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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기이한 괴물, 몬스터의 공포와 매혹

- 장르 문화 속 인문 찾기 -

정민아

2022-09-23

괴물의 절대적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해볼 도리가 없이 파멸을 맞이하는 인간의 절망적인 공포는 인간이란 매우 미미한 존재라는 주제의식으로 귀결된다. 대자연과 우주, 그리고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외계문명에 비하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절망감과 허무함, 어쩌면 그것은....



흉측하게 생긴 외계 생물과 인간의 혈투를 실감 나게 묘사하는 영화 <에이리언>(1979)은 1977년 <스타워즈>의 대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주류에 올라선 SF가 변주를 꾀하는 다양한 갈래길에서 한 방향을 제시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몰살당하는 결론으로 향하는 영화는 SF에 호러를 더하고 재난을 더했다. 보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이 등장하는 이 호러 SF는 이후에 시리즈로 제작되었는데,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데이비드 핀처, 장 피에르 쥬네 등 지금은 대감독이 된 이들이 젊은 날 이 시리즈의 한 편씩을 연출했다.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 끈적끈적하게 미끄러져 다가오다가 한방에 모든 것을 낚아채는 무시무시한 공격성, 고어를 보는 듯한 무지막지한 폭력 액션, 페미니즘 비평을 끌어낸 혁신적인 여성 주인공, 첨단기술이 가져올 재앙에 대한 철학적 경고 등 1979년에서 1997년까지 만들어진 네 편의 시리즈와 프리퀄까지 총 여섯 편의 <에이리언>은 오랫동안 호러 SF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이슈를 생산해왔다. 



영화 <에일리언> 포스터 (출처: 20th Century Studios)

영화 <에일리언> 포스터 (출처: 20th Century Studios)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바다에서 온 듯 촉수가 달리고 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괴물이라는 존재는 디스토피아 SF 팬과 괴물 호러 팬 양측을 모두 가슴 설레게 한다. 이로부터 파생된 <이블데드>(1981), <프레데터>(1987), <헬레이저>(1987), <미스트>(2007), <클로버필드>(2008), <프로메테우스>(2012) 같은 영화들은 SF적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괴물 호러의 범주에 들어가고, 이후 예술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2017), 히어로물 <아쿠아맨>(2018)까지 확장되어 변주된다.


잔인하고 흉악하고 파괴적이기만 한 괴물은 무서운게 당연하지만, 한편 자꾸 또 보고 싶은 흥미진진한 대상이다. 이게 호러 영화가 끌어들이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감정의 극단을 통해 경험하는 카타르시스를 동반하는 즐거움이 있다. 프로이트의 ‘언캐니’가 낯선 것과 친숙함의 불가분성을 뜻하고, 라캉의 ‘주이상스(jouissance)’에 공포와 쾌락이라는 상반된 의미가 포함되듯, 에이리언 식의 괴물에는 나쁜 캐릭터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데서 오는 즐거움, 그리고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느껴지는 오금 저림의 공포, 그 두 가지가 한데 담겨있다.


지난 8월초에 할리우드 20세기 스튜디오에서 제작하고 OTT 채널인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영화 <프레이>(댄 트라첸버그)가 공개되면서 호러 SF 팬들 사이에는 다시 한번 미지의 우주 괴물에 대한 열띤 논쟁이 일어났다. 



영화 <프레이> 스틸컷 (출처: 20th Century Studios)

영화 <프레이> 스틸컷 (출처: 20th Century Studios)




러브크래프트, 코스미시즘과 허무주의



호러 SF 영화와 그에 등장하는 괴물에 대한 위와 같은 설명을 접하면, 그 기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해진다. 무성영화 시기 심해에서 온 촉수 괴물이라는 고전 크러쳐물이 있지만, 이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발전시킨 이가 있다. 1차 세계대전과 대공항, 뉴딜을 겪고, 가난과 질병 때문에 평생 고달팠던 작가 H. P. 러브크래프트(1890-1937)는 이 세상에 없는, 매혹과 공포가 공존하는 미지의 존재인 괴물을 착안하고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는 스티븐 킹, 조지 R.R. 마틴, 어슐러 르 귄, 클라이브 바커 같은 공포 소설가, 존 카펜터, 스튜어트 고든, 기예르모 델 토로 같은 호러영화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생계를 위해 싸구려 B급 잡지에 단편을 써서 팔아야했던 러브크래프트는 이후 영화, 드라마, 게임, 음악, 만화, 문학, 생태학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영감의 원천이 되면서 전방위적으로 확산 중이고, 그의 영향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랑스러운 이름과 달리 공포소설을 썼던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세계를 ‘코스미시즘(cosmicism)’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데, 이 용어는 러브크래프트 본인이 에세이집에서 직접 언급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코스미시즘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우주적 공포’라는 의미가 될터인데, 이를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미지에 대한 공포, 거대한 우주 혹은 존재에 대한 공포를 뜻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인간이 감히 대적하기도 두려운 공포, 그리고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미미한 존재는 무가치하다는 것을 전제로 괴물을 창조했다.


