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뮤지엄 그라운드를 방문하였다. 뮤지엄 그라운드는 2018년 10월에 개관한 현대 미술관으로 지난달 1주년을 맞이했다.
▲ 뮤지엄 그라운드(Museum Ground) 외관과 입구 ⓒ김민정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비좁고 어두운 삼각형 통로를 지나야 한다. 비록 몇 발자국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러 가는 양 설렜다. 현재 뮤지엄 그라운드 제2전시실에서는 미술관 설립자이기도 한 「전광영」 전시가 진행 중이다.
▲ 「전광영」 전시실 ⓒ김민정
전시실에는 전광영(1944~)의 미술 작가 인생 60년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챕터(Chapter) 1’이라는 이름으로 2019년 12월 1일까지 열린다. 1973년 작가의 초기 회화에서 1995년 "집합(Aggregation)" 연작까지 감상할 수 있다. 12월 20일부터는 ‘챕터(Chapter) 2’를 선보일 예정이다.
색채와 대화를 나누다
▲ "Aggregation95-A006"(1995) ⓒ김민정
전광영의 붉은색 "Aggregation95-A006" 작품은 전시 포스터에도 등장하는데, 볼 때마다 강한 여운을 남긴다. 작품 앞에 서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흡사 빨강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열기를 느껴보라고 한다. 촘촘하게 이어진 붉은 조각들이 하나둘씩 불꽃으로 피어나, 얼어붙어 있는 나를 툭툭 친다. 그러고 보니, 작품을 매단 벽마저도 온통 빨갛다. 따스함에 이끌려 작품 주위를 맴돌지만, 이내 긴장감이 감돈다.
이는 빨강이라는 색에만 느껴지는 특별한 감상은 아닐 것이다. 노랑이나 검정과 같은 다른 색을 보았을 때도, 색과 함께 짝지어진 연상이나 경험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데도, 색은 갖가지 상념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런 색과 인간의 마음 간 상관관계를 정리한 것이 ‘색채 심리(color psychology)’다.
▲ 옆에서 본 "Aggregation95-A006" 일부 / 옛날 한의원 모습 ⓒ김민정
작품을 옆에서 보면, 무수히 많은 작고 붉은 삼각형 조각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정면에서 볼 때는 그리 존재감이 없던 조각들이 나 여기 있다고,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같은 크기와 모양, 그리고 색깔의 조각들인데도, 말하고 싶은 바는 제각각이다. 아무렇게나 무작위로 붙여진 것 같으면서도, 각자 정해진 제자리가 있는 듯, 나름대로 질서가 있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전시장에는 옛날 한의원 사진 옆에 작가가 "집합"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설명되어 있다. 어느 날, 감기로 고생하던 작가가 부인이 준비해 둔 약봉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렸을 때 병약했던 자신을 어머니가 들쳐업고 한의원에 갔던 기억이 났다고 한다. 한의사가 진맥을 보고 있는 동안, 누워있던 작가가 본 천장에는 한지로 감싼 약봉지가 가득 달려 있었다. 주위에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침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약 냄새가 진동했다.
마치 영사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작가의 가슴 속에 틈입한 이 이미지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강렬했다고 한다. 한방에서 약재를 종이로 싸듯, 작가는 삼각형 스티로폼 조각을 한지로 싸서 묶었다. 작가가 어릴 적 아픈 몸을 한약으로 치료한 것처럼, 한지로 싸서 묶은 삼각형 조각을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한 후 화면에 붙여 나갔다. 작가는 한약이 지닌 치유의 힘을 작품의 모티프로 사용하여 한국적인 독특성을 작품에 가미한 것이다.
"집합" 시리즈는 다양한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흰색은 우리에게 깨끗함과 순수함, 그리고 정직함을 전하고, 갈색은 땅의 생명력과 포용력을 전달한다.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며 충돌하는 수십 수만의 조각들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캔버스를 채워나간다. 오랜 시간 이어진 고단한 수작업 과정은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기에 투쟁적이기도 하지만, 완성된 세계는 평면을 뛰어넘어 조화를 이루고 마음에 안식을 가져왔다.
색채가 지친 마음을 위로하다
▲ "ONT-017"(1988) / "ONT-87-21"(1987) ⓒ김민정
작가의 1980년대 작품 역시 관람객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랑은 자유롭고 이성적인 색이고, 나뭇잎을 떠오르게 하는 초록은 풍요롭고 휴식을 주는 색이다. 색채는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면서, 명상에 빠져들게 하고, 평화를 안겨주기도 한다.
▲ 뮤지엄 그라운드의 체험 공간(가운데)을 색 변환한 붉은 방(왼쪽)과 푸른 방(오른쪽) ⓒ김민정
가운데 사진은 뮤지엄 그라운드 내 체험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하얀 벽과 바닥으로 둘러싸인 곳에 하얀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이를 붉은 계열의 공간(왼쪽)과 푸른 계열의 공간(오른쪽)으로 바꾸어 보았다. 만일 내가 붉은 방에 있다면, 그리고 푸른 방에 있다면, 각각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자.
