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학교에서 한 차례 짧은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인생학교는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시작한 시민 학교다. 알랭 드 보통은 일상적이지만 본질적인 인생의 고민을 깊고 넓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해설해주는 작가다. 인생학교는 보통식 글쓰기가 강연 형태로 확장된 경우다. 정작 학교에선 배우지도 못했고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고민되는 인생의 다양한 수수께끼를 다룬다. 강사라고 정답을 아는 건 아니다. 어차피 정답이 있는 문제들도 아니고 말이다. 강사와 학생이 함께 머리를 맞대보는 게 인생학교의 목적이다. 엉겁결에 인생학교에서 맡았던 강의가 ‘애인이 없어도 괜찮아’였다.
처음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땐 의아했다. 애인이 없으면 안 괜찮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싶었다. 이런 걸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싶었다. 많았다. 인생학교 강의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채워졌다. 대화를 나누면서 고민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부분 결혼 적령기의 성인 남녀였다. 어느새 주변에서 하나둘 애인이 생긴 친구들이 늘어났다. 어느새 주변에서 하나둘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결혼은 안 해도 연애만큼은 꾸준한 친구들도 늘 있었다. 문득 애인도 없고 결혼도 안 한 자신이 낙오한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을 느꼈다.
가족 관계로부터 자립한 개인의 위기
물론 사랑은 숙제가 아니다. 사랑할 만한 상대가 있을 때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달콤한 연애는 정말 드라마에나 나온다는 걸 알아야 한다. 막상 모두의 고민을 접하고 보니 그렇게 단정 지을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립이 문제였다.
예전엔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곧 자립이었다. 자립이란 가족의 도움 없이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고 부모의 명령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제를 자결할 수 있는 상태로 요약된다. 농경사회와 근대사회까지만 해도 가족으로부터의 자립은 개인에겐 실존의 문제였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 회장이나 롯데그룹을 창업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창업 신화는 하나같이 집에서 돈을 훔쳐서 가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가출이라도 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가족이었다. 현대 사회에선 다르다. 가족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빠르게 와해해가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은 더 이상 자녀의 미래를 책임져줄 수 없다. 대신 부모도 더 이상 성인이 된 자녀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 덕분에 개인은 스스로 경제적인 독립만 이룰 수 있다면 예전보다 훨씬 손쉽게 가족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게 됐다.
가족의 공백이 문제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자립하게 된다는건 상식이다. 가족 관계를 대신하게 되는 건 친구 관계다. 현대 사회에선 이런 개인의 관계 전환이 쉽지가 않다. 가족의 해체는 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화했다. 느슨해진 공동체 안에선 친구 관계나 동료 관계도 예전만큼 조밀하지 않다. 우리는 설사 한 도시에 살고 있다 해도 경제적 사회적 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친구 관계도 느슨해졌다. 동료는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오히려 한정된 경제적 재화를 놓고 다투는 경쟁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가족 관계로부터 자립한 개인은 사실상 관계의 진공 상태에 놓이게 된단 얘기다.
가족의 자리를 대체한 연인
아무런 인간관계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절대 자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현실성은 떨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사회성을 먹고 자라난다. 우리의 소비 행위는 대부분 인간관계 때문에 유발된다. 관계는 인간이 스스로 원해서 또 시스템이 그것을 유발해서 필요해진다. 결국 가족 관계나 친구 관계로부터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개인이 갈구하게 되는 건 연애 관계다. 사회적 관계의 분자 단위였던 가족의 자리를 원자 단위인 연인이 대신하게 된 셈이다.