여기서 미지에 대한 공포는 죽음으로 향하는 두려움을 낳는다. 괴물의 절대적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해볼 도리가 없이 파멸을 맞이하는 인간의 절망적인 공포는 인간이란 매우 미미한 존재라는 주제의식으로 귀결된다. 대자연과 우주, 그리고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외계문명에 비하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절망감과 허무함, 어쩌면 그것은 우주와 운명, 신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경외감으로 남을 것이다. 결말은 모조리 비극으로 끝나고, 나약한 인간 존재가 겪는 공포 체험이 극도의 절망감으로 변하고 남은 자리에 대자연과 우주의 위대함만 남았다는, 극단적 허무주의는 격변하는 시대를 관조하는 힘이라는 역설로 탈바꿈한다.


러브크래프트는 고독하고 가난했으며 질병으로 점철된 생애를 살았다. 홀로 작은 방에 갇혀 단벌의 옷과 소박한 식사로 생명을 간신히 유지했으며, 전쟁과 대공항이라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유입되는 이민자들로 인해 변화를 두려워하며 지냈다. 새로운 사상이 밀려오고 정치적, 경제적 전환을 맞이하는 격변기에 혼종이 두려운 작가는 엄습하는 인종적 공포 속에서 외계 괴물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이 폐쇄적인 작가는 당대 공포소설이 범죄나 귀신 같은 소재를 활용하여 잔혹한 설정으로 무서움을 주었던 것과 달리, 근원적 공포의 은유적 공간으로 우주를 가져오고, 그 거대한 공간 안에서 신화를 창조해 내었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에서 악마적인 신이자 사악한 외계 괴물이 활약하는 우주는 인간에게 그 어떤 선의나 악의도 없으며 아예 관심조차 없다. 이는 인간이 개미를 바라보듯, 우주는 인간이 죽든 말든, 공포에 떨거나 희망을 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우주적 무관심주의로 귀결된다.


이러한 무관심주의는 기후위기와 자연재해, 팬데믹으로 인해 문명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현실을 목격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가 묘사하는 사악하고도 냉혹한 허무주의는 자본주의를 끝까지 밀어붙인 인간이 생태계에 가한 파괴에 대한 징벌 같이도 느껴진다.


물리적으로는 고립의 생활을 선택했지만, 러브크래프트는 수많은 작가와 긴밀하게 교류하거나 함께 작품을 썼다. 그는 독자와의 기나긴 서신 왕래로 그가 창조한 신과 괴물을 가져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도록 독려했고, 그렇게 그의 작품들은 다른 작가들과 상호소통하며 창조적 영향 아래 탄생했다. 따라서 러브크래프트는 한명의 작가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적 세계라고 단언할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the call of cthulhu>

의 표지 (출처: amazon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the call of cthulhu]의 표지 (출처: amazon) 

 


코스믹 호러와 괴물 이미지, 장르의 변주와 위반



수십 년을 거듭한 러브크래프트적 창작은 그가 평소 고수했던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뛰어넘어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나고 있다. 장르 규칙의 반복과 위반이 시도되는 가운데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서 환호하는 호러식 영화보기의 즐거움은 마니아의 문으로 들어가는 기본 소양이다. 이것이 장르가 가진 개방성과 역동성이다. 이러한 성질로 인해 장르는 여타 다른 장르와 혼합이 용이하며 대중적으로 전파될 수 있다.


언캐니와 주이상스처럼 매혹은 공포와 뒤섞이고, 기이한 것은 혐오스러우면서도 관심을 끈다. 등장인물은 두려워서 떨지만 보는 이는 눈을 뗄 수 없는, 이 끔찍한 가학성은, 남이 대신 맞아주는 매에 안도감을 느끼는 심리다. 동시에 이기적인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무한대로 뻗어가는 광활함에서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 어떤 위기도 위기일 수 없다는 이상한 궤변에 빠져들며 오히려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 준다. 이는 공포와 매혹이 한 곳에서 양립하는 상황으로부터 전달되는 메시지이다.


