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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feat. 아리스토텔레스)

- MZ세대와 함께하는 철학 카페 -

이진남

2022-09-06

일 중에서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까요?

상담을 요청하신 분은 안정적 직업과 내가 좋아하는 일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힘들고 불안한 길이지만 꿈만을 바라보고 씩씩하게 걸어가야 할까요?


졸업하려면 1년 정도 남은 대학생입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부모님은 공무원이나 공사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강력하게 권하십니다. 그렇지만 제가 관심이 있는 쪽은 식품 관련 회사입니다. 요리에 관심이 있어 식당에서 어느 정도 일하고 나서 조리와 식당 운영에 대한 지식과 경력, 자신감이 생기면 창업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창업을 위한 자금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음식에 대한 꿈은 접고, 부모님 말씀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힘들고 불안한 길이지만 꿈만을 바라보고 씩씩하게 걸어가야 할까요?



고민하는 사람

 


 

 

A. 왜 하나만은 선택해야 하나요? 하고 싶은 일과 안정적인 일 둘 다 잡을 수 있습니다.

 

 

일과 여가: 그 진정한 의미와 관계는?

직업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가와 관련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먼저 직업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과 직업의 반대말은 여가입니다. 그렇다면 여가와 일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요? 우리는 일하기 위해 여가를 즐길까요? 아니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일을 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듯이, 인간은 여가를 위해 일을 합니다. 일을 위해 쉬는 사람은 일벌레 또는 일중독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고대사회에 있었던 노예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인은 일보다는 여가를 즐기고 거기서 문화 활동을 합니다.



일과 여가 사이에서

일과 여가 사이에서



그렇지만 여가만을 즐기고 일하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일하지 않고 여가만을 즐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필요하고 유용한 것을 위해서는 노동을, 고상한 것을 위해서는 여가를 즐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일과 여가는, 그중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이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강요가 오랜 전통으로 내려왔습니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며 놀던 베짱이가 겨울이 되어 굶주리게 되고 결국 개미에게 가서 구걸을 하는 내용을 말이죠. 그 동화의 교훈은 게으름의 어리석음과 무책임함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이 동화의 내용은 근대적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왜곡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원래 <매미와 개미>라는 이솝우화였습니다. 여기서 매미는 뮤즈신들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낭만의 화신으로 나오고, 우화의 교훈도 누구나 자기가 한 대로 거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일한 결과를 착취하는 자본가들이 그들을 위해 일 하는 노동자들에게 근면과 성실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각색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업자득의 교훈이 근면의 가르침으로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시대 현실의 개미는 여름에는 일만 하다가 겨울에는 베짱이처럼 가난하고 배고픈 삶을 삽니다. 개미처럼 젊을 때 죽어라고 일만 하다가 나이 들어 은퇴하면 편하게 여가를 즐긴다는 바램은 우리 사회에서는 사실 희망일 뿐입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비싼 사교육을 받지 못한 흙수저들은 평생 비정규직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평생 일해 모은 돈으로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들며, 결국 나이 들어 은퇴한 후에는 쥐꼬리만한 국민연금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의 베짱이는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다가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상속받은 재산이 많아 일찌감치 건물주가 되거나 고액의 사교육으로 남들보다 경쟁력 있는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젊어서나 나이 들어서나 가혹한 노동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젊을 때는 세컨 하우스와 요트를 즐기고 은퇴한 후에는 럭셔리한 요양시설에서 노후를 보냅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개미와 베짱이의 현실입니다.

 

이제 이상적인 상황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사실 일과 여가는 누구나 하는 것이고 언제나 즐겨야 하는 것입니다. 큰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나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노동자나 다 같이 일하고 쉬어야 합니다. 젊을 때도 희망 고문당하지 않고 각종 여행과 취미를 즐기고 나이 들어 은퇴한 후에도 자신에 맞는 일을 하면서 매일매일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은퇴 후에도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며 사는 삶

은퇴 후에도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며 사는 삶


 

지난 30여 년 전부터 젊어서는 개미처럼 일하고 나이 들어 베짱이처럼 산다는 개미베짱이(anthopper)가 유행했습니다. 파이어(FIRE)족이라고도 합니다.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줄임말입니다. 그런데 마흔까지 벌어서 평생 먹고산다는 이 목표가 과연 현실적일까요? 개미 시절에는 힘들고 베짱이 시절이 되면 지겹게 되지는 않을까요? 일과 여가를 이렇게 극단적으로 구분해서 사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실현되기도 어렵고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일과 여가는 인생 전체를 통해 같이 가야 하는 동무입니다.

 

 

직업 선택의 기준은? 돈? 성공? 안정? 의미?