실제로도 연애는 현대 생활의 만능열쇠처럼 보인다. 오늘 저녁에 누구와 영화를 볼지,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같은 문제부터, 창업을 할지 취직을 할지, 이 치마를 살지 저 바지를 살지, 이 자동차보험에 들지 저 공연을 볼지까지, 이것들은 대부분 연애 관계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예전엔 가족 관계 안에서 연산됐던 일상적 숙제들이다. 이젠 애인한테 묻고 애인한테 답하면서 해결한다. 겉보기엔 자립한 것처럼 보이는 성인 남녀가 실제로는 서로한테 인생을 통째로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애인이 없어도 괜찮냐고 묻는 건 현대 사회에선 매우 실존적인 질문이 된다. 물론 가족을 떠나 애인한테 의존하는 성인은 진정 자립한 게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정서적 자립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현실은 다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자기 결정권이 거의 없다. 취업을 할지 창업을 할지 같은 문제에서도 개인의 자율성은 별로 없다. 창업이 자립적이고 취업은 의존적인 게 아니다. 어차피 개인은 사회 경제 여건에 따라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뿐이다.
미디어는 과거에 취업자를 수출 경제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산업 일꾼으로 치켜세우고, 창업자를 한낱 자영업자로 정의했다. 지금은 창업자를 혁신에 도전하는 젊은 신세대로 포장하고 취업자를 안정을 추구하는 월급쟁이로 묘사한다. 기성 미디어는 가족으로부터 자립하지 않는 캥거루족이나 니트족을 걱정한다. 실제로 이런 내재적 의존성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따로 있다. 가족으로부터 자립한다 한들 실제로는 아무것도 자기 결정할 수 없는 외재적 수동성 말이다. 우리는 모든 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자립은 한낱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애인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
자립할 수 없는 성인이 자립을 강요당하면서 사회에 내몰렸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연애 관계다. 물론 이마저도 사회가 개인을 부추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21세기만큼 사랑이 과대평가 받고 있는 시대도 드물다. 흡사 사랑은 현대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보인다. 자립해서 불행한 개인이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사랑이다. 사회공동체의 편법이다. 연애는 사회공동체가 품어줘야 할 개인이 스스로 자가 발전하도록 부추기는 미끼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밖엔 난 몰라’일 수밖에 없다. 분자 단위인 가족이 해체되고 원자 단위인 연애까지 포기하면 이젠 나노 단위로 각자 도생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의에서 적잖은 성인 남녀들이 애인이 없어도 괜찮은지를 고민했던 배경이다. 애인이 없으면 안 괜찮은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혼밥이나 혼주가 일상화된 시대다. 모두가 혼자 먹고 놀고 자는 게 낯부끄럽지 않다고 말은 한다.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 되려고 다들 노력한다. 강요된 자립일 뿐이다. 이미 결혼은 개인에게 대안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앞으로 점점 더 소수만을 위한 선택지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정작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자들도 연애까지 거부하는 건 아니다. 이게 본질이다. ‘애인이 없어도 괜찮아’에 모인 학생들은 결혼은 꺼리면서도 애인이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는 진정한 정서적 독립이 더 요구되는 시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자립해서 고립된 개인한테 정신 승리까지 요구하는 말이다. 애인 타령은 그저 달콤한 푸념 정도로 웃어넘길지도 모른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소리다. 현대 성인 남녀들한테 연인의 유무는 극단적으론 자신의 자본주의적 가치까지 평가받는 실존적 요소다. 5포 세대의 고통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건 취업이지만 가장 피눈물 나는 건 연애다. 취업 준비를 하느라 연애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다. 누구한테도 연애 상대로 대접받지 못해서 아예 자기방어를 해버린 것이다. 청년 세대와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절절한 아픔이 쏟아진다. 그들에게 경제적 자립인 취업은 끝없는 자기계발일 뿐이고, 정서적 자립인 독립은 연애 없는 고독의 내면화일 뿐이다. 지금은, 잔인한 연애 사회다.
(기자)「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대중매체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적인 기사를 쓰고 있다. O tvN <비밀독서단>에 출연 중이며 「시사IN」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는 왜』 『장기보수시대』 『사라진 실패』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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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소셜클럽 : 연애 사회
신기주
2016-09-27
21세기만큼 사랑이 과대평가 받고 있는 시대도 드물다.
흡사 사랑은 현대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보인다.
