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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프로젝트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새롭게 한다, 청계천박물관

인문쟁이 김세희

2020-02-06


오늘도 사람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익숙한 듯 청계천에 놓인 다리를 바쁘게 오간다. 청계천 풍경이 일상인 그들 사이에서 소설가 구보는 두통을 느꼈다. 일 있는 것처럼 걸음을 꾸몄지만, 갈 곳 없던 고독은 겨울 바람과 같았다. ‘참말 좋은 소설’을 쓰는 일이 행복이라는 걸 깨달은 탓일까. <천변풍경>의 이발소 소년 재봉이로 나타나 1930년대 청계천 삶을 남겼다. 


청계천 배경의 구보(丘甫) 박태원의 작품,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풍경>

▲ 청계천 배경의 구보(丘甫) 박태원의 작품,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풍경> ⓒ김세희



예나 지금이나 만남의 장소



아무래도 최고의 선(善)은 물인가보다.1 피가 우리 몸 곳곳을 흐르듯, 대지의 물결은 온 세상을 연결하니 말이다. 강과 바다로 나가는 작은 하천도 지역을 연결한다. 청계천을 걷다보면 물은 종로구에서 발원해 어느새 성동구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서로 다른 마을 사람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보듬는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가로지르던 때부터, 일제강점기 빨래터와 광복 이후 판자촌에 이르기까지. 청계천은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며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장소였다. 물의 본성이 이렇듯 많은 것들을 잇고 모은다.


1. 상선약수(上善若水) : 《도덕경(道德經)》 제8장에 나오는 말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는 뜻이다.

 

1950,60년대 청계천변의 판자촌

▲ 1960년대 청계천변의 판자촌(이미지 출처 : 서울역사아카이브) 

 

 

복원 후 모습을 담은 청계천박물관 4존 영상물

▲ 복원 후 모습을 담은 청계천박물관 4존 영상물 ⓒ김세희


‘청계천박물관’은 현재를 사는 이에게는 그저 상상일 뿐인 과거의 흔적으로 우리를 이끈다. 청계천의 물길을 닮은 외관이 인상적인데, 관람은 독특하게도 4층에서 시작하게 된다. 이곳 박물관에서 소개하는 청계천의 역사는 마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물처럼 전개된다. 조선 시대 청계천의 옛 이름은 ‘개천(開川)’이었다. 인공하천인 지금과는 다르게, 백운동천2 발원지에서 중랑천과 만난 후 한강으로 합류했다. 청계천 유역별로 한양 옛 도성의 7개의 촌(村)3이 형성되었는데, 입지에 따라 주민 구성과 지역 문화가 달랐다고 한다. 상징적인 거점이었지만, 범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물길을 다스리는 게 관건이었다. 태종 때부터 공사가 진행됐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도성 인구가 늘어나면서 지속적인 준설 작업이 이루어졌다.


2. 백운동천(白雲洞川) :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청계천 최상류의 이름으로, 창의문 기슭의 백운동 계곡에서 발원한 물길이며 백운동을 감싸고 돌았다. 조선시대 도성 안 5대 경승지의 하나로 손꼽혔다.


3. 조선시대 청계천 유역의 7개의 촌(村) : 청계천 상류부터 상촌, 중촌, 하촌으로 나누어졌고, 낙산 서쪽 기슭을 동촌, 서대문과 서소문 사이를 서촌, 목멱산 북쪽 기슭을 남촌, 백악산 남쪽 기슭을 북촌이라 했다.



박물관 외관. 청계천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눈에 보인다.

▲ 박물관 외관. 청계천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눈에 보인다. ⓒ김세희


일제강점기에 하천 조사를 통해 ‘청계천(淸溪川)’이란 이름을 얻는데, ‘맑은 계곡 물’이라는 이름과 달리 수질은 암울했다. 생활하수뿐 아니라, 근대화 시설인 방직, 유기, 고무, 염색 공장들이 인근에 들어서면서 산업폐수까지 흘러들었다. 청계천 사람들의 전염병 발병률은 서울 평균보다 높았고,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은 제방도로에서는 추락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명절에 성행하던 천변의 민속놀이도 당시를 기점으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6, 70년대 청계천 일대 판잣집 터전을 살펴볼 수 있는 외부 테마존

▲ 6, 70년대 청계천 일대 판잣집 터전을 살펴볼 수 있는 외부 테마존 ⓒ김세희


또한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시대까지 ‘이촌향도’의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었다. 이에 따라, 청계천에도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인구는 폭증하는데, 도시기반시설은 부족했고, 하천 바닥에 세운 가옥 기둥 하나도 튼튼한 것이 없었다. 하루 사이에 판잣집 몇 채가 사라지면, 다음날 또 몇 채가 들어섰다고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판자촌 사람들은 노점 등에서 미군부대에서 반출된 물품을 사고팔거나 재활용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평화시장, 공구 기계상가 등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청계천 물길이 도로가 되는 과정을 다룬 2존 공간