이제 일과 직업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일 중에서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까요? 상담을 요청하신 분은 안정적 직업과 내가 좋아하는 일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우선 두 가지 차원에서 직업 선택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선 첫 번째 차원에서는 직업 선택의 기준을 따져보겠습니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 돈, 성공, 안정, 의미라는 네 가지 정도의 기준 가운데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돈은 가장 인기 있는 기준일 것입니다. 의사, 변호사 같은 각종 전문직을 선호하는 것은 수입이 높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돈만이 목적이라면 일 자체에서는 만족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돈 버는 재미 자체를 즐기지 않는 한, 빨리 돈을 모아 그 일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두 번째 기준은 성공입니다. 비록 월급이 적더라도 그 일을 통해 승진을 하고, 더 좋은 직장으로 영전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고속 성장을 하는 경제 속에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보이는 대기업에 취업해서 승승장구하는 선배들을 따라 성공의 기회를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자기가 속한 집단을 성공시키고 자신도 성장하는 모습에 취해 살다 보면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가정과 여가는 항상 뒷전이고 내가 속한 부서가 우선이 되는 삶에서 진정한 행복은 찾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 기준은 안정입니다. IMF사태를 거치면서 평생직장이라고 믿었던 회사에서 짤리는 일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젊은 세대들은 정규직 직원들도 가차 없이 정리하는 기업보다는 안정적인 공무원, 교사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월급이 적더라도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가늘고 긴 직업이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 임용고시나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고 일단 그 직업에 입성하면 긴장을 풀고 평생 편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계획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어느 순간 도태된 자신을 발견하거나 그런 변화 없는 삶에 권태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네 번째 기준은 의미입니다. 사회를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일에 자신을 바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시민운동단체나 복지시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이 사회를 아름답고 바람직하게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래서 급여가 낮고 업무상 스트레스가 많아도 참고 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직업은 사회적 보상이 없는 경우가 많고 개인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과 여가의 양립

일과 여가의 양립


 

그렇다면 돈, 성공, 안정, 의미라는 네 가지 기준 중에서 어떤 것들을 채택해야 할까요? 넷 중 하나만은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가능한 이 기준을 모두를 충족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준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기를 권합니다. 돈, 성공, 안정, 의미라는 기준이 주는 장점과 혜택도 생각해야 하지만, 이 기준들의 단점도 염두에 두면서 말이죠. 무엇보다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여가와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이 여가를 위해 필요한 만큼 여가를 망치거나 여가를 방해하는 일은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하는 일 vs 내가 좋아하는 일

이제 직업 선택의 두 번째 차원으로 옮겨갑니다. 내가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잘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현실주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잘하는 일을 해야 객관적 성과가 나오고 남들의 인정을 받게 되어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직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람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모자라는 짧은 인생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둘 중 하나만을 섣불리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잘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해서 잘하는 일로 만들 필요도 있습니다. 탐색 기간을 통해 이 둘을 하나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고전학자 김헌 교수는 ‘하고 싶은 일’ 외에 ‘해서 즐거운 일’도 있다고 말합니다. 하기 전에는 몰랐지만 하다 보니 즐거워지는 일도 있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잘하는 일도 하다 보면 점점 지겨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는 일이 즐거운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심리학자 탈 벤-샤하르는 다음과 같이 행복을 점검하는 세 가지 질문(MPS질문)을 제시합니다.

 

무엇이 나에게 의미(meaning)를 주는가?

무엇이 나에게 즐거움(pleasure)을 주는가?

나에게 어떤 장점(strength)이 있는가?

 

이 질문들 모두를 만족하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나에게 의미 있고, 즐거우며 내가 잘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그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위에서 말했던 돈, 성공, 안정도 추가하고 싶습니다. 가능한 이 중 많은 기준들을 만족하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통합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 일치시키는 노력은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직업은 시험에서 답을 고르는 것처럼 한 번 고르면 끝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것입니다.

  

  

  직업과 진정한 행복을 위한 길

직업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여러 번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직업 선택의 기준도 다양하고 변화무쌍합니다. 단 하나의 기준만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무모할 뿐 아니라 위험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서로 충돌하는 것 같은 기준들도 조화시킬 수 있습니다. 직업의 성격과 내용도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30년 전에는 공무원이나 교사라는 직업이 오늘날과 같이 인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친구는 굴지의 신문사에 들어가고 나서 3년 만에 해고되었습니다. 컴퓨터로 조판을 하는 시대가 되어 식자공이라는 직업 자체가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 그리고 돈, 성공, 안정, 의미와 같은 다양한 기준들을 가능한 많이 만족시키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직업을 선택한 후 그런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생각을 가다듬는 것에 있습니다. 나의 직업이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 수 있도록 말이죠.

  

 

목마른 당신을 위한 인생 비타민🍊


왼쪽부터『일의 발견』, 『정치학』,『해피어』표지 (출처: 알라딘)


① 『일의 발견』, 조안 시울라 지음, 안재진 옮김, 다우, 2005

일의 의미와 행복한 삶과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책입니다..


②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2009

이상적인 사회, 국가와 그 안에서 사는 시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고전입니다.


 『해피어』, 탈 벤-샤하르 지음, 노혜숙 옮김, 위즈덤 하우스, 2007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MZ 세대와 함께 하는 철학 카페] 덕업일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feat. 아리스토텔레스)

- 지난 글: [MZ 세대와 함께 하는 철학 카페] 자유로운 영혼의 동료를 어찌해야 할까요? (feat.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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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남
이진남

강원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성 토마스 대학에서 서양중세철학, 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윤리와 종교의 기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으며, 미국과 한국에서 철학상담사로 활동했고 철학카페를 조직하여 이끌어왔다. 사고와 표현과 같은 대학교양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종교철학』, 『나는 긍정심리학을 긍정할 수 없다』 등을 썼고, 『신학대전 28: 법』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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