자립해서 불행한 개인이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사랑이다.
사회공동체의 편법이다.
연애는 사회공동체가 품어줘야 할 개인이 스스로 자가 발전하도록 부추기는 미끼다.
인생학교에서 한 차례 짧은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인생학교는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시작한 시민 학교다. 알랭 드 보통은 일상적이지만 본질적인 인생의 고민을 깊고 넓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해설해주는 작가다. 인생학교는 보통식 글쓰기가 강연 형태로 확장된 경우다. 정작 학교에선 배우지도 못했고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고민되는 인생의 다양한 수수께끼를 다룬다. 강사라고 정답을 아는 건 아니다. 어차피 정답이 있는 문제들도 아니고 말이다. 강사와 학생이 함께 머리를 맞대보는 게 인생학교의 목적이다. 엉겁결에 인생학교에서 맡았던 강의가 ‘애인이 없어도 괜찮아’였다.
처음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땐 의아했다. 애인이 없으면 안 괜찮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싶었다. 이런 걸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싶었다. 많았다. 인생학교 강의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채워졌다. 대화를 나누면서 고민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부분 결혼 적령기의 성인 남녀였다. 어느새 주변에서 하나둘 애인이 생긴 친구들이 늘어났다. 어느새 주변에서 하나둘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결혼은 안 해도 연애만큼은 꾸준한 친구들도 늘 있었다. 문득 애인도 없고 결혼도 안 한 자신이 낙오한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을 느꼈다.
가족 관계로부터 자립한 개인의 위기
물론 사랑은 숙제가 아니다. 사랑할 만한 상대가 있을 때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달콤한 연애는 정말 드라마에나 나온다는 걸 알아야 한다. 막상 모두의 고민을 접하고 보니 그렇게 단정 지을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립이 문제였다.
예전엔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곧 자립이었다. 자립이란 가족의 도움 없이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고 부모의 명령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제를 자결할 수 있는 상태로 요약된다. 농경사회와 근대사회까지만 해도 가족으로부터의 자립은 개인에겐 실존의 문제였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 회장이나 롯데그룹을 창업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창업 신화는 하나같이 집에서 돈을 훔쳐서 가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가출이라도 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가족이었다. 현대 사회에선 다르다. 가족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빠르게 와해해가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은 더 이상 자녀의 미래를 책임져줄 수 없다. 대신 부모도 더 이상 성인이 된 자녀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 덕분에 개인은 스스로 경제적인 독립만 이룰 수 있다면 예전보다 훨씬 손쉽게 가족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게 됐다.
가족의 공백이 문제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자립하게 된다는건 상식이다. 가족 관계를 대신하게 되는 건 친구 관계다. 현대 사회에선 이런 개인의 관계 전환이 쉽지가 않다. 가족의 해체는 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화했다. 느슨해진 공동체 안에선 친구 관계나 동료 관계도 예전만큼 조밀하지 않다. 우리는 설사 한 도시에 살고 있다 해도 경제적 사회적 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친구 관계도 느슨해졌다. 동료는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오히려 한정된 경제적 재화를 놓고 다투는 경쟁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가족 관계로부터 자립한 개인은 사실상 관계의 진공 상태에 놓이게 된단 얘기다.
가족의 자리를 대체한 연인
아무런 인간관계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절대 자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현실성은 떨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사회성을 먹고 자라난다. 우리의 소비 행위는 대부분 인간관계 때문에 유발된다. 관계는 인간이 스스로 원해서 또 시스템이 그것을 유발해서 필요해진다. 결국 가족 관계나 친구 관계로부터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개인이 갈구하게 되는 건 연애 관계다. 사회적 관계의 분자 단위였던 가족의 자리를 원자 단위인 연인이 대신하게 된 셈이다.
