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아편 값을 치르기 위해 홍차로 팔고 받은 은을 다시 영국에 토해낼 수 밖에 없었어요.
영국은 다시 무역에서 흑자를 내기 시작했답니다.
청나라 조정은 당연히 이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임칙서란 관리를 중국 남부 광저우란 도시에 보냈어요.
황제의 명을 받고 내려온 임칙서는 광저우에 쌓여 있던 아편을 다 바다에 던진 후 불을 질러버립니다.
많은 이들이 전쟁을 모티브로 하는 게임을 즐기고 있어요. 볼거리 많지요. 또 그래픽도 화려하지요. 전쟁은 영화, 드라마 등 각종 매체의 소재로 쓰일 뿐 아니라 게임의 소재로도 쓰여요. 자, 그 전쟁들, 그냥 일어나지는 않았겠지요?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답니다. 그러면 이제 저와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불리는 아편전쟁은 어찌 일어났는지 알아보러 가볼까요?
홍차로부터 시작된 아편전쟁
1840년 영국과 중국 청나라 간에 발생한 아편전쟁은 말 그대로 마약인 아편 때문에 일어났답니다.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었어요. 마약을 팔다 일으킨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19세기 영국으로 가보죠. 당시 영국은 중국산 홍차 열풍이 불고 있었어요. 왜? 커피 때문이었답니다. 당시 유럽 대륙은 커피 열풍이 불고 있었어요. 영국도 커피가 대유행이었답니다. 런던에만 천 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고 성업 중이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커피하우스에 여자는 못 들어갔답니다. 맞아요. 남자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여기에 돈 많은 런던의 마담들이 화가 난 것이죠. 당시 마담들의 입장은 ‘그래, 더럽다. 커피는 너희들 남자들이나 실컷 마셔라’였어요. 그래도 뭔가 마시긴 마셔야 하는데 마침 그때 중국에서 수입되어 온 홍차가 눈에 들어온 겁니다. 마셔 보니 맛도 있고 해서 영국 귀부인들 사이에서 홍차가 인기를 끌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양한 차 문화를 만들어갔답니다. 오후에만 마시는 애프터눈티. 그리고 차를 마시며 하는 모임 티파티. 거기에 중국에서 직수입한 도자기 세트에 차를 따라 마시니 우아함까지 갖추게 된 것이죠.
남자들도 슬슬 중국산 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왜? 남자들만 그 칙칙한 커피하우스 안에 쭈그리고 앉아 차만 마시면 그게 무슨 재미입니까? 그래서 여자들이 있는 티파티 쪽에 슬슬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영국 전체에 중국산 홍차 광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중국에 찻값이 지불되었겠지요. 그 금액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무역 화폐는 은이었거든요. 영국에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벌어들이는 은이 몽땅 다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던 겁니다.
아편전쟁 전개 (출처: 나무위키)
당황한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명품인 증기 기관으로 돌리던 방직기로 엄청난 양의 면직물을 생산해 그걸 중국에 팔려고 합니다.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요. ‘가격 경쟁력 하나는 영국이 최고다.’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중국에 가보니 중국산 면직물이 영국산보다 훨씬 더 저렴한 겁니다! 어찌 이게 가능한가, 영국인들은 충격을 받았어요. 중국은 산업혁명도 겪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 중국 인구가 약 3억 명이었는데 이 3억이 집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찍어내는 면직물이 더 저렴했던 겁니다. 어디를 가나 머릿수는 이기지 못해요.
