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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O.C Books' 조정민 디렉터와 함께

2019.12.03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에 따르면 니체의 철학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4부는 니체 본인이 자비로 출판해 단 40부만 출간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보면 니체의 책은 일종의 독립출판이었던 셈이다. 그 40권의 힘은 거대해서 1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이어져 오고 있다. 인류의 위대한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 문학들도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작품은 당시의 책들 중 0.1%에 지나지 않는다. 0.1%의 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글과 예술 작품, 그리고 철학적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서점에 진열된 수많은 책들 중 어떤 책은 미래의 인류에게 전해질 또 다른 고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발간하는 이 책은 인류의 고전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책을 출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출판이란 행위에 그렇게 거창하고 무거운 목표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거니와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마치 1부터 45까지의 숫자들 중 여섯 개의 숫자를 맞춰야 하는 로또 당첨처럼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매주 당첨의 희망을 품고 복권을 사는 것처럼, 누군가는 불가능한 확률의 희망을 품고 책을 만든다. 오늘은 그 작고 연약한 희망에 기대어 새 걸음을 시작한 사람을 만나보려 한다. 최근 출판사 등록을 하고 책 발간을 앞두고 있는 'O.C Books'의 조정민 디렉터다.



사진작가에서 출판사 디렉터로



책을 들고 있는 조정민 디렉터

▲ 'O.C Books' 디렉터 조정민 님 ⓒ김은영


대표가 아닌 디렉터로 자신을 소개하는 조정민 씨는 며칠 전 만들었다는 명함을 건넸다. 윙크를 하는 얼굴을 보는 듯한 'O.C'의 디자인을 보자 자연스레 웃음이 난다. 우선 출판사의 이름인 'O.C'의 뜻부터 물었다.


"영문으로 제 이름이 '오레오 정민 조'거든요. 알파벳 C는 저의 성 씨인 조(Cho)의 약자이면서 회사란 뜻의 컴퍼니(Company)의 약자죠. 하지만 꼭 그런 의미가 아니어도 O와 C를 붙여 쓰면 웃는 얼굴 같아서 좋아해요."


명함 디자인

▲ 'O.C Books'의 명함 디자인 ⓒ김은영


출판사 로고에서 아이 같은 순수함이 느껴진다고 말하자 조정민 디렉터는 자신의 창작이 아이 같은 낙서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흔한 질문이지만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 하면 전 노트와 펜을 먼저 꼽아요. 종이에 끼적거리는 게 저에게 가장 익숙한 표현 방식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노트가 많았고 지금도 작업실에 이제껏 써온 노트가 쌓여 있어요. 그림이 절반, 일기가 또 절반, 책이나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상이나 엉뚱한 공상이 담긴 글이 많지만 그 낙서들이야말로 제 창작의 기본이라 생각해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진을 전공한 조정민 디렉터는 사진작가로서 국내외에서 수회의 전시를 열었지만 자신의 본향은 '낙서'에 있다고 말했다. 일부러 꾸민 소박함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라는 조정민 디렉터의 말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린다. 이번 인터뷰의 콘셉트가 신생 출판사 대표와 함께 서울 서점 페어를 돌아보는 것이라 말하자 조정민 디렉터는 자신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었을 뿐 아직 출간한 책이 없어 인터뷰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12월에 출간을 앞두고 있는 세 권의 책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출간을 앞두고 있는 'O.C Books'의 삽화 · 미니픽션 작품집 《리틀원》 표지

▲ 출간을 앞두고 있는 'O.C Books'의 삽화 · 미니픽션 작품집 《리틀원》 표지 ⓒ김은영

 

"12월에 세 권의 책이 나와요. 한 권은 지역 문화와 관련된 사진, 글, 그림의 복합 콘텐츠 서적이고, 다른 한 권은 세 작가의 그림과 미니픽션을 함께 엮은 작품집이에요. 그리고 한국 소설가의 단편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한 책도 발간될 예정이고요. 무사히 세 권을 발간하고 서점에 입고하는 게 O.C Books의 올해 목표죠. 출판의 첫 시작으로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책으로 내고 싶었는데 다행히 이제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어요."


