품은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들고 매일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예술가 중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세상의 부는 제한적인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이기에 대부분은 생활고와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자립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물질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예술가들은 자립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기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독특한, 어찌 보면 발칙하기도 한 자립을 이룩한 가난한 예술가들도 많이 있다.
파리 13구, 프랑소와 미테랑 도서관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옛 건물이 하나 눈에 띈다. 파리 남동쪽, 센강 하류에 위치한 이곳의 명칭은 여러 개다. 케드라갸르가 91번지와 프리고가 19번지가 만나는 코너에 위치해 두 개의 주소를 가진 이곳은 이름 대신 지명으로 불리곤 했다. 그러다 신선한 얼음을 도시에 공급하기 위해 파리 시는 얼음저장창고를 이곳에 만들었고, 이곳의 이름은 프리고(Frigo: 프랑스어의 냉장고의 줄임말)가 되었다. 당시 파리에 속하지 않았던 이 동네는 지방으로부터 오는 물자 공급을 위한 기찻길과 창고들이 들어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얼음저장창고에는 얼음을 보관하는 기계들이 가득했는데 지금도 당시 사용하던 거대한 기계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리 13구 프리고의 외부 전경
프리고 내부 계단, 예전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2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작품활동과 전시를 펼치는 파리의 색다른 문화공간이다. 과거 활발한 생산활동 이후 텅 빈 공장 건물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건물의 벽과 입구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몸부림쳤다. 파리 시가 시 소유의 이 건물을 예술가들이 없는 틈을 타 봉쇄하려 들자 예술가들은 아예 자신들의 삶을 이 프리고 건물에서 영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함께 작업하고 수많은 전시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어두컴컴하던 이 건물은 현대인들의 문화놀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프리고에서 거주하는 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 중이다.
파리의 중심에 위치한 또 하나의 건물을 살펴보자. 59번지 리볼리 가는 프랑스 은행 크레디리오네(Credit Lyonnais)가 15년 동안 위치하던 곳이다. 어느 날 대형 화재로 은행 건물 전체가 봉쇄되었다. 건물이 텅 빈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자 KGB라는 이름을 가진 예술가 트리오가 이곳을 접수했다. KGB는 칼렉스(Kalex), 가르파르(Gaspard), 브뤼노(Bruno)라는 세 명의 예술가 이름의 첫 글자를 합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예술계의 KGB라고 부르며 텅 빈 은행 건물을 점령해 작품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악동들로부터 용기를 얻은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하나둘 모여 5층 은행건물의 구석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파리 시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십 명의 예술가들이 괴상한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 퍼포먼스를 펼쳤으며, 이색적인 전시와 패션쇼를 열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감흥을 받은 프랑스의 의상 디자이너 카스텔 바작은 자신의 패션쇼를 이곳에서 열었고, 수많은 변호사가 예술가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협력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건물 진압, 철거, 봉쇄, 그리고 예술가들의 저항 소동, 긴 법정 싸움, 그리고 파리 시장과의 협상을 통해 결국 파리 시는 이 은행 건물을 구매 후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대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예술가들의 승리로 긴 싸움의 막이 내려진 것이다. 거리 예술가 세명의 불법 점령을 통해 시작된 스쿠아트(Squart: 스쿼트Squat와 예술Art의 합성어) 프로젝트, 현재 이곳은 누구든 문을 열고 들어와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파리의 문턱 낮은 미술관이나 다름없다.
1. 리볼리가 59번지 스쿠아트 전경
2. 스쿠아트 내부의 계단, 이곳에서 많은 패션쇼가 열렸다.
스쿼트squat는 ‘불법 점거하다’라는 뜻으로 버려지거나 빈 건물을 점령하는 행위를 말한다. 건물이나 토지 소유권이나 무시하는 이 행위는 엄연한 범죄 행위다. 빈 공장 건물을 점령하던 집 없는 노동자들로 인한 사회문제를 의미하던 이 단어는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예술문화운동으로 거듭났다. 1980년대 파리의 몇몇 가난한 예술가들이 시작한 스쿠아트는 현재 파리 전역에 20여 개가 넘는다. 타인에 의해 결정되고 매일 기계처럼 일하며 항상 정해진 법칙을 따라야 하는 일상은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에너지를 불어넣지 못한다. 스쿠아트 운동의 선구자 중 하나인 알터나시옹의 모하메드 벤라쉬는 이와 같은 고정관념의 반성과 성찰이 스쿠아트 운동의 근본을 이루며 스쿠아트에는 자립과 자유, 저항과 연대가 있다고 말한다. 현재 스쿠아트는 프랑스의 굵직한 시립미술관들과 함께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갖가지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본격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스쿠아트 대표와 인터뷰 중인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드라노에, 2000년
스쿠아트 운동의 패기가 남다르다고 하여 모든 예술가가 불법 점령을 시도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혼돈의 한가운데서 몸살을 앓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스쿠아트 운동을 통해 자립에 성공한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극명하다. 예술혼을 불사르기 위한 자유를 갈구한다면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시도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 예술가에게 자유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뿐 아니라 자립을 위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쉬지 말고 생산해야 한다.
스쿠아트 내부 전경
그리고 어찌 됐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시가 존재한다는 것은 예술가들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쇠락한 도시나 동네를 예술가들이 접수하면 그 장소는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되찾는다. 산업혁명 당시 무수한 벽돌 공장으로 가득 찼던 도시 릴은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자 유령의 도시,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도시로 전락해버렸다. 릴 시는 예술가들에게 버려진 공장들을 작업실로 무상 임대했고 도시 중앙에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줬다.
도시 변두리의 기분 나쁜 인상을 풍기던 소호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들이 하나둘 작업 공간을 그곳에 만들자 문화 상류층들이 하나둘 소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소호는 가장 세련되고 힙한 문화가 살아 있는 동네가 되었다. 만화 영화 <라따뚜이>에서 거만하고 빈정대기 좋아하는 음식 평론가 ‘이고’는 생쥐가 만든 라따뚜이 요리에 감동받아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훌륭한 예술가는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 경제에만 집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화와 예술을 보듬는 사회로 거듭난다면 예술가들의 수월한 자립이 가능해질 것이고 이후 진보한 문화와 예술의 사회를 통해 경제적 발전 또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단행본 기획과 전시기획,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책에 관한 잡지 『책, Chaeg』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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