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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성북동 끝자락, 옛돌 머물다

우리옛돌박물관

2019.07.09


비가 그쳤다. 정원 가득한 옛 돌을 예쁘게 담고자 간절했던 햇살이 고개를 내민다. 신나게 뛰어나가 동글동글한 옛 얼굴들을 사진기에 담았다. 이 빠진 배시시한 웃음, 코가 잘린 실루엣, 품에 안긴 아이, 꽃을 든 남자, 지적인 면이 돋보이는 이... 욕심을 내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우리옛돌박물관

▲ 우리옛돌박물관 전경(서울 성북구 대사관로 13길 66) ⓒ김세희 



일본에서 돌아온 우리 돌사람


 

지난 5월 한 뭉클한 기사에 눈길이 멈췄다. 한 일본인이 경매에서 낙찰 받은 석조 유물을 한국에 기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어머니는 생전에 '무인석(武人石, 능 앞에 세우는 무관의 형상으로 만든 돌)은 조선의 것으로 소중히 다뤄야 하고, 절대로 팔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 유지를 받들어 낙찰 받은 무인석을 우리옛돌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알고 찾았기에, 박물관에 도착해서 마주한 무인석과 석등, 비석받침 등은 남달리 보였다. 


 

▲ 일본인 오자와 데루유키가 우리옛돌박물관에 기증한 석조 유물 ⓒ김세희


장군석은 봉분 앞에서 능묘를 지키고자 문인석(文人石, 문관 형상으로 만들어진 돌), 석수(石獸, 돌로 짐승 모양을 본떠 만든 조각)와 함께한다. 홀로 있지 않고 늘 쌍을 이뤄 서 있다. 투구와 갑옷을 입고 칼도 쥐고 있다. 칼자루와 양어깨에는 도깨비 문양이 숨어있는데, 전장에 나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무인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요사하고 불온한 기운을 쫓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오싹하다. 단단하고 견고한 화강암을 이토록 절묘하게 다듬는 석공의 장인 정신에 매료되지 않을 이가 있을까.


 

▲ 일본 각지에 흩어졌던 문인석이 한 자리에, 1층 ‘환수유물관’ ⓒ김세희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애달픈 운명을 감내했던 문인석은 ‘환수유물관’에 모였다. 밀반출되거나 헐값에 팔려나간 역사 속의 어두운 시간 때문일까. 모두가 짝을 이루었으면 좋았겠지만, 짝 잃은 문인석이 더 많이 보인다. 문인석 사이를 걸을 때 한이 서린 영혼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관모를 지탱하는 관복의 유려한 흐름.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쥐던 ‘홀’은 자연스럽게 석상 전체의 중심을 잡으며 안정감을 더한다. 



알면 보이는 옛 돌



2층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수많은 동자석이 모여 있다. 도교에선 신선의 곁에서 시중들고, 불교에선 부처를 모시며, 유교에선 무덤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아이를 동자(童子)라 불렀다. 지역에 따라 능묘를 지키고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도 여겼다. 모양새는 작고 아담하지만, 사악함을 몰아내고 길운을 불러들인다. 능력이 출중하다. 동자석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 걸쳐 약 100여 년 정도 지속되고 사라진 문화이기에, 최근 더욱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간혹 코가 없는 동자석을 목격할 수 있는데, 그 코를 갈아 먹으면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미신 때문이라고 한다. 


 

▲ 도교, 불교, 유교, 무속신앙을 넘나드는 2층 동자관 ⓒ김세희 


성인이 아니기에 쌍상투(보통 상투는 하나만 틀지만 시대에 따라서 정수리 좌우에 두 개를 틀었다)를 틀고, 천의(天衣, 보살이나 천인이 입는 얇은 옷)를 몸에 감싼 채 지물(持物, 부처나 보살, 천왕 등이 그들의 권능과 자비를 드러내기 위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들고 있는 용모가 보통이다. 틀을 벗어난 댕기머리 스타일도 시선을 끈다. 지물도 가지각색이다. 복을 가져다주는 밥주걱, 장수를 의미하는 거북이, 좋은 세계로 인도하는 꽃, 길을 살펴주는 지팡이 등이 있는데, 대개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옆에는 ‘벅수’가 자리하고 있다. 벅수는 ‘장승’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주로 동구 밖에 서서 마을의 액운을 막는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 대표 성물이다. 다만 석조 벅수라 나무로 만든 일반적인 장승과는 재질부터가 다르다. 오똑한 코가 인상적이다. 벅수는 마을 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제작했다. 재질을 결정하고 이동하고 설치하는 일 등 마을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 마을의 구전 설화와 민중 정서가 스민 2층 벅수관 ⓒ김세희 

 

 

▲ 나무 장승과 같은 역할을 했던 신령한 벅수 ⓒ김세희 

 

 

옛 돌과 숨바꼭질 하듯



박물관 1층부터 시작되는 무병장수의 길. 행운이 깃든 공기를 탐하며 천천히 오른다. 제법 눈에 익은 석물들이 나타나자 아는 사람 만난 것처럼 즐겁다. 누군가는 문인이나 무인에게, 어떤 이는 벅수와 동자에게 희망과 꿈을 속삭일 우리만의 세계. 어느새 탁 트인 성북동 전망이 반긴다. 서울이 발 아래 펼쳐진다. 피리를 든 동자석 앞에서,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게 한다는 만파식적의 설화를 떠올리며 슬쩍 소망을 빌어본다.


 

▲ 무병장수의 길 끝에서 피리를 부는 동자석 ⓒ김세희


자연 속에서 옛 돌은 더욱 생기가 넘친다. 우연히 마주치는 옛 돌을 술래삼아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더운 여름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원기가 절로 회복되는 기분이다. ‘오래 살고 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편안하다’는 뜻을 담은 수복강녕(壽福康寧)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 거문고, 비파, 장구, 태평소, 해금 등이 귓가를 간질이는 동자 숲속 음악회 ⓒ김세희

 

꽃과 童(아이)를 새긴 벅수

▲ 마을 공동체과 개인의 수복강녕을 위한 벅수 ⓒ김세희


○ 공간 정보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대사관로 13길 66(성북동)

전화번호 : 02-986-1001

운영시간 : 10:00 ~ 18:00(하절기) / 10:00 ~ 17:00(동절기) / 휴관일 법정 공휴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 : 성인 7,000원 청소년 5,000원 어린이(3세-초등) 3,000 멤버십 연회비 10,000원(1년 전시 무료관람, 박물관 정기 행사초대 및 소식 문자 서비스)


○ 관련 링크

홈페이지 : http://www.koreanstonemuseum.com/


○ 사진 촬영_김세희

장소정보
서울특별시 성북구 대사관로13길 66 우리옛돌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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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인문쟁이 김세희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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