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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조와 빈지노 사이 하루가 놓여있다

- 당신은 어떤‘가요’ -

백가흠

2022-11-15

요즘 음악은 비주얼과 비트, 반복되는 후렴구의 비중이 크고 가사는 찾아 읽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데, 정미조의 노래는 다르니까. 그녀의 노래엔 요즘의 화려한 사운드가 없다. 대신 가수의 목소리와 가사가 있다. 사운드는 가수의 목소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그건 정말이지 한번 들으면 혼을 빼앗아 가는 요즘의 것과는 다른......



1980년, 옛날 살던 집 다락에는 아버지가 젊은 날 탐닉했던 것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그곳에 숨는 걸 좋아했는데, 먼지를 뒤집어쓰고 위태롭게 쌓여 있던 책 기둥 사이에 누워 어린 날의 나는 어느새 한가로운 낮잠에 빠지곤 했다. 아련하게 들리는 나를 부르는 젊은 엄마의 목소리,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남동생의 웅얼거림과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이 무서워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여동생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던 때라 나는 아버지의 책을 찢어서 곱게 딱지를 접곤 했다. 오래된 종이 냄새 가득한 그곳에 수십 장의 LP판도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번도 그것을 들은 적은 없었다. 고장이 나서 라디오만 나오던 전축은 흑백 TV 받침대로 쓰이고 있었다. 부엌을 입식으로 만들며 없어진 다락과 함께 그것들, 아버지의 청춘도 사라졌다.


내 기억에, 노래라는 것은 아버지의 것이고, 엄마의 것이었다. 기억의 맨 처음에 동생들에게 불러주던 아버지와 엄마의 자장가, 동요가 있었다. 변소가 밖에 있던 시절, 똥 누면서 아버지가 부르던 가곡을 나무로 된 변소 문 앞에 삼 형제는 모여앉아 듣곤 했다. 한겨울 석유곤로에 밥을 지으며 어머니가 부르던 찬송가,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파고들며 잠에 빠져들었다. 석유 냄새와 밥 짓는 냄새가 향긋하게 풍겨오던 시절, 까마득한 옛날이 되었지만 지금도 눈감으면 보인다, 들린다.

 


피아노 치는 모습

피아노 치는 모습



1985년, 우리 삼 형제는 모두 피아노를 쳤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모두 동시에 시작했기에 그 실력의 차이가 모두 달랐는데, 제일 어린 남동생은 1학년, 여동생이 3학년 때였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동생들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피아노를 쳤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에 모두 클래식을 주로 들었고, 그것은 하나의 습관처럼 되었다. 엄마의 꿈이었던 피아노가 들어오던 날이 생생하다.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게 우리 가족은 피아노 옆에서 매일 음악회를 열었다. 아버지는 동생들을 졸라 반주하게 하고, 목청껏 가곡을 불렀다. 그 무렵, 나는 클래식을 버리고 가요를 듣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아무도 클래식이나 가곡, 찬송가를 듣는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문세를 들었고, 죽은 유재하를 만났으며 산울림, 들국화에 빠졌다. 전교조 사무실에서 배운 민중가요를 큰 비밀을 나만 알고 있다는 듯, 자랑스럽게 부르곤 했다. 음악적 취향 점점 넓어져서 바다를 건너 마이클잭슨과 마돈나, 조지 마이클을 알게 됐고, 퀸의 앨범을 복사한 테이프가 보물 1호가 되었다. 푸른 하늘과 하덕규, 시인과 촌장을 좋아하게 되었다.


