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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부산 향토백화점의 몰락, ‘이젠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

부산 서면의 태화백화점을 추억하며

2019.12.03


1997년 7월 9일 오전 8시경 부산에 거주하는 50대 남성이 숨졌다. 지역 대형 백화점의 회장이자 명망 높은 경제인의 극단적인 선택, 이 사건은 당시 부산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겨울은 늘 특가 전쟁 기간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연말연시를 ‘잘 보내자’는 구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부산의 서면도 이맘때면 거리의 호객 행위가 특히 활발하다. 핸드크림부터 노트북까지 모든 게 할인 중이다. 

백화점은 더욱 치열하다. 하나라도 더 판매하고자 묵혀둔 재고를 왕창 꺼낸다.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면 특별히 탐나는 건 없어도 저녁 시간에 몰린 사람들은 매장 이곳저곳을 살핀다. 어쩌다 ‘득템’하면 ‘인증샷’으로 자신의 운을 기록으로 남긴다.


쥬디스 태화 백화점 정면

▲ 쥬디스 태화 본관 정면 ⓒ강태호

 

서면 특화거리에서 바라본 쥬디스 태화 측면 / 수많은 간판이 걸려 있는 백화점 건물

▲ 서면 특화거리에서 바라본 쥬디스 태화 측면 ⓒ강태호


부산 시민의 기억 속에 선연히 남아 있는 백화점이 있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 반, 아는 사람 반, 오래전에 사라진 지역의 자부심이자 랜드마크. 서면 2번가 입구에 위치해 있었다. 이름은 태화백화점이었고, 지금은 ‘쥬디스 태화’라 불린다.


1982년 김정태 사장이 현 쥬디스 태화 자리에 태화쇼핑을 설립했다. 갑작스러운 건 아니었다. 2세 경영인으로서 태화극장 총무을 시작으로 경영실무 경험을 쌓고 있었다. 당시 정부의 유통 근대화 계획에 따라 태화슈퍼마켓도 운영했다. 이후 슈퍼마켓 체인이 늘어나자 임대 백화점으로 업종을 전환한다. 


부산의 백화점은 남포동에 밀집해 있었다. ‘미화당’, ‘유나’처럼 지역의 역사와 함께한 업체도 있었다. 태화의 등장은 신선함을 주었다. 80년대만 해도 부산의 제1상권은 남포동이었다. 서면이라 불리는 부전동은 공장지대에서 상업단지로 변모하며 자리를 잡아 가는 중이었다. 그곳에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니 세간의 주목을 받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개점 이후 6개월 만에 3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며 서서히 서면 인근 상권을 장악해 갔다. 또한 접객 서비스 향상을 목적으로 일본 유통업체와 협력하는 등 마케팅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1988년 120억 원을 들여 지상 9층 건물을 신축할 수 있었다. 


본관 1층,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에스컬레이터

▲ 본관 1층,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에스컬레이터 ⓒ강태호


90년대, 전국구 백화점이 부산 전역에 속속 들어서며 상권 지형도도 차츰 변화했다. 1995년 부전동과 인접한 범일동에 현대백화점이 들어섰고, 서면에는 롯데백화점이 개점했다. 연말은 축제였다. 시민의 이목을 끌기 위해 태화백화점을 포함한 3곳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산다는 건 특별한 기분이었다.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명품을 구경할 수 있었고, 이월상품도 ‘바겐세일’이라는 명목으로 고객의 주머니를 노린다. 지나는 사람들의 손에는 너나없이 백화점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태화백화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른바 충성 고객을 모집했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꽃모양이 여러 개 그려진 태화백화점의 종이가방을 사람들은 백화점에 가지 않아도 들고 다녔다. 백화점에서 받는 조금 더 나은 대우를 일상 속에서도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태화백화점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설립 후 호황을 누리던 태화백화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5년, 1,805억 원을 기록한 매출이 이듬해 1,449억 원으로 급감했다. 


