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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놀이터에서 만난 이종일 씨

아이들의 언어로, 아이들의 방식으로

인문쟁이 양현정

2019-11-26


지난 10월 대구 청소년 책 축제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책가방을 멘 청소년들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의 뒤를 따르며 이름을 외쳐 불렀다. 회색 두루마기 남자는 무리 앞에서 학생들의 외침에 답하듯 팔을 들어 올려 좌우로 흔들며 춤을 추듯 앞으로 나아갔다. "이종일! 이종일! 이종일!" 아이들의 목소리가 큰 강당에 울려 펴졌다. 


누군가 찍어준 이 광경을 SNS에 게시하며 이종일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복기해보려 애쓰고 있다고 적었다. 이종일은 ‘나’의 날 것인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고 애써 포장하지 않은 노래를 만들어, 다시 ‘나’가 부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아이들과 노래 부르며 논다.



 ‘종일 놀이터’에 모여 동요 부르는 어른들 - 너희들을 노래하렴 



대구 계산 성당에서 제일 교회 쪽으로 길을 건너 ‘세라비 음악다방’이 있는 건물 지하에 매주 월요일 저녁 일곱 시 반부터 동요를 부르는 어른들의 모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그들은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래는 즐겁구나~ 산 너머 길, 나무들이 울창한 숲 속에~." 오랫동안 입에 담은 적은 없지만, 귀에 익어 누구나 알고 있을 듯한 노래다.  


기타를 치던 이종일이 상자를 가지고 와 드럼인 듯 두드렸다. 악보를 손에 들고 노래부르던 이들이 살포시 미소 한 번 짓고는 계속 노래한다. '종일놀이터'에 모인 동요 부르는 어른들은 딱히 동요라는 의식도 없이 까불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불과 수분 전까지 김창완의 곡, <찻잔>에 깃든 가사의 속내를 이야기하던 이들이었다. 다음 곡은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오랜만에 오선 위의 음표들을 마주하니 은은하면서도 알싸한 봄의 매화꽃 같은 기운이 서서히 몸에 퍼져, 문득 익숙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아 좋다!


어른들의 동요 부르기 모임 풍경

▲ 매주 월요일, 어른들이 모여 동요를 부른다. ⓒ양현정 



Q. 왜 동요를 부르나요? 



이종일 : "좀 이상한 시대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내 아이만 바라보는 시대. 아이들은 더 이상 동요를 부르지 않는데, 이 나라의 수많은 창작 동요제에서 아이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거의 쇼에 버금가는 안무를 선보이며 노래를 부릅니다. 동요를 만드는 사람, 동요제에 아이들을 내보내는 사람은 상을 받기 위해 동요제에 나갑니다. 동요제 심사를 가지 않은지 오래 되었어요. 예술단체가 만든 프로그램에 종종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는데, 엄마들은 내 아이가 혼자 노래 부를 시간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합니다. 혼자 부르는 노래가 없다고 하면 못 하겠다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나누고, 부딪히고, 싸우고, 선생님한테 혼도 나면서 성장해가는 것인데, 어른은 아이에게 그러한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어른의 문화는 아이들을 탈출하게 만듭니다. 


아이들이 말하고 쓴 글로 노래해야합니다. 아이들의 언어로 노래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래는 용감하게 불러야 하죠. 잘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나와 노래 부르는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시원하게 노래 부르지, 잘 부르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동요는 ‘야! 노래 참 잘 부른다’가 아니라, ‘그 노래 참 좋다’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동요의 의미를 함부로 정해준 어른들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어른들은 동요를 부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동요를 흥얼거리는 사람은 남들보다 좀 순수한 사람입니다. 동요를 부른다는 것은 깨끗해지려는 노력입니다. 어른들은 동요로 삶에 찌든 일상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도시가 동요가 흐르는 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들과 노래하는 이종일 씨

▲ "너희들을 노래하렴" ⓒ종일놀이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든 노래의 악보 / 문구 : 양말 좀 빨래통에 넣어, 빗소리 비의 노래, 멸치똥, 무슨 색?

▲ 아이들의 말을 듣고 만든 노래 악보 ⓒ종일놀이터 



놀이연구회 사람들은 조금씩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 



호두에 멸치 똥 뺀 멸치를 돌돌 말아 싸 먹으면 참 맛있다. 호두의 고소함이 배가 된다. 종일놀이터에 와 놀다 간 친구들이 까놓은 멸치와 호두를 먹으며, 놀이연구회 회원들은 현장에서 겪은 일들을 풀어 놓았다. 이종일은 대구와 근교 곳곳에서 아이들과 노는 선생님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밥을 먹으며 ‘놀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멀리 의성에서 오신 분이 오래전 캠프파이어 의뢰를 받고 캠프파이어 대신 불놀이를 한 이야기를 회원들에게 들려주었다. 불놀이를 선택하면서 관계자와 아이들, 선생님들에게 단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선생님에게는 아이들에게 접근하지 않는 조건을, 아이들은 선생님을 부르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이 위험할 것 같은 놀이를 아이들을 믿고 전적으로 맡기기로 한 것이다. 어떤 놀이연구가들은 일부러 위험한 놀이터라는 이름을 걸고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한다. 일본의 모험놀이터인 ‘플레이파크’라는 곳은 많은 놀이연구가들의 견학장소가 되고 있다. 


