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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장에서 연결된다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

인문쟁이 조온윤

2020-02-27


광장은 신분이나 성별,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연결되는 장소다. 광장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agora)는 시민들이 오가며 대화를 나누거나, 시장을 열어 물건을 사고팔거나, 혹은 정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일상 공간이었다. 지금의 광장도 그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지금도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고, 특정 가치를 널리 알리고 기념하고자 광장에서 축제를 개최한다. 이제는 실제로 만나서 대화하는 것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더 많은 의사소통을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광장은 여전히 그 역할의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

▲서울 광화문 광장. ⓒWikimedia Commons.


우리나라는 특히 근현대사에 있어 광장이 지니는 의미가 크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부터 1980년대에 이르러 꽃피는 민주화 운동, 최근에 있었던 촛불 혁명까지, 사회가 크나큰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사람들은 한데 모여 그 굴곡진 시간을 함께 극복해왔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늘 광장이 있었다. 어쩌면 광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또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는 것만으로 우리나라 사회사의 흐름과 현주소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광장이 지닌 이런 역사적 상징성 때문일까. 국립현대미술관이 3·1운동 100주년과 개관 5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의 이름은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이다.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 전시 1부가 진행되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 전시 1부가 진행되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조온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광장》 전시는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사회상을 미술 작품을 비롯한 근현대 미술사를 통해 보여준다. 시기별로 덕수궁관과 과천관, 서울관에 걸쳐 3개 파트로 진행되며,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1부에서는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어떻게 고수하고 또 변화시키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광장》 전시의 벽면 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

▲《광장》 전시의 벽면 포스터. ⓒ조온윤


1부 전시의 도입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작품은 사군자를 그린 수묵화다. 충효와 지조를 중요시했던 조선 시대의 화가들에게 사군자는 시기를 불문하고 꾸준히 사랑받아 온 소재였다. 눈에 띄는 작품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화가 양기훈이 그린 <민충정공 혈죽도>이다. 민충정은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애국지사 민영환을 기리는 이름으로, 그가 자결한 흔적이 남아 있는 방에서 난데없이 가늘고 억센 대나무 줄기가 자라났다는 일화가 있다. 양기훈의 <민충정공 혈죽도>는 바로 그 대나무를 화폭에 담은 것으로, 민영환의 대나무 일화로 인해 화가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사군자 중에서도 대나무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민영환이 자결한 뒤 그의 방에서 자라났다는 대나무를 그린 <민충정공 혈죽도>

▲민영환이 자결한 뒤 그의 방에서 자라났다는 대나무를 그린 

<민충정공 혈죽도>(1906, 종이에 목판화), 양기훈 作 ⓒ조온윤

 

 

지조와 절개를 상징했던 사군자는 조선 전기에 걸쳐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였다. <묵죽도 8폭 병풍>(연도 미상, 종이에 수묵), 정대기 作

▲지조와 절개를 상징했던 사군자는 조선 전기에 걸쳐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였다. 

<묵죽도 8폭 병풍>(연도 미상, 종이에 수묵), 정대기 作 ⓒ조온윤

 

궁중 화가로 활동했던 채용신은 을사늑약 이후 낙향하여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최익현 초상>(1925, 비단에 채색), 채용신 作

▲궁중 화가로 활동했던 채용신은 을사늑약 이후 낙향하여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최익현 초상>(1925, 비단에 채색), 채용신 作 ⓒ조온윤


그런가 하면 개화를 맞아 프랑스, 독일, 일본 등지로 유학을 다녀오는 등 새로운 미술 화법과 재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자신만의 작품 세계로 녹아들게 하는 화가들도 있었다. 그중 1부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유화 화가로 배운성, 변월룡, 고희동, 이쾌대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은 이쾌대의 그림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다. 이쾌대는 당대에 천재로 불릴 만큼 장래를 촉망받았던 화가로,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오면서 서양 고전주의 기법을 이어받아 그림을 그렸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에서 향토적인 시골 풍경을 뒤로 두고 서양의 중절모를 쓰고 팔레트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구시대의 유물과 서양의 신문물이 공존했을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쾌대의 작품은 6·25 전쟁 이후 그가 월북을 택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88년에 월북 예술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시행되고 나서야 뒤늦게 명성을 얻게 된다.


월북 화가였던 이쾌대의 작품은 월북 예술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시행된 1988년이 되어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이쾌대 作

▲월북 화가였던 이쾌대의 작품은 월북 예술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시행된 1988년이 되어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이쾌대 作 ⓒ조온윤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떠오르는 <해방고지>(1948, 캔버스에 유채), 이쾌대 作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떠오르는 <해방고지>(1948, 캔버스에 유채), 이쾌대 作 ⓒ조온윤


덕수궁관에 이어 과천관에서는 1950년대부터 2019년까지를 다루는 전시를 볼 수 있다. 2부 전시에서는 6·25 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부터 급격한 산업화가 찾아온 197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대변되는 1980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사회사와 미술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회화 중에서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그림으로 담아낸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다. 전쟁의 여파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중섭이 그림을 그릴 종이를 사지 못해 담배를 포장하는 은박지에다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조온윤

 

<투계>(1955, 카드보드에 유채), 이중섭 作.

▲<투계>(1955, 카드보드에 유채), 이중섭 作. ⓒ조온윤

 

<아이들>(연도 미상, 은지에 선묘·잉크), 이중섭 作.

▲<아이들>(연도 미상, 은지에 선묘·잉크), 이중섭 作. ⓒ조온윤

 

<할아버지와 손자>(1960, 캔버스에 유채), 박수근 作.

