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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는 모든 곳에 있다

-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

박하루

202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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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분 51초 읽기 naver clova Dubbing

엘러리 퀸은 매 편마다 ‘독자에 대한 도전’ 챕터를 별도로 삽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수께끼 풀이는 단지 미스터리의 결말일 뿐 아니라 수용자가 참여하는 능동적 상호 작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셉션의 불명확한 플롯과 중의의 장치는 영화에서 재현된 ‘관객에 대한 도전’과 같다.

그것을 해석하고 참여하고 해석하는 것까지가 관객의 임무라는 이념은 미스터리 소설의 오랜 전통이었다.



 

태초부터 인류와 함께한 수수께끼


“하나의 목소리를 갖고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밤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무엇이냐?”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인 스핑크스가 테베 근방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던졌다는 유명한 질문. 오이디푸스 신화가 지닌 수수께끼라는 테마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 한 사람인 소포클레스(기원전 496~406년)가 신화를 각색해 쓴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연쇄적으로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온 나라에 역병이 돌았을 때 오이디푸스 왕이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물었던 질문에 대한 신탁(神託, 인간의 물음에 대한 신의 답변)인 ‘선대왕인 라이오스 왕을 죽인 범인을 추방하라’ 때문에 비롯된 ‘아버지 라이오스 왕의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범인으로 오이디푸스를 지목하면서 초점이 달라진다. ‘어떻게 내가 범인인 것인가?’ 오이디푸스는 아내 이오카스테, 코린토스의 사자, 늙은 하인을 차례대로 추궁하며 자신이 태어나면서 받은 신탁의 비밀을 마침내 파헤친다. ‘어떻게 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게 된다는 말인가?’



오이디푸스를 연기하는 알버트 그라이너(1896) (이미지 출처:위키백과)

오이디푸스를 연기하는 알버트 그라이너(1896)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수수께끼는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고 궁금증을 자아내며 그것의 드러남에 따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선대왕인 라이오스 왕이 받았던 ‘친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은 얼핏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다. 내 자식이 감히 친부 살해와 근친상간을 저지른단 말인가? 그것은 일견 불합리해 보이기 때문에 미스터리이다. 불합리한 신탁이라는 테마는 많은 신화에서 나타난다. 창세기의 ‘선악과의 금기’ 또한 그렇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왜 신은 그것을 먹지 못하게 했을까?’, ‘그것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신이 그것을 먹지 못하게 하려 했거든 인간에게 호기심을 부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근대적 의미의 미스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초의 미스터리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모르그 가의 살인(원제: The Murders in the Rue Morgue)」(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가 1841년에 발표한 추리 소설)에서도 불합리한 상황이 제시된다. 집이 온통 어질러져 있고, 피해자의 목과 머리카락이 뜯겨져 나가고,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제각각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얼핏 봤을 때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불합리함은 오이디푸스 이야기에 나오는 신탁의 불합리함에 상응한다. 신탁의 의미가 밝혀지면서(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해소되듯, 사건의 범인이 드러나면서 이 이야기도 끝나간다. 단지 에드거 앨런 포는 이야기 속에 ‘수수께끼를 푸는 존재’인 오귀스트 뒤팽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켰고 의문점을 합리적으로 풀이하는 논증 과정을 도입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수수께끼에서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본성이다. 미스터리 장르는 그래서 가장 인간에게 가까운 장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를 우리는 정말 많은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미스터리 플롯의 핵심은 반전 그리고 복선

수수께끼에는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평범한 독서 방식으로는 결말을 알아챌 수 없어야 한다. 추리 소설의 대가인 영국의 여성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반전 플롯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ABC 살인 사건』과 같은 작품은 유명한 반전 영화들처럼 그 결말이 오랫동안 기억되고 회자된다. 그렇지만 반전은 단지 깜짝 놀라는 결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전이 의미 있으려면 그보다 앞서 수수께끼가 의미 있게 다가와야 한다. 많은 영화들이 이러한 미스터리 방식을 따르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를 떠올려보자. 이를테면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이러한 영화들은 전통적 미스터리 소설과 다른 부분이 있다. 바로 관객이 궁금해해야 할 수수께끼가 무엇이었는지를 숨긴다는 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야 지금까지 수수께끼가 제시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는 점은 독자로 하여금 미리 문제를 인지하고 추리하도록 유도하는 전통적 미스터리와는 차이가 있다.


중요한 점은, 반전에는 반드시 복선이 필요하며 단서와 결말은 논리적으로 명확히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전이 설득력을 갖추려면 충분한 복선이 관객들에게 제시되어야 하며 마지막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관객들이 느끼는 피드백으로 그 논리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속았다’라고 느끼면서도, ‘내가 무심코 지나갔지만 확실히 뇌리에 박혀 있는 그 장면이 사실은 복선이었구나’하고 깨닫도록 하는 것이 이 영화들의 연출 의도이다. 그 과정은 무언가를 감추고 드러내는 미스터리의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케이퍼 무비(Caper movie, 무언가를 강탈 또는 절도 행위를 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오션스 일레븐>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의 결말을 모르고 스크린 앞에 앉는 사람이 있을까. 도둑들이 카지노를 터는 것은 예정된 결과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수수께끼는 ‘어떻게’이다. ‘그들은 어떻게 도둑질에 성공하는가?’ 이 영화 역시 결정적인 한 장면을 위해 수많은 복선을 뿌린다. 그리고 관객은 어떻게 그것이 예정된 결말로 이어질지 궁금해하고 흥미롭게 지켜본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오션스 일레븐>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답 안 내놓고 관객 스스로 수수께끼 풀도록 유도