80년대 태화쇼핑 앞 도로 풍경 / 수많은 간판들이 걸린 상가 건물

▲ 80년대 태화쇼핑 앞 도로(출처: 부산광역시) ⓒ강태호


김정태 회장 이하 당시 경영진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형 백화점의 공세를 방어하고 고객 수용도를 높이기 위해 1996년 8월 지하 10층 지상 9층 규모에 매장 면적은 약 3043㎡의 신관을 건립했다. 서면의 중심에 축구장 절반 크기의 부지를 확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형 백화점의 막대한 자본이 시시각각 투입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변화가 필요했다. 본관과 신관을 잇는 다리도 연결했다. 사람들은 파란 하늘을 이등분하는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채 1년을 이어가지 못했다. 1997년 6월 16일 김정태 회장은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담보가 많아 걱정 없다는 회장의 호언장담이 무색했다. 부산의 향토백화점들은 비슷한 시기 하나둘 도산했지만 부산 시민은 태화백화점만은 예외라 생각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정태 회장은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지역 언론사 외에도 전국 대부분의 일간지에서 본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부산 시민이 지닌 태화백화점에 대한 향수는 생각보다 진했다. 법정관리가 거론되기 시작하자 시민들은 ‘태화 살리기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지역 업체 물건사주기’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일부 시민도 피켓을 들고 태화 살리기 운동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보도 내용에 따르면 13개 시민단체가 ‘부산 지역 경제 살리기 시민운동 본부’를 발족해 운동을 지속해왔다고 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태화백화점 주변에서 구호에 맞춰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다. 퇴근시간이나 주말에 그런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른들은 늘 ‘태화’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부산 시민이 여전히 태화백화점을 복기하는 이유는 단순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다. 자본금 5억 원이던 기업을 245억 원으로 키우며 한 기업이 지역에 뿌리내린 저간의 과정에는, 관계된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이 녹아있다. 입점한 점포 수만 해도 2000여 개, 625명의 직원이 매일 출근하던 곳이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삶의 터전, 또 지역의 자부심이 무너졌다는 공허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신관1층을 둘러싼 여러 상가들 / 수많은 간판들

▲ 신관 1층을 둘러싼 상가들 ⓒ강태호

 

신관 지하 1층의 여성복 코너

▲ 신관 지하 1층의 여성복 판매 공간 ⓒ강태호


태화백화점은 2001년 파산했다. 2003년 모기업이 인수하며 간판을 내렸다. 본관과 신관을 잇는 다리도 뒤이어 철거했다. 부산 시민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태화백화점 종이백도 이제 더는 볼 수 없다. 변경된 이름에 흔적은 남아있다. ‘쥬디스 태화’ 쇼핑몰이지만 여전히 ‘태화’를 붙여 부른다. 


약 2년 전, 부산 시청 앞에서 열린 한 집회를 본 적 있다. 모 전국구 백화점과 관련한 내용이라 시민들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요약하자면 ‘오는 건 좋은데 행정도 같이 와라’였다. 단순히 백화점 본사의 지시를 따르는 게 아닌 지역 실정에 맞는 운영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화백화점이 주고 간 교훈은 지금도 여전하다. 가끔은 겨우내 식품 코너에서 언성을 높이던 사람들이 그립다. 

 

○ 공간 정보

쥬디스 태화 본관: 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 694

쥬디스 태화 신관: 부산 부산진구 서전로10번길 61


○ 관련 링크

홈페이지: 부산문화관광 ‘쥬디스 태화’ 소개 링크


○ 기타

쥬디스 태화 본관 연락처: 051-804-9700


○ 참조

향토문화전자대전 ‘태화백화점’ 링크

중앙일보 ‘김정태 회장’ 기사 링크

다이나믹 부산 ‘사라진 백화점의 추억’ 링크

도서『100가지 서면이야기』- 부산진구스토리텔링협의회

 

장소정보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694 쥬디스 태화
부산광역시 서면 연말연시 쥬디스태화 서면역 태화극장 남포동 미화당 유나 범일동 태화백화점 대현지하상가 부산시청 대형백화점 부전동 소비
영남권 강태호
인문쟁이 강태호
2019 [인문쟁이 5기]


강태호는 인문학집필연구소 한주서가 대표 작가이다. 제10회 해양문학상에 입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입상작인 중편소설 <바다 몬스터>는 문장 아래 문장을 숨겨놓았다며 호평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천 만 영화 속 부산을 걷는다》가 있으며 기획출판, 첨삭, 글쓰기 강의 등으로 ‘글’의 매력을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또한 관광, 인권, 문화제 등 공기관에서 주관하는 SNS 기자단에 참여하며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자 노력 중이다. 망각된 역사를 알리려는 의지가 강해 인문학적으로 어떤 해석을 풀어낼지 앞으로가 기대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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