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게에 머리가 닿는 즉시 스르르 잠드는 능력을 가진 내게도, 불면이란 묘한 증상이 특별한 날도 아닌데 찾아온다. 나 어릴 때 동화책에서는 잠이 오지 않을 때 돼지나 강아지를 세지 않고 양을 셌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아니 우린 참 순진했던 거다. 오백 마리 정도 세었을 땐 잠도 오지 않고 지루할 뿐더러 내가 참 싱겁고 재미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미국에서 양(sheep)은 많은 상징을 갖고 있다. 사진은, Matthea Harvey 의 시와 Amy Jean Porter 일러스트 로 협업된 그림책 시집 『Of lamb』의 모습. ⓒMcSweeney's
양은 영어로 sheep. 여기서 영어 소문자 h를 l로 바꾸면 sleep. 잠이 되겠다. 우린 여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이천구백구십세 마리” 했지, “one sheep, two sheep… two thousand nine hundred…”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양과 잠의 연결고리는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속신이다. 한글로 ‘잠’ ‘졸려’ 혹은 ‘자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죄도 없는 하얗고 착한 양을 세고 있었기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거다.
양은 착하다. 한자의 ‘진선미(眞善美)’에는 진만 빼고 모두 ‘양(羊)’자가 들어가는데 즉, 보통 동양권에서의 양은 성격이 순함, 혹은 선하고 아름답고 옳은 것을 의미한다. 서구의 정치가들에게서 오늘날 한국 정치가들의 서투름은 “양을 쳐보지 못한 문화”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들은 ‘management’를 양떼를 치는 비법에서 터득한 것이라고 우쭐대기도 한다.
이어령 선생은 한 기사에서 “옛날의 목자는 앞에서 이끄는 형태의 인도형 지도자, 근대에는 양들이 알아서 풀을 뜯어 먹게 하는 관리형 지도자, 현대에는 양떼 한복판으로 들어가 양들과 함께하는 참여형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좋은 목자상”이라 했다. “양을 이끌거나 몰려하지 말고 양이 되어라 그것이 21세기 지도자다.” 라고.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지금’ 기꺼이 양떼로 들어와 착하고 선하고 옳은 양이 될 수 있는 목자가 있나.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을 안다.)
좁은 철창에 갇힌 양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지치고 배고프다. 순한 양도 배를 주리고 맘껏 뛰어놀지 못하면 늑대처럼 사나워 지는 것이 당연지사. 목자들은 인도도 지도도 참여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저 멀리서 양을 외면한 채 마치 세상에 양이라는 존재가 없는 듯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가 목자를 선출하는 시기에는 그렇게 낯짝이 두꺼울 수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착한 양들은 점점 아프다. 마음 같아선 더 넓고 더 푸른 곳, ‘다른 초원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는 굳이 무리하게 양을 세지 않아도 충분한 숙면을 취할 수 있을 테다.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락동아리에 심취하던 중, 시인이자 통기타 가수인 고등학교 은사님을 따라간 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인 기타리스트와 듀오로 활동, 재즈 및 라틴음악밴드, 탱고 프로젝트를 만나 각종 음반에 참여했고 2011한국대중음악상 재즈크로스오버부문을 수상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2013년부터 첫 솔로음반『Nomadism』을 만들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소리 그 자체와 영상에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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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e good Shepherd?
정란
2016-04-07
베게에 머리가 닿는 즉시 스르르 잠드는 능력을 가진 내게도, 불면이란 묘한 증상이 특별한 날도 아닌데 찾아온다. 나 어릴 때 동화책에서는 잠이 오지 않을 때 돼지나 강아지를 세지 않고 양을 셌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아니 우린 참 순진했던 거다. 오백 마리 정도 세었을 땐 잠도 오지 않고 지루할 뿐더러 내가 참 싱겁고 재미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미국에서 양(sheep)은 많은 상징을
갖고 있다. 사진은, Matthea Harvey
의 시와 Amy Jean Porter 일러스트
로 협업된 그림책 시집 『Of lamb』의
모습. ⓒMcSweeney's
양은 영어로 sheep. 여기서 영어 소문자 h를 l로 바꾸면 sleep. 잠이 되겠다. 우린 여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이천구백구십세 마리” 했지, “one sheep, two sheep… two thousand nine hundred…”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양과 잠의 연결고리는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속신이다. 한글로 ‘잠’ ‘졸려’ 혹은 ‘자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죄도 없는 하얗고 착한 양을 세고 있었기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거다.
양은 착하다. 한자의 ‘진선미(眞善美)’에는 진만 빼고 모두 ‘양(羊)’자가 들어가는데 즉, 보통 동양권에서의 양은 성격이 순함, 혹은 선하고 아름답고 옳은 것을 의미한다. 서구의 정치가들에게서 오늘날 한국 정치가들의 서투름은 “양을 쳐보지 못한 문화”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들은 ‘management’를 양떼를 치는 비법에서 터득한 것이라고 우쭐대기도 한다.
이어령 선생은 한 기사에서 “옛날의 목자는 앞에서 이끄는 형태의 인도형 지도자, 근대에는 양들이 알아서 풀을 뜯어 먹게 하는 관리형 지도자, 현대에는 양떼 한복판으로 들어가 양들과 함께하는 참여형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좋은 목자상”이라 했다. “양을 이끌거나 몰려하지 말고 양이 되어라 그것이 21세기 지도자다.” 라고.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지금’ 기꺼이 양떼로 들어와 착하고 선하고 옳은 양이 될 수 있는 목자가 있나.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을 안다.)
좁은 철창에 갇힌 양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지치고 배고프다. 순한 양도 배를 주리고 맘껏 뛰어놀지 못하면 늑대처럼 사나워 지는 것이 당연지사. 목자들은 인도도 지도도 참여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저 멀리서 양을 외면한 채 마치 세상에 양이라는 존재가 없는 듯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가 목자를 선출하는 시기에는 그렇게 낯짝이 두꺼울 수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착한 양들은 점점 아프다. 마음 같아선 더 넓고 더 푸른 곳, ‘다른 초원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는 굳이 무리하게 양을 세지 않아도 충분한 숙면을 취할 수 있을 테다.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락동아리에 심취하던 중, 시인이자 통기타 가수인 고등학교 은사님을 따라간 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인 기타리스트와 듀오로 활동, 재즈 및 라틴음악밴드, 탱고 프로젝트를 만나 각종 음반에 참여했고 2011한국대중음악상 재즈크로스오버부문을 수상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2013년부터 첫 솔로음반『Nomadism』을 만들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소리 그 자체와 영상에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I am the good Shepherd?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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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고독하겠습니다
해원(박은재)
밤에 우리 영혼은
고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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