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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창작의 고통을 겪는다면 편집자는 인내의 고통을 겪는다

김유정

2016-03-03


작년 이맘땐 외주 편집자였다. 출간 일정의 압박감이 치받쳐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SNS에 “저자가 창작의 고통을 겪는다면 편집자는 인내의 고통을 겪는다.”라고 게재한 적이 있다. 내가 SNS를 통해 저자(역자)들이 원고 안 쓰고 뭐하나 염탐하듯이 저자들도 내 계정을 보고 원고를 조금은 더 쓰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계산적으로 일었던가 보다. 잠시 후 한 1인 출판사 대표가 “출판사 편집자가 겪는 인내의 고통이 밥벌이의 고통이라면, 프리랜서 편집자가 겪는 인내의 고통은 배고픔의 고통이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 1938년, 『픽처 포스트(Picture post)』 지의 편집국, 편집 주간 회의 모습.

    1938년, 『픽처 포스트(Picture post)』 지의 편집국, 편집 주간 회의 모습.
    ⓒKurt Hutton/ Picture Post (gettyimages.com)

일 좀 하는 편집자라면 원고 마감일이 다가올 즈음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 전화나 문자 또는 이메일로 저자(역자)에게 원고 마감일을 알리며 격려하는 것이다. 원고 마감일이 지났는데도 원고를 받지 못한 편집자라면 거의 매일 저자(역자)에게 연락을 한다. 고약하게도 난 주로 아침 9시에 저자에게 연락을 했다. 글쓴이들이 대부분 밤에 글을 쓰는 걸 알지만 아침잠을 깨우는 것이다. 밤엔 다음날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기 위해 자고, 낮엔 다른 일을 하지 말고 원고 쓰는 데만 집중해 달라는 무언의 충언이었다. 물론 이 무언을 알아듣는 글쓴이는 없었을 것이다. 저자(역자)들도 원고 마감을 어기고 싶어 어긴 게 아닐 것일 테니. 들어보면 피치 못할 사정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 원고를 받아 일정에 맞게 책을 만들어야 하는 편집자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곡절이 많다.

마감이라는 이름은 거창하고 숭고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가벼운 지 모른다. 그럴 바엔 마감이 ‘마감’이라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었으면 좋겠다. 그 약속이 어그러지면 결국 누군가에겐 많은 돈의 빚이 더 쌓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밥벌이가 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고 쓴 원고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편집자는) 믿기에 오늘도 인내의 고통을 견딘다.

 

  •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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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유정
김유정

출판 편집자.
어찌 생각해 보면 그 흔한 베스트셀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계속 책을 만들고 있는 사람.
이제야 진정한 편집자인 두 대표를 만나 많이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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