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하면 아프고 울기 일쑤인 나 때문에 그 좋은 젊은 날들을 내 손에 붙들려 있었던 거다.
이제 생각해보니 엄마의 역사에 내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걸까 싶다.
시간이 지나는 모든 것들은 하루, 1분, 1초를 지나 세월을 쌓아간다. 손끝을 스친 작은 인연도, 지나가며 흘렸던 웃음도 눈물도 모두 역사가 되어 늘어가는 나이의 한 페이지를 채우곤 넘어간다.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의 역사가 제법 두툼해졌을 때쯤,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그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엄마의 안부 전화였다.
나만의 역사가 아닌 내 인생
특별할 것 없는 엄마와의 통화 내용은 항상 같다. “일은 끝났니?”, “저녁은?”, “별일 없지?” 대답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응” 또는 “아니”로 끝나는 대답이 매일 지나가는 길거리의 풍경처럼 다녀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어긋났던 엄마와의 통화 내용은 작은 불씨로 번지더니, 서로 짜증을 내며 ‘뻥’하고 터져 뚝 끊어졌다.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신파극에 나올 법한 대화 내용은 한숨처럼 금방 날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당연하게 걸려올 줄 알았던 전화가 며칠이나 잠잠한 걸 보고 나서야 상황 복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함께 웃을 일은 한 해에 손을 꼽으면서 사소하게 어긋나고 끊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 째깍째깍, 부지런히 지나가는 나의 역사에 시작이자, 지나칠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가장 큰 부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엄마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내 역사의 전반부가 엄마라 한다면, 엄마의 역사는 중반부터 나로 가득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나의 인생은 나만의 역사가 아니었다는 걸 참 뒤늦게도 깨달았던 거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역사
한시도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했던 어린 시절의 나 때문에, 엄마는 한창이라 불리는 나이에, 현재 내 나이와 비슷했던 그때, 나만 꼭 붙들고 살았다. 툭 하면 아프고 울기 일쑤인 나 때문에 그 좋은 젊은 날들을 내 손에 붙들려 있었던 거다. 불안한 걸음으로 “평생 엄마랑 살 거야!”라고 말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니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커다랗기만 하던 엄마 품은 작아진 지 오래라, 한걸음 뒤에서 따라가다 보면 언제 저렇게 작아지셨나 싶기도 하다. “너 어릴 때 잔병치레가 많아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기 때 사고도 얼마나 많이 쳤는지, 데리고 응급실에 뛰어간 적도 있어.” 기억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나의 역사를 엄마가 아직도 술술 말씀하실 때면 신기하기만 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엄마의 역사에 내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걸까 싶다.
‘왜’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다. 페이지마다 나를 채워가는 엄마가 되레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왜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살지 않았느냐고, 나보다 엄마 자신으로 인생을 채우길 바랐다고 얘기했던 적도 분명히 있었다. 받았던 사랑이, 나를 이만큼 키워낸 노력이, 시간이, 세월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고마움과 감사함보다 미안함이 커 소리를 질렀다.
애써 가꾸어낸 나라는 역사가 화려한 매체 속 다른 이들의 인생만큼 크지 않아서, 어릴 적 흔히 말하는 효도의 10분의 1조차 하지 못해서, 남들 하는 것조차 따라가지 못하니까. 나는 커다랗기만 할 줄 알았던 나의 역사가 부끄럽다며 애먼 곳에 화풀이했던 거다.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미어지셨을까. “일은 끝났니?”, “저녁은?”, “별일 없지?” 엄마가 나에게 항상 물어보시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키워낸 세월에 크기가 무슨 상관이었을까를 이제야 생각했다.
한 사람의 역사를 이루는 것들
매일같이 매만져주시던 엄마 손을 떠난 후, 나는 나의 역사를 쌓아갔다. 내 일, 내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않던 엄마의 역사는 어느새 빛바랜 사진처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늘었고, 나는 또 바쁘다는 말을 핑계로 나의 가장 큰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싫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많이 좋아하진 않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나 자신을 싫어했던 적이 있었다. 떠올린 페이지엔 이렇다 할 큰 부분도, 눈에 띄게 수려한 부분도 없어서, 함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는 너 때문에 살아.” 그 말이 무거워 부담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이 말엔 엄마의 세월이 녹아있다는 걸, 그 세월이 녹록하진 않았으나 어리고 짐스럽기만 한 줄 알았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엄마도 있었다는 걸, 내가 나를 이만큼 적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있었는지에 대한 걸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은 컸다. 페이지는 어느새 한참을 넘어가고 나의 역사는 이만큼이나 자랐다.
한 사람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하고 굉장한 일인지 나의 역사를 통해 알았다. 나 하나 적어내는 것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나를 적어낸 우리 부모님 역사의 가치는, 이로 말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내가 무너지는 것은 하나의 역사가 무너지는 것이자, 누군가의 세월을 찢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내가 과거를 되짚어 보았을 때, 나 자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옳은 일을 하도록 역사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한 사람의 역사는 다른 사람들과 맞물려 서로 얽히고설켜, 떨어질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게 연결된 역사는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이야기로, 전체의 역사로 사람과 사람을 통해 분명하게 남을 것이다.
맞물리는 세월의 역사
엄마 역사 속의 나
임가영
2019-04-24
한시도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했던 어린 시절의 나 때문에,
엄마는 한창이라 불리는 나이에, 현재 내 나이와 비슷했던 그때, 나만 꼭 붙들고 살았다.
