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기억 속에 남아있던 어느 실향민 할아버지의 고향이 가상현실을 통해 구현되었다. 비록 영상 시뮬레이션에 불과하긴 했지만, 할아버지를 태운 차는 남북 출입국 사무소를 지나 개성, 평양 시내를 거쳐 마침내 할아버지가 살던 고향에 도착했다. 현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는지 할아버지는 묵묵히 참아낸 말들을 쏟아냈다. 부모님의 묘지 앞에서 몸을 낮춰 예의를 갖추던 눈가는 어느새 촉촉히 젖어 있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북한은 어떤 모습인가요?
작년 9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서 ‘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렸다.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이니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첫날부터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행사장을 찾았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장소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평양 살림’이라는 전시를 만났다. 2011년 북한 정권이 교체되고 부분적으로 시장경제 체제가 도입되는 등, 변화기에 건설된 평양의 아파트와 그곳 주민의 일상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전시였다.평소 북한의 모습을 접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접할 수 있다고 한들 제한적이다. 언론에 공개된 자료나 외국인이 북한에 방문하여 촬영한 자료를 통해 알 수는 있지만, 일부러 찾아보거나 알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이는 드물다. 물론,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통해 가까이에 있지만 가지 못하는 분단국가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드넓게 펼쳐진 푸른 숲과 드문드문 보이는 집뿐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이 모습이 북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화려하거나 높은 건물이 있는 대도시의 이미지보다는 시골의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
▲2017년 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살림’ 전시 중 촬영한 사진
전시에 공개된 몇몇 사진을 보며 북한에도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지각색의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북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건 아닌지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전시 주제로 선정된 도시가 북한의 수도인 평양이라는 특수성도 있겠지만, 세계 정세에 맞춰 그들도 지속적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왜였을까? 사진 속 풍경들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사진 속 사람들은 분명 평양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었지만 그들의 옷차림이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 아스팔트가 깔린 길 위로 다니는 소의 모습은 겉만 화려한 그 무언가로 포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이것이 있는 모습 그대로의 북한인가? 그저 변화의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포착된 장면인가? 남한이 경제개발계획으로 급성장 중이었던 1960~1970년대, 국가의 발전과 별개로 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평양의 모습이 그때와 무척 닮아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었다.어느 실향민 할아버지의 고향인 평안북도와 내가 전시에서 본 평양. 북한에 있는 두 지역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각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찡한 감동을 느끼고,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평양의 모습에 놀라지 않았더라면 북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한과 북한을 잇는 지하철이 개통된다면
평소 나는 지하철을 타는 동안 서울의 공간들을 탐색하곤 한다. 매일 보는 일상의 공간들, 그러나 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드물다. 지방에서 상경한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고 지리를 익히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지상 구간을 지날 때마다 나타나는 풍경을 익혀 두곤 했다. 예를 들면 ‘OO아파트가 보이면 OO역이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한강이 보인다. 한강을 지나면 국회의사당이 나온다’ 이런 식이다. 고향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모습을 한 풍경을 보면서 추억에 젖어 들기도 하고, 멀쩡히 그 자리에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없어지는 건물을 발견할 때도 있다. 어쩌면 지극히 단순한 행위일지도 모를 이 순간들이 쌓이면서 서울의 공간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이러한 관점을 북한을 바라보는데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남과 북을 잇는 지하철이 개통되면 창밖에 마주한 풍경이나 공간을 통해 북한지역을 이해하고 지리를 익히는 것이다. 남북을 잇는 철도 사업조차 미지수인 상황에서 남북 간 지하철 개통도 모자라 이러한 관점으로 북한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형성된 우호적인 분위기에 개인적인 바람을 더한 발칙한 상상이다. 이왕 상상하는 김에 우리 좀 더 과감하게 다가가보자. 서울에서 출발하여 평양 혹은 북한의 어느 지역까지 가는 지하철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면 어떨까? 남북철도 관련 주가 연일 급등 중이고, 인터넷상으로는 가상의 승차권도 거래되고 있는데 지하철이라고 안될 것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지하철이기에 더욱 자유롭게 일상의 공간들을 넘나들며 북한의 각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의 가능성과 여부를 떠나 지난 몇 년 간 추진했던 금강산 관광처럼 기간을 정해 ‘서울-평양’ 노선만이라도 운행한다면 어떨까?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음미하고 기억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북한이라는 퍼즐을 천천히 맞춰가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지하철로 떠나는 북한 유람
당신이 생각하는 북한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경민
2018-06-18
지하철로 떠나는 북한 유람
“여기는 하얀 모래만 있지. 암석 같은 돌이 별로 없어”
“운천강에 봄철이나 가을철이나 물안개가 떠오를 적에 그 광경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동네입니다”
3년 전, 기억 속에 남아있던 어느 실향민 할아버지의 고향이 가상현실을 통해 구현되었다. 비록 영상 시뮬레이션에 불과하긴 했지만, 할아버지를 태운 차는 남북 출입국 사무소를 지나 개성, 평양 시내를 거쳐 마침내 할아버지가 살던 고향에 도착했다. 현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는지 할아버지는 묵묵히 참아낸 말들을 쏟아냈다. 부모님의 묘지 앞에서 몸을 낮춰 예의를 갖추던 눈가는 어느새 촉촉히 젖어 있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북한은 어떤 모습인가요?
