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자유로운 영혼의 동료를 어찌해야 할까요? (feat. 존 스튜어트 밀)

- MZ세대와 함께하는 철학 카페 -

안광복

2022-08-02

“보조성의 원칙(principle of subsidiarity)”이라는 것이 있어요.

이 원칙은 누군가가 직접 할 수 있고, 또 자신이 직접 하려 한다면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일까요? J.S. 밀에 따르면 자유도 연습해야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문명사회에 어울릴 만한 소양을 갖춘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끊임없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혼나기도 하면서 마침내 제대로 처신하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Q. 회사에서 규칙을 아랑곳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우리 회사는 분위기가 자유롭습니다. 복장에 대해서도 뭐라 하는 분도 없으세요. 그래서 직장에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을 한 분들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저는 얼마 전 어느 동료와 말다툼을 벌일 뻔했는데요, 글쎄 그분이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있는 거예요! 민소매 티셔츠 또한 내복같이 보여 심히 눈에 거슬렸습니다. 참다못해, “옷차림이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라고 따졌더니 그분은 되레 황당해하면서, “아니 제가 뭐 주변에 피해준 거 있어요? 직장에서 일하기 편한 복장이 최고 아니에요?”라면서 따지더라고요. 저는 말문이 막혀버렸어요. 저도 MZ세대입니다. 그래도 직장에서 갖추어야 할 복장 예절은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꼰대일까요, 그분에게 잘못이 있을까요? 주변에는 규범이나 규칙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저는 이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규범이나 규칙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규범이나 규칙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A. 철학자가 답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까요?"

 

20세기 초에는 짧은 머리와 검은색 옷이 ‘문명개화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에는 이와 빈대가 아주 흔했습니다. 목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더벅머리는 해충이 자리 잡기 딱 좋았지요. 그래서 짧은 스포츠머리는 위생을 위해서도 아주 절실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머리카락 3㎝….”로 익숙한 학생들의 두발규정이 이 땅에 자리 잡은 이유이지요. 검은색으로 옷을 물들였던 이유도 청결 때문이었다고 해요. 아무래도 흰옷은 금방 더러워지니까요. 우리의 교복 모양새가 한참 동안 검정 일색이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이와 빈대가 매우 드물지요. 이미 1980년대에 이나 빈대가 몸에 있는 아이가 있으면 신문에 날 정도였으니,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나아가, 세탁기가 널리 퍼지면서 매일 빨래하는 일이 특별하지 않게 되었어요. 검정 옷을 고집해야 할 이유도 사라진 셈이지요.

 

그런데도 스포츠 스타일을 강제하는 ‘학생 두발규정’은 이후로도 꽤 오래갔어요. 검은색의 칙칙한 교복 스타일도 90년대 전까지는 일상이었지요. 이렇듯 복장 문화에서는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는데도 ‘드레스 코드’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답니다. 이제 당신을 불편하게 한 동료의 옷차림을 생각해봅시다. 성실하고 예의 바른 당신은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상대방의 태도 탓에 마음 많이 상하셨을 겁니다. 충분히 이해되네요. 위로를 드립니다. 하지만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이 상황을 ‘철학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과연 사무실에서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있으면 안 되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까요? 

 

 

반항이 발전을 이끈다

철학자 J.S.밀(John Stuart Mill, 1806 ~1873)은 『자유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짓은 모두의 자유를 빼앗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이 말은 지금의 고민을 푸는 열쇠가 될 듯싶어요. 미국에서는 1950년대에 흑인에 대한 차별이 아주 심했는데요, 버스의 앞쪽 10자리 정도는 백인석으로 정해져 있었데요. 자리가 없을 때는 흑인들이 일어나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야 했고요. 1955년 2월 1일, 흑인 노동자 로자 파크스(Rosa Louise McCauley Parks, 1913~2005)는 만원 버스에서 백인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운전기사의 지시에 맞섰어요. 그리고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이 사건은 버스 안에서 당연한 듯 벌어지던 인종차별에 맞선 시민들의 투쟁,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Montgomery Bus Boycott)”의 시작이었습니다. 싸움의 결과로 지금은 미국 사회에서 공공연한 인종차별은 더는 벌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1956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인종차별 및 분리행위 위헌 판결 이후 연출 사진 (좌: 당시 사건 보도 UPI 기자 니콜라스, 우: 로자 파크스) (출처: 위키백과)

1956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인종차별 및 분리행위 위헌 판결 이후 연출 사진 (좌: 당시 사건 보도 UPI 기자 니콜라스, 우: 로자 파크스) (출처: 위키백과)

