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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로컬 푸드에 대해 생각하는 당신은 ‘호모 커넥서스’

서로에게 기대면서 서로에게 평등한, 로컬 푸드

2020.02.18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른 것은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은 것은 백두산. …빨강에서 파생된 이미지를 쫓아 단어를 넘고 넘어 도착한 곳은 저 멀리 북쪽에 있는 백두산. 빨강과 백두산은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이 말놀이노래의 단어들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어떤 연관성도 없지만 함께 있으면 분명히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연결성으로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방학 중이라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을 듯했던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 대여섯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도, 정해진 포지션도 없이 공을 쫓아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래전에 장이 섰던 운동장의 모습을 가늠해보았다. 오늘의 이야기는 운동장에서 시작되어 우리로 끝나는 이야기다. 운동장과 우리는 빨강과 백두산처럼 연결되어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양현정



로컬 푸드로 공동체를 말하는 협동조합 농부장터



농부장터 간판 / 협동조합 농부장터 로컬푸드직매장

▲ 농부장터 간판 ⓒ양현정


십여 년 전 당시, 아이들을 둔 마을의 부모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학교 운영위 등에 참석하여 변화를 모색하였다. 때는 2008년. 학교운영위원회 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마을사람들은 친환경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던 학교장의 도움을 받아 학교 운동장에서 농민 장터를 열었다. 인근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것에 고무된 마을사람들은 상설매장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30여 명이 돈을 모아 2009년 5월 북구 동천동에 친환경 직거래상설매장을 오픈했고, 2016년 로컬 푸드 직매장 설립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북구 태전동으로 이전하여 ‘농부장터’라는 간판을 달았다. 


농부장터는 생산자, 소비자, 직원이 조합원으로 가입된 다중이해관계 조합으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로컬 푸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사업이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모인 협력집단을 일컫는다. 농부장터 김기수 이사장은 협동조합은 ‘새로운 삶의 여건’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생산을 배려하는 소비, 소비를 생각하는 생산’이라는 농부장터의 슬로건에는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와, 적정한 가격을 원하는 생산자의 요구가 만나 상생하고자 하는 농부장터의 의지가 담겨 있다. 


로컬 푸드를 찾는 고객에게 매장에 온 이유를 물으면 대개 비교적 싼 가격의 안전한 먹거리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유통단계를 단순화시켜 소량 취급하는 로컬 푸드 직매장이 다 싸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대량으로 유통되는 매장에 비해 더 비싼 것도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안전한 먹거리와 적정한 대가가 유지될 때 로컬 푸드는 지속될 수 있다. 서로에 기대는 관계지만 서로가 평등한 관계, 로컬 푸드의 핵심이다. 또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 푸드는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에 로컬 푸드 농부장터는 먹거리로 도시와 농촌이 함께하는 생명공동체를 꿈꾼다.



농민의 농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는 오로지 소비자



매장 전경

▲ 매장 전경 ⓒ양현정


매장은 일반 유기농 매장보다 더 많은 종류의 식자재를 취급하고 있다. 곳곳을 살피는 동안 물건을 진열하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포장된 물건을 매만지는 손의 움직임이 어쩐지 다정하여 곁눈질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랄까, 밭에서 막 수확한 오이나 고추, 호박을 다듬으며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의 표정이다.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엄마 같은 보살핌의 기운을 느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미색의 목장갑을 끼고 다소 경직된 얼굴로 물건을 진열하는 타 마트의 직원과는 다른 느낌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농부장터 매장에 물건을 진열하는 사람은 그 물건을 생산한 농민이다. 농민은 수확한 물건을 손질하고 포장하여 직접 책정한 가격표를 붙이는 일까지 모두 직접 한다. 매장에 물건을 진열하던 아주머니의 다정한 손은 농부장터 방문 첫째 날 본 풍경이다. 


농부장터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네 번째 오니 그동안 낯설게 느껴졌던 매장의 분위기가 익숙해지고 직원과 고객들의 말들이 도처에서 훈훈하게 들려온다. 직원들의 말투는 나긋나긋, 그러나 기계적인 친절과는 거리가 멀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아주머니가 직원에게 다가가 애교를 잔뜩 담은 목소리로 “언니 나 물마시고 싶어.”라고 말한다. 직원은 아주머니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다 몸을 돌려 “좀 미지근하게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빨간색 바구니를 들고 장도 볼 겸 매장을 느리게 걸어 다녀본다. 염탐하려는 마음은 없었으나 공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을 내주어야 하는 법. 


호박고추

▲ 품목은 같지만 생산자가 다른 늙은 호박과 고추 ⓒ양현정 


진열대 아래 움푹 들어간 공간에 늙은 호박이 한 네 개쯤 있다. 늙은 호박에 살짝 노크를 해 보았다. 통통. 외가의 마루에 층층이 쌓여있던 늙은 호박들이 생각났다. 그러다 순간, 어떤 비밀을 알아낸 듯이 살짝 놀라고 말았다. 네 개 정도밖에 안 되는 늙은 호박의 생산자가 세 명이나 된다. 아, 로컬 푸드가 이런 것이구나. 깔끔하게 잘 정돈된 매장에 작은 텃밭에서 수확한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들을 다듬어 깜깜한 새벽 서둘러 버스를 타고 왔을 장터의 손마디 굽은 어른들의 냄새가 났다. 농부장터는 한 명의 생산자, 한 곳의 농가에서 획일적으로 물건을 납품받지 않는다. 매장에 진열된 채소, 두부, 달걀, 말린 나물 등의 품목에도 여러 생산자의 이름 석 자가 프린트되어 붙어있다. 농부장터의 생산자 조합원은 2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수확한 물건에 스스로 가격을 결정하여 태그를 붙이는 농민의 마음은 시장에서 가격을 책정 받는 농민의 마음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장터 생산자 조합원 김경호 씨