작년 9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서 ‘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렸다.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이니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첫날부터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행사장을 찾았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장소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평양 살림’이라는 전시를 만났다. 2011년 북한 정권이 교체되고 부분적으로 시장경제 체제가 도입되는 등, 변화기에 건설된 평양의 아파트와 그곳 주민의 일상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전시였다.평소 북한의 모습을 접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접할 수 있다고 한들 제한적이다. 언론에 공개된 자료나 외국인이 북한에 방문하여 촬영한 자료를 통해 알 수는 있지만, 일부러 찾아보거나 알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이는 드물다. 물론,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통해 가까이에 있지만 가지 못하는 분단국가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드넓게 펼쳐진 푸른 숲과 드문드문 보이는 집뿐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이 모습이 북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화려하거나 높은 건물이 있는 대도시의 이미지보다는 시골의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
▲2017년 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살림’ 전시 중 촬영한 사진
전시에 공개된 몇몇 사진을 보며 북한에도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지각색의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북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건 아닌지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전시 주제로 선정된 도시가 북한의 수도인 평양이라는 특수성도 있겠지만, 세계 정세에 맞춰 그들도 지속적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왜였을까? 사진 속 풍경들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사진 속 사람들은 분명 평양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었지만 그들의 옷차림이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 아스팔트가 깔린 길 위로 다니는 소의 모습은 겉만 화려한 그 무언가로 포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이것이 있는 모습 그대로의 북한인가? 그저 변화의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포착된 장면인가? 남한이 경제개발계획으로 급성장 중이었던 1960~1970년대, 국가의 발전과 별개로 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평양의 모습이 그때와 무척 닮아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었다.어느 실향민 할아버지의 고향인 평안북도와 내가 전시에서 본 평양. 북한에 있는 두 지역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각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찡한 감동을 느끼고,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평양의 모습에 놀라지 않았더라면 북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한과 북한을 잇는 지하철이 개통된다면
평소 나는 지하철을 타는 동안 서울의 공간들을 탐색하곤 한다. 매일 보는 일상의 공간들, 그러나 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드물다. 지방에서 상경한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고 지리를 익히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지상 구간을 지날 때마다 나타나는 풍경을 익혀 두곤 했다. 예를 들면 ‘OO아파트가 보이면 OO역이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한강이 보인다. 한강을 지나면 국회의사당이 나온다’ 이런 식이다. 고향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모습을 한 풍경을 보면서 추억에 젖어 들기도 하고, 멀쩡히 그 자리에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없어지는 건물을 발견할 때도 있다. 어쩌면 지극히 단순한 행위일지도 모를 이 순간들이 쌓이면서 서울의 공간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이러한 관점을 북한을 바라보는데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남과 북을 잇는 지하철이 개통되면 창밖에 마주한 풍경이나 공간을 통해 북한지역을 이해하고 지리를 익히는 것이다. 남북을 잇는 철도 사업조차 미지수인 상황에서 남북 간 지하철 개통도 모자라 이러한 관점으로 북한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형성된 우호적인 분위기에 개인적인 바람을 더한 발칙한 상상이다. 이왕 상상하는 김에 우리 좀 더 과감하게 다가가보자. 서울에서 출발하여 평양 혹은 북한의 어느 지역까지 가는 지하철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면 어떨까? 남북철도 관련 주가 연일 급등 중이고, 인터넷상으로는 가상의 승차권도 거래되고 있는데 지하철이라고 안될 것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지하철이기에 더욱 자유롭게 일상의 공간들을 넘나들며 북한의 각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의 가능성과 여부를 떠나 지난 몇 년 간 추진했던 금강산 관광처럼 기간을 정해 ‘서울-평양’ 노선만이라도 운행한다면 어떨까?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음미하고 기억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북한이라는 퍼즐을 천천히 맞춰가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아는동네> 객원 작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좀 더 특별하게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여행자 겸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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