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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물레책방은 헌책방이다.

시대와 문화를 공유하는 책과 그 자리

2019.08.27


책방지기를 만나고 돌아와 대구에 몇 남지 않은 헌책방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대개 필요한 책은 인터넷서점을 통해 주문하거나 도서관을 이용한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사하던 중에도 결코 버리지 않았던 많은 책을 몇 해 전 폐지수거함에 미련 없이 버렸다. 책이 가진 위용 때문에 때때로 무력해지기도 하는데, 책을 아무 데나 버린 것은 그 힘에 대한 일종의 반항 같은 것이었다. 


상상해보라. 엘리베이터를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하며 끌고 온 책을 농구 골대에 공을 넣듯 훅훅, 툭툭 던지는 여자의 뒷모습이 그려내는 우스꽝스러움을. 그랬는데, 다시 또, 책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열병처럼 밀려드는 것 같다. 지금도 눈에 선한 그 책, 물레책방에서 봤던 출판 당시 1200원짜리 그 책이 몹시 가지고 싶다.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는 탐독하고 싶은 K의 모든 책이 결제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보았다. 헌책방 거리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우연인 듯.

수레 안에는 밤색 표지의 오래된 전집류나 노랗게 변색된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회색 문짝을 머리에 인 수레의 꽁무니에는 색색의 꽃들이 꽂혀 있었다. 꽃상여 같았다. 고물상에 팔려가 폐지가 될지도 모를 책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앓았다는 책방지기가 생각났다. 


헌책을 잔뜩 실은 수레

▲ 책수레,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을까 ⓒ양현정



그 많던 헌책들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 



아버지를 따라 헌책방에 자주 드나들던 아이는 책을 보는 자신을 바라보던 책방 주인의 선한 웃음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학창시절, 문제집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출입하기 시작했고, 대학에 다니면서 적은 돈으로 많은 책을 살 수 있는 헌책방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러다 헌책방에서만 구할 수 있는 책들의 진가를 알고 본격적으로 헌책 수집에 나서게 되었다. 급기야 집에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해 따로 창고를 마련해 수집한 책을 보관할 정도였다.


헌책방을 운영하는 어르신들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고, 문을 닫은 헌책방엔 자주 ‘상중’이란 글씨가 붙었다. 그 글씨가 바람에 나부낀 다음엔 어김없이 다른 가게가 들어왔다. 청년은 궁금했다. ‘그 많던 책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 고물상에 팔려 폐지가 될 수도 있는 책들을 생각하며 밤잠을 설치는 날이 잦았다. 사라진 헌책방에 대한 안타까움은 어느 날부터 헌책방을 차려야겠다는 소명으로 변해갔다. 물레책방지기 장우석 씨의 사연이다. 



녹색평론과 물레 



2008년 서울로 이사한 <녹색평론> 사무실을 지역문화공동체의 활성화를 논의하는 모임의 장소로 활용하던 책방지기와 지인들은 그 건물의 지하에 세를 얻어 헌책방을 열기로 결심했다. 노래방이었던 곳을 책방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4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3톤이 넘는 쓰레기가 나왔다. 예상보다 훨씬 웃도는 시간과 비용이었다.


간디는 영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종속관계 청산과 자급자족소농촌공동체건설을 위해 물레를 돌리자고 했다. 그 후 물레는 비폭력의 상징이 되었다. 책방의 이름은 간디의 물레에서 따온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지배구조에 길들여진 정신의 독립을 위해 책을 읽는 행위와 물레를 돌리는 행위는 비슷한 데가 있다. 독립영화계에 몸을 담고 있는 책방지기는 물레가 필름통과 닮아 더 큰 애착을 느꼈다.


대구광역시 수성경찰서 뒷골목 모퉁이, <녹색평론>이 오래 머물다 떠난 낡은 건물 지하에 세 든 물레책방은 그 공간에 깃든 이념들을 구체화하기 위한 공작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등의 제목을 훑어보다, 무심코 한 권을 꺼내 휘리릭 책장을 넘기면 거기 숨어 있던 단어나 문장이 와락 달려들며 책을 집어든 이를 유혹한다. 책방지기는 인생의 어느 때 ‘매혹’된 <녹색평론>과 ‘물레’를 수많은 책을 매개로 이 공간에 부려놓았다.


책방이 있는 건물 이층에는 대구에서 꾸준히 인문사회계열 도서를 출판하고 있는 <한티재>가 세들어 있다. 한티재는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선생의 소설 <한티재 하늘>에서 따온 이름이다. 


매대 위에 잔뜩 놓인 녹색평론 잡지들 90호에서 102호까지

 ▲ 물레책방 매대에 늘 비치되어 있는 녹색평론 ⓒ양현정

 

물레책방 간판

 ▲ 물레책방 간판 ⓒ양현정



 공유서가와 대구  

 

 

법정스님 타계 후, <무소유>가 낙찰가 80만원에 팔리는 걸 본 책방지기는 책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 후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은 판매하지 않고 책방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유서가를 마련했다. 책방지기가 특히 좋아하는 권정생의 <몽실언니>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오래된 미래> 등은 책방에서 여러 판본으로 만날 수 있다. 사실 공유서가라는 말은 기자들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다. 책방지기는 명명된 이름에 개의치 않는다. 그는 헌책이란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를 순환하는 운명을 타고 났으니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형도는 대구에 장정일이라는 ‘이상한 소년’을 만나러 가면서 ‘시인들만 우글거리는 신비한 도시’라고 말했다. 대구에만 시인이 많은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알려진 많은 작가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문단의 지형을 파악하게 된다.