2022년 여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여행을 마치고 막 도착한 직후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망설이다가 받았더니 오랜만에 듣는 동료 작가의 반가운 목소리였다. 가요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이었고 나는 흔쾌히 쓰겠다, 했다. 나름 잡다하게 장르 안 가리고 듣다 보니 그중 쓸 게 없겠나 싶었다. 근래에는 내가 10대, 20대에 즐겨 듣던 음악을 유튜브로 다시 찾아보며 밤새 추억에 빠져 아침을 맞기도 했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렇지 않아도 일 년 넘게 완전히 꽂혀 있는 앨범이 있기도 했고, 그중 한 노래의 가사 한 줄을 모티브 삼아 얼마 전에는 단편소설도 한 편 썼던 터라 술술 글이 나올 줄 알았지만, 낭패였다. 음악은 계속 듣는데 뭔가 쓸 수가 없었다. 노래는 듣는 것인데, 들으면 그만인데 말이다. 행여 어쭙잖은 글이, 헛소리가 늘어날까 걱정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이 ‘당신은 어떤가요’라는 연재 글이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는지 몰랐던 터라, 혹 내가 쓰고 싶은 노래에 대해 누군가 이미 써버렸으면 어쩌지, 조마조마하며 조심스럽게 그간 다른 작가들이 썼던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다른 글을 다 읽어보았더니 더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그 핑계로 이렇게 저렇게 하루하루를 미루다가 더는 갈 곳이 없어진 후에야 한밤중 독서실에 왔다.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 노래들을 듣기 시작한다. 나는 어떤가요? 생각해본다. 음악은 정말이지 신기하게, 과거를 선명하게 해주는 약 같다. 몇몇 오래전에 들었던 음악을 찾아 듣다 보니 어느새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그때 만나던 사람들, 추억들이 들려온다.



LP판

LP판



1990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가요를 버리고 락에 빠졌다. 수학 과외를 음악으로 대신했다. 수백 장의 LP판 앞에서 수학 과외 선생과 그날 들을 앨범을 고르곤 했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수학 공부를 했다. 오지오스본과 랜디로즈, 딥퍼플, 롤링스톤즈, 핑크플로이드 같은 그룹을 좋아하게 됐다. 재수하면서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 너바나와 X, 건스앤로지스의 광적인 팬이 되었다. 락의 시대는 정말이지 짧았다.


1994년, 대학에 가면서부터는 민중가요를 주로 들었다. 꽃다지, 천지인 안치환, 그리고 김광석, 고백하건대 20대엔 그의 노래가 주류였다. 힙합, 인디밴드, 댄스음악 등 장르도 다양해지고 들을 것도 많아졌다. 2000년대 시작과 함께 나는 등단했다. 음악을 주로 글을 쓸 때 듣게 되었는데, 과장하면 글을 쓸 때만 음악을 들었는데 새로운 관심은 힙합에 관한 것이다. CB Mass, 드렁큰타이거, 허니패밀리, 윤미래를 주로 들었다.



에피톤프로젝트 (출처: 나무위키)

에피톤프로젝트 (출처: 나무위키)



과거를 되짚어 보다가 이런 걸 말해서 뭐,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정말이지 개인적이어서 더 그렇고, 딱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무엇이 더 크기도 하고 그래서였다. 지금, 누군가 내게 어떤 가수를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2014년부터 쭉 ‘에피톤프로젝트’를 좋아한다고 답할 것이나, 이유를 물으면 입을 다물 것 같다. 좋아하지만 잘 듣지 않으니 그것은 추억과 기억의 한 자리로 남아버린 게 맞을 것이다. 대신 정말, 내가 요즘 반복해서 듣는 음악이 과거나 기억으로 남은 게 아니니 내가 가장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미조 <바람 같은 날을 살다가> 앨범 표지 (출처: 벅스)

정미조 <바람 같은 날을 살다가> 앨범 표지 (출처: 벅스)



내가 일 년 넘게 글을 쓸 때마다 반복해서 듣는 앨범은 정미조의 <<바람 같은 날들을 살다가>>이다. ‘개여울’, ‘귀로’, ‘휘파람을 부세요’를 불렀던 그분의 최근 새 앨범이다. 발매일이 2020년 11월이니 최근이라고 할 수는 없기도 하겠다. 하지만 가수의 관록을 생각하면 비교적 최근이 맞을 것이다. 정미조의 노래를 듣자면 슬픈 풍경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시간에 대한 관조라는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오래전에 불렀던 노래도 그렇고, 2015년 복귀 후 낸 세 장의 앨범에 수록된 노랜 전부가 다 그렇다. 그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데, 슬픔도 곰곰 해지면 이유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싶었다.