출간을 앞두고 만든 더미북들 / 문구 : 뒤와 모호들 신당오동을 탐험하다

▲ 출간을 앞두고 있는 'O.C Books'의 《뒤와 모호들, 신당5동을 탐험하다》 더미북들 ⓒ김은영


조정민 디렉터는 대표라고 불리기보다 작가라고 불리는 것에 익숙한 예술가이지만 지금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하면 좋은 책으로 묶어 국내외에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디렉터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정식 출간 전이라 보여줄 만한 책이 없다고 하면서도 그는 수줍게 더미북을 꺼내 책을 소개했다. 한 권은 그림과 도시의 거리 사진, 그리고 짤막한 글이 담긴 밝은 느낌의 책이다. 또 다른 한 권은 강렬한 이미지의 회화와 미니픽션이 담긴 문고판 형태의 책이다. 조정민 디렉터는 이 책들을 시작으로 내년에 서너 권의 책을 발간하는 것을 기획중이라 말했다. 또 한국의 사진작가들의 작품집을 국외에 소개하는 일도 준비 중에 있다고. 그의 계획에서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설렘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과연 내년 이맘때쯤엔 O.C Books의 책들을 서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



2019 서울 서점 페어 풍경 / 문구 : 2019 서울서점페어 청계천헌책방 기독성문서적

▲ 2019 서울 서점 페어 모습 ⓒ김은영


서울에 위치한 독립서점의 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2019 서울 서점 페어'는 11월 9일과 10일 이틀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렸다. 서른 곳의 독립 서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책을 판매하고, 출판과 관련된 의미 있는 행사들이 열리는 페어 행사장 내부는 개장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붐볐다. 가슴 높이의 테이블이 이어진 책 판매 부스들 사이에서 익숙한 서점의 이름도 보였다. 테이블에는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비롯해 낡고 오래된 헌책이 놓여 있다. 책에서 시작된 아기자기한 굿즈들은 디테일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진열된 물건들을 세심히 살피는 조정민 디렉터에게 이런 상품들도 기획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작은 출판사나 서점이 살아남기 위해선 이런 굿즈가 필요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시도들이 많이 보여서 신선해요. 12월에 출간할 책도 책 속의 캐릭터들로 만든 스티커를 함께 판매할 예정이에요. 스티커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이번에 하나하나 많이 배웠죠. 문학 쪽에는 이런 굿즈의 카테고리가 몇 개로 정해져 있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더 많이 응용해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형 출판사나 유통 업체가 전문적으로 만드는 굿즈도 좋지만 작가 본인이 자신의 작품에서 비롯된 굿즈를 출판사와 함께 기획해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굿즈라는 실용성을 만족하면서도 작가의 색과 작품의 결이 담긴 제품이 나온다면 독자들에게 더 좋은 선물이 될 테니까요."


전시장에 진열된 소장용 미니북 세트, 책포장

▲ 전시장에 진열된 소장용 미니북 세트와 책 포장지 ⓒ김은영


전시장 옆에 마련된 공간에서는 열띤 토론회가 진행 중이었다. 동네책방의 이슈와 대안에 대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100분간 토론을 하는 것이다. 이번 2019 서울 서점 페어에는 페어와 함께 여러 섹션의 책 관련 행사들이 마련돼 있었다. 서울 서점의 100년사를 아카이빙한 기획전시와 작가와의 만남, 또 각 서점들이 준비한 체험행사까지. 전시장을 살펴보니 서점과 출판사를 함께 함께 운영하는 곳도 있고 유통만 담당하는 서점도 있다. 여러 모로 녹록치 않은 여건의 작은 서점과 출판사들이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서울만 해도 한 해 동안 수많은 출판사들이 생겼다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출판사를 설립하고 책을 만들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출판사 디렉터에게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염려하며 조정민 디렉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역시 책의 유통을 살피다 독립출판과 서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동안 몇 권의 사진집을 출간하면서 내 스스로 유통망이 되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또 사진 외에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함께 작업하고 싶었고요. 자신의 색을 찾으며 좁고 먼 길을 가는 예술가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O.C Books를 예술문화의 플랫폼으로 만드는 게 저의 소망이에요. O.C Books 외에 다른 라인의 콘텐츠 개발도 준비하고 있고요. 최종 목표는 좋은 아티스트를 세상에 소개하는 것이에요. 예술가 한 명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땐 큰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소리가 다른 소리를 만나 무리를 이루면 누군가의 귀에 닿을 수 있잖아요. O.C Books가 그 스피커 역할을 담당했으면 해요." 