러브크래프트는 “끝없는 암흑의 바다 한복판, 우리는 그중에서도 무지라는 평온한 외딴섬에서 살아가고 있다.”(『크툴루의 부름』)라고 말했다. 무지하므로 무서운 줄 몰라 다행이라는 그의 냉소는 과학이라는 전문영역의 오만과 왜곡에 대해 경고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미시즘 철학을 계승한 코스믹 호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라는 장르 아이콘, 괴현상을 겪으며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가 겪는 극한의 공포와 절망 체험이라는 장르 컨벤션,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존재를 앞에 둔 무력감이라는 장르 공식 등으로 발전하여 호러 장르의 하위 장르로서 단단한 범주와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우주적 공포 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워즈>와 <스타트랙>도 러브크래프트의 영향 아래 있다. 러브크래프트가 묘사한 괴물의 형태 상 코스믹 호러를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는 바다다. 이에 심해 괴물이 등장하는 <조스>와 <어비스>, <셰이프 오프 워터>는 자연스럽게 러브크래프트를 떠올리게 한다. <에이리언>과 <프레데터>, <프레이>가 소름 끼치게 무서운 이유는 괴물 형상을 실감 나도록 무섭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코스믹 호러의 괴물은 러브크래프트가 『크툴루의 부름』에서 명시하듯이, 문어 머리 주변에 촉수가 달려있으며, 비늘로 온몸이 덮여있고, 기다란 발톱과 날개가 달려 흉측하게 생겼다. 괴물은 월등한 지적 능력과 압도적인 힘으로 인간을 놀리고, 인간은 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지구에 군림하면서 상상 초월의 진화된 문명을 가진 괴물은 인간 존재를 가볍게 뛰어넘는 두려운 외계 종족이다.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에이리언의 디자인을 맡은 H.R. 기거는 러브크래프트의 네크로노미콘 세계관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코스믹 호러 세계관을 구현하였다.



네크로노미콘 (출처: H.R. Giger, Necronom IV, 1976. Courtesy of the H.R. Giger Museum)

네크로노미콘 (출처: H.R. Giger, Necronom IV, 1976. Courtesy of the H.R. Giger Museum)

 


현재 개봉 중인 할리우드 영화 <놉>(조던 필)은 어느 가족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미스터리한 사건이 늘 사람 위에 떠 있는 그것 때문임을 서사화한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글로벌 차원에서 흥행한 한국 드라마 <스위트홈>과 <지옥>은 K-영화장르에서는 없던 크리처물로서 한국형 코스믹 호러의 시작을 알린다.


<놉>은 인종적으로 흑인의 눈으로 초기영화 역사를 다시 쓰는 메타영화로서 코스믹 호러를 확장한다. <프레이>는 유럽인이 정복하기 전 아메리카 원주민의 시각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생태주의와 개척사를 쓰는 동시에 여성의 잠재된 전투성 발현과 새로운 여성 리더의 옹립을 찬양한다.


<지옥>과 <스위트홈>은 사막, 바다, 극지방, 행성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공간과 먼 과거와 먼 미래 등 현실을 벗어는 시간 속에서 마주하는 외계 괴물을 그리지 않는다. 이 드라마들의 괴물은 우리의 척박한 현실 그 안에 공존한다. 이로써 두 드라마는 훌륭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던진다. <지옥>은 교주와 신도 관계에서 괴물을 종교적 광신으로 은유하며 지옥의 공포를 현실에서 체험하게 한다. 또한 <스위트홈>은 자본주의의 혹독한 게임에서 탐욕만 남은 인간이 괴물로 다시 태어나는 기현상을 보여준다. 두 K-드라마는 압도적 힘을 가진 무자비한 괴물과 미미한 인간을 대립구도로 놓는 코스믹 호러의 컨벤션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한국 특유의 사회비판적 주제의식의 상업적 결합 아래 인간의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부각한다.



드라마 <지옥> 스틸컷 출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스틸컷 (출처: 넷플릭스)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를 수정하여 다시 쓰는 러브크래프티언들로 인해 그의 불행에서 기인한 오명의 코스미시즘 세계관은 변주되어 확장된다. 호러장르의 서브장르로서 소수의 마니아들의 열광과 함께 성장한 코스믹 호러는 어느새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마블까지 진입하였고, 주류시장 관객도 다채로운 변주로 이 장르를 즐기고 있다. 반복과 변주, 그리고 수정을 통한 위반은 장르의 진정한 쾌락이다.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미지의 기이한 괴물, 몬스터의 공포와 매혹

- 지난 글: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누가 장르문화를 모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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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한국영화학회 학술이사, 한국영상문화학회 편집위원, EBS국제다큐영화제·여성인권영화제 자문위원이며, 여러 매체에 영화평 기고와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공저 『봉준호 코드』, 『The Korean Cinema Book』, 역서 『필름 크래프트』, 『시각문화의 매트릭스』가 있으며, 근간으로 『K-콘텐츠 코드』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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