수수께끼를 다루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역전 플롯이 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2019년에 발표한 영화 <작은 아씨들>은 이를 적극 활용한 작품인데, 작중 시간 순서는 멍하니 보면 흐름을 놓칠 정도로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 그렇지만 영화를 유심히 본다면 그것이 질문과 답변의 구조를 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영화 첫 장면에서 성장한 후 뉴욕에서 작가 생활을 하는, 마치 집안의 둘째 딸인 조 마치를 먼저 보여준 후 그가 소설을 쓰게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식이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 내용을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작중 인물들의 관계와 역할, 사건의 인과를 추론하며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때로는 이것이 영화 전체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프리퀄(Prequel,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이 그런 식이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시리즈 전체의 시간 순서가 하나의 진입 장벽으로 유명한데, 먼저 나온 뒷이야기를 먼저 본 관객은 나중에 나온 프리퀄을 보며 ‘내가 아는 그 인물이 어떻게 그러한 결과를 맞이할까’ 궁금해하게 된다. 바로 수수께끼가 감상 과정에 작용하는 것이다.

 

수수께끼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아 이리저리 해석이 분분한 경우도 있다. 그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그는 어떠한 결말을 맞이했는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셉션>은 중층의 답을 던져놓고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게끔 유도한다. 빌 S. 벨린저의 추리 소설 『이와 손톱』은 처음 책이 나왔을 때, 결말 부분을 봉한 채로 출간하여 이를 뜯지 않고 가져오면 환불해주는 마케팅을 했다고 한다.



관객이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도록 유도한 영화 '인셉션'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관객이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도록 유도한 영화 <인셉션>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엘러리 퀸(20세기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미국의 추리 작가. 공동 작업을 하는 사촌지간인 두 작가가 함께 필명을 사용했다)은 매 편마다 ‘독자에 대한 도전’ 챕터를 별도로 삽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수께끼 풀이는 단지 미스터리의 결말일 뿐 아니라 수용자가 참여하는 능동적 상호 작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셉션의 불명확한 플롯과 중의의 장치는 영화에서 재현된 ‘관객에 대한 도전’과 같다. 그것을 해석하고 참여하고 해석하는 것까지가 관객의 임무라는 이념은 미스터리 소설의 오랜 전통이었다.

 

 

어디에도 척척, 미스터리는 힘이 세다

수수께끼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욕구이며 독자들이 이야기에 빨려들게 하고 긴장감을 부여하는 데에 그보다 효과적인 장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감히 말하건대 필자는 미스터리가 온갖 기초 장르 중에서 가장 힘이 있고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미스터리는 모든 장르와 결합할 수 있다. ‘누가 내 남편과 잤을까?’가 질문이 되면 로맨스 스릴러가 되고 ‘누가 우주 속 고대 문명의 흔적을 남겼을까?’를 묻는다면 SF가 된다.



FEBRUARY 13 영화 '13일의 금요일' 포스터 속 하키마스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13일의 금요일> 포스터 속 하키마스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공포 영화에서도 미스터리는 활용된다. 영화 <스크림>이 대표적이지만, 이 영화 속에서 인용된 또 다른 영화 <13일의 금요일> 역시 ‘저 살인마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매 시리즈마다 던진다(그 하키마스크의 정체는 제이슨이 아니냐고?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시길!). ‘저주의 비밀’이 이야기의 목표인 영화 <링> 또한 작품 내 미스터리 함량이 매우 높은 작품이다. 수수께끼는 모든 곳에 있다. 이 점을 알고 나면 추리 소설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장르문화 속 인문찾기는? 흔히 웹툰, 웹소설, 만화, 게임 같은 장르와 이들 장르가 사용하는  맨스, 추리, SF, 스릴러, 무협, 코미디같은 패턴 등을 아울러 ‘장르문화’라고 부른다. 이상한 것은 이들 ‘장르문화’가 점점 큰 인기를 얻고 산업적으로도 크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아직 예술작품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교과서, 언론 등에서도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점이다.  이에 이미 일상과 문화 곳곳에 깊숙이 파고든 다양한 장르문화 콘텐츠들과 그 속에 숨어있던 인문적 가치와 요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새롭게 발굴해 함께 나눠보려고 한다.

 

 

 

[장르문화 속 인문찾기] 수수께끼는 모든 곳에 있다

[장르문화 속 인문찾기] 이 작은 별에서 왜 이토록 서로 미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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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루
박하루

소설가
추리와 SF와 판타지에 걸친 글을 쓴다. 『순결한 탐정 김재건과 춤추는 꼭두각시』, 『기기인 도로(공저)』, 『마법소녀 신드롬(브릿G 연재)』, 『웃는 탐정(미스테리아 34호)』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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