2019 서울서점페어 모습

 ▲ 2019 서울 서점 페어 전시장 안 모습 ⓒ김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만든다는 것



신생 출판사의 디렉터로서, 그는 서점 페어에 참여한 서점들의 면면과 함께 그 공간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도 주의 깊게 살폈다. 조정민 디렉터는 책을 만드는 것 외에도 그 책을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작가로서 책을 만들 땐 작품집의 수요가 적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판매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고. 그는 O.C Books가 발간할 책들 또한 그간 해왔던 것처럼 외국 친구들과 출판사들에게 보내 국외 유통에 힘쓰겠지만 그와 함께 국내의 크고 작은 서점들에도 입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득 O.C Books가 걸어가야 할 길이 험난해 보인다. 실례되는 질문인 걸 알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건넸다. 그는 왜 출판사를 시작한 것일까.


책을 살펴보는 조정민 디렉터

▲ 'O.C Books' 디렉터 조정민 님 ⓒ김은영


"그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다보니 이 자리에 있다고 할까요. 사진이란 장르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담지만 제가 담고 싶은 건 그 보이는 세계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세계예요. 하지만 결국 눈에 보이는 전시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죠. 그래서 저는 사진들이 책으로 묶였을 때의 느낌을 좋아해요. 제가 담으려고 했던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감각을 책의 흐름과 맥락으로 좀 더 전할 수 있으니까요. 전시는 그 시간, 그 장소에 온 사람들만 체험할 수 있지만 책은 세계 여러 공간으로 흩어져 한 명, 한 명, 개인과 작품으로 만날 수 있으니까요. 어렵게 말했지만 사실 그동안 책을 만들어왔고 책과 밀접한 환경에 있었기에 출판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독립출판은 그리 대중적이지 못한 산업이란 말을 듣기도 했지만 저에게 출판은 그 행위 자체로 이미 대중적인 일이에요. 자신의 무언가를 세상에 알리고 공유하는 방법으로 책을 선택한 것이니까요." 


독립출판은 아웃사이더, 소수 취향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출판이란 행위 자체가 이미 대중성을 띤 것이라는 조정민 디렉터의 대답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출판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종종 외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할 때면 요즘 한국 문학을 잘 읽고 있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알고 보면 그 책들은 대형 출판사가 만든 유명 작가의 책이 아닌 O.C Books처럼 작은 출판사의 노력으로 발간된 책이었다고. 그는 예술가들에게 높은 장벽으로 여겨지는 번역과 유통 부분에 조금씩 활로를 넓혀 작지만 힘 있는 국외 유통의 플랫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서점페어에서 포즈를 취하는 조정민 디렉터

▲ 'O.C Books'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조정민 디렉터 ⓒ김은영


마지막으로 전시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고 권하자 그는 자신의 얼굴보다 책들이 더 잘 나오게 찍어달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한 번 페어를 둘러보던 그는 시민이 자신의 책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부스 앞에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손에 든 책은 카뮈의 『예술과 저항』 초판본. 작가 중 보르헤스와 카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내가 물은 질문에 대답을 찾는다. '왜 출판사를 만들었나요?'

'왜냐고요? 그거야 책을 좋아하니까요.' 그 간단한 대답이 앞으로 O.C Books가 넘어야 할 현실의 파도에 부표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들, 그리고 만드는 사람들. 그들의 취향이 있는 한 책과 사람은 앞으로도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질 것이다. 비록 희미한 확률이라 해도 그들이 만든 책 중 몇 권은 십 년, 오십 년, 백 년을 뛰어넘어 누군가의 손에 가 닿을 것이기에.


*O.C Books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o.cbooks/

**본문 중 니체와 그리스 문학에 관련된 내용은 사사키 아타루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2012, 자음과모음)』을 참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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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김은영
인문쟁이 김은영
2019 [인문쟁이 5기]


서울에 살며 일하고 글 쓰는 사람. 비와 냉면을 좋아하고 자서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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