물레책방은 대구를 연고로 한 출판사와 작가들의 코너를 따로 마련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지역 작가의 작품을 적극 소개하고 있다. 현재 이천 권이 넘는 대구 지역 출판물을 보유 중이다.


책방지기는 이OO라는 시인의 시를 우연히 접했을 때를 회상했다. 중앙의 내로라하는 시인들의 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지만 등단도 하지 않았고 그저 즐겁게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발간된 잘 알려지지 않은 책에서 간혹 내공이 상당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그는 평범한 사람들을 더 자세히 보게 됐다고 한다.


판본이 서로 다른 오래된 미래 표지들 /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녹색평론사 /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서물 달라이 라마 녹색평론사 개정증보판 / 5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현대의 고전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공식 한국어판 중앙 books

▲ 판본이 서로 다른 『오래된 미래』 ⓒ양현정

 

 

잘 지내고 있나요? 책들! 



물레책방은 최초 만 권으로 시작해 현재 삼만 권에 이르는 책을 보유하고 있다. 책방지기가 절대 팔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몇몇 책들은 ‘울면서’ 호소하는 이의 손에 들려 나가기도 했다. 그 책도 책방지기가 어딘가에서 발견해 수건으로 닦고, 가슴에 꼭 안아보곤 했던 것처럼 새로운 이와 달콤하고도 진한 포옹을 했을 것이다. 문득,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책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잘 지내고 있나요? 책들!


헌책방에만 유통될 수 있는 책이 있다. 바코드가 없는 책이다. 바코드가 없는 책은 공식 유통망에 등록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대형 중고서점에서도 판매될 수 없다. ISBN이 발급된 우리나라의 최초의 책은 1991년 12월에 발간된 <국어어휘사연구>다. 1991년이면 그리 멀지 않은 과거다. 1991년 이전에 출간된 수많은 책들이 고유번호 없이 여전히 세계를 떠돌고 있다. 주민번호 없이 세계를 떠도는 자의 운명처럼 어딘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요즘은 바코드 없는 책의 출판이 늘고 있다. 독립출판의 영향이다. ISBN을 택하지 않은 새 시대의 책은 다시 헌책방으로 흘러들 것이다. 머지않아 헌책방에서 독립출판 코너도 필요하지 않을까?


책방지기와 이야기하던 중 손바닥만한 책 한 권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쓴 <사람사는 세상>이었다. 누렇게 변색된 얇은 속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듯 오돌토돌하게 글씨가 인쇄되어 있었다. 순간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지음 주머니글집24 현장문학사

▲ 오래된 책, 떨리는 마음으로 몇 장 넘기다 덮었다. ⓒ양현정



지하 넓은 책방에서 물레를 돌리는 행위란  

 

 

책방 안쪽 왼쪽 모서리에는 황토색 벽돌로 단을 올린 부채꼴 모양의 무대가 있다. 작가 강연회나 북 토크, 강독회, 음악회, 영화감상 등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때 이 무대를 활용한다. 지난 6월에는 김찬호 교수의 ‘유머의 스펙트럼으로 살펴 본 한국 사회의 감정지형도’란 강연이 있었다. 김찬호 교수는 강연을 위해 한 시간 일찍 책방에 도착해 공간의 결을 느껴 보려 했다는 말을 시작으로, 유머감각을 회복한다는 것은 어린 아이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책방의 작은 무대

▲ 물레책방의 작은 무대 ⓒ양현정

 

강의 중인 김찬호 교수

▲ 김찬호 교수의 '유머의 스펙트럼으로 살펴본 한국 사회의 감정지형도' 강의 ⓒ양현정

 

김찬호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는 사람들

▲ 김찬호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는 사람들 ⓒ양현정

 

최근에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를 상영하고 영화와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원금을 받아 미리 계획하고 정해진 날에 실행하는 프로그램보다 게릴라콘서트 같은 성격의 행사가 많은 물레책방의 문화행사는 홍보가 원활하지 않아 놓치기 쉽다. 아쉬운 부분이다. <녹색평론> 독자모임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0년, 다양한 문화를 지역민과 함께 공유하며 정을 쌓고, 이를 토대로 책과 문화와 이 사회의 모순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밑그림을 가지고 책방 문을 처음 열었다. 지금까지 책방의 물레는 돌다가 잠시 멈추고, 또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책방문은 보통 열한 시에 열어 일곱 시에 닫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책방지기가 외부 업무가 있을 때 부득이 닫혀 있는 경우가 있다. 방문 전 전화로 문의할 필요가 있다. 세계 책의 날인 4월 23일에 문을 열어 전화번호는 0423이다. 053.753.0423이다. 


장소정보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492길 15 물레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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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양현정
인문쟁이 양현정
2019 [인문쟁이 5기]


글로 스스로를 세우고 위로 받았듯 내 글이 누군가를 세우고 위로해 줄 수 있기 바란다 그들의 곁에 서서 바람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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