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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쪽으로, 한 걸음

협력적 주거 공동체 주택, 마읆뜰

인문쟁이 양현정

2019-09-26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다른 무엇보다 타자와의 만남/공존을 통해 자기를 보존하고 확산하는 존재라는 엠마뉘엘 레비나스의 이론이 자기실현의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근대적 실존주의보다 설득력을 갖게 되는 때이다. 

_ 조한혜정, 『선망국의 시간』 242p 중 



마을과 마음이 모이는 집, 마읆뜰



마읆뜰을 짓기 전 공터


완공된 마읆뜰  

▲ 마읆뜰 짓기 전 공터와 완공 이후 그 자리에 우뚝 선 마읆뜰 ⓒ마읆뜰


성서학부모회에서 비롯된 초기 배나무골 와룡배움터는 아이들 방과후 학습을 지도해주던 교육 공동체의 성격이 강했다. 지금은 학교마다 다양한 방과후 수업이 개설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프로그램이 본격화되지 않은 때였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서 출발한 배움터는 현재 주민의 소모임 장소, 마을의 공론장 역할뿐 아니라 ‘동네책방00’과 공간을 공유하며 지역사회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에 교사, 학부모, 자원봉사자로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며,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오래 고민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날 『협동조합으로 집짓기』라는 책을 읽고 ‘10년 뒤 배나무골 상상하기’ 시간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 귀촌 공동체를 꿈꾸게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늘 실천을 향한 목소리였다. 때문에 꿈같던 대화는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한 ‘주말 땅 투어’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땅을 보러 다니던 중, 귀촌 전에 공유주택을 지어 함께 살아보자는 누군가의 제안으로 주거 공동체에 대한 구상에 들어갔다. 집을 지을 땅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함께 집을 짓기로 한 분이 ‘집 지을 만한 땅이 아닌 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일행들은 땅을 답사한 후 그곳이 ‘집 지을 만한 땅’이라 결론을 내렸다. 땅의 주인은 함께 살기로 한 구성원을 위해 땅을 내놓았다. 땅을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땅 문제가 해결된 후 집 짓는 일에 속도가 붙었다. 2017년 12월부터 시작된 공유주택을 향한 이들의 소박한 꿈은 2019년 3월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이 공유주택은 ‘마을과 마음이 모이는 집’이란 의미를 담아 ‘마읆뜰’이라 부른다.  


와룡배움터에 모여 회의하는 마을 주민들

▲ 와룡배움터에서 공사일정에 대해 회의하는 마읆뜰 사람들 ⓒ마읆뜰

 

마읆뜰은 협력적 주거 공동체 주택이다. 협력적 주거 공동체 주택은 획일적 주거 공간을 공유의 개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입주민이 거주하는 면적은 줄이고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을 주택에 포함시킨다. 마읆뜰은 21평에서 29평의 공간을 각각의 가족 생활방식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였으며, 1층과 3층에 공유 공간을 마련하였다. 


공유 공간은 시골의 마을회관 같은 곳이다.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모여 소통하고, 누군가의 흉을 보고, 슬픔을 함께 나누고, 함께 기뻐한다. 괜한 간섭으로 싸움도 종종 일어나곤 했던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 도시의 네모나고 반듯한 주택에 재현된 것이다. 


때문에 마읆뜰 3층의 공유 공간은 ‘삶을 공유’하는 곳이다. 도시 생활자에게 삶을 공유한다는 말은 허공의 울림처럼 먼 곳의 일인 양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천천히, ‘마을과 마음이 모이는 집’이라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 주택의 방향성을 되짚어본다. 그들은 단순히 내 가족과 살기 위해 집을 지은 것이 아니다. 네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집을 지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먼저 삶을 공유해야 하며, 그것은 곧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일이다. 마음이 모여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읆뜰 사람들은 그들이 일군 주거 공동체의 사례가 지역사회 곳곳에 뿌리 내리길 바란다. 


3층의 입주민 공유 공간

▲ 1층에 있는 입주민들의 공유 공간, '놀삶' ⓒ마읆뜰


301호에 거주하는 생태교육 공동체 <에듀컬코이노니아> 대표 김종수 소장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이 공동체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말했다. 소장님을 만나 주거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장소로서의 마읆뜰에 대해 들어보았다. 


마읆뜰은 어떤 곳인가요? 

마읆뜰은 와룡배움터에서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 모여 지은 집입니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심플라이프’를 지향합니다. 내가 살 공간을 좁히면서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죠. 모두 네 가족이 살고 있는데, 각 집마다 구조가 다릅니다. 각자의 취향을 고려해 설계했습니다. 마읆뜰 각각의 집은 그들의 삶을 담아내는 곳입니다. 

 

협력적 주거 공동체 주택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수직으로 뻗은 건물 한 채가 하나의 마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놀랐어요. 마읆뜰도 하나의 마을이라 볼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도시의 특성상 수평으로 넓게 퍼져 있는 형태의 마을은 불가능합니다. 마읆뜰은 관심사가 같은 사람이 모여 만든 네트워크 형태의 마을이라고 보면 됩니다. 대구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편이지만 앞으로 이런 형태의 주거 양식은 많아질 것입니다. 


