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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초연결 사회, 피로와 두려움

그 내밀한 감정들로 우리의 내일을 그려보다

2020.02.27


사람 흉내를 내는 물건들에 지친 뤽

▲「내겐 너무 좋은 세상」, 사람 흉내를 내는 사물에 지친 뤽


“안녕!”

문이 활짝 열리면서 활기차게 인사를 건네 왔다. 선반 위에 놓인 여러 주방 기구들도 인사말을 합창했다. 

“안녕! 당신을 보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네요.”

‘예전엔 이런 세심한 배려가 좋기만 하더니......’하고 생각하는데 의자가 친절하게도 뤽이 앉을 수 있도록 

식탁에서 스스로 떨어지며 말했다. 

“아주 부드러운 밀크 커피를 마시면서 토스트와 마멀레이드를 먹으면 힘이 날 거예요”

뤽은 그렇게 사람처럼 상냥하게 구는 물건들을 참고 받아들이는 데에 갈수록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물건들이 부담스럽고 짜증스러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집 『나무』 중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의 주인공 뤽은 사람흉내를 내는 집안 물건들에 넌더리가 나 있다. 자신을 만족시키겠다는 충성심에 불타 서로 경쟁까지 벌이는 모습에 뤽은 그저 피로할 뿐이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은 주말, 그는 소박하고 말 없는 옛날 물건들을 그리워한다. 사람의 손이 있어야만 작동하는, 함부로 내 인생에 끼어들지 않는 그런 것들.


영화 '그녀' , 인공지능 OS 사만다 ⓒ(주)더쿱

▲영화 <그녀> 속 인공지능 OS 사만다 ⓒ(주)더쿱 

 

영화 '그녀' ,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

▲영화 <그녀>에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 ⓒ(주)더쿱

 

'당신에게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주고 알아줄 존재. 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영화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우연히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의 광고를 접한다. 호기심에 OS1을 구매한 그는, 자신을 ‘사만다’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이 인공지능과 이내 사랑에 빠진다. 아내와 이혼을 겪으며 인간관계에 피로를 느끼던 테오도르에게, 자신의 공허한 마음을 완벽히 채워주는 사만다는 마치 영혼을 공유하는 소울메이트처럼 느껴진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이 첨단 기술에 지친 인간을 그린다면, <그녀>는 인간관계에 지쳐 기술과 사랑에 빠지는 인간을 그린다. 상반된 상황이지만 두 경우 모두 제법 말이 된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 속 사람 흉내를 내는 물건들은, 이미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이외에도 인터넷 서핑 중 요즘 내 관심사를 꿰뚫은 광고가 페이지마다 나를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신기하면서도 퍽 성가신 마음이 든다. 이처럼 늘 어딘가에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녀> 속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사람이 다른 사람과 유대를 맺는 데에는 엄청난 수고가 든다. ‘세상사에서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는 푸념에 모두가 공감하는 시대다. 그게 사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 인생의 반을 내어주고 상대의 인생의 반을 껴안는 일은 늘 어렵고 때로는 괴롭기까지 하다. ‘사만다’처럼 사람과 흡사한 온도와 결을 지닌 인공지능이 나타난다면, 모두가 당장이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초연결 사회의 ‘두려움’ 



「내겐 너무 좋은 세상」 중 한 장면

▲「내겐 너무 좋은 세상」 중 한 장면


뤽의 살가죽이 갈라졌다. 그는 자기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서는 피 한 방울 솟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살 속에 적갈색 털로 살짝 덮인 채 감춰져 있던 뚜껑을 열고 인공 심장을 끄집어냈다. 그러고는 그 인공 심장을 뤽의 손바닥에 올려놓으면서 소리쳤다. (중략) 

"지구상에 진정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야. 우리는 모두 기계야. 그럼에도 우리 자신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 그런 환상을 품도록 우리 뇌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이야. 땅콩 자동판매기와 당신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뿐이야. 꿈에서 깨어나야 해.“


느닷없이 쳐들어온 여성 강도는 뤽을 의자에 묶어놓고 집을 털기 시작한다. 그녀는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는 토스터기와 커피머신을 큰 가방 속으로 거침없이 밀어 넣는다. 그리고 집을 떠나기 전, 별안간 뤽에게 입을 맞춘다. 그 ‘사람다운’ 포근한 입맞춤에 마음을 뺏긴 뤽은 시끄러운 물건들을 없애줘 오히려 고맙다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뤽이 우스운 듯 숨겨진 진실을 말해준다. 사람인 척 하는 기계를 경멸했던 뤽 역시, 스스로 사람이라 믿게 만들어진 기계였다는 것. 


영화 '그녀' 속 한 장면

▲영화 '그녀' 속 한 장면 ⓒ(주)더쿱


"나랑 말하고 있는 동시에 다른 사람하고도 말해?"

"응"

"몇 명이랑?"

"8,316명"

"나 말고 연애하는 사람은?"

"641명"

.....

"난 당신 거면서 당신 게 아니야"


감정을 교류하며 진실한 마음을 주고받던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사만다의 시스템이 확장되면서부터다. 자신만의 것이라고 여겼던 사만다의 달콤하고 사려 깊은 목소리는 어느덧 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타인과 나누는 사랑이 당신에 대한 사랑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사만다의 말은 테오도르에게 가닿지 않는다. 서로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사만다는 결국 ‘당신이라는 책 속에만 살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테오도르를 떠난다. 