▲ 청계천 물길이 도로가 되는 과정을 다룬 2존 공간 ⓒ김세희


위생, 교통, 범죄 등 슬럼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1958년, 청계천에서 대규모 토목공사가 시작됐다. 1960년대부터 천변 판잣집은 점차 사라졌지만, 서울 변두리 산비탈 ‘달동네’가 늘어날 뿐이었다. 1977년, 청계천은 땅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이젠 ‘청계로(淸溪路)’의 세상이 펼쳐졌다. 청계천 주변으로는 도로를 따라 현대적인 상가 건물이 동서로 길게 뻗어 나갔다. 그야말로, ‘청계고가도로’의 시대였고, 세운상가와 패션 의류를 중심으로 일대는 당시 ‘한국 산업 지도’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 3존 전시

▲ 청계천 복원 사업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 3존 전시 ⓒ김세희


1990년대에 접어들어 청계천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의 노후화가 진행됨에 따라, 시설의 전면적인 보수가 필요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차라리 철거하고 청계천을 되살리자는 쟁점이 있었다. 2년 3개월이란 짧은 공사 기간을 거쳐, 2005년에 청계천 복원을 완료했다. 이후 청계천은 외국인 관광객의 명소와 도심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지천의 자연수가 아닌, 한강에서 끌어온 물로 유지되는 인공하천이 가진 한계와 자연 생태가 제대로 복원되었는지에 관한 의문은 재고해야 할 부분으로 남아있다. 언제나 유량을 일정하게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유지보수 비용도 많이 든다. 또한 당시 청계천 일대 수많은 소상공인들의 이주 및 보상 작업도 여전히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돌아오지 못한 청계천 유산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2개의 다리가 드러나고 이어졌다. 그중 현재 청계천에 있는 ‘수표교(水標橋)’는 모작이며, 실제 다리는 장충단공원(서울 중구 장충동 2가)에 있다. 조선 한양의 청계천에 놓인 다리 중 수표교는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것인데, 정작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수표교는 개천의 수위를 측정하는 ’수표(水標)‘와 한 쌍이지만 이마저도 세종대왕기념관(서울 동대문구 회기로)으로 흩어졌다. 수표교는 ‘영희전(永禧殿)’으로 어가행렬이 지나던 다리였으며, 상업 중심지로서 천변 사람들의 풍류가 묻어나는 매개체였다. 청계천박물관에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랠 기획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수표교 – 한양에 비가 내리면(~3/15)’은 잠시 헤어진 ‘수표교와 수표의 만남’을 꿈꾸게 한다. 몰입형 영상체험 기술이 만들어낸 과거와 미래의 연결은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청계천에 세워진 수표교 모작

▲ 청계천에 세워진 수표교 모작 ⓒ김세희


장충단공원에 머물고 있는 수표교 원형

▲ 장충단공원에 머물고 있는 수표교 원형 ⓒ김세희


수표교와 수표

▲ 수표교(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와 수표(보물 제838호)가 함께 있던 시절의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한편,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발굴했던 수많은 역사 유물들도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에 있다. 박경리 작가가 어느 신문에 기고한 “청계천, 복원 아닌 개발이었나!”라는 문구가 박물관의 말미에 기록되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2014년 청계천 시민위원회는 ‘청계천 2050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역사와 문화, 자연과 생태를 중심으로 청계천의 어울리는 변화를 꾀하자는 목소리다. 또 한 번의 프로젝트가 이어지면 청계천은 어떤 시간을 맞이할까. 미완의 청계천에게 해줄 수 있는 우리의 작은 관심은 무엇일까.


몰입형 영상체험 기술로 이룬 ‘수표교 – 한양에 비가 내리면’

▲ 몰입형 영상체험 기술로 이룬 ‘수표교 – 한양에 비가 내리면’ ⓒ김세희




○ 청계천박물관 공간 정보

주소 : 서울 성동구 청계천로 530

전화번호 : 02-2286-3410

운영시간 : 09:00-19:00 (11월-2월, 주말 및 공휴일 : 09:00-18:00)

휴관 : 1월 1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 : 무료

참고 : 청계천박물관 맞은편 ‘판잣집 테마존’은 동절기 경우 운영시간 내 02-2290-7111~3으로 연락하면 관람 가능하며, 

기획전시 ‘수표교 – 한양에 비가 내리면’은 3월 15일까지 이루어진다.


○ 관련 링크

청계천박물관 홈페이지 : https://museum.seoul.go.kr/cgcm/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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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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