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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제기하는 정당한 전쟁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

- 이달의 답변 -

박승찬

2022-05-23

인문 쟁점은?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인문학적 과제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의 깊은 사색,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누고자 만든 코너입니다. 매월 국내 인문 분야 전문가 두 사람이 우리들이 한번쯤 짚어봐야 할 만한 인문적인 질문(고민)을 던지고 여기에 진지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강요하기 이전에 정치가들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개인들의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킬 가치를 지닐까?” 따라서 우리는 ‘정당한 전쟁’이 될 정당성을 찾을 것이 아니라, 불의와 충돌의 근본 원인을 서로의 마음에서 제거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정당한 전쟁론에 쓰는 에너지를......



정당한 전쟁론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쟁은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이 들어갈 뿐 아니라 전쟁 당사자들과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하고 피해를 입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만일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전쟁 발생을 축소하려는 방안으로 제기된 것이 정당한 전쟁론입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대표적인 종교 사상가들, 즉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장본인인 루터조차도 정당한 전쟁론을 지지했습니다. 왜 그들이 정당한 전쟁을 옹호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정당한 전쟁에 대한 생각



아우구스티누스(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아우구스티누스(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신국론』에서 우선 전쟁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폭로합니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는 알렉산더 대왕과 해적 사이의 흥미로운 대화를 소개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잡혀 온 해적에게 ‘무슨 생각으로 바다에서 남을 괴롭히는 짓을 저지르냐’고 문초하자, 그 해적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폐하께서 전세계를 괴롭히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단지 저는 작은 배 한 척으로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해적이라 불리고, 폐하는 대함대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황제라고 불리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신국론』IV,4)


아우구스티누스는 강도 떼도 한 사람의 두목에 의하여 지배되고, 결합체의 규약에 의하여 조직되어 있으며, 약탈물은 일정한 원칙에 의하여 분배되는 등 대내적 정의에 의해서만 존속하므로 국가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에 해당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가 없는 왕국이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신국론』IV,4)라고 질문합니다.


또한 그는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이며, 이런 정의를 저버리고 불법을 저지른 자는 징벌을 통해 교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타자의 불의 때문에 발생하는 정당한 전쟁(bellum iustum)이 없지 않고, 그런 경우에는 “불의한 자들이 의로운 자들을 지배하는 것보다 더 고약한 일은 없기”(『신국론』IV,15) 때문에 선한 이들도 전쟁을 하는 일이 필요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정당한 전쟁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신앙의 지혜를 가진 자에게는 도무지 칭찬할 만한 것이 되지 못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잘 숙고해 보면 그 정당하다는 전쟁에서도 자랑할 만한 것보다는 괴로워할 만한 것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적대감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필요할 때라도, 전쟁은 인간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치러져야 하며, 적에게도 수치나 분노의 감정을 주어서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야기한 거룩한 전쟁 논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전쟁은 도무지 칭찬할 만한 일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음에도, 본격적인 중세로 들어서며 그의 ‘정당한 전쟁’에 관한 옹호만이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성묘교회의 주요 출입구(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성묘교회의 주요 출입구(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십자군 전쟁은 1096년부터 1291년까지 무려 200여 년에 걸쳐서 여덟 차례나 일어납니다. 모든 갈등의 불씨가 되었던 공간은 예루살렘으로, 특히 그리스도교의 성지였던 성묘교회는 그리스도교 순례객들이 일생에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어 하는 장소였습니다. 초기에 평화롭게 진행되던 순례를 11세기에 등장한 잔혹하기로 유명한 셀주크 투르크 종족이 방해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위협받던 동로마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 1세가 로마 교황 우르바노 2세에게 도움을 청하자, 교황은 이 기회에 분열되어 있던 동서 로마 교회를 새롭게 통일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예루살렘이 처한 참혹한 상황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를 알게 된 교황은 이 기회를 이용해 ‘짐승 같은 이슬람으로부터 거룩한 성지인 예루살렘을 정화해 자유롭게 기도하자’며 성지를 정화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십자군에 참여했습니다. 순수하게 고행만 하던 순례자들도 있었지만 땅과 돈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2차 십자군 전쟁(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제2차 십자군 전쟁(이미지출처: 위키백과)