늘 안전한 곳에서 노는 아이와 위험한 곳에서 놀아본 아이 중,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은 쪽은 안전한 곳에서 노는 아이들이라 한다. 아이들은 안전한 곳보다 위험한 곳에서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터득하게 된다.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놀이의 재미는 틀을 깨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놀이연구회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수긍했다. 아이의 놀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방식에 조금씩은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


놀이연구회 회의

▲ 놀이연구회 회의 ⓒ양현정

 

이종일 씨의 노래 CD와 놀이를 위한 다양한 공구들

▲ 이종일의 노래 CD와 놀이를 위한 공구들 ⓒ양현정 



 Q. 아이들의 놀 권리를 찾아주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아졌습니다. 

왜 놀아야 하나요? 



이종일: "기본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놀이는 자연환경과 삶의 자원을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스스로 놀이감을 볼 줄 알고, 기획할 줄 알고, 제작할 줄 알고, 퍼트릴 수 있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근데 요즘은 다 만들어서 줘요.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서 놀면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놀이프로그램이 준비된 곳에 함께 온 부모들은 ‘엄마아빠가 이거 가지고 놀아봤거든, 놀아봐’라며 아이에게 강요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놀 줄 몰라요. 자신들도 감동이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놀라고 강요하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전래놀이'라 부르는 옛 놀이는 공동체 안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옛 놀이에는 특히 겨울 놀이가 많습니다. 음력 초사흘에서 15일까지 기간에 하는 놀이들, 춥다고 움츠러들지만 말고 밖에서 뛰어 놀라고 만든 놀이입니다. 또 아이들은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들과 놀아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래집단만의 놀이는 놀이의 틀을 축소시키는 것과 같아요. 


아이들은 이런 방식의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터득해갑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놀이도 학습하려 합니다. 학습된 놀이는 아이의 눈과 귀를 닫게 만들죠. 더 이상 스스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어른들이 원하는 삶을 살며,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됩니다. 


 요즘 놀이연구회는 아이들에게 좁은 공간에서도 놀이를 발견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광주와 대구를 중심으로 영호남 놀이 교류를 준비해 보려합니다. 함께할 단체와는 이미 관련 내용을 협의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언제 진행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며 가며 놀고 찍고 유포시키려합니다. 장애-비장애 통합놀이도 생각중입니다." 


큰북 작은북 기타 드럼 등 다양한 음악 도구들

▲ 이 물건들로 어떤 놀이를 할 수 있을까 ⓒ종일놀이터 



뒤따르는 자인 듯 앞서는 자인 듯 



가끔 ‘피리 부는 사나이’란 이야기를 생각한다. 절뚝거리며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는 도대체 앞선 아이들과 얼마나 멀어졌기에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못 했을까. 왜 그 누구도 그 아이와 함께 가려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피리 부는 사나이만 아는, 동굴의 다른 출입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들은 다른 출입구를 통해 이곳이 아닌, 꿈에 그리던 저곳에 갔을 지도 모른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자신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퍼뜨려줄 사람으로 다리를 다친 아이를 선택해 화자로 남겨놓은 것은 아닐까. 굳게 닫힌 동굴의 문을 보고 슬퍼하는 아이는 훗날 자라 기타와 노래와 놀이로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이종일’이 되지 않았을까. 


휴대폰에 빼곡히 적힌 일정을 날마다 숨가쁘게 소화하며 유랑극단처럼 움직이는 그가 어쩐지 기이해보였다. 그는 뒤따르는 자인 듯, 앞서는 자인 듯 걸어간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지 않고 '편견'이라는 말을 원래부터 몰랐던 것처럼, 노래와 놀이로 사람들을 만나는 그는 늘 즐거워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지방별정직평생인턴15급’ 연예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희화화시켜 힘을 얻는다고도 했다. 


노래하는 이종일 씨

▲ 노래하는 이종일 씨 ⓒ종일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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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인문쟁이 5기]


글로 스스로를 세우고 위로 받았듯 내 글이 누군가를 세우고 위로해 줄 수 있기 바란다 그들의 곁에 서서 바람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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