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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만 남은 어떤 공원의 역사

대전 대흥동 테미공원

인문쟁이 노예찬

2020-02-13


테미공원 입구 / 테미근린공원 대흥배수지

▲ 테미공원 입구 ⓒ노예찬 


 

오랜만에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차피 걸어야 하는 곳이므로 둘이 낫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데려온 A는 크게 빨리 보는 걸 좋아했다. 반대로 나는 작지만 오래 보는 걸 좋아했다. 나는 우리 둘에게 적당한 곳으로 이번 장소를 택하기로 했다. 기왕이면 멀리 가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A는 중구 대흥동으로 가자고 했다. 


확실히 대흥동은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장소였다. 으능정이나 대흥동에 관련된 이야기만 담기에도 조금 부족했다. 뭔가 이야기가 있으면서 색다른 장소가 필요했다. 나는 중심가를 벗어나 외곽으로 눈을 돌렸다. 대흥동의 중심인 중앙로역을 넘어 중구청역 근처로 향했다. 사실 중구청역부터는 대흥동 외각에 들어간다. 유동인구도 줄어들고 주거지역으로서 아파트가 서서히 등장하는 지점이다.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보문산의 한 자락인 수도산(水道山)이 자리해 있다. 


일제 강점기 테미공원 위치 표기 지도

▲ 일제 강점기 테미공원 위치(빨강X)를 표기한 지도

당시에는 대산리에 속해 있었고, 대흥리는 이웃 동네였다. 당시 테미공원 인근의 산세가 일본의 후지산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 한자명을 따 '부사산(富士山)'이라 불렀다. 1955년 배수시설이 준설되면서 일반인 출입을 제한했고 '수도산(水道山)'으로 바꿔 불렀다. 

지도에는 현재는 철거된 육군관사 59호(대흥동 452-21)가 보이며, 수도산 서쪽에 과거 저수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료 출처: 국토정보플랫폼)


대흥동의 끝자락인 만큼 수도산은 한적했다. 가족 단위로 조깅을 하거나 어르신들이 산책을 하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이 산에는 테미공원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테미는 백제시대의 ‘테 모양으로 둥글게 축조한 산성’을 아우르는 ‘테미식 산성’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말이다. 백제와 산성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이 조그마한 산에 많은 역사가 숨겨져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테미공원의 북서쪽에는 테미오래라고 명명된 옛 충남도청 관사촌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도 공원과 어떠한 연결지점이 있을 것만 같았다. 


테미공원 종합안내도

▲ 테미공원 종합안내도 ⓒ노예찬 


우선 현재의 테미공원은 전형적인 근린공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산 아래를 계속해서 돌 수 있는 순환로와 산 아래와 정상을 이으며 오르내릴 수 있도록 꾸며 놓은 산책로, 정상 곳곳에서 이 산책로를 연결한 계단이 보였다. 쉼터와 체력단련시설이 마땅히 마련되어 있었고 화장실까지 갖춘 운동하기 좋은 공원이었다. 테미공원의 절정은 봄이다. 봄 하면 떠오르는 꽃인 벚꽃이 이 테미공원의 매력 중 하나이고, 대전 시민들이 이곳을 사랑하는 큰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겨울이기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만, 이곳에 벚꽃을 심은 시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사실에서 그 이전과 현재의 모습이 사뭇 다를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테미공원

▲ 겨울 테미공원 산책로 ⓒ노예찬 


본래 수도산에는 산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산의 이름도 본래는 임금 뒤편에 놓는 병풍이라는 뜻을 담아 어병산(御屛山)으로 불렀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산성은 공주와 부여로 이동할 수 있는 최단거리의 길을 확보한다. 이 산에서 주변의 산성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작전 지휘소의 성격을 지닌 곳이었을 것이다. 우선 보문산성이 배후에 위치하고 있고, 신라와 가까운 계족산성, 관산성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위치는 탁월했다. 실제로 우거진 나무 사이에 자리한 정상을 오르니 주변의 산세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테미공원 풍경 테미공원 풍경

▲ 테미공원 곳곳의 풍경 ⓒ노예찬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충남관청사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도관이 설치’된다. 이때부터 예전의 토성은 파괴되고 현재의 모습으로 조금씩 바뀌게 된다. 이름도 수도관이 있다고 해서 수도산으로 바뀌었고, 점점 이전 토성의 흔적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대신 일대에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지금의 테미공원을 수놓는 벚나무는 파괴와 동시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 상징이기도 하다. 그나마 과거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부분은 경사가 급하고 바위가 많은 남동쪽 사면이다. 산성이 있었다면 이 바위를 기점으로 정상을 감싸 둘렀을 것이다. 물론 그 흔적 역시 확실하지 않지만 테미식 산성의 구조에 따르면 가장 가능성은 높은 지형은 남동쪽 사면 일대다. 혹시 일말의 흔적이라도 있을까 싶어 공원을 몇 바퀴 더 돌아보았지만 잘 다듬어진 산책로 이외에는 특별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테미공원 대흥배수지

▲ 테미공원 정상에 있는 대흥배수지 ⓒ노예찬 


일제가 만들어놓은 수도관은 광복 이후에도 사용되었다. 1955년부터는 음용수 보안시설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했고, 이후 정상에는 대흥배수지가 자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입산이 통제된 구역으로 남았다가, 1995년부터 공원이 조성되면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공원을 한참 돌다가 A와 나는 변화에 대해서 생각했다. 공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테미공원이 변화를 잘 수용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라진 역사에 대한 아쉬움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


테미공원에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들

▲ 테미공원, 잠쉬 쉬어가는 공간 ⓒ노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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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노예찬

2019 [인문쟁이 5기]


오늘도 초심을 잡는다. 나는 왼쪽이 현저하게 부족했지만, 그것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왼손은 조금씩 나의 오른손을 파고들었다. 나의 두 손이 깍지를 낀 것 처럼, 아무런 느낌없이. 처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쓰자.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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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사진 이미지

최**

2020-03-16

안녕하세요 :) 한남대학교 미디어센터 청림교지편집부입니다. 예찬님의 좋은 글들을 보고 감명 받아 저희 교지편집부에서도 ‘인문 360’와 ‘대전 지역의 인문’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를 작성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사를 통해 대전 지역의 사람들이 보다 인문에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저희의 목적입니다. 혹시 기사에 충청 지역 인문쟁이 노예찬님의 인터뷰를 살고자 하는데 괜찮으시다면 아래의 메일로 연락부탁드립니다 :) 따로 연락드릴 수 있는 메일이 개제되어있지 않기에 이렇게 연락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younyang531@naver.com 한남미디어센터 청림교지편집부 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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