▲ 농부장터 생산자 조합원 김경호 씨 ⓒ농부장터 

 

농부장터의 생산자조합원으로 잎채소를 납품하고 있는 김경호 씨는 많은 양을 생산해 도매상에게 넘기는 식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농부장터와 연을 맺은 후로는 관행 농법을 줄이고 직접 액비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 식으로 농법을 바꿨다고 한다. 농부장터와는 무관한 일이지만 군위의 매곡리 농가는 매해 숲나들이 연구회 소속 어린이집과 쌀 재배 계약을 맺어 쌀을 공급하는데, 어린이집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 그때그때 도정하여 공급한다. 매곡리 농가의 농민들도 직접 퇴비를 만들어 땅을 살핀다. 


“농민의 농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소비자입니다.”라고 힘주어 나지막하게 말하던 김기수 이사장의 말은 소비자의 적극적인 요구가 늘어날수록 친환경 농법을 적용하는 농민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식당 그린테라스 풍경

▲ 식당 그린테라스 풍경 ⓒ양현정

 

소모임 풍경

▲ 소모임 풍경 ⓒ농부장터


농부장터는 먹거리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매장 2층으로 올라가면 로컬 푸드로 요리하여 운영하는 식당, ‘그린테라스’가 있다. 그린테라스는 식당, 카페 등으로 주로 사용하지만 원예교실, 요리교실, 통기타교실 등의 조합원 및 주민 소모임 공간으로도 활용한다. 이외에도 농부장터는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도농상생프로그램으로 체험학습을 준비하기도 한다. 



저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좋은 땅을 물려주기 위해 로컬 푸드를 이용합니다



농부장터는 대구 경북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지역에 공급하는 플랫폼 역할을 구현하기 위해 대구 디지털산업진흥원 내 구내식당을 운영 중이다. 비교적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구내식당에서 로컬 푸드에 대해 알리기 위해 경품을 건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배식하고 남은 잔반을 팔아 보기도 했다. 처음엔 누군가 집게로 건드린 잔반을 누가 사려고 하겠는가 반신반의했지만 의외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먹거리 인식 변화를 위한 이벤트를 통해 구내식당의 매출이 늘어나고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감소했다고 한다.


김기수 이사장을 비롯 농부장터 조합원들은 로컬 푸드 직매장을 설립할 당시부터 누구나가 접근 가능한 먹거리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리고 매장을 열었다. 김기수 이사장은 60이 넘은 아주머니로부터 “저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좋은 땅을 물려주기 위해 로컬 푸드를 이용합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동이 참 오래 갔다고 했다. 오는 3월 대구 북구 강북(칠곡)에서 경북지역 생산자들이 참여하는 로컬푸드 농민장터가 크게 열릴 예정인데 농부장터는 협력단체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김기수 이사장은 대구 경북 간 로컬푸드 농민장터는 장사꾼이 대거 모여들어 물건을 파는 장터에서 벗어나 먹거리를 주축으로 마을의 자원들과 함께 펼쳐가는 농민장터 축제가 될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한때는 채소 파는 아저씨라 불리는 것이 더 익숙했다는 김기수 이사장에게 그가 그리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떤지 물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마을협동조합을 생각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열정만으로 뭉친 이들이 모여 공동체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중장년층이 되었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공동체의 힘이 많이 빠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생애주기별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그러한 것들을 준비하지 못 했다. 우선은 마을에 숨겨진 활동가들을 찾아야하는 숙제가 있다. 그리고 공동체들이 가치에만 몰입하지 않고 사업적인 모드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 연대할 때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가치와 의지가 분명한 사람들이 모여 일을 도모하는 게 맞는지, 다수가 접근하기 쉬운 관심사로부터 시작하여 일을 도모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농부장터는 협동조합으로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관심인 먹거리에서 출발해 지역사회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는 매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방식을 택했다. 하고자 하는 일의 지향점은 현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농업은 다른 산업과 다른 고유의 성질이 있다. 우리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 목숨의 숨을 관장하는 것이 농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 자급률이 쌀을 제외하면 10% 미만이다. 쌀을 포함해도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수입에 의존하다가는 안정적인 수급 보장이 어렵다고 한다. <사랑할까 먹을까>의 저자 황윤은 동물권에서 비롯된 채식을 이야기하며 “사실 저는 채식을 하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가 위험합니다. 우리는 하나로 엮여 있습니다.”고 말한다.


매일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그래서 로컬푸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땅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고 우리는 살리는 일이다. 우리는 ‘호모 커넥서스’(Homo Connexus)다. 얕은 천의 물도 얼지 않고 눈도 오지 않은 겨울이 좋기만 할까. 아빠와 함께 만든 썰매를 타지 못 해 겨우내 썰매를 바라보며 추위를 잃어버리는 아이의 마음을 간절히 생각해야한다.


빨강과 백두산 운동장과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하나로 엮여있다. 




○공간 정보

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로 137 

장소정보
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로 137 농부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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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양현정
인문쟁이 양현정
2019 [인문쟁이 5기]


글로 스스로를 세우고 위로 받았듯 내 글이 누군가를 세우고 위로해 줄 수 있기 바란다 그들의 곁에 서서 바람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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