1차 십자군은 약 3년 동안 전쟁을 해서 예루살렘을 되찾게 됩니다. 무슬림들이 사분오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십자군은 결국 예루살렘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목적으로 삼았던 예루살렘 성지순례가 자유로워졌으니 전쟁은 끝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줄 알았던 그리스도교인들이 예루살렘 왕국과 3개의 공국을 세우게 되자 이슬람은 분노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벌어진 2차 십자군 전쟁 때 이슬람 세력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성전(聖戰), 지하드(Jihād)를 선포하고 힘을 결집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며 십자군 전쟁은 아주 쉽게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는 인간들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여덟 차례의 전쟁 중에 가장 추악한 것은 4차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십자군들은 가장 중요한 성당이었던 성 소피아 성당까지 들어가서 사람들을 살육하는 잔혹한 행위들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5차부터 8차까지 끊임없이 이슬람 세력들을 몰아내기 위해 전쟁을 시도했지만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이슬람 세계에 십자군, 그리스도교에 대한 무지막지한 증오만을 남겨 놓게 되었습니다.


종교인들이 신의 명령, 거룩한 의무 등으로 십자군 전쟁을 정당화함으로써 더욱 잔혹한 학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행위에 자부심을 가진 군인들은 평상시에 혐오할 잔혹한 행동을 저지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십자군은 마라라는 도시에서는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안티오키아를 공격할 때는 자신들이 잡은 포로들의 목을 따서 투석기로 던져 올리는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렇게 잔혹한 학살을 경험한 무슬림은 무자비한 자들로 규정된 십자군에 맞서서 포로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로 대응했습니다. 이런 폭력의 악순환은 십자군 전쟁 때부터 시작되어 현대까지 지속되어 무수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당한 전쟁에 대한 체계화



토마스 아퀴나스(이미지출처: 위키백과)

토마스 아퀴나스(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표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도 정당한 전쟁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는 사고를 전개했습니다. 토마스에 따르면 정당한 전쟁에는 세 가지 조건이 요구됩니다.(STh II-II, q.40, a.1) 그 첫째는 전쟁 선포와 수행자로서의 군주의 권한이고, 둘째는 정당한 근거이며, 셋째는 전쟁에 참가하는 당사자들의 올바른 의도입니다. 우선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군주는 국가의 질서와 안전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을 처벌할 수 있으며, 외부의 적들을 처벌하는 행위가 바로 전쟁입니다.(STh. II-II, q.42, a.1) 토마스에 따르면, 전쟁 선포와 수행을 통해 군주는 피해를 입은 자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자기 나라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합니다. 또한 전쟁을 치르기 위한 정당한 근거란 한 민족이나 국가가 자국민이 저지른 무도한 행위를 징벌하고 보상하는데 태만한 경우에 생긴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도입하는 ‘교환정의’에 따르면, 부당하게 피해를 입은 국가가 정당하게 배상하지 않는 가해 국가에 일으키는 전쟁은 정당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전쟁은 보통 극단적인 폭력을 수반하고 거기에는 항상 죽음의 위협이 상존하므로 공포심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의 덕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무조건적으로 국가 사이의 소위 ‘정당한 전쟁’을 부추긴 학자는 아니었습니다. 정의의 완전한 실행을 위해서는 “선을 행함” 뿐 아니라, 또한 “악을 회피함”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전쟁에서 악은 어떻게 회피될 수 있을까요? 전쟁 수행자들에게 수반하는 대부분의 악한 경향들은 절제되지 않은 분노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전쟁 중의 해로운 분노는 전쟁의 의도나 그 일어나는 방식 때문에, 즉 “반격하고자 하는 야만성”, “보복하고자하는 잔인성”, “권력에의 충동” 때문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STh II-II, q.158, a.3)