툭 하면 아프고 울기 일쑤인 나 때문에 그 좋은 젊은 날들을 내 손에 붙들려 있었던 거다.
이제 생각해보니 엄마의 역사에 내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걸까 싶다.
시간이 지나는 모든 것들은 하루, 1분, 1초를 지나 세월을 쌓아간다. 손끝을 스친 작은 인연도, 지나가며 흘렸던 웃음도 눈물도 모두 역사가 되어 늘어가는 나이의 한 페이지를 채우곤 넘어간다.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의 역사가 제법 두툼해졌을 때쯤,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그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엄마의 안부 전화였다.
나만의 역사가 아닌 내 인생
특별할 것 없는 엄마와의 통화 내용은 항상 같다. “일은 끝났니?”, “저녁은?”, “별일 없지?” 대답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응” 또는 “아니”로 끝나는 대답이 매일 지나가는 길거리의 풍경처럼 다녀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어긋났던 엄마와의 통화 내용은 작은 불씨로 번지더니, 서로 짜증을 내며 ‘뻥’하고 터져 뚝 끊어졌다.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신파극에 나올 법한 대화 내용은 한숨처럼 금방 날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당연하게 걸려올 줄 알았던 전화가 며칠이나 잠잠한 걸 보고 나서야 상황 복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함께 웃을 일은 한 해에 손을 꼽으면서 사소하게 어긋나고 끊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 째깍째깍, 부지런히 지나가는 나의 역사에 시작이자, 지나칠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가장 큰 부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엄마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내 역사의 전반부가 엄마라 한다면, 엄마의 역사는 중반부터 나로 가득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나의 인생은 나만의 역사가 아니었다는 걸 참 뒤늦게도 깨달았던 거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역사
한시도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했던 어린 시절의 나 때문에, 엄마는 한창이라 불리는 나이에, 현재 내 나이와 비슷했던 그때, 나만 꼭 붙들고 살았다. 툭 하면 아프고 울기 일쑤인 나 때문에 그 좋은 젊은 날들을 내 손에 붙들려 있었던 거다. 불안한 걸음으로 “평생 엄마랑 살 거야!”라고 말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니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커다랗기만 하던 엄마 품은 작아진 지 오래라, 한걸음 뒤에서 따라가다 보면 언제 저렇게 작아지셨나 싶기도 하다. “너 어릴 때 잔병치레가 많아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기 때 사고도 얼마나 많이 쳤는지, 데리고 응급실에 뛰어간 적도 있어.” 기억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나의 역사를 엄마가 아직도 술술 말씀하실 때면 신기하기만 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엄마의 역사에 내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걸까 싶다.
‘왜’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다. 페이지마다 나를 채워가는 엄마가 되레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왜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살지 않았느냐고, 나보다 엄마 자신으로 인생을 채우길 바랐다고 얘기했던 적도 분명히 있었다. 받았던 사랑이, 나를 이만큼 키워낸 노력이, 시간이, 세월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고마움과 감사함보다 미안함이 커 소리를 질렀다.
애써 가꾸어낸 나라는 역사가 화려한 매체 속 다른 이들의 인생만큼 크지 않아서, 어릴 적 흔히 말하는 효도의 10분의 1조차 하지 못해서, 남들 하는 것조차 따라가지 못하니까. 나는 커다랗기만 할 줄 알았던 나의 역사가 부끄럽다며 애먼 곳에 화풀이했던 거다.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미어지셨을까. “일은 끝났니?”, “저녁은?”, “별일 없지?” 엄마가 나에게 항상 물어보시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키워낸 세월에 크기가 무슨 상관이었을까를 이제야 생각했다.
한 사람의 역사를 이루는 것들
매일같이 매만져주시던 엄마 손을 떠난 후, 나는 나의 역사를 쌓아갔다. 내 일, 내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않던 엄마의 역사는 어느새 빛바랜 사진처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늘었고, 나는 또 바쁘다는 말을 핑계로 나의 가장 큰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싫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많이 좋아하진 않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나 자신을 싫어했던 적이 있었다. 떠올린 페이지엔 이렇다 할 큰 부분도, 눈에 띄게 수려한 부분도 없어서, 함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는 너 때문에 살아.” 그 말이 무거워 부담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이 말엔 엄마의 세월이 녹아있다는 걸, 그 세월이 녹록하진 않았으나 어리고 짐스럽기만 한 줄 알았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엄마도 있었다는 걸, 내가 나를 이만큼 적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있었는지에 대한 걸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은 컸다. 페이지는 어느새 한참을 넘어가고 나의 역사는 이만큼이나 자랐다.
한 사람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하고 굉장한 일인지 나의 역사를 통해 알았다. 나 하나 적어내는 것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나를 적어낸 우리 부모님 역사의 가치는, 이로 말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내가 무너지는 것은 하나의 역사가 무너지는 것이자, 누군가의 세월을 찢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내가 과거를 되짚어 보았을 때, 나 자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옳은 일을 하도록 역사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한 사람의 역사는 다른 사람들과 맞물려 서로 얽히고설켜, 떨어질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게 연결된 역사는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이야기로, 전체의 역사로 사람과 사람을 통해 분명하게 남을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Amy Shin
무언가를 생각하고 떠올려 글과 이야기로 적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글을 다양한 기회를 통해 적어보려 합니다.
berabbit@naver.com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맞물리는 세월의 역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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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
빨간모자(장순명)
가족은 언제나 훌륭한 소재였다
조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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