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배워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음악은 뭐랄까, 오랫동안 저항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왔으니까. 그 무렵,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대놓고 말했다가 담임으로부터 욕을 들은 적도 있었다. 대신 스쿨밴드를 만들어 사회의 부조리라든가, 억압들, 무엇보다 주입식 입시 교육을 고발하고...
기타리스트
고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선물 받은 중고 기타는 오래된 연식의 ‘세고비아’라는 브랜드였다. 본래 기타의 주인이었던 외삼촌의 지인은 나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유독 발음이나 발성이 좋아서 레크레이션 강사처럼 능숙하게 기타치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을 나는 종종 상상하고는 했다. 그러고는 나의 미래도 상상했다. 제대로 조율도 되지 않은 기타로 생전 처음 D 코드를 짚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지미 핸드릭스나 잉베이 말름스틴 같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를 꿈꾸고 있었다.
<새 이정선 기타교실>, 이정선, 이정선음악사, 1993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지금이야 유튜브도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기타 주법 정도야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을 테지만 당시에는 기타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정선 기타교실>을 구매했던 것 같다. 비교하자면 미국에는 Real Book 이 있어서 ‘misty’ 나 ‘autumn leaves’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이 재즈의 통상적인 입문 과정이라면, 대한민국의 통기타 교육은 이정선이 거의 도맡아 하고 있던 셈이었다. 무엇보다 이정선의 체계적인 커리큘럼에 의하면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졌음에도 홀로 굳건히 남은 ‘바위섬’과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는 ‘개똥벌레’를 극복하지 못한 채 기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손가락의 굳은살이 채 생기기도 전에 ‘등대지기’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수도 없이 되새기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동요를 구성하고 있는 고작 세 개의 코드-실제로는 일곱 개이지만 초보자를 위해 쉽고 단순하게 편곡한 코드-가 얼마나 난해하고 심오한 것인지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소위 바(bar) 코드라고 불리는 F코드 계열을 무심하게 짚는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기타 코드를 짚고 있는 모습
기타 줄을 짚느라 손끝이 까맣고 단단해질 무렵부터는 비교적 단순한 곡을 끝까지 칠 수 있게 되었다. 원곡의 템포 보다는 한참 느리고, 뭉툭하게 뭉개는 소리를 내는 정도긴 했으나 기타를 치면서 몇 곡은 노래도 함께 부를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게는 <회상>이었다. 아니 아니, 터보의 <회상>말고, 산울림의 <회상>.
<산울림 제8집>, 산울림, 대성음반, 1982 (출처: 위키백과)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네
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서 있던 거지
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우-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 있는 걸
혼자 어쩔 수 없었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 산울림 <회상> 중에서 -
비교적 난이도가 평이한 ‘슬로우 고고’ 주법 -다운 다운 업 다운- 으로 세 개 코드로 조합된 이 노래를 연주하게 되기까지, 솔직히 내가 알고 있던 산울림의 대표곡이라고는 <산할아버지>나 <개구쟁이>뿐이었다. 들은 게 그것 뿐이기도 했고 그마저도 아주 어린 시절 동요 모음곡 같은 데서였다. 무엇보다 이전이라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당시에 나는 메탈리카나 드림시어터 같은 과격하고 묵직한 리프음에 경도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라디오헤드 같은 말랑말랑한 브릿팝 같은 건 나의 밴드 목록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런데 산울림이라니……. 밴드 이름이 그게 뭐야……. 산사태도 아니고……. 모름지기 밴드라면 시나위나 백두산 정도의 무게감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친구들끼리 노래방엘 가더라도 내가 절대 마이크를 놓지 않는 파트는 <교실이데아>의 안흥찬이 성대를 긁어대던 부분, 거꾸로 들으면 “피가 모자라”하고 들린다던 바로 그 부분이었다.
락 밴드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음악은 뭐랄까, 오랫동안 저항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왔으니까. 그 무렵,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대놓고 말했다가 담임으로부터 욕을 들은 적도 있었다. 대신 스쿨밴드를 만들어 사회의 부조리라든가, 억압들, 무엇보다 주입식 입시 교육을 고발하고, 일탈과 반항을 일삼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뭐니뭐니 해도 메탈만 한 게 없었다. 속주와 헤드뱅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발 자유화가 필요했다. 그런데도 앞뒤 꽉 막힌 이정선은 내게 왜 자꾸 대한민국의 철 지난 포크송만 주입하는가. 당시에 내게는 그것이 가장 큰 딜레마였던 셈이다. 말하지 않았나, 대한민국에서 <바위섬>과 <개똥벌레>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잉베이 말름스틴이고 뭐고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정선의 검증된 교육 방법은 역시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반항심은 깊었으나 유튜브는 아직 없던 당시의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남들 하는 대로 <이정선 기타교실>을 시리즈별로 마스터한 끝에 이듬해 무렵에는 갈망하던 빅밴드들의 음악을 카피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와 더불어 음악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랄까, 태도랄까, 아무튼 그런 것들이 변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산울림의 깊은 저항 정신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산사태 말고, 산울림.