이에 영국은 최후의 카드를 씁니다. 당시 청나라엔 알게 모르게 이미 아편이 유통되고 있었거든요. 영국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아편을 대량으로 중국에 유통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실행에 옮깁니다. 맞아요.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몰래 판 것이 아니라 대놓고 당당하게 팔았어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대량 재배한 후 아편으로 만들어 말 그대로 중국 대륙에 그냥 갖다 뿌렸어요. 중국은 황제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모조리 아편 중독에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중국은 아편 값을 치르기 위해 홍차로 팔고 받은 은을 다시 영국에 토해낼 수 밖에 없었어요. 영국은 다시 무역에서 흑자를 내기 시작했답니다. 청나라 조정은 당연히 이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임칙서란 관리를 중국 남부 광저우란 도시에 보냈어요. 광저우는 홍콩 옆에 있는 도시랍니다. 왜 광저우냐? 당시 중국은 남부 광저우 항구 딱 하나만 서구 열강에 개방하고 그 도시를 통해서만 거래를 허용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중국으로 들어가는 아편은 다 그 항구 도시에 집결해 있었겠지요.
황제의 명을 받고 내려온 임칙서는 광저우에 쌓여 있던 아편을 다 바다에 던진 후 불을 질러버립니다. 이에 항의하는 영국 상인들은 다 광저우에서 쫓아내버려요. 열받은 영국 상인들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어디 근방에 숨어 들어가 복수의 기회를 엿보자’며 당시 사람은 거의 안 살고 갈매기들만 있었던 바위섬 홍콩에 들어갑니다. 맞아요, 그것이 홍콩 역사의 시작이랍니다. 바위섬 홍콩에서 영국 본국에 SOS를 요청한 영국 상인들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국 지원군이 홍콩에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아편을 불 태우는 모습 (출처: 나무위키)
그때 홍콩에 들어온 영국 배는 군함이 아니라 상선이었어요. 그것도 단 두 척. 그러나 단 두 척의 상선은 무장하여 영국은 청나라 군함 수백 척을 모조리 파괴합니다. 그만큼 청나라는 영국에 상대가 안 되는 상태였어요. 이를 시작으로 영국은 아예 의회 차원에서 ‘청나라 무력 응징’을 결의하고 정식으로 군대를 청나라로 파병합니다. 1840년 아편전쟁의 시작이었어요.
영국의 승리와 난징조약
당시 영국에는 빅토리아란 여왕이 있었어요. 처음엔 이 여왕이 중국을 침공하는 것에 반대를 했답니다. 왜? 곧 자기 결혼식이었거든요. 성스런 결혼을 하는데 전쟁을 하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쟁을 어찌해서든 시작하고 싶었던 영국 의회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여왕에게 했답니다. ‘여왕 폐하. 지금 곧 결혼식인데요. 결혼식에 쓸 중국산 도자기 세트가 중국의 수출 금지 조치로 도착하지 않았습니다’란 얘기를요. 그 소식을 들은 여왕은 ‘당장, 중국을 공격하세요’란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광저우를 공격한 영국. 중국은 정말 속수무책으로 불타는 광저우를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당시 중국은 ‘중국군 수뇌부가 쳐들어오는 영국군을 요강으로 막자’는 주장까지 했어요. 맞아요, 소변을 담는 요강 말입니다. 왜? 중국군은 영국은 양의 기운이 강하니까 음의 기운이 강한 요강으로 싸우면 이긴다는 생각이었어요. 당시 중국이 실제로 했던 발언입니다.
광저우를 박살 낸 영국은 바다를 따라 북상하여 양쯔강을 따라 중국 내륙으로 들어갔어요. 정말 머리를 잘 쓴 것이죠. 중국에는 크게 북에는 황하, 남에는 양쯔강, 이렇게 큰 두 개의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요. 그리고 그 강을 이용해서 물류를 이동시키죠. 지금의 경부고속도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의 베이징에서 출발해서 남쪽의 항저우까지 이어지는 인공 운하도 있었어요. 그 ‘경항운하’로 황하와 양쯔강을 남북으로 연결해서 물길로 중국 어디든지 물류를 이동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어요.
