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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나의 첫번째 : 나의 첫 번째 도시

정은

2016-02-04

나의 첫 번째 도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내 전경

▲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내 전경.


몇 달 전 나는 독립출판으로 나의 첫번째 책을 냈다. 매년 낯선 도시에서 한 달 이상 살아보고 그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사진 에세이집이다. 연작이 될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에는 스페인의 순례자 길(Camino de Santiago)을 걸은 기록이 담겨 있다. 그 여정은, 피레네 산맥에서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42일 동안 한 방향으로 길을 따라 매일 5~30km씩 걷는 것이었다. 날마다 걸어 다른 마을에 도착했고 거기서 잠을 자고 일어났다. 작은 마을에서 머문 날도 있었고 큰 도시에서 머물기도 했다. 여러 마을을 통과하다 보니 차이점 뿐만 아니라 공통점이 보였다.

 

스페인 어느 작은 마을의 초입에 있는, 마을을 관통하는 길.

▲ 스페인 어느 작은 마을의 초입에 있는, 마을을 관통하는 길.

 

대개 이런 길은 성당과 광장으로 이어진다.

 

사람 얼굴의 이목구비처럼 마을은 마을의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다. 그것이 없으면 그냥 흩어진 집들일 뿐이다. 마을의 중심을 관통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목구비를 볼 수가 있다. 마을의 중심에는 언제나 성당이 있다. 그리고 그앞에 광장이 있다. 또, 광장에는 카페가 있고 그 옆에 빵집이 있기 마련이다. 빵집에서 그날 아침 갓 구운 고소한 빵을 팔고 있다면,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내어주는 주인이 웃는 얼굴이라면, 그런 곳은 마음 편히 머물러도 되는 곳이다. 그 과일가게서 파는 사과는 틀림없이 맛이 있을 것이다.

 

마을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상호 연결되면서 만들어진다. 빵 한 조각의 맛, 사과 한 입의 맛,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마을 전체의 인상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주로 작은 마을에서 머물렀지만 가끔은 큰 도시에 도착하기도 했다. 도시의 경우는 어떨까. 도시는 두꺼운 옷을 껴 입은 마을 같았다. 훨씬 복잡하지만, 그 핵심은 작은 마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성당

 

도시의 중심에 성당이 있고, 어디서나 그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도시를 한 눈에 다 볼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에 약간의 힌트를 준 작품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이 소설은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사신으로 방문했던 도시들을 쿠빌라이 칸에게 묘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없는 전투를 벌였던 선대를 통해 많은 수의 도시를 물려받게 된 황제는 자신이 차지한 것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었다. 마르코 폴로는 그를 대신하여 도시를 방문하고 돌아와 황제에게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가 묘사하는 도시들은 정말로 실재하는 곳인지 그냥 꾸며낸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지만, 황제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 이야기들은 실제 도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마치 도시가 꾸는 꿈과 같다. 하지만 과연 마르코 폴로의 말이 그저 꿈에 불과할 뿐, 도시의 참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르코 폴로가 어느 도시의 창틀 무늬의 섬세한 묘사를 할 때 칸은 그것을 상상한다. 이야기를 듣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 그는 그 도시를 소유했다. 도시의 어느 과일가게에서 사과 한 입을 맛보듯.

 

잠시 머물렀던 도시의 광장에서 본 것들은 도시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지만, 그 조각엔 도시 전체가 담겨 있을 것이다. 조각 없이 도시는 완성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잠시 머물렀고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도시 전체였고 나는 한때 그것의 일부분이었다. 나는 첫 번째 도시의 일부를 지닌 채, 두 번째 도시를 방문했다. 두 번째 도시의 기억은 나와 함께 세 번째 도시로 건너갔다. 그것들은 서로 손을 잡듯이 연결되었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나는 내가 방문한 첫 번째 도시의 이름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방문하게 될 마지막 도시의 이름을 아직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도시는 첫 번째 도시를 닮았을 것이다.
첫 번째 도시는 이미 마지막 도시의 일부를 내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내부

▲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내부

 

첫 번째 도시에 도착하던 날 나는 중심 광장 앞에 있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낯선 언어로 종교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이방인이었던 나는 문 옆의 의자에 살짝 걸터 앉았다. 중간에 앉은 노파가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뒤덮인 유리창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 도시에 지금 막 도착했지만 언젠가 와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방문하게 될 마지막 도시에서도 나는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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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은
정은

작가. 독립출판물 제작자. 『원더완더링 01 – 길의 뒷모습』, 『원더완더링 02 - 도시의 지문』 두 권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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