▲<할아버지와 손자>(1960, 캔버스에 유채), 박수근 作. ⓒ조온윤


2부에서는 6·25 전쟁 전후로 유행하기 시작한 추상미술 작품도 다수 만나볼 수 있다. 광복에 이은 분단 전쟁이 한반도에 가져온 어떤 공백과 폐허의 상태로 인해 화가들 사이에선 추상미술에 대한 시도가 본격적으로 일었다고 한다. 20세기 중후반 추상화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화가들로 김환기와 김형대, 김창열, 이우환 등이 있다.


<달 두 개>(1961, 캔버스에 유채), 김환기 作.

▲<달 두 개>(1961, 캔버스에 유채), 김환기 作. ⓒ조온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코튼에 유채), 김환기 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코튼에 유채), 김환기 作. ⓒ조온윤

 

<환원 B>(1961, 캔버스에 유채), 김형대 作

▲<환원 B>(1961, 캔버스에 유채), 김형대 作. ⓒ조온윤

 

<제사>(1965, 캔버스에 유채), 김창열 作.

▲<제사>(1965, 캔버스에 유채), 김창열 作. ⓒ조온윤

 

<선으로부터>(1974, 캔버스에 유채), 이우환 作.

▲<선으로부터>(1974, 캔버스에 유채), 이우환 作. ⓒ조온윤


이후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민중미술이 주목받게 된다. 당시의 광장은 1979년 부마 항쟁과 1980년 5·18 민주항쟁,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까지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시기였다. 예술계도 이러한 시대정신에 부응하면서 군부 정권의 부조리와 악행을 고발하고 이에 대한 대중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사회참여 성향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미술관 내의 작은 광장이라 할 수 있는 미술관 로비에 바로 이런 민중미술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과천관 로비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한열이를 살려내라>(1987, 한지에 목판), 최병수

▲과천관 로비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한열이를 살려내라>(1987, 한지에 목판), 최병수 作. ⓒ조온윤

 

<전봉준>(1985, 종이에 채색), 박생광 作

▲<전봉준>(1985, 종이에 채색), 박생광 作. ⓒ조온윤


1부와 2부 전시가 당대의 미술을 통해서 지난 100년여의 사회사를 되돌아보는 전시였다면, 서울관에서 진행되는 3부 전시는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들을 현대예술로써 보여준다. 3부에서 주목하는 키워드는 공동체다. 현대의 광장을 “연대감과 분열, 혼돈이 모두 공존하는 공간”이자 타자와 자신에 대해 “끊임없는 되묻고 성찰하게 하는 공간”으로 해석하면서 지금 이 시대의 공동체의 의미와 역할을 묻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조온윤

 

양한 형태의 사회적 생존 투쟁에 매달리는 현 사회를 갯벌 위에 위태롭게 지은 집으로 보여주는 송성진의 <한평조차>(2018, 목재·혼합재료 설치)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생존 투쟁에 매달리는 현 사회를 갯벌 위에 위태롭게 지은 집으로 보여주는 

송성진의 <한평조차>(2018, 목재·혼합재료 설치). ⓒ조온윤


3부 전시에서는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시각예술을 비롯해 광장을 주제로 한 소설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7명의 소설가가 ‘광장’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쓴 7편의 소설을 한 권의 소설집으로 묶은 게 바로 그것이다. 윤이형, 김혜진, 이장욱, 김초엽, 박솔뫼, 이상우, 김사과 소설가가 참여했으며, 7편의 이야기 속에서 광장은 광화문 광장과 시청 앞 광장, 메신저 대화방,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전시실 입구 로비에 소설집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바(bar)가 설치되어 있다.


소설집 『광장』이 비치된 로비의 바(bar). 홍승혜 作

▲소설집 『광장』이 비치된 로비의 바(bar). 홍승혜 作 ⓒ조온윤

 

3개 관에서 진행되는 《광장》 전시를 모두 관람하면 소정의 상품도 받을 수 있다.

▲3개 관에서 진행되는 《광장》 전시를 모두 관람하면 소정의 상품도 받을 수 있다. ⓒ조온윤



에필로그



지난해 4월 인문쟁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쓴 첫 번째 탐구생활은 광주의 5·18민주광장과 매년 그곳에서 열리는 추모 행사에 관한 글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을 국립현대미술관 《광장》 전시에 관한 개괄적인 관람기로 끝맺게 됐다. 광장, 그간의 인문 활동을 광장으로 비유하면 조금 억지스러울까. 인문쟁이로 활동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내게도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혼자만의 공간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광장으로 나오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매달 인문과 관련된 여러 주제를 접하면서 평소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디아스포라나 주거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되었고, 주변에 있었으나 미처 알지 못했던 문화 시설과 행사도 여럿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인문이 우리의 삶에 관련한 그 모든 학문의 총체라면, 그것은 결국 무수한 사람들이 만나고 어우러지는 광장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인문은 광장이다. 그리고 우리는 광장에서 연결된다.


○ 공간정보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주소 :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운영 시간 : 10:00 ~ 18:00 (수요일과 토요일은 10:00 ~ 21:00)

관람료 : 통합관람권 4,000원

문의 : 02-3701-9500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주소 : 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운영 시간 : 10:00 ~ 19:00 (수요일과 토요일은 10:00 ~ 21:00, 월요일 휴무)

관람료 : 전시마다 상이

문의 : 02-2022-0600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주소 : 경기 과천시 광명로 313 국립현대미술관

운영 시간 : 10:00 ~ 17:00 (토요일은 10:00 ~ 21:00, 월요일 휴무)

관람료 : 전시마다 상이문의 : 02-2188-6000


○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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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인문쟁이 5기]


생활 속에서 틈틈이 시를 쓰며 지냅니다.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한 곳을 좋아합니다.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멈춰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침묵과 정지. 그런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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