아편전쟁 (출처: 나무위키)
북쪽에서 내려오는 운하가 남쪽 양쯔강과 만나는 곳에 바로 난징이란 도시가 있는데요. 영국은 이런 엄청난 생각을 합니다. 난징만 점령하면 중국의 모든 물류 시스템은 다 막혀버린다. 그리고 난징은 중국의 경제 수도니까 중국 경제는 멈출 것이고 중국은 바로 항복을 할 것이란 생각을요. 결국 이는 현실이 됩니다. 영국의 함대는 양쯔강을 따라 천천히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난징을 점령하기 직전까지 와요. 정신을 놓은 청나라 정부는 영국의 예상과 같이 바로 항복해요. 그리고 그 난징이란 도시에서 항복 문서에 사인을 합니다. 이것이 아편전쟁의 마지막인 1842년 난징조약이랍니다.
아편전쟁 중 탄생한 탕수육과 짜장면
난징조약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은 영국 식민지가 됩니다. 그리고 당시 초가집 몇 채 밖에 없던 조그만 어촌이던 상하이가 개항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 탕수육이 탄생했답니다. 탕수육이요? 맞습니다. 홍콩과 주변 광동 지역에 상륙한 영국인들, 당시 중국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어요. 향신료 범벅인 정체 불명의 음식을 단지 막대기 두 개(젓가락)로 먹으라고 하는 중국인들을 처음엔 자기들을 놀린다고 생각했어요.
탕수육
그래서 영국인들은 명령합니다. ‘우리 영국인들이 먹을 만한 음식을 가져오란 말이야!’ 라고요. 그래서 광둥의 중국인들은 향신료는 다 빼고 이른바 ‘초딩입맛’을 가진 영국인들이 좋아하게 고기에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그리고 식초를 넣어 시큼하게 만든 고기 음식을 만들어요. 그리고 영국인들이 젓가락 하나로 쿡 찍어 먹을 수 있도록 고기로 아주 잘게 썰어서 내줍니다. 그걸 맛본 영국인들은 아주 만족했다고 하지요. 그 음식에 이름을 새로 붙이는데 설탕 당(糖), 그리고 식초 초(醋)로 만든 고기 육(肉), 이라고 해서 당초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이 당초육의 중국식 발음이 ‘탕추로우’인데요. 이 탕추로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탕수육’이란 국적 불명의 이름으로 탈바꿈한 것이랍니다.
이왕 얘기한 김에 짜장면도 아편전쟁 때문에 생겨났어요. 중국인들은 ‘힘을 더 내서 아편을 피자’란 생각에 조선 홍삼을 자양강장제로 먹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조선 홍삼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일반 서민들은 ‘꿩 대신 닭’이라고 홍삼 대신 해삼을 먹기 시작했어요. 같은 삼(蔘)이니까요. 그런데 이 해삼을 말리는 과정에 식용 소다가 들어가는데 이 식용 소다를 푼 물로 밀가루를 반죽하니까 점성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나는 겁니다. 바로 수타면의 시작이었지요.
그리고 당시 해삼은 중국 산동반도의 해삼이 최고였거든요. 산동반도는 또한 대파의 주요 생산지였어요. 이 대파를 ‘총장’이란 소스에 찍어서 먹었답니다. 파를 한자로 하면 총(蔥)이니까요. 색깔은 까만색이에요. 맞아요. 이 시커먼 총장을 수타로 뽑아낸 국수에 비벼 먹기 시작한 것이 바로 짜장면의 시작이랍니다. 이 총장이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이름이 ‘춘장’으로 바뀐 것이랍니다. 그래서 짜장면의 탄생은 어찌 보면 아편전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쟁이 일어난 배경, 그중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하는 아편전쟁이 일어난 배경을 조금 알아봤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연히 일어나는 전쟁은 단 하나도 없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그 전쟁 배경 게임의 전쟁은 과연 어떤 원인 때문에 일어났을까요?
방송인, 작가
미국 Loyola Marymount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하였고 지금은 역사 스토리텔러로 각종 방송에서 활약 중이다. 저서로선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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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즐기시는 전쟁 게임들, 그 전쟁의 발발 원인을 아세요?
- 장르 문화 속 인문 찾기 -
썬킴
2022-10-19
중국은 아편 값을 치르기 위해 홍차로 팔고 받은 은을 다시 영국에 토해낼 수 밖에 없었어요.