무엇이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친밀한 공간이 와룡배움터였던 것 같아요. 마읆뜰에도 그런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마읆뜰에는 세 곳의 공유 공간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입주민의 공유 공간으로 3층에 있습니다. 이곳은 각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공유 공간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모여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고 밥을 함께 먹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비공식적 공유 공간인, 옥상입니다. 집을 지을 당시 생태적인 감수성을 가진 집을 짓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옥상에서나마 이런 꿈을 실행해보고 싶었어요. 옥상에는 가족들의 텃밭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1층 ‘놀삶’입니다. 1층 놀삶은 지역사회와 소통을 위해 마을 주민을 만나는 곳입니다. 


놀삶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나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전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증가했어요. 다가올 4차 산업혁명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부모 세대의 교육관은 아직 구시대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미래에 없어지거나 줄어들 직업군을 목표로 아이들을 학원에 보냅니다. 데이터를 통해 일하는 의사, 약사, 변호사, 등의 직업군은 점차 줄어들 것이고 오감을 사용하는 상담사, 복지사 등의 직업군은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놀삶에서는 부모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하며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종이접기, 메이커 해체, 재활용품을 활용한 활동 등을 합니다. 놀면서, 즐기면서 흥미를 가지고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작업을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 놀삶은 메이커스페이스를 지향합니다. 놀삶은 지역민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배움터입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이곳을 시작으로 뚝딱뚝딱 공작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마을 아이들과 김종수 소장

▲ 놀삶에서 프린터 해체 활동 중인 김종수 소장과 마을 아이들 ⓒ마읆뜰

 

놂삼에 모인 부모 강의

▲ 놀삶의 부모 강의, 아이들 때와는 다르게 심각한 분위기다. ⓒ마읆뜰 


마읆뜰 입주민들이 쓴 <우리 함께 살래요?>를 읽어 보았어요. 그들 모두, 함께 살아봄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있는 듯해요. 그런데 왜 굳이 ‘함께’여야 하는가요?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들이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을 잃어버리는 중입니다. 그것은 관계를 통한 소통, 믿음의 가치죠. 


그런 것들을 가져본 적도 없는 듯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이러한 가치는 학습을 통해, 혹은 내 안에 있는 변하지 않은 가치를 향한 회귀본능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가져본 적도 없다고 하는데, 사실은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조한혜정 선생의 ‘자공공’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스스로 돕고(자조), 서로를 도우면서(공조), 공공을 돕는(공조-새로운 공공성을 만들어가는) 함께하는 마을 살이를 통해 돌봄 공간을 회복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파트라는 공간을 버릴 수 없어요.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아파트라는 공간이잖아요. 아파트 안에서 마을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내가 가진 것을 내놓을 수 있는 마음, 삶을 담아내는 방법으로 작은 공동체 문화가 우선입니다. 이를테면 책 공유 같은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관리사무소나 공익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모임을 활성화할 수도 있습니다. 구성원이 가치를 공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힘들면 쉬었다 하면서 ‘마을력’을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점으로 시작된 작은 공동체가 연대하여 선으로 연결되고 면으로 확장됩니다. 현재 대구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에서는 대구에 넓게 퍼져있는 공동체를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마을과 공동체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너와 내가 바로 마을인 것입니다. 자기를 내놓을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응답하라, 마을! 



투자 가능성과 교육 환경, 면적 등이 집을 선택하는 주요 기준이 되어버린 시대. 하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마읆뜰과 같은 공동체를 꿈꾸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줄이고, 따로 또 함께 서로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마읆뜰. 


기억 속에 마을이 존재한다. 하지만 마을에서 자란 둥근 마음들은 자라면서 모나고 울퉁불퉁해졌고, 이제는 까마득하여 잡히지 않는 곳까지 멀리 밀려났다. 마을은 무엇이고, 마음은 또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미래가 될 오래 전 과거를 떠올려본다. 그런데 이상하다. 기억 속 마을이 세트장처럼 조용하다. 왜일까?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숨었을까?  


그리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멀리 있는 이웃의 창에 대고 소리친다. "시은아! 놀자!" 한 번 더 부른다. "시은아! 놀자!" 아무도 시끄럽다고 야단치지 않는다. 다행이다. 마을 쪽으로, 한 걸음 내디딜 준비를 한다. "응답하라, 마을! 꼭꼭 숨은 사람 나와라! 놀자!" 


전통적 가족의 해체는 이미 오래고, 4인 가족의 틀마저 무너지고 있는 지금, 2035년 즈음이면 1~2인 가구의 비중이 전체 인구의 7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마읆뜰 가족은 이상하다. 시대와 역행하여 대가족이 되었다. 물론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아니다. 그러나 어쩐지 우리 사회 곳곳에 정착하여 범위를 넓혀갈 것만 같은, 지금 여기, 꼭 필요한 가족인 듯하다. 




○ 사진 제공 ⓒ마읆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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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양현정
인문쟁이 양현정

2019 [인문쟁이 5기]


글로 스스로를 세우고 위로 받았듯 내 글이 누군가를 세우고 위로해 줄 수 있기 바란다 그들의 곁에 서서 바람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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