이 같은 악한 경향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쟁 수행자들에게 “관용”과 “온유”의 덕이 필요합니다. 관용과 온유는 과도한 형벌과 치미는 분노를 완화시켜 줍니다. 더 나아가 토마스는 성령의 은사(恩賜)로서의 “경건함”(pietas)을 통해 우리가 모든 인간에게, 심지어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 적대자들에게까지 -적어도 그들도 하느님의 백성인 한에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전쟁이 완전한 의미에서 정당한 행위가 되려면, 이렇게 “선을 행함”이라는 행위뿐 아니라, “악을 회피함”이라는 행위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당한 전쟁에 대해 제기된 반론들



Nuremberg Trials(이미지 출처: history)

Nuremberg Trials(이미지 출처: history)



앞서 언급된 〈정당한 전쟁〉에 관한 이론은 지난 세기까지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는 잣대로 인정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뉘렌베르크 전범재판을 진행하면서 어떤 전쟁이 부당한지를 판별하는 초석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 재판에서는 전쟁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6가지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①자기방어, 순결한 사람들의 보호, 악에 대한 응징 등 전쟁 수행의 원인이 정당해야 하고 ②개별 국가의 정치적 및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등 전쟁 수행의 의도가 옳아야 하며 ③합당한 당국이 결정하여 공개 선언을 해야 하고 ④전쟁이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하며 ⑤승리할 확률이 높아야 하고 끝으로 ⑥전쟁의 목적과 피해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 등이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요건입니다.


그렇지만, 비판적인 학자들은 실제로 지난 1,700년 동안 이러한 조건에 맞추어 전쟁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정당한 전쟁론에서 시작된 전쟁이 과잉 방어 차원으로 건너가면서 침략전쟁이 되어 버렸거나, 이를 핑계로 침략전쟁을 일으킨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전쟁

전쟁



실제로 정당한 정당 전쟁론은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전쟁을 제한하고 억제하려는 원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종종 전쟁을 일으키는 이데올로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둘째,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무차별적인 폭력과 살상이 자행되면서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악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이 더 큰 악을 초래하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셋째, 원자 폭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등장한 이후 모두의 공멸을 초래할 위험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오늘날은 어떤 전쟁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최근 가톨릭교회 안에서 ‘정당한 전쟁’ 이론을 폐기하고 더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정당한 평화’를 가톨릭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2016년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는 폭력은 평화가 아니라 더 심한 폭력과 유혈 사태, 혼돈으로 이끈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1,700년 동안 ‘정당한 전쟁론’은 전쟁을 예방하고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 데 사용되었음과 분쟁 현장에서 비폭력적 변혁을 위한 도구와 능력을 개발하는 도덕적 의무를 저해시켰음에 대해 반성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여러 차례 전쟁의 참혹함을 철저하게 경험했으면서도, 어느덧 전쟁을 비현실적인 컴퓨터 게임처럼 바라보는 듯합니다. 또한 일부 강경 세력은 종종 평화와 정의를 앞세우며 다툼을 끝맺기 위한 적당한 수단으로 여전히 전쟁을 옹호합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전쟁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자기에게 정복된 인간들에게 자기 나름대로 평화의 법률을 부과하고 싶어”하는 욕심에서 발생합니다.(『신국론』XIX,12.1) 그에 따르면, 오히려 통일을 기하려는 막대한 노력이 집중되면 될수록 그만큼 분열이 초래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빚어집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강요하기 이전에 정치가들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개인들의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킬 가치를 지닐까?” 따라서 우리는 ‘정당한 전쟁’이 될 정당성을 찾을 것이 아니라, 불의와 충돌의 근본 원인을 서로의 마음에서 제거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정당한 전쟁론에 쓰는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국가와 민족 간에 정의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갈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5월 [이달의 답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제기하는 정당한 전쟁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

- 지난 글: 5월 [이달의 질문] “전쟁이 정당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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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교수 사진
박승찬

교수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며 성심대학원장, 한국중세철학회장, 한국가톨릭철학회장을 역임했고 김수환추기경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라틴어 중세철학 원전에 담긴 보화를 번역과 연구를 통해 적극 소개하고, 다양한 강연과 방송을 통해 그리스도교 문화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중세의 재발견』 등이 있다. 상세한 활동은 홈페이지 www.eliasp.net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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