<산울림 제13집>, 산울림, 지구레코드, 1997 (출처: 위키백과)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타자
오토바이로 기타를 타자
수박으로 달뱅이를 타자
메추리로 전깃불로 타자
개미로 밥상으로 타자 타자
풍선으로 송곳을 타자
타지 말고 안아 보자
송충이로 장롱을 안아 보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싸이버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싸이버
- 산울림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중에서 -
누가 뭐래도 오토바이를 ‘오도바이’로 발음하는 김창완의 고집과 확신을 나는 닮고 싶었다. 대중가요를 향한 검열과 심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게 아무 말이나 해대는 가사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봐라, 앞뒤 맥락도 없이 등장하는 저 세기말적인 단어 “싸이버”를! 무엇보다 중간에 가사를 틀린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 말로 지어진 곡이라 혹시 누가 알아채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타, 그리고 회상
얼마 전에 나는 새로 기타 하나를 장만했다. 처음 코드를 짚으며 연습했던 세고비아에 비해 성능 면에서 월등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미제라 비쌌다. 그사이 달라진 것은 더 많아서 이제는 메탈을 듣지 않게 되었고, 저항보다는 위생과 치안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주 <회상>을 연주하곤 하는데, 이전보다 능숙해졌고, 제법 어려운 곡들도 이제는 곧잘 소화해내지만 유독 <회상>만큼은 투박하면서도 무심하게 연주하게 된다. 그러고는 예전에는 코드를 짚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가사들도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혼자 어쩔 수 없는 마음에 대해, 미운 건 오히려 내가 되는 그 마음들에 대해.
기타는 이정선, 입문자를 위한 기타 교실
- 당신은 어떤‘가요’ -
임현
2022-07-13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음악은 뭐랄까, 오랫동안 저항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왔으니까. 그 무렵,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대놓고 말했다가 담임으로부터 욕을 들은 적도 있었다. 대신 스쿨밴드를 만들어 사회의 부조리라든가, 억압들, 무엇보다 주입식 입시 교육을 고발하고...
기타리스트
고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선물 받은 중고 기타는 오래된 연식의 ‘세고비아’라는 브랜드였다. 본래 기타의 주인이었던 외삼촌의 지인은 나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유독 발음이나 발성이 좋아서 레크레이션 강사처럼 능숙하게 기타치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을 나는 종종 상상하고는 했다. 그러고는 나의 미래도 상상했다. 제대로 조율도 되지 않은 기타로 생전 처음 D 코드를 짚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지미 핸드릭스나 잉베이 말름스틴 같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를 꿈꾸고 있었다.
<새 이정선 기타교실>, 이정선, 이정선음악사, 1993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지금이야 유튜브도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기타 주법 정도야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을 테지만 당시에는 기타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정선 기타교실>을 구매했던 것 같다. 비교하자면 미국에는 Real Book 이 있어서 ‘misty’ 나 ‘autumn leaves’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이 재즈의 통상적인 입문 과정이라면, 대한민국의 통기타 교육은 이정선이 거의 도맡아 하고 있던 셈이었다. 무엇보다 이정선의 체계적인 커리큘럼에 의하면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졌음에도 홀로 굳건히 남은 ‘바위섬’과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는 ‘개똥벌레’를 극복하지 못한 채 기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손가락의 굳은살이 채 생기기도 전에 ‘등대지기’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수도 없이 되새기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동요를 구성하고 있는 고작 세 개의 코드-실제로는 일곱 개이지만 초보자를 위해 쉽고 단순하게 편곡한 코드-가 얼마나 난해하고 심오한 것인지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소위 바(bar) 코드라고 불리는 F코드 계열을 무심하게 짚는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기타 코드를 짚고 있는 모습
기타 줄을 짚느라 손끝이 까맣고 단단해질 무렵부터는 비교적 단순한 곡을 끝까지 칠 수 있게 되었다. 원곡의 템포 보다는 한참 느리고, 뭉툭하게 뭉개는 소리를 내는 정도긴 했으나 기타를 치면서 몇 곡은 노래도 함께 부를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게는 <회상>이었다. 아니 아니, 터보의 <회상>말고, 산울림의 <회상>.