영국은 다시 무역에서 흑자를 내기 시작했답니다.
청나라 조정은 당연히 이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임칙서란 관리를 중국 남부 광저우란 도시에 보냈어요.
황제의 명을 받고 내려온 임칙서는 광저우에 쌓여 있던 아편을 다 바다에 던진 후 불을 질러버립니다.
많은 이들이 전쟁을 모티브로 하는 게임을 즐기고 있어요. 볼거리 많지요. 또 그래픽도 화려하지요. 전쟁은 영화, 드라마 등 각종 매체의 소재로 쓰일 뿐 아니라 게임의 소재로도 쓰여요. 자, 그 전쟁들, 그냥 일어나지는 않았겠지요?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답니다. 그러면 이제 저와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불리는 아편전쟁은 어찌 일어났는지 알아보러 가볼까요?
홍차로부터 시작된 아편전쟁
1840년 영국과 중국 청나라 간에 발생한 아편전쟁은 말 그대로 마약인 아편 때문에 일어났답니다.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었어요. 마약을 팔다 일으킨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19세기 영국으로 가보죠. 당시 영국은 중국산 홍차 열풍이 불고 있었어요. 왜? 커피 때문이었답니다. 당시 유럽 대륙은 커피 열풍이 불고 있었어요. 영국도 커피가 대유행이었답니다. 런던에만 천 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고 성업 중이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커피하우스에 여자는 못 들어갔답니다. 맞아요. 남자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여기에 돈 많은 런던의 마담들이 화가 난 것이죠. 당시 마담들의 입장은 ‘그래, 더럽다. 커피는 너희들 남자들이나 실컷 마셔라’였어요. 그래도 뭔가 마시긴 마셔야 하는데 마침 그때 중국에서 수입되어 온 홍차가 눈에 들어온 겁니다. 마셔 보니 맛도 있고 해서 영국 귀부인들 사이에서 홍차가 인기를 끌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양한 차 문화를 만들어갔답니다. 오후에만 마시는 애프터눈티. 그리고 차를 마시며 하는 모임 티파티. 거기에 중국에서 직수입한 도자기 세트에 차를 따라 마시니 우아함까지 갖추게 된 것이죠.
남자들도 슬슬 중국산 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왜? 남자들만 그 칙칙한 커피하우스 안에 쭈그리고 앉아 차만 마시면 그게 무슨 재미입니까? 그래서 여자들이 있는 티파티 쪽에 슬슬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영국 전체에 중국산 홍차 광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중국에 찻값이 지불되었겠지요. 그 금액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무역 화폐는 은이었거든요. 영국에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벌어들이는 은이 몽땅 다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던 겁니다.
아편전쟁 전개 (출처: 나무위키)
당황한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명품인 증기 기관으로 돌리던 방직기로 엄청난 양의 면직물을 생산해 그걸 중국에 팔려고 합니다.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요. ‘가격 경쟁력 하나는 영국이 최고다.’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중국에 가보니 중국산 면직물이 영국산보다 훨씬 더 저렴한 겁니다! 어찌 이게 가능한가, 영국인들은 충격을 받았어요. 중국은 산업혁명도 겪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 중국 인구가 약 3억 명이었는데 이 3억이 집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찍어내는 면직물이 더 저렴했던 겁니다. 어디를 가나 머릿수는 이기지 못해요.
이에 영국은 최후의 카드를 씁니다. 당시 청나라엔 알게 모르게 이미 아편이 유통되고 있었거든요. 영국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아편을 대량으로 중국에 유통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실행에 옮깁니다. 맞아요.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몰래 판 것이 아니라 대놓고 당당하게 팔았어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대량 재배한 후 아편으로 만들어 말 그대로 중국 대륙에 그냥 갖다 뿌렸어요. 중국은 황제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모조리 아편 중독에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중국은 아편 값을 치르기 위해 홍차로 팔고 받은 은을 다시 영국에 토해낼 수 밖에 없었어요. 영국은 다시 무역에서 흑자를 내기 시작했답니다. 청나라 조정은 당연히 이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임칙서란 관리를 중국 남부 광저우란 도시에 보냈어요. 광저우는 홍콩 옆에 있는 도시랍니다. 왜 광저우냐? 당시 중국은 남부 광저우 항구 딱 하나만 서구 열강에 개방하고 그 도시를 통해서만 거래를 허용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중국으로 들어가는 아편은 다 그 항구 도시에 집결해 있었겠지요.