요즘 음악은 비주얼과 비트, 반복되는 후렴구의 비중이 크고 가사는 찾아 읽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데, 정미조의 노래는 다르니까. 그녀의 노래엔 요즘의 화려한 사운드가 없다. 대신 가수의 목소리와 가사가 있다. 사운드는 가수의 목소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그건 정말이지 한번 들으면 혼을 빼앗아 가는 요즘의 것과는 다른 세계를 만난 것과 같다. 때때로 그런 음악들이 주는 희열도 있지만, 어쨌든 오히려 그와는 다른 세련된 새로운 사운드라고 할까.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감정이 읽히고 느낌을 보게 된다. 말했듯이 아주 슬픈 그림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정미조의 목소리가 너무 젊어서 그런 걸까. 혹여 그녀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70년대 감성이 느껴지기도 해서 그런 것일 수도. 하지만 옛날의 감성이 아니라 현재의 감성이어서 그 울림 더 크기만 하다.

 

 

그대 웃음 위로 맑은 햇살 퍼지니 

오늘은 우리 헤어지기 좋은 날 

함께 했던 날에 입맞추며 감사를 

다가오는 날들 앞에 축복만이 있길 

그대 가는 그 길이 강물처럼 흘러서 

바람보다 더 멀리 자유롭게 가길 

그대 가는 그 길이 내 맘으로 이어져 

어디서든 언제든 아주 잊지 않길 

그댈 보는 내 맘 부족함이 없으니 

오늘 우리 헤어져도 괜찮을 것 같네


- 「석별」 (정미조 노래, 정진희 작곡, 이주엽 작사) -



노래는 시다. 시는 노래다. 정미조의 노래를 들으면 우리 형제들이 변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버지의 노래를 듣던 그 맨 처음이 떠오른다. 그럴 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 노래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 슬프지만 참, 아름답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 그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노래들이 있어서 말이다. 나는 가사 맨 마지막 한 줄을 모티브 삼아 치매 부인을 보살피는 남편의 이야기 ‘일몰’을 썼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그날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며칠 전부터 허공에 시선을 두고 거실을 서성이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선규를 보고 있었던가. 아름다움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익숙하고 오랫동안 알아 왔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현재를 함께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그날은 매일 우리에게 꿈처럼 다가올 것이다. 현실인지 꿈속인지 구분도 할 수 없게 말이다. 그렇게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소리 없이 눈이 쌓인 밤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눈 쌓이는 소리 들으며 우리는 함께 돌아갈 것이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현재일 것이다. 그날 제주에서 보았던 눈 세상을 더 밝고 환하게 비추던 달빛처럼 말이다. 오늘, 누구하고든 헤어지기 좋은 날이다.


- 「일몰」 (대산문화 2023년 봄호) 중 -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 네 시, 나는 음악을 바꾼다. 빈지노의 ‘Break’에 맞춰 발걸음도 씩씩하게, 심호흡도 하면서 2022년, 어떤 하루의 마감을 서두른다. 바삐 발걸음을 집으로 향한다. 내 하루는 그렇다, 정미조와 빈지노 사이에 항상 놓여있다. 음악과 이렇게 만나게 되면, 이만하면 하루하루의 필연이라는 말씀.



난 자유롭고 싶어

지금 전투력 수치 111퍼

입고 싶은 옷 입고 싶어

길거리로 가서 시선을 끌고 싶어

내가 보기 싫은 새끼들의 지펄

닫아버리고 내 걸 열어주고 싶어

그래 할말은 하고 살고 싶어

그래 그래서 내게 욕을 하나 싶어

신경 꺼

난 사랑하고 싶어

너도 나라도 아니고 날 말야

다른 나라라도 날아가고 싶어

일이라도 때려 쳐버리고 말야

난 

일을 하기 싫어

기계처럼 일만 하며

고장 나기 싫어

Yeah

난 그러고 싶어

그게 나쁘던 좋던 말야

그게 나쁘던 좋던 만약…


- 「Break」 (Beenzino 노래, Waiie 작곡, Beenzino 작사)-

 





[당신은 어떤‘가요’] 정미조와 빈지노 사이 하루가 놓여있다

- 지난 글: [당신은 어떤‘가요’] 어느 여가수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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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소설가
197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四十四』 『같았다』, 장편소설 『나프탈렌』 『향』 『마담뺑덕』, 짧은 소설 『그리스는 달랐다』 등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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