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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밥] 엄마의 쇠고기 미역국

이지응

2016-05-19

우리 엄마밥 '엄마'와 '엄마 음식'에 관한 소소(小笑)한 이야기

엄마의 쇠고기 미역국

 

내림음식이라고 까지 부르기는 멋쩍어도 집마다 그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집의 경우에는 쇠고기 미역국이 바로 그 음식이었다. 쇠고기 미역국이야 동네 백반집에만 가도 쉽게 찾아먹을 수 있는 데다 심지어는 편의점에만 가도 눈에 띠는 음식인지라 우리집 음식입네, 하고 소개하기 겸연쩍기도 하지만, 정말로 우리집 밖에서는 그 맛을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저 미역국이라는 것은 어떻게 끓이는 것인가 하면, 한 입 크기로 썬 소고기 양지와 미역을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들들 볶다가 다진 마늘을 넣어 조금 더 볶아낸 후 물을 넣고 끓이면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니 진한 고기 맛에 고소한 기름의 풍미가 느끼할락 말락할 정도로 감도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미역국은 그저 육수의 맛이 구수하기만 하고 기름 맛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엄마의 쇠고기 미역국

 

집을 나와서 기숙사며 자취방을 전전하면서 혼자 살림을 꾸린지가 벌써 9년째가 되었다. 그 사이에 생일만 해도 9번이었으니 미역국을 끓일 일이 많았음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숱하게 미역국을 끓였는데도 집에서 먹던 그 맛은 한동안 찾을 수가 없었더랬다. 처음에는 솜씨가 모자라기 때문인가 싶었지만, 다른 음식들은 대강 손에 익어가는 동안에도 미역국 맛만 제자리 걸음이었으니 그건 아니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미역국을 끓이시겠다던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나가보고 나서였다.

 

그때까지 나는 미역국을 끓인다고 하면 마트에 나가서 먹기 좋게 잘라 둔 '국거리'라는 이름의 포장된 쇠고기를 무신경하게 한 팩 덜렁 집어다 카트에 던져 넣고 장보기를 마무리하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정육점에 들어가 큼지막한 쇠고기 양지머리 덩어리를 이리저리 살펴보시고 조심스럽게 골라 집으로 향하시는 것이었다. 그러곤 그 커다랗고 붉은 고깃덩이를 그대로 솥에 넣어 삶으시고는 한참을 그

 

앞에 서서 기름과 거품을 걷어내셨다. 그렇게 한참을 고아낸 육수에는 기름이라고는 한 방울 없었으니, 국을 끓인다고 거기에서 기름 맛이 돌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방법을 알아냈다고 바로 그런 미역국을 끓일 수는 없었다. 이후로도 장을 보러 나설 때면 나는 어김없이 대형 마트를 향했고, 대형 마트에서는 간편하게 한 입 크기로 썰어진 국거리밖에 팔지 않았으므로 어머니의 미역국 맛을 내기란 여전히 요원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내가 시장으로 발을 돌리는 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찾은 시장은 말 그대로 시장통이었다. 사람이 득시글거리는 것도 그렇지만, 정리라고는 하나도 되어있지 않아 어지럽기가 짝이 없었다. 과일가게 옆에 어물전이 있고, 그 앞에는 곡물 가게가 있는데 그 옆으로는 또 어물전이 있었다. 정육점은 한 가게 건너 하나 있기도 하다가 외진 곳에 덩그러니 하나 똑 떨어져 있기도 했다. 그 시장통을 헤집고 다니면서 몇 집의 정육점을 들르고 나서야 맘에 드는 양지머리 덩어리를 하나 집어올 수 있었고, 그렇게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미역국의 맛을 어렴풋이나마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장을 볼 때면 시장보다는 대형 마트를 즐겨 찾지만 어머니의 미역국 맛이 그립다거나 특별한 밥상을 차려야 할 때면 꼭 시장을 찾는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계획되어 있는 대형 마트의 동선이 당연하게도 훨씬 편리하지만, 어지러운 시장통이 주는 어떤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어물전의 파란색과 채소 가게의 초록색, 그리고 정육점의 붉은 색이 어지러이 부대끼는 사이를 헤집고 다녀야 반드시 큼지막한 양지머리를 찾을 수 있고, ‘국거리’로 포장되지 않은 고기로 국을 끓여야만 어머니의 맛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의미라는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이 제 나름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빚어지는 무늬의 틈바구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 무늬 자체가 유일한 의미일지도 모를 일이다.

 

쇠고기 미역국

 

물 1.5 l, 쇠고기 양지 600 g, 다진 마늘 한 큰 술, 말린 미역 한 줌, 국간장 두 큰 술

 

1. 찬 물에 양지 한 근을 4등분 하여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2. 육수가 끓는 동안 미역을 불린다.
3. 육수가 끓어오르면 수시로 살피며 떠오르는 거품을 체로 건져낸다.
4. 육수를 두 시간 반 가량 우려낸 후, 고기를 건져 찢어 놓고 국간장을 한 큰 술 둘러 무쳐 놓는다.
5. 육수에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무쳐놓은 쇠고기와 불린 미역을 넣고 끓인다.
6. 다진마늘을 넣고, 모자란 간은 소금으로 보충하며 20분 가량 끓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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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지웅
이지응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 후, 요리와 사진에 재미를 붙여 학업을 잠시 내려놓고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더 퍼스트 미디어(www.thefirstmedia.net/)에 자취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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