황제의 명을 받고 내려온 임칙서는 광저우에 쌓여 있던 아편을 다 바다에 던진 후 불을 질러버립니다. 이에 항의하는 영국 상인들은 다 광저우에서 쫓아내버려요. 열받은 영국 상인들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어디 근방에 숨어 들어가 복수의 기회를 엿보자’며 당시 사람은 거의 안 살고 갈매기들만 있었던 바위섬 홍콩에 들어갑니다. 맞아요, 그것이 홍콩 역사의 시작이랍니다. 바위섬 홍콩에서 영국 본국에 SOS를 요청한 영국 상인들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국 지원군이 홍콩에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아편을 불 태우는 모습 (출처: 나무위키)
그때 홍콩에 들어온 영국 배는 군함이 아니라 상선이었어요. 그것도 단 두 척. 그러나 단 두 척의 상선은 무장하여 영국은 청나라 군함 수백 척을 모조리 파괴합니다. 그만큼 청나라는 영국에 상대가 안 되는 상태였어요. 이를 시작으로 영국은 아예 의회 차원에서 ‘청나라 무력 응징’을 결의하고 정식으로 군대를 청나라로 파병합니다. 1840년 아편전쟁의 시작이었어요.
영국의 승리와 난징조약
당시 영국에는 빅토리아란 여왕이 있었어요. 처음엔 이 여왕이 중국을 침공하는 것에 반대를 했답니다. 왜? 곧 자기 결혼식이었거든요. 성스런 결혼을 하는데 전쟁을 하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쟁을 어찌해서든 시작하고 싶었던 영국 의회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여왕에게 했답니다. ‘여왕 폐하. 지금 곧 결혼식인데요. 결혼식에 쓸 중국산 도자기 세트가 중국의 수출 금지 조치로 도착하지 않았습니다’란 얘기를요. 그 소식을 들은 여왕은 ‘당장, 중국을 공격하세요’란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광저우를 공격한 영국. 중국은 정말 속수무책으로 불타는 광저우를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당시 중국은 ‘중국군 수뇌부가 쳐들어오는 영국군을 요강으로 막자’는 주장까지 했어요. 맞아요, 소변을 담는 요강 말입니다. 왜? 중국군은 영국은 양의 기운이 강하니까 음의 기운이 강한 요강으로 싸우면 이긴다는 생각이었어요. 당시 중국이 실제로 했던 발언입니다.
광저우를 박살 낸 영국은 바다를 따라 북상하여 양쯔강을 따라 중국 내륙으로 들어갔어요. 정말 머리를 잘 쓴 것이죠. 중국에는 크게 북에는 황하, 남에는 양쯔강, 이렇게 큰 두 개의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요. 그리고 그 강을 이용해서 물류를 이동시키죠. 지금의 경부고속도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의 베이징에서 출발해서 남쪽의 항저우까지 이어지는 인공 운하도 있었어요. 그 ‘경항운하’로 황하와 양쯔강을 남북으로 연결해서 물길로 중국 어디든지 물류를 이동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어요.
아편전쟁 (출처: 나무위키)
북쪽에서 내려오는 운하가 남쪽 양쯔강과 만나는 곳에 바로 난징이란 도시가 있는데요. 영국은 이런 엄청난 생각을 합니다. 난징만 점령하면 중국의 모든 물류 시스템은 다 막혀버린다. 그리고 난징은 중국의 경제 수도니까 중국 경제는 멈출 것이고 중국은 바로 항복을 할 것이란 생각을요. 결국 이는 현실이 됩니다. 영국의 함대는 양쯔강을 따라 천천히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난징을 점령하기 직전까지 와요. 정신을 놓은 청나라 정부는 영국의 예상과 같이 바로 항복해요. 그리고 그 난징이란 도시에서 항복 문서에 사인을 합니다. 이것이 아편전쟁의 마지막인 1842년 난징조약이랍니다.