<산울림 제8집>, 산울림, 대성음반, 1982 (출처: 위키백과)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네
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서 있던 거지
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우-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 있는 걸
혼자 어쩔 수 없었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 산울림 <회상> 중에서 -
비교적 난이도가 평이한 ‘슬로우 고고’ 주법 -다운 다운 업 다운- 으로 세 개 코드로 조합된 이 노래를 연주하게 되기까지, 솔직히 내가 알고 있던 산울림의 대표곡이라고는 <산할아버지>나 <개구쟁이>뿐이었다. 들은 게 그것 뿐이기도 했고 그마저도 아주 어린 시절 동요 모음곡 같은 데서였다. 무엇보다 이전이라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당시에 나는 메탈리카나 드림시어터 같은 과격하고 묵직한 리프음에 경도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라디오헤드 같은 말랑말랑한 브릿팝 같은 건 나의 밴드 목록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런데 산울림이라니……. 밴드 이름이 그게 뭐야……. 산사태도 아니고……. 모름지기 밴드라면 시나위나 백두산 정도의 무게감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친구들끼리 노래방엘 가더라도 내가 절대 마이크를 놓지 않는 파트는 <교실이데아>의 안흥찬이 성대를 긁어대던 부분, 거꾸로 들으면 “피가 모자라”하고 들린다던 바로 그 부분이었다.
락 밴드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음악은 뭐랄까, 오랫동안 저항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왔으니까. 그 무렵,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대놓고 말했다가 담임으로부터 욕을 들은 적도 있었다. 대신 스쿨밴드를 만들어 사회의 부조리라든가, 억압들, 무엇보다 주입식 입시 교육을 고발하고, 일탈과 반항을 일삼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뭐니뭐니 해도 메탈만 한 게 없었다. 속주와 헤드뱅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발 자유화가 필요했다. 그런데도 앞뒤 꽉 막힌 이정선은 내게 왜 자꾸 대한민국의 철 지난 포크송만 주입하는가. 당시에 내게는 그것이 가장 큰 딜레마였던 셈이다. 말하지 않았나, 대한민국에서 <바위섬>과 <개똥벌레>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잉베이 말름스틴이고 뭐고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정선의 검증된 교육 방법은 역시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반항심은 깊었으나 유튜브는 아직 없던 당시의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남들 하는 대로 <이정선 기타교실>을 시리즈별로 마스터한 끝에 이듬해 무렵에는 갈망하던 빅밴드들의 음악을 카피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와 더불어 음악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랄까, 태도랄까, 아무튼 그런 것들이 변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산울림의 깊은 저항 정신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산사태 말고, 산울림.
<산울림 제13집>, 산울림, 지구레코드, 1997 (출처: 위키백과)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타자
오토바이로 기타를 타자
수박으로 달뱅이를 타자
메추리로 전깃불로 타자
개미로 밥상으로 타자 타자
풍선으로 송곳을 타자
타지 말고 안아 보자
송충이로 장롱을 안아 보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싸이버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싸이버
- 산울림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중에서 -
누가 뭐래도 오토바이를 ‘오도바이’로 발음하는 김창완의 고집과 확신을 나는 닮고 싶었다. 대중가요를 향한 검열과 심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게 아무 말이나 해대는 가사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봐라, 앞뒤 맥락도 없이 등장하는 저 세기말적인 단어 “싸이버”를! 무엇보다 중간에 가사를 틀린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 말로 지어진 곡이라 혹시 누가 알아채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타, 그리고 회상
얼마 전에 나는 새로 기타 하나를 장만했다. 처음 코드를 짚으며 연습했던 세고비아에 비해 성능 면에서 월등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미제라 비쌌다. 그사이 달라진 것은 더 많아서 이제는 메탈을 듣지 않게 되었고, 저항보다는 위생과 치안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주 <회상>을 연주하곤 하는데, 이전보다 능숙해졌고, 제법 어려운 곡들도 이제는 곧잘 소화해내지만 유독 <회상>만큼은 투박하면서도 무심하게 연주하게 된다. 그러고는 예전에는 코드를 짚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가사들도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혼자 어쩔 수 없는 마음에 대해, 미운 건 오히려 내가 되는 그 마음들에 대해.
[당신은 어떤‘가요’] 기타는 이정선, 입문자를 위한 기타 교실
- 지난 글: [당신은 어떤‘가요’] 찬란한 지리멸렬함에 대하여
소설가
201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그들의 이해관계』 『그 개와 같은 말』, 중편소설 『당신과 다른 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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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기타는 이정선, 입문자를 위한 기타 교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찬란한 지리멸렬함에 대하여
김이설
때와 장소의 갈등 구조 –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
박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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