 

 

만약 당시의 시민들이 모두 규칙을 잘 지키고 말을 잘 듣기만 했다면 어떨까요? 지금 같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믿음이 널리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오피스룩은 치마 차림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여성에게만 유니폼을 입게 하는 경우도 흔했는데요, 만약 여성 직장인들이 모두 고분고분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도 여전히 “여자답게 입어야 해.”라는 말로 일터에서 불편한 복장을 강요당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쯤 되면 왜 J.S. 밀이 “한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짓이 모두의 자유를 빼앗는 것만큼이나 나쁘다.”라고 했는지 이해되실 듯싶습니다. 발전은 말을 안 듣고 규칙을 넘어서는 몇몇 사람들 덕분에 시작되니까요. 호의와 호기심으로 맨발의 슬리퍼를 신은 직원을 다시 살펴보세요. 예전 직장에서는 정장에 넥타이, 구두 차림이 ‘정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오피스 캐주얼이 일상 차림새가 되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생산성이 예전보다 떨어지던가요? 지금도 구글이나 메타 같은 잘 나가는 기업들은 자유로운 차림새와 일과로 유명합니다. 그런 곳에서도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 어색할까요? 이렇게 보자면 문제의 직원은 발전을 이끌 ‘반항(?)’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타인 위해의 원칙

여기까지만 들으면 제가 당신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설득하는 듯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당신이 그 직원을 불편하게 여기는 데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직원이 J.S.밀의 핵심 주장인 ‘타인 위해의 원칙(Principle Of Harm To Others)’을 건드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인데요, 그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자유롭도록 무작정 내버려 두라고 하지는 않았답니다. 우리에게 누군가를 죽일 자유는 없어요.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 상처를 입힐 자유도 없습니다. 이런 짓을 하려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것이 ‘타인 위해의 원칙’이에요.

 

동료가 맨발에 슬리퍼로 다니는 모습은 당신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이런 복장이 당신에게 피해를 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이의 자유는 제재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나아가, 문명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몸의 중요 부위를 드러내고 다니는 짓은 범죄로 여겨집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공공장소에서 맨살을 드러낸 모습이 사람들을 민망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요. 그렇다면 그 직원은 ‘타인 위해의 원칙’에 따라 좀 더 격식 있게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직장 및 공공장소에서 마주하는 동료의다양한 옷차림을 표현한 이미지

직장 및 공공장소에서 마주하는 동료의 다양한 옷차림을 표현한 이미지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당신의 동료는 아마도 자신의 옷매무새는 ‘개취(개인 취향)’일 뿐이라고 맞설지도 모르겠어요. 불편하시겠지만, 이 또한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니까요. 탱크톱을 입고 배꼽을 드러내고 다닌다 해서 누가 뭐라 그럴 수 없어요. 누군가가 그렇게 입었다 해서 내가 길을 가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디 여자가 저런 복장을…….”이라며 혀를 찬다면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여성 차별적인 이야기로 들리지 않으신가요? 직장에서 맨발로 슬리퍼를 신는 것도 마찬가지 잣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나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존중해야 할 상대의 미적 취향이라고 말이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조성의 원칙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먼저 분명하게 할 점이 있어요.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상대 직원에게 옷차림 때문에 마음 불편하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니까요. 이는 당신의 ‘자유’를 정당하게 행사한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규범을 들먹거리며 “내일부터 양말 신고 다니세요.”라고 했다면 어떨까요? 이는 또 다른 논쟁거리를 낳습니다.

 

“보조성의 원칙(principle of subsidiarity)”이라는 것이 있어요. 이 원칙은 누군가가 직접 할 수 있고, 또 자신이 직접 하려 한다면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일까요? J.S. 밀에 따르면 자유도 연습해야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문명사회에 어울릴 만한 소양을 갖춘 사람은 없어요. 사춘기를 겪으며 종종 선을 넘는 짓들을 하지 않으셨나요? 우리는 끊임없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혼나기도 하면서 마침내 제대로 처신하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그 직원도 ‘보조성의 원칙’이 필요할 듯싶어요. 아마도 맨발에 슬리퍼가 눈에 거슬린다고 한 사람이 당신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수많은 이들에게 지적당하고 얼굴 붉히는 상황을 겪으며 동료는 마침내, “아, 직장 안에서 맨발 차림은 좀 심하구나.”라고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정반대의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어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 일하기에 너무 좋아서 생산성도 높아졌다면 어떨까요? 동료들도 하나둘씩 양말을 벗고 다니게 되겠지요. 어찌 보면 이런 광경은 금기를 깨며 발전을 거듭했던 인류의 도전과도 닮았습니다. 어떤 결론에 이를지는 시간만이 알겠지요. 직원과의 언쟁은 ‘좋은 결론’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마음에 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마음 불편한 상황도 필요해요

