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의 유력 잡지들이 잇따라 폐간 소식을 전했다.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종이 잡지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었다. 웹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종이 잡지가 설 곳이 사라진 게 현실. 기실 종이 잡지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잡지들이 하나둘 스러지면서 종이 잡지라는 매체 자체의 존속이 위태로운 단계다.
▲ 종이잡지클럽 입구에 새겨진 카피.
자조적인 문구에서 역설적으로 ‘잡지 키드’의 묘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전용언
그러나 ‘잡지 키드’들은 종이 잡지의 죽음을 방관하지 않았다. 매달 각기 다른 브랜드를 주제로 다루는 <매거진B>, 음식을 테마로 삼은 <매거진F>는 종이 잡지는 낡은 매체라는 항간의 편견을 깨며 종이 잡지를 ‘힙’한 매체로 재탄생시켰다. 창간에 필요한 자본력이 부족한 몇몇 잡지 키드들은 펀딩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약점을 보완했다. 오로지 마실 것에 집중하거나 서울이 아닌 지방에 초점을 두는 등 잡지가 다루는 주제는 이전보다 오히려 다채로워졌다. 종이 잡지의 생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비단 ‘잡지 키드’뿐만이 아니었다. 자기표현의 욕구가 강한 밀레니얼 세대가 최근 특이하거나 사소한 주제를 다룬 잡지를 창간하면서 종이 잡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종이 잡지에 대한 주인장의 애정이 드러나는 종이잡지클럽의 인테리어 ⓒ전용언
합정역 근처 골목 어딘가에 종이 잡지를 총망라해 두었다는 정보를 알음알음 접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곧장 서둘러 길을 나섰고, 닿은 곳은 합정역 인근 종이잡지클럽. 2018년 10월 문을 연 이곳은 그 이름부터 종이 잡지에 대한 애정을 물씬 드러내고 있었다. 소담한 실내 공간 곳곳을 다양한 종이 잡지가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종이 잡지의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 종이잡지클럽의 사용설명서 ⓒ전용언
▲ 카운터 뒤에 놓인 칠판에 쓴 12월의 기획 주제.
‘보기보다 고된 생각보다 할 만한’이라는 문구에서 주인장의 애달픈 심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전용언
지하 계단을 통해 종이잡지클럽에 들어서자 온갖 종류의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은 초면인 고객에게 종이잡지클럽의 매뉴얼을 선뜻 보여주었는데, 입구에 쓴 문구와 대응하는 카피가 퍽 인상적이었다.
‘이런 시대에 종이 잡지를 읽는다는 건 좀 촌스럽긴 하지만 해볼 만한 일이죠’
종이잡지클럽이 제공하는 오프라인 서비스는 일일 이용권과 계간(3개월), 반기(6개월)회원으로 해당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잡지 열람이 가능했다. 매뉴얼을 덮고 나자 이내 종이잡지클럽의 주인장인 김민성 님은 관심 있는 분야를 물어왔다. 수백 권의 잡지를 보유한 만큼 고객에 맞는 잡지를 ‘큐레이션’ 해주려는 요량이었다.
▲ 3시간 넘게 머물렀던 구석의 소파 자리. 알고 보니 이 자리가 명당이었다. ⓒ전용언
▲ 주인장이 권한 잡지들. 흥미가 떨어지는 잡지는 단 한 권도 없었다. ⓒ전용언
구석에 놓인 소파에 자리를 잡은 뒤 5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자리를 비웠던 주인장이 몇 권의 종이 잡지를 들고 돌아왔다. 관심 카테고리가 ‘책’과 ‘음악’이라 말하자 그가 건네준 잡지는 총 7권. 각각의 잡지를 설명하는 주인장의 눈에서 초롱초롱한 안광이 비쳤다.
▲ 발길을 붙잡는 각양각색의 종이 잡지 ⓒ전용언
그가 권한 잡지 중에는 한 호에 한 명의 아티스트를 다루는 <어 피스 오브>가 있었는데, 창간호에서 선우정아를 다루고 있었다. 여러 분야의 작가와 에디터가 합심해 소설과 인터뷰, 에세이 등으로 선우정아를 표현하고 있었다. 모두 아티스트를 향한 진득한 애정을 기반으로 쓰인 글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미 알고 있던 사실까지 심도 깊게 다루고 있으니, 선우정아라는 아티스트는 물론 종이 잡지에 대한 애정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 절로 손이 가는 제목을 가진 독립 잡지 <계간 돼지> ⓒ전용언
그렇게 몇 권을 탐독하고 나서야 겨우 소파에서 엉덩이를 뗐음에도, 재치 넘치는 각양각색의 독립 잡지가 계속해서 발길을 붙잡았다. 결국 또 다른 종이 잡지를 찾아 재차 책장을 둘러볼밖에. 주인장이 예전 인터뷰 때 꺼냈던 표현처럼 참으로 행복한 방황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종이잡지클럽의 대문을 열고 나설 수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였다. 지하 계단을 오르면서 어느새 종이잡지클럽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역시나 종이 잡지를 읽는다는 건 좀 촌스럽긴 하지만 해볼 만한 일이었다.
