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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인류, 향을 찾아 떠나다

최낙언

2016-08-24

인류, 향을 찾아 떠나다


인간의 향에 대한 사랑은 좀 특별하고 향신료는 고대부터 단순한 음식물 이상이었습니다. 약으로 대접받기도 했고 나아가 어떤 초월적 속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바로 보이지 않는 특성 때문입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이런 것들을 태워 하늘로 향기를 올려보내 신들을 즐겁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마른 나뭇가지와 수지, 풀 등을 태울 때 그중 어떤 것들은 타오르면서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향취를 풍겨 신적인 감각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향료를 뜻하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향료를 나타내는 단어 ‘perfume’의 ‘per’는 ‘통하여’, ‘fumum’은 ‘연기’라는 뜻입니다.


인도 바라나시에서 열린 힌두 의식에서 신자가 향을 피우고 있다

▲ 인도 바라나시에서 열린 힌두 의식에서 신자가 향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향료는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향의 원료재배와 제조기술이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향유와 향고는 고대 귀족들에겐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이 향을 갖는다는 건 꿈과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향료와 향신료는 아주 귀한 것이어서 냄새로써 인간들에게 천국의 한 자락을 제공했습니다. 서양인에게 향신료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아라비아와 같은 전설의 땅에서부터 온 신비한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낙원의 향기에 대한 갈증이 유럽인들의 대탐험, 그리고 결국에는 아메리카의 발견을 견인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가 매우 귀해서 말린 후추 열매 1파운드(약 453g)면 중세 영주의 토지에 귀속된 농노 1명의 신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15세기, 향료 무역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독점으로 다른 나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으며, 베네치아 상인들이 챙긴 이윤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인도에 갈 수 있는 새로운 길, 특히 아프리카를 빙 둘러가는 바닷길의 개척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고, 결국 유럽의 대항해 시대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마젤란은 육두구와 정향을 찾아 세계를 탐험했고, 향신료에 대한 욕구가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16세기 독일에서 만들어진 아프리카의 지도

▲ 16세기 독일에서 만들어진 아프리카의 지도, 향신료 무역을 위해  스페인–카나리 군도–희망봉을 경유해 인도의 캘커타로 향하는 경로를 설명한다


요리사나 식품연구원은 항상 세상에 없는 대단한 제품이나 새로운 요리를 꿈꾸기 마련입니다. 소비자도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호기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 꼭 찾아가 먹어봐야겠다고 결심을 하죠. 그런데 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은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형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험용 쥐에게 여러 가지 맛의 음식을 주어도 일단 한 가지를 먹으면 계속 그것만 먹으려 하지 번갈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동물은 육식이나 채식 등 편식을 하고 심지어 잡식 동물마저 몇 가지 음식을 편식하지, 기존의 먹을 것이 충분한데 다른 새로운 음식에 흥미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인류의 이런 성향은 후각과 뇌 덕분입니다. 후각과 미각을 먹이의 탐색보다는 먹이의 판단에 썼습니다. 인류의 선조는 동물 사체에 붙어 있는 고기 조각에서부터 견과, 과일, 잎, 덩이줄기까지 먹을 만한 것들이면 무엇이든 찾아내 먹었습니다. 처음 본 것이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일단 먹어보는 겁니다. 과연 먹어도 괜찮은 것인지 아닌지를 미각과 후각에 의지해 판단한 것이죠. 그래서 다른 동물과는 전혀 다르게 가장 다양한 먹을거리가 포함된 다채로운 식단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먹거리를 먹던 수렵채집 생활을 하다가, 1만여 년 전 농업을 시작하면서 먹거리 형태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다양하지만 우발적인 식단 대신에, 예측 가능하지만 단조로운 식단이 된 것입니다. 열량과 영양은 풍부하지만 밋밋한 맛을 가진 밀, 보리, 쌀, 옥수수 등을 먹고살게 되면서, 누릴 수 있는 맛의 종류가 너무 적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예전의 냄새와 맛의 감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향신료에 그렇게 매료된 것인지 모릅니다. 주곡 위주의 단순한 맛에 허브와 향신료의 마법을 가미하여 다시 수렵채집 시절의 화려한 먹거리에 추억을 유지한 것입니다.

 

수저 위 향료, 향신료들

 

요즘 향료와 향신료는 완전히 일상으로 내려와 아주 평범해졌습니다. 사용량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죠. 거의 모든 나라의 모든 음식에 향신료가 쓰입니다. 향신료로 각자의 식재료에 맞춘 특유의 맛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 풍광도 다르고 맛도 다르죠. 그리고 그때 경험한 맛과 향은 그 장소의 추억을 기억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향은 기억 중추를 자극하여 시공을 초월한 더 아득한 과거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힘이 있습니다. 냄새는 오랜 세월 동안 덤불 속에 감춰져 있던 지뢰처럼 기억 속에서 슬며시 폭발합니다. 냄새의 뇌관을 건드리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뇌 진화의 관점에서도 명확합니다.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과 달리 변연계에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변연계에 속한 편도체는 감정의 중추로 여기를 전극으로 자극하면 강렬한 분노, 절절한 사랑의 감정, 의기소침한 슬픔 등 아주 짧은 순간에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심리적 상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뇌의 언어중추는 후각중추보다 훨씬 늦게 개발된 영역입니다. 언어로 묘사되는 기억은 훨씬 시각적이고 이성적이지만, 냄새가 갖는 감성의 풍부함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언어로 된 기억은 기록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오래 남겨두기 어렵지만, 냄새로 이루어진 기억은 작은 단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회상할 수 있습니다.

먹는 것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을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즐거운 추억을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장소라면 같은 음식도 맛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라면은 항상 같은 맛이지만 색다른 장소라면 특별한 감동이 됩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장소라면 항상 맛은 더 자극적이고 오래 기억에 남죠. 이것이 해외여행을 가면서 꼭 라면을 챙기는 이유이고, 한국인이 우주식을 개발할 때 라면이 빠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한 음식이느냐에 따라 맛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떤 음식이건 혼자 먹는 것보다 같이 먹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먹는 것이 훨씬 맛이 있죠. 대부분의 쾌락은 익숙해지면 싫증이 나지만, 맛의 즐거움은 평생 동안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찾아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추억을 만들어줍니다. 좋은 추억을 많이 쌓는 것만큼 삶의 힘이 되는 것도 드물 것입니다.


와인과 음식, 수저포크세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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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낙언
최낙언

서울대학과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식품회사 세 곳을 거쳐 현재는 (주)편한식품정보에서 근무한다. 맛이나 식품에서 잘 풀리지 않는 질문을 자연과학 지식과 연결해서 답을 찾거나 새로운 의미를 찾아 음미하는 걸 좋아한다. 불량 지식을 바로잡고, 음식과 과학 정보를 공유하는 Seehint.com을 운영 중이다. 『감각 착각 환각』(2014) 『맛이란 무엇인가』(2013) 『맛의 원리』(2015)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2016)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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