마지막으로 ‘일터의 안전’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보실 필요도 있어요. 슬리퍼와 맨발 차림은 과연 ‘안전’할까요?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만 궁싯거리는 상황이라면 슬리퍼 차림도 괜찮습니다. 반면, 걷거나 뛰어야 하는 상황이 많을 때는 어떨까요? 슬리퍼 탓에 발톱이 꺾이거나 넘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당신의 일터가 어떤 조건인지를 따져보세요. 해법을 찾는 데는 명분이나 철학만큼이나 현실적인 조건들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튀는 동료의 복장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듯싶습니다. 힘들었을 당신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하지만 마음 불편한 상황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과연 진짜 당연한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니까요. 그러면서 문제를 들추어내고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도 있잖아요?

 

 

상대방, 직장 동료, 나아가 회사와의 대화

상대방, 직장 동료, 나아가 회사와의 대화

 

 

이렇게 보자면 동료는 당신의 일터에 멋진 생각거리를 던진 셈입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닥친 문제에 대해 상대방, 나아가 직장의 다른 동료들과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보시기 바랍니다. 해법을 찾는 데는 긍정적인 자세만큼 좋은 보약은 없답니다. 어떻게 이 갈등이 풀려나갈지 궁금하네요. 아무쪼록 당신과 동료, 그리고 회사 모두가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건투를 빌어요. 철학자가 응원을 보냅니다!

 

 

목마른 당신을 위한 인생 비타민 🍊


『자유론』 표지(좌)와 『인턴』 포스터(우)(이미지 출처: 알라딘, 네이버영화)

『자유론』 표지(좌)와 『인턴』 포스터(우)(이미지 출처: 알라딘, 네이버영화)



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 펴냄, 2005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는 고전입니다. 짧은 분량 안에 ‘자유’가 왜 소중하고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놓았습니다. 본 글에 나오는 ‘단 한 사람의 자유도 억눌러서는 안 되는 이유’, ‘타인 위해의 원칙’ 등이 잘 나와 있어요. 민주시민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교양이라 할 만한 책입니다.


② 영화 『인턴』, 낸시 마이어스 연출, 로버트 드니로 주연, 2015

매너가 직장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은퇴한 경영자인 인턴이 젊은 CEO를 도와 삶의 지혜와 품격을 일깨워준다는 내용입니다. 본 글에서 다루는 문제 상황에 대한 혜안을 열어줄 만한 장면들이 곳곳에 있어요. 꼭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mz세대를 위한 철학카페

 

 

[MZ세대와 함께하는 철학 카페] 자유로운 영혼의 동료를 어찌해야 할까요? (feat. 존 스튜어트 밀)

- 지난 글: [MZ세대와 함께하는 철학 카페] MZ세대의 고민, 행복한 삶 (feat. 아리스토텔레스)

 

 

  • 존스튜어트밀
  • 자유론
  • 자유
  • 매너
  • 몽고메리버스보이콧
  • 인종차별
  • MZ세대
  • 꼰대
  • 직장
  • 동료
  • 타인위해의원칙
  • 보조성의원칙
  • 인문360
  • 칼럼
  • 철학
  • 안광복
  • 언어적인간
  • 호모로쿠엔스
안광복
안광복

철학 교사. 인문360° 기획위원
중동고 철학 교사, 철학 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상 속에서 강연과 집필, 철학 상담 등을 통해 철학함을 펼치는 임상(臨床)철학자이기도 하다.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 『도서관 옆 철학 카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철학 역사를 만나다』,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열일곱 살의 인생론』,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철학으로 휴식하라』 『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등의 책들을 냈다.

댓글(2)

0 / 500 Byte

서** 사진 이미지

서**

2022-08-16

직장에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선과 예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사진 이미지

김**

2022-08-29

혼자서는 자기 편한대로 혼자가 아닐 때는 자기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많이 자신에게 불편을 감수해야 지구 80억 인구 혼자 사는 셰상이 아닙니다 개인의 생각이 다 옳은 것 만은 결코 아닙니다. 상술로 그리 할 수 얼마든지.

공공누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자유로운 영혼의 동료를 어찌해야 할까요? (feat. 존 스튜어트 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