종이 잡지는 죽지 않는다
잡지의 성지 ‘종이잡지클럽’ 방문기
인문쟁이 전용언
2020-01-23
▲ 합정역 골목을 밝히고 있는 종이잡지클럽의 작은 간판 ⓒ전용언
지난해 국내의 유력 잡지들이 잇따라 폐간 소식을 전했다.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종이 잡지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었다. 웹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종이 잡지가 설 곳이 사라진 게 현실. 기실 종이 잡지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잡지들이 하나둘 스러지면서 종이 잡지라는 매체 자체의 존속이 위태로운 단계다.
▲ 종이잡지클럽 입구에 새겨진 카피.
자조적인 문구에서 역설적으로 ‘잡지 키드’의 묘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전용언
그러나 ‘잡지 키드’들은 종이 잡지의 죽음을 방관하지 않았다. 매달 각기 다른 브랜드를 주제로 다루는 <매거진B>, 음식을 테마로 삼은 <매거진F>는 종이 잡지는 낡은 매체라는 항간의 편견을 깨며 종이 잡지를 ‘힙’한 매체로 재탄생시켰다. 창간에 필요한 자본력이 부족한 몇몇 잡지 키드들은 펀딩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약점을 보완했다. 오로지 마실 것에 집중하거나 서울이 아닌 지방에 초점을 두는 등 잡지가 다루는 주제는 이전보다 오히려 다채로워졌다. 종이 잡지의 생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비단 ‘잡지 키드’뿐만이 아니었다. 자기표현의 욕구가 강한 밀레니얼 세대가 최근 특이하거나 사소한 주제를 다룬 잡지를 창간하면서 종이 잡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종이 잡지에 대한 주인장의 애정이 드러나는 종이잡지클럽의 인테리어 ⓒ전용언
합정역 근처 골목 어딘가에 종이 잡지를 총망라해 두었다는 정보를 알음알음 접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곧장 서둘러 길을 나섰고, 닿은 곳은 합정역 인근 종이잡지클럽. 2018년 10월 문을 연 이곳은 그 이름부터 종이 잡지에 대한 애정을 물씬 드러내고 있었다. 소담한 실내 공간 곳곳을 다양한 종이 잡지가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종이 잡지의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 종이잡지클럽의 사용설명서 ⓒ전용언
▲ 카운터 뒤에 놓인 칠판에 쓴 12월의 기획 주제.
‘보기보다 고된 생각보다 할 만한’이라는 문구에서 주인장의 애달픈 심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전용언
지하 계단을 통해 종이잡지클럽에 들어서자 온갖 종류의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은 초면인 고객에게 종이잡지클럽의 매뉴얼을 선뜻 보여주었는데, 입구에 쓴 문구와 대응하는 카피가 퍽 인상적이었다.
‘이런 시대에 종이 잡지를 읽는다는 건 좀 촌스럽긴 하지만 해볼 만한 일이죠’
종이잡지클럽이 제공하는 오프라인 서비스는 일일 이용권과 계간(3개월), 반기(6개월)회원으로 해당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잡지 열람이 가능했다. 매뉴얼을 덮고 나자 이내 종이잡지클럽의 주인장인 김민성 님은 관심 있는 분야를 물어왔다. 수백 권의 잡지를 보유한 만큼 고객에 맞는 잡지를 ‘큐레이션’ 해주려는 요량이었다.
▲ 3시간 넘게 머물렀던 구석의 소파 자리. 알고 보니 이 자리가 명당이었다. ⓒ전용언
▲ 주인장이 권한 잡지들. 흥미가 떨어지는 잡지는 단 한 권도 없었다. ⓒ전용언
구석에 놓인 소파에 자리를 잡은 뒤 5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자리를 비웠던 주인장이 몇 권의 종이 잡지를 들고 돌아왔다. 관심 카테고리가 ‘책’과 ‘음악’이라 말하자 그가 건네준 잡지는 총 7권. 각각의 잡지를 설명하는 주인장의 눈에서 초롱초롱한 안광이 비쳤다.
▲ 발길을 붙잡는 각양각색의 종이 잡지 ⓒ전용언
그가 권한 잡지 중에는 한 호에 한 명의 아티스트를 다루는 <어 피스 오브>가 있었는데, 창간호에서 선우정아를 다루고 있었다. 여러 분야의 작가와 에디터가 합심해 소설과 인터뷰, 에세이 등으로 선우정아를 표현하고 있었다. 모두 아티스트를 향한 진득한 애정을 기반으로 쓰인 글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미 알고 있던 사실까지 심도 깊게 다루고 있으니, 선우정아라는 아티스트는 물론 종이 잡지에 대한 애정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 절로 손이 가는 제목을 가진 독립 잡지 <계간 돼지> ⓒ전용언
그렇게 몇 권을 탐독하고 나서야 겨우 소파에서 엉덩이를 뗐음에도, 재치 넘치는 각양각색의 독립 잡지가 계속해서 발길을 붙잡았다. 결국 또 다른 종이 잡지를 찾아 재차 책장을 둘러볼밖에. 주인장이 예전 인터뷰 때 꺼냈던 표현처럼 참으로 행복한 방황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종이잡지클럽의 대문을 열고 나설 수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였다. 지하 계단을 오르면서 어느새 종이잡지클럽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역시나 종이 잡지를 읽는다는 건 좀 촌스럽긴 하지만 해볼 만한 일이었다.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멋대로 씁니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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