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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이어온 자개 이야기

전통 자개명장, 이영옥 진주쉘 대표

인문쟁이 김세희

2018-08-30

취재를 마무리하던 길이었다. 박람회장을 서둘러 나서는데, 옻칠 향기가 걸음을 붙잡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이 지긋한 남자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손으로 쓰다듬는다 생각하고 만져보세요. 자개가 더 빛날 거예요!” 하고 내게 말을 걸었다. 자개를 문질러보았다. 정말 문지를수록 모란꽃이 영롱해졌다. 나의 손도 덩달아 광채를 입었다.


추억의 물건에서 혁신의 주역으로


세계여성발명인 워크숍 때 이영옥 자개명장의 모습

▲세계여성발명인 워크숍 때 이영옥 자개명장의 모습 ⓒ 진주쉘


Q. 킨텍스에서 열린 2018 여성발명왕 엑스포(주최 특허청)였어요. 전 세계 27개국 여성 발명인들이 한국을 찾아 이목이 집중됐죠. 그날 전통 자개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A. 우리가 보통 ‘나전칠기’라고 하죠? 나전(螺鈿)은 쉽게 말해서 전복이나 조개 껍데기와 같은 자개를 여러 형태로 조각 내어 원하는 물건에 박거나 붙여 장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자개를 박는다’고 표현하죠. 이를테면, 자개를 가늘고 길게 잘라 끊어가면서 무늬를 만들기도 하고, 실톱대를 가지고 자개를 무늬대로 오려 붙이기도 합니다. 이런 추억 속 존재가 혁신을 의미하는 ‘발명왕 엑스포’에 등장했으니 신기했을 거예요. 자개가 가진 고유의 빛깔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사람들의 기호와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잖아요. 벌써 꽤 오래 전 일인데요, 어느 고객이 자개를 여러 빛깔로 착색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자개 고유의 빛을 변형한다는 건 생소한 일이었죠. 미술을 전공한 딸(김윤미 전수자)과 을지로를 전전하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결국 자개에 컬러를 흡착하는 데 성공합니다. 단순히 자개 표면에 프린팅하는 것과는 달랐죠. 색을 머금은 자개는 프린팅된 것과 달리 오래 보존됩니다. 저희만의 특허기술이 되었죠.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다양한 기술과 산업분야가 예술과 융합되었을 때 나타나는 시너지에 집중했습니다. 어쩌면 그게 ‘발명’의 첫걸음이 된 셈이죠. 우리의 전통 끈을 놓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마음, 그 변주가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니까요.


중국 심양에서 김윤수 전수자와 함께

 ▲ 중국 심양에서 김윤수 전수자와 함께 ⓒ 진주쉘


Q. 정말 인상적인 건, 대표님 자개 인생의 든든한 동행자 두 분이에요. 김윤미, 김윤수 전수자와 함께하기까지 스토리가 참 궁금합니다.

A. 자개에 대한 애정과 조예가 깊은 두 사람입니다. 지금의 ‘진주쉘’을 있게 한 주역들이죠. 자개가 펼칠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고민합니다. 물론 전통의 가치를 보존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죠. 필리핀 현지 진주쉘 공장에서 좋은 자개 원료를 1차 가공한 후 들여옵니다. 그다음에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공방에서 모든 제작과정을 거치죠. 그 순간들을 아들, 딸과 함께하면서 생각을 조율합니다.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의 시선을 공유하기도 하죠. 최근 중국 심양 국제전람센터에서 열렸던 ‘제10차 APEC 중소기업기술교류전시회’에 초대되었는데요. 반응이 뜨거웠던 작품들은 청도에 있는 진주쉘 공간에서 상설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나전칠기 공예가 천 년 넘는 시간 동안 발전해온 모습에 중국, 일본을 넘어 유럽 등지에서도 감탄했습니다. ‘한국의 집, 호림 미술관, 현대백화점 등’ 국내 전시도 활발하게 하고 있지만, 제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그렇습니다. ‘자개의 일상화’가 빚어낸 우리나라의 모습이에요.


일상용품에 스민 자개의 멋


이영옥 자개명장의 작업 모습(좌) / 대한민국 명장 수여식에서 김윤미 전수자와 함께(우)

 ▲ 이영옥 자개명장의 작업 모습(좌) / 대한민국 명장 수여식에서 김윤미 전수자와 함께(우)ⓒ 진주쉘


Q. 저희 외가에서는 첫 며느리인 큰외숙모가 멋진 자개장을 물려받으셨어요. 지금도 큰외삼촌댁에 가면 어릴 적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나전칠기를 만날 수 있죠. 그런데 아직 저희 집에는 자개로 만든 소품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A. 자개는 예로부터 부를 상징했어요. 소유하고 싶지만 향유하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필리핀에 공장을 둔 것이죠. 일단 1차 가공만이라도 해서 가져오게 되면 고품질의 자개인데도 비용이 절감됩니다. 제품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가구에서부터 소품, 접시, 거울, 핸드폰 및 명함 케이스 등 못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LG 생활건강의 한방 화장품 케이스나, 국민카드(특허등록)에 자개를 넣어 디자인하기도 했죠. 쓸수록 닳는 카드에 변하지 않는 자개를 얹는 작업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북촌에 있는 저희 갤러리의 바닥도 자개로 꾸몄을 정도입니다. 한때 나전칠기를 대량생산하느라 품질이 하락하여 소비가 침체됐고, ‘호마이카’라고 하는 날림으로 나전칠기를 만드는 방식이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자개 예술 후학 양성에 소홀했다는 진지한 반성을 하게 되면서 더욱 나전칠기 발전에 각고의 노력을 거듭할 수 있게 되었어요. 누구나 안심하고 나전칠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자개 이야기, 진주쉘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42-3)

  ▲ 자개 이야기, 진주쉘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42-3) ⓒ 김세희

 

바깥에 소나무가 드리운 북촌 진주쉘 갤러리

 ▲  바깥에 소나무가 드리운 북촌 진주쉘 갤러리 ⓒ 김세희


Q. 북촌 진주쉘 갤러리 앞 가로수가 소나무더라구요! 명장님의 호가 ‘백송(白松)’이신데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A.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는 사군자 중 하나인 대나무처럼 선비의 기개와 청렴결백을 상징하죠. 한국에는 천연기념물로 여겨지는 백송이 있고요. 나전칠기의 자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계절의 조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빠서 잊고 있던 시절의 흐름을 반추하게 되죠. 저희 장롱을 침실에 놓은 어느 부부는 그러시더군요.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자연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고요. 선조들은 자연물 하나까지도 그 존재의 이유를 켜켜이 풀어내곤 했습니다. 우리의 염원과 함께 말이죠. 자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변하지 않는 삶의 가치, 그 귀한 가르침을 자개 하나 하나에 담습니다. 일상과 가까워지는 자개 라이프. 전통 자개명장이라는 소명이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인문’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개함자개 휴대폰 케이스

  ▲ 일상에서 자개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 ⓒ 김세희

 




 

 

 

* 진주쉘 만나는 곳

http://www.jinjooshell.com

http://blog.naver.com/jinjooshell

http://www.instagram.com/jinjooshell

* 공방 진주쉘: 경기도 광주시 목동길 46번길 37 / 031-762-9050

* 갤러리 진주쉘: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42-3 1F / 02-2253-7585

장소 정보

  • 진주쉘
  • 북촌진주쉘
  • 나전칠기
  • 진주쉘갤러리
  • 이영옥대표
김세희
인문쟁이 김세희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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