아편전쟁 중 탄생한 탕수육과 짜장면
난징조약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은 영국 식민지가 됩니다. 그리고 당시 초가집 몇 채 밖에 없던 조그만 어촌이던 상하이가 개항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 탕수육이 탄생했답니다. 탕수육이요? 맞습니다. 홍콩과 주변 광동 지역에 상륙한 영국인들, 당시 중국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어요. 향신료 범벅인 정체 불명의 음식을 단지 막대기 두 개(젓가락)로 먹으라고 하는 중국인들을 처음엔 자기들을 놀린다고 생각했어요.
탕수육
그래서 영국인들은 명령합니다. ‘우리 영국인들이 먹을 만한 음식을 가져오란 말이야!’ 라고요. 그래서 광둥의 중국인들은 향신료는 다 빼고 이른바 ‘초딩입맛’을 가진 영국인들이 좋아하게 고기에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그리고 식초를 넣어 시큼하게 만든 고기 음식을 만들어요. 그리고 영국인들이 젓가락 하나로 쿡 찍어 먹을 수 있도록 고기로 아주 잘게 썰어서 내줍니다. 그걸 맛본 영국인들은 아주 만족했다고 하지요. 그 음식에 이름을 새로 붙이는데 설탕 당(糖), 그리고 식초 초(醋)로 만든 고기 육(肉), 이라고 해서 당초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이 당초육의 중국식 발음이 ‘탕추로우’인데요. 이 탕추로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탕수육’이란 국적 불명의 이름으로 탈바꿈한 것이랍니다.
이왕 얘기한 김에 짜장면도 아편전쟁 때문에 생겨났어요. 중국인들은 ‘힘을 더 내서 아편을 피자’란 생각에 조선 홍삼을 자양강장제로 먹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조선 홍삼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일반 서민들은 ‘꿩 대신 닭’이라고 홍삼 대신 해삼을 먹기 시작했어요. 같은 삼(蔘)이니까요. 그런데 이 해삼을 말리는 과정에 식용 소다가 들어가는데 이 식용 소다를 푼 물로 밀가루를 반죽하니까 점성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나는 겁니다. 바로 수타면의 시작이었지요.
그리고 당시 해삼은 중국 산동반도의 해삼이 최고였거든요. 산동반도는 또한 대파의 주요 생산지였어요. 이 대파를 ‘총장’이란 소스에 찍어서 먹었답니다. 파를 한자로 하면 총(蔥)이니까요. 색깔은 까만색이에요. 맞아요. 이 시커먼 총장을 수타로 뽑아낸 국수에 비벼 먹기 시작한 것이 바로 짜장면의 시작이랍니다. 이 총장이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이름이 ‘춘장’으로 바뀐 것이랍니다. 그래서 짜장면의 탄생은 어찌 보면 아편전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쟁이 일어난 배경, 그중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하는 아편전쟁이 일어난 배경을 조금 알아봤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연히 일어나는 전쟁은 단 하나도 없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그 전쟁 배경 게임의 전쟁은 과연 어떤 원인 때문에 일어났을까요?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미지의 기이한 괴물, 몬스터의 공포와 매혹
- 지난 글: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미지의 기이한 괴물, 몬스터의 공포와 매혹
방송인, 작가
미국 Loyola Marymount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하였고 지금은 역사 스토리텔러로 각종 방송에서 활약 중이다. 저서로선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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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여러분이 즐기시는 전쟁 게임들, 그 전쟁의 발발 원인을 아세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미지의 기이한 괴물, 몬스터의 공포와 매혹
정민아
없는 곳의 뒷면을 상상하기: 디스토피아 SF의 세계
문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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