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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정성 담아 정 만드는 2대째 ‘뻑주’

술 빚는 박천희·이선희 부부

김두레

2019-02-08


술 익는 소리 가득한 집


예전에는 집마다 술을 빚었다. 명절이나 가족 행사는 물론 사시사철 술 빚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제는 어른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풍경이지만 여전히 술 익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이 있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 박천희·이선희 부부, 새 술을 빚는다는 소식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한 집에서 밥 짓는 냄새 머금은 김이 퍼져 나온다.


밥과 누룩을 섞고 있는 박천희 이천희 부부


술 단속 나오던 시절, 혹여 술 익는 냄새 퍼질까 마음은 졸여도, 손은 놓지 못했던 박씨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어져온 귀한 술이다.


“시집오고 나니까 집에서 항상 이 술을 빚더라고요. 시어머니께 술 빚는 법을 배웠어요. 처음에는 많이 버렸죠. 잘못 만들면 시니까···. 아버님 때부터 전해오는 술이라 우리 아저씨도 좋아해요. 이거 마시면 평소에 일할 힘도 얻고 그런대요. 그래서 한창 더운 7~8월만 빼고 만들어요”


부인 이씨가 박씨 집안 가양주의 역사를 들려준다. 그리곤 잘 빻아놓은 누룩을 꺼내 깨끗한 천막 위에 고루 펼친다. 술밥이 다 되면 한 몸이 될 준비가 끝났다.


“누룩은 방앗간에서 밀로 만든 것을 사와요. 집에서 짚으로 싸 열흘정도 더 띄우죠.

잘 떠야 좋은 술이 빚어지니 누룩 띄우는 것부터 중요한 과정이에요”


고두밥 짓는 찜솥을 여니 구수한 김이 얼굴을 크게 덮는다.


“술밥 한번 드셔보슈”


박씨가 술 담을 항아리 있는 방을 덥히기 위해 화목보일러에 불을 넣다가 고두밥 푸는 것을 보고 한마디 건넨다. 김을 모락모락 내며 부서지는 밥을 뭉쳐 입에 넣으니 보슬보슬하고 참 고소하다. 직접 농사지은 찹쌀과 멥쌀로 술밥을 지으니 맛이 좋을 수밖에.


이씨가 밥과 누룩을 섞기 시작한다. 슬슬 식혀가면서 고루 섞일 수 있게 충분히 버무려야 좋단다.


“우리는 밥이랑 누룩, 물을 거의 같은 비율로 넣어요. 물을 많이 안 섞으니까 도수도 웬만치 돼서 앉은뱅이 술이지. 용수 박아서 맑은 술을 뜨는 게 아니고 소쿠리에 짜서 막걸리 같이 탁주로 저어가며 떠먹어요. 그러니 뻑뻐억해서 ‘뻑주’라고 불러유. 내 집서 내 입맛에 맞게 만들어 먹는거쥬”


박씨도 대주걱을 가져와 거들며 ‘뻑주’가 된 재밌는 사연을 전한다.


술 빚는 과정



부부의 정, 이웃의 정이 담긴 ‘뻑주’


부부는 이곳에서 벼농사, 밭농사를 지으며 2남 1녀를 키웠다. 그리고 박씨가 15년째 맡아오던 마을이장을 지난해에 내려놓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집에 들러 ‘뻑주’ 맛을 봤다. 면사무소 직원, 동네사람들, 고물장수 할 것 없이 박씨는 사람들에게 술 한 잔 내어주고 손에도 쥐어줬다.


“옛날에야 이렇게 물을 적게 넣구 담궜간. 일꾼들 먹이려고 물 잔뜩 넣어 양을 늘렸지. 그러니 술이 맹맹하니 맛이 안 나지. 우리 집에선, 아버지가 직접 빚은 술을 좋아하시니까 어머니가 계속 빚으셨는데, 예전에 술 단속 나온다고 하면 자갈길 급히 오시다가 넘어지기도 하시고 그러셨쥬. 그런 세월 거쳐 지금까지 만드는거유”


추억을 되새기는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어느새 누룩과 술밥이 하나가 됐다. 이것을 적정한 온도의 물과 잘 버무려 항아리에 담아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비율과 온도.


48년 세월 술을 빚는 동안 이씨의 손은 온도계, 눈은 계량기가 됐다.


“눈으로 손으로 해요. 골치 아프게 비율 따지남? 하도 오래하니 감으로 척척 잘 맞지. 발효시키는 것도 양마다 정도가 달라요. 다 담고 나면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확인해야죠” 이씨가 양동이에 손을 담고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으며 온도를 조절한다.


옆에서 한번 쓱 보던 박씨가 “따뜻한 물 더 안 필요혀?”하니, 이씨가 “한 동이만 더 가져 오셔요”한다. 부부가 척하면 척이다.


술 빚는 과정


정월초하루가 다가올수록 술 익는 소리가 수런수런 나고 맛이 깊어질 것이다.


이 귀한 술은 부부를 찾는 이를 맞아 즐거운 얘기 속에 반주가 되고, 가족간의 이웃간의 정을 듬뿍 나누게 될 것이다.


“내 이름은 넣지마유. 보고 다들 찾아오면 골치 아퍼유”


벌써, 그동안 다녀간 사람들과 어느새 맘먹고 새로이 찾아올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맘 가득 술 빚는 부부의 선한 모습과, 듬뿍 나눠가게 될 정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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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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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의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 취재기자입니다. 이름 '두레'의 뜻처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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