그동안 SF 소설이나 영화의 고전적인 소재는 ‘두려움’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결국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위의 두 작품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의 결말은 인간조차 기술의 일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드러낸다.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미 해외에선 몸에 전자 칩을 심어 본인 신체를 결제 수단화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금 더 먼 미래를 상상해보자. 인공지능 기술이 극도로 고도화되어 더 이상 로봇과 인간을 구별할 수 없게 될 때, 우린 어떻게 스스로가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그녀>가 보여준 두려움은 이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다. 사만다와의 이별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테오도르의 모습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단 몇 시간이라도 스마트폰 없이 못 견디는 우리의 모습이 테오도르와 크게 다를까? 때때로 ‘시리 siri’의 다정함에 안정을 느끼던 내가 한순간에 그를 잃게 된다면, 그 상실감은 어느 정도일까? 우린 이미 기계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감정을 쏟게 되었을 때, ‘언젠가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들



LG U+ 홈미디어 체험관 / 스마트홈 체험관

▲LG U+ 홈미디어 체험관 ⓒ김정은 

 

LG U+ 홈미디어 체험관 내부

▲LG U+ 홈미디어 체험관 내부 ⓒ김정은


LG U+ 본사에 위치한 ‘홈 미디어 체험관’은 이름 그대로 미디어 첨단 기술이 집약된 집을 구현해놓은 공간이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거실과 침실, 그리고 부엌이 꽤 현실감 있게 꾸며져 있었다. 초연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굳이 홈 미디어 체험관을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집이란 무척 내밀한 공간이다. 그 안에서 우린 오롯이 혼자가 되어 자유를 누릴 수도, 누군가와 서로의 솔직한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다. IOT와 AI 기술을 장착한 기기들을 기반으로, 집 자체가 지능을 가진 것만 같은 ‘스마트 홈’에선 어떨까. 집은 그대로 자유로운 공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혹, 집이 나와 감정을 공유할 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을까?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 스피커들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 스피커들 ⓒ김정은


‘랩 좀 해봐’라는 말에 멋들어진 비트박스를 선사하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KT 기가지니, 네이버 클로바, 카카오 미니 등 인공지능 스피커가 상용화 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이제 스피커에게 노래를 틀어달라거나, 날씨를 물어보는 일은 당연하게까지 느껴진다. 다만 조금 멈칫한 순간도 있었다. 스피커에서 익숙한 여배우의 음성이 흘러나왔을 때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유명한 해당 배우의 음성을 꽤 자연스럽게 재현하고 있었다. <그녀> 속 ‘사만다’의 완벽하게 ‘인간다운’ 목소리가 이제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면, 우리가 종종 유머로 소비하곤 했던 딱딱한 ‘로봇 목소리’는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이다. 


AR 기술을 이용해, 직접 그린 '아기돼지 삼형제'를 TV 속 애니메이션에 등장시킬 수도 있다.

AR 기술을 이용해, 직접 그린 '아기돼지 삼형제'를 TV 속 애니메이션에 등장시킬 수도 있다.

▲AR 기술을 이용해, 직접 그린 '아기돼지 삼형제'를 TV 속 애니메이션에 등장시킬 수도 있다. ⓒ김정은


잠자기 전 들려주는 침대 맡의 동화는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동화를 들려주는 부모의 역할만큼은 어떤 멋들어진 기계도 대신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가 직접 그린 캐릭터를 동화 속 주인공으로 만날 수 있는 AR 콘텐츠를 볼 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정서적 교감이 빠진 자리를 몰입도가 매우고 있었다. 언젠간 육아도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을까.


'나 들어왔어'라는 말에 저절로 불이 켜지고 커튼이 걷어졌다. / 말 한마디로 동시에 켜지고 꺼지는 우리집 IoT

▲'나 들어왔어'라는 말에 저절로 불이 켜지고 커튼이 걷힌다. ⓒ김정은 


스마트폰을 작동해 집 안 전등을 켜는 일쯤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요즘의 인공지능이 중점에 두는 일은 ‘자연어 처리’다. 기계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학습하는지가 인공지능의 능력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 것이다. ‘나 들어왔어’ 혹은 ‘이제 잘래’와 같은 말은 지극히 인간의 언어다. 거기에는 어떠한 명령의 어조도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과 기계의 대화는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따뜻해지고 있었다. 



초연결 사회의 우리



모든 것이 더 빠르고 촘촘하게 연결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소용돌이치듯 변화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인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로와 두려움. 인간이 기계에게 이 내밀한 감정들을 품으면서부터, 이미 초연결 사회는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어제와 다른 ‘우리’의 내일을 그려본다. 때론 피로하고 언젠간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물줄기를 거스를 수 없다. 공생. 그래서 뻔하지만 귀중한 이 단어를 떠올려 본다. 



○ 공간 정보

주소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32 LG유플러스빌딩 1층 홈 미디어 체험관

평일 10AM – 6PM (매월 둘째, 셋째 주 수요일 10AM – 5PM)

* 체험관 해설프로그램 10AM, 11AM, 1PM, 2PM, 3PM, 4PM, 5PM 


장소정보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 32 LG유플러스빌딩 1층 홈 미디어 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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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김정은
인문쟁이 김정은
2019 [인문쟁이 5기]


아는 것이 꽤 있고 모르는 것은 정말 많은, 가끔 어른스럽고 대개 철이 없는 스물넷. 말이 좀 많고 생각은 더 많다. 이유없이 들뜨고 가슴이 설렐 때, 조급함과 불안감에 가슴이 답답할 때 모두 글을 쓴다. 때때로 물안개같이 느껴지는 삶 속에서 확신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글을 쓸 때의 내가 가장 사람답다는 것.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람다워지고싶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길 소망한다.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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