실제로도 연애는 현대 생활의 만능열쇠처럼 보인다. 오늘 저녁에 누구와 영화를 볼지,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같은 문제부터, 창업을 할지 취직을 할지, 이 치마를 살지 저 바지를 살지, 이 자동차보험에 들지 저 공연을 볼지까지, 이것들은 대부분 연애 관계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예전엔 가족 관계 안에서 연산됐던 일상적 숙제들이다. 이젠 애인한테 묻고 애인한테 답하면서 해결한다. 겉보기엔 자립한 것처럼 보이는 성인 남녀가 실제로는 서로한테 인생을 통째로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애인이 없어도 괜찮냐고 묻는 건 현대 사회에선 매우 실존적인 질문이 된다. 물론 가족을 떠나 애인한테 의존하는 성인은 진정 자립한 게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정서적 자립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현실은 다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자기 결정권이 거의 없다. 취업을 할지 창업을 할지 같은 문제에서도 개인의 자율성은 별로 없다. 창업이 자립적이고 취업은 의존적인 게 아니다. 어차피 개인은 사회 경제 여건에 따라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뿐이다.
미디어는 과거에 취업자를 수출 경제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산업 일꾼으로 치켜세우고, 창업자를 한낱 자영업자로 정의했다. 지금은 창업자를 혁신에 도전하는 젊은 신세대로 포장하고 취업자를 안정을 추구하는 월급쟁이로 묘사한다. 기성 미디어는 가족으로부터 자립하지 않는 캥거루족이나 니트족을 걱정한다. 실제로 이런 내재적 의존성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따로 있다. 가족으로부터 자립한다 한들 실제로는 아무것도 자기 결정할 수 없는 외재적 수동성 말이다. 우리는 모든 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자립은 한낱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애인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
자립할 수 없는 성인이 자립을 강요당하면서 사회에 내몰렸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연애 관계다. 물론 이마저도 사회가 개인을 부추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21세기만큼 사랑이 과대평가 받고 있는 시대도 드물다. 흡사 사랑은 현대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보인다. 자립해서 불행한 개인이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사랑이다. 사회공동체의 편법이다. 연애는 사회공동체가 품어줘야 할 개인이 스스로 자가 발전하도록 부추기는 미끼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밖엔 난 몰라’일 수밖에 없다. 분자 단위인 가족이 해체되고 원자 단위인 연애까지 포기하면 이젠 나노 단위로 각자 도생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의에서 적잖은 성인 남녀들이 애인이 없어도 괜찮은지를 고민했던 배경이다. 애인이 없으면 안 괜찮은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혼밥이나 혼주가 일상화된 시대다. 모두가 혼자 먹고 놀고 자는 게 낯부끄럽지 않다고 말은 한다.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 되려고 다들 노력한다. 강요된 자립일 뿐이다. 이미 결혼은 개인에게 대안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앞으로 점점 더 소수만을 위한 선택지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정작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자들도 연애까지 거부하는 건 아니다. 이게 본질이다. ‘애인이 없어도 괜찮아’에 모인 학생들은 결혼은 꺼리면서도 애인이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는 진정한 정서적 독립이 더 요구되는 시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자립해서 고립된 개인한테 정신 승리까지 요구하는 말이다. 애인 타령은 그저 달콤한 푸념 정도로 웃어넘길지도 모른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소리다. 현대 성인 남녀들한테 연인의 유무는 극단적으론 자신의 자본주의적 가치까지 평가받는 실존적 요소다. 5포 세대의 고통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건 취업이지만 가장 피눈물 나는 건 연애다. 취업 준비를 하느라 연애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다. 누구한테도 연애 상대로 대접받지 못해서 아예 자기방어를 해버린 것이다. 청년 세대와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절절한 아픔이 쏟아진다. 그들에게 경제적 자립인 취업은 끝없는 자기계발일 뿐이고, 정서적 자립인 독립은 연애 없는 고독의 내면화일 뿐이다. 지금은, 잔인한 연애 사회다.
(기자)「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대중매체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적인 기사를 쓰고 있다. O tvN <비밀독서단>에 출연 중이며 「시사IN」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는 왜』 『장기보수시대』 『사라진 실패』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360소셜클럽 : 연애 사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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