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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그 이상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

인문쟁이 한초아

2017-09-18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서촌’. 고즈넉한 한옥 사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의 숨결이 교차하는 곳이다. 시인 윤동주와 서정주, 소설가 현진건, 화가 이중섭 등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이름들은 ‘서촌’이라는 공간 속에서, 오늘날 우리와 호흡한다. 서촌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한옥을 감각적으로 개조한 공간에 발걸음이 멈춰진다.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천재 작가, ‘이상(李箱)’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이상의 집’

 ▲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이상의 집’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李箱)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 소설 <날개>에 등장하는 첫 문장은 작가 이상(李箱)만큼이나 강렬하다. 그가 던진 이 짧은 물음은, 자연스레 우리에게 작가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강점기의 억압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 바로 그다. 

 

이상(李箱)의 모습 이상(李箱)의 1910.9.23~1937.4.17

 ▲ 이상(李箱)의 모습 


아들이 없던 큰 아버지의 양자로 자란 이상(본명 김해경)은 가히 천재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문학, 건축, 예술에 뛰어난 재능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미술 대회에서 우등상을 받기도 했으며,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총독부 건축 기수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인으로서의 재능은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그의 시 <오감도>를 연재하면서부터 두드러진다. 


화가로서의 모습이 담긴 이상(李箱)의 사진1화가로서의 모습이 담긴 이상(李箱)의 사진2

 ▲ 화가로서의 모습이 담긴 이상(李箱)의 사진들


띄어쓰기와 같은 언어규범을 파괴하는 등 파격적인 형식이 특징인 <오감도>는 소설 <날개>와 더불어, 이상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기존 문학과는 차별화된 형식과 난해하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오감도>는 ‘모더니즘 문학’의 정수로 일컫는 작품이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섰던 탓일까. 동시대 독자들에게 <오감도>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거센 비난으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시란 말인가?”라는 독자들의 매서운 혹평이 연일 빗발쳤고, 결국 애초 기획한 30회의 연재를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 15회로 연재를 중단하게 된다. 이후 일본 도쿄로 떠난 이상은 1937년 불온한 사상을 지녔다는 혐의로 체포되기에 이른다. 얼마 뒤 풀려나긴 했지만, 결국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2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상을 그리다, ‘이상의 집’

 

 이상의 집

 ▲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이상의 집


독창적이고, 새로운 시선을 가했던 작가 이상의 모습과 많이도 닮은 곳이 바로 ‘이상의 집’이다.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이상의 집’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 년 간 머물렀던 큰 아버지의 집터 일부에 자리하고 있다. 철거될 위기에 놓였던 이곳은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시민 모금과 기업 후원으로 매입해 보전‧관리하고 있으며, 2011년 4월 개관 후 개보수를 거쳐, 2014년 3월 현재의 모습으로 재개관을 했다

 

이상의 집 내부1이상의 집 내부2

 ▲ 이상의 집 내부


한옥을 현대적 방식으로 개조한 ‘이상의 집’은 자유분방하며, 독창적인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통유리 창마저 인상적인 곳이다. 이상의 작품 <거울>에서 분절된 자아를 표현하는데 사용했던 거울은 ‘이상의 집’의 ‘커다란 통유리 창’으로 변해, 이방인을 마주한다. 쏟아지는 환한 햇살을 머금고, 이상의 집을 찾은 이들의 얼굴을 담기도 하며, 오고가는 시민들에게 천재 작가 ‘이상’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상의 다양한 작품들

 ▲이상의 다양한 작품들 

 

한옥의 미(美)가 어우러진 ‘이상의 집’ 내부는 이상의 작품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상의 대표작인 소설 <날개>와 수필집 <권태> 등 다채로운 이상의 작품들과 이상 문학을 연구한 자료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이상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소정의 기부금을 내면 ‘커피’ 한 잔이 무료 제공되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작가 이상과 그의 작품이 담긴 엽서기부금을 내면 제공되는 커피

 ▲ 작가 이상과 그의 작품이 담긴 엽서, 그리고 기부금을 내면 제공되는 커피.


실제로 이상은 다방 ‘제비’를 운영하며, 문학을 새로운 삶의 동력으로 삼게 된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레 접한 문인들과 시대를 논하고, 억압의 시대를 ‘글’로 표현해내며 작가 이상의 면모를 갖춰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운영한 다방 ‘제비’를 재현한 듯 커피 향이 은은하게 배인 이 공간에서 시민들은 이상의 책을 읽으며, 그를 기억하고 있다.


이상의 방 1이상의 방 2

 ▲ 이상의 방 


한편 ‘이상의 집’ 안쪽으로 발길을 돌려보면 두꺼운 철문으로 된 이색적인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어둡고 습하며 햇빛마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이 공간은 소설 <날개> 속 주인공의 방을 떠오르게 한다. 1930년대의 우울과 고뇌,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지식인의 시대적 무게는 힘껏 힘을 주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철문의 무게로 은유한다. 평범해 보이는 ‘문’에서도 억압된 식민지 속 작가 이상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특별함마저 자아낸다. 

 

이상의 삶과 작품에 관한 영상

 ▲이상의 삶과 작품에 관한 영상 


어둡고 좁은 통로로 구성된 ‘이상의 방’에서는 영상을 통해, 작가 이상의 삶을 반추한다. 파노라마 영상으로 이어지는 이상의 삶과 작품은 우리의 기억 저편에서 잠들어있던 ‘이상’을 소환하는 공간으로서 작용한다. 

 

‘이상의 방’에서 바라본 ‘이상의 집’1‘이상의 방’에서 바라본 ‘이상의 집’2

 ▲ ‘이상의 방’에서 바라본 ‘이상의 집’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 <날개> 中 

 

소설 <날개>의 마지막 문장을 떠오르게 하듯, ‘이상의 방’에서 이어지는 작은 옥상은 높이 비상하고자 했지만, 그 날개마저 꺾인 <날개>의 주인공과 작가 이상을 떠오르게 한다. 생기를 앗아간 시대, 일제강점기. ‘박제’를 강요하는 어두운 현실 속에 드리워진 우울과 불안, 아픔과 고통은 ‘이상의 방’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다.


친구이자 ‘화가 구본웅’이 작가 이상을 모델로 그린 그림1친구이자 ‘화가 구본웅’이 작가 이상을 모델로 그린 그림2

 ▲ 친구이자 ‘화가 구본웅’이 작가 이상을 모델로 그린 그림


시인이자 소설가,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시대를 앞선 천재, 이상(李箱). 그 만의 새로운 시선과 독창적인 실험정신은 오늘날 현대문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에 분명하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아닌, 날개를 단 ‘천재’ 이상을 ‘이상의 집’에서 오롯이 마주하길 바란다. 




사진= 한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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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시간 : 화~일요일, 10시 부터 6시 까지.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장소 정보

  • 서울
  • 이상시인
  • 문학
  • 모더니즘
  • 오감도
  • 다방제비
  • 이상날개
한초아
인문쟁이 한초아

[인문쟁이 3기]


20여년을 대전에서 살았지만, 그럼에도 ‘대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청춘(靑春) ‘한초아’이다.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진 산책, 꽃과 시와 별,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행간의 여유를 즐긴다. 신문이나 책 속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자칭 ‘문장수집가’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뜨거운 ‘YOLO'의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문쟁이’를 통해, 찰나의 순간을 성실히 기록할 생각이다. 윤동주 시인의 손을 잡고, 가장 빛나는 별을 헤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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