붉은 방에 있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시간이 급하게 흘러간다고 느껴져 서둘러 움직인다. 빨간색은 사람에게 자극을 주어 생기를 돌게 하고 활기가 넘치게 만든다. 반면에, 푸른 방에 있으면, 심장박동이 느려지면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고 느껴져 차분하게 행동한다. 파란색은 시원함을 느끼게 하여 진정시키고 집중을 유도한다. 이는 색의 특징과 연상을 이용한 ‘색채 치료(color therapy)’의 한 방법이다. 비슷한 예로, 빨간빛이나 파란빛을 쬐어주는 광선치료는 감각 신경을 촉진 또는 완화하여, 우울증과 불면증, 불안증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색채 치료는 부정적으로 여기던 대상과 짝지어 긍정적 감정을 반복적으로 환기하면 대상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다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심리학자 메리 커버 존스(Mary Cover Jones)의 1924년 치료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피터(peter)라는 3세 소년이 가졌던 흰 토끼에 대한 공포를 이 방법을 이용해 없앴다. 피터가 토끼를 대할 때마다 좋아하는 간식을 같이 주었고, 결국 그는 토끼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시각적인 색을 체험해 보다
▲ 「플라워베리(Flowerberry the Decorator)」 전시 ⓒ김민정
전광영 전시 앞에는 「플라워베리」가 마련되어 있다. 색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꽃과 폴리염화비닐인 PVC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생생하고 선명한 색채를 뿜어내고 있다. 길게 늘어진 색 띠 아래 놓인 의자에 잠시 앉아, 색감이 건네는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자. 즐거운 기분이 들 수도 있고, 오히려 쓸쓸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해묵은 기억이, 전광영 작가가 그랬듯 섬광처럼 번쩍이며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 전시 정보
전시명: 전광영
기간: 2019.8.31.~2019.12.1
○ 공간 정보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샘말로 122 (고기동 400-5) 뮤지엄 그라운드 제2전시실
미술관 속 심리학- 색채로 평온함을 얻다
뮤지엄 그라운드 「전광영」 관람
인문쟁이 김민정
2019-11-14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뮤지엄 그라운드를 방문하였다. 뮤지엄 그라운드는 2018년 10월에 개관한 현대 미술관으로 지난달 1주년을 맞이했다.
▲ 뮤지엄 그라운드(Museum Ground) 외관과 입구 ⓒ김민정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비좁고 어두운 삼각형 통로를 지나야 한다. 비록 몇 발자국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러 가는 양 설렜다. 현재 뮤지엄 그라운드 제2전시실에서는 미술관 설립자이기도 한 「전광영」 전시가 진행 중이다.
▲ 「전광영」 전시실 ⓒ김민정
전시실에는 전광영(1944~)의 미술 작가 인생 60년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챕터(Chapter) 1’이라는 이름으로 2019년 12월 1일까지 열린다. 1973년 작가의 초기 회화에서 1995년 "집합(Aggregation)" 연작까지 감상할 수 있다. 12월 20일부터는 ‘챕터(Chapter) 2’를 선보일 예정이다.
색채와 대화를 나누다
▲ "Aggregation95-A006"(1995) ⓒ김민정
전광영의 붉은색 "Aggregation95-A006" 작품은 전시 포스터에도 등장하는데, 볼 때마다 강한 여운을 남긴다. 작품 앞에 서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흡사 빨강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열기를 느껴보라고 한다. 촘촘하게 이어진 붉은 조각들이 하나둘씩 불꽃으로 피어나, 얼어붙어 있는 나를 툭툭 친다. 그러고 보니, 작품을 매단 벽마저도 온통 빨갛다. 따스함에 이끌려 작품 주위를 맴돌지만, 이내 긴장감이 감돈다.
이는 빨강이라는 색에만 느껴지는 특별한 감상은 아닐 것이다. 노랑이나 검정과 같은 다른 색을 보았을 때도, 색과 함께 짝지어진 연상이나 경험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데도, 색은 갖가지 상념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런 색과 인간의 마음 간 상관관계를 정리한 것이 ‘색채 심리(color psychology)’다.
▲ 옆에서 본 "Aggregation95-A006" 일부 / 옛날 한의원 모습 ⓒ김민정
작품을 옆에서 보면, 무수히 많은 작고 붉은 삼각형 조각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정면에서 볼 때는 그리 존재감이 없던 조각들이 나 여기 있다고,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같은 크기와 모양, 그리고 색깔의 조각들인데도, 말하고 싶은 바는 제각각이다. 아무렇게나 무작위로 붙여진 것 같으면서도, 각자 정해진 제자리가 있는 듯, 나름대로 질서가 있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전시장에는 옛날 한의원 사진 옆에 작가가 "집합"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설명되어 있다. 어느 날, 감기로 고생하던 작가가 부인이 준비해 둔 약봉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렸을 때 병약했던 자신을 어머니가 들쳐업고 한의원에 갔던 기억이 났다고 한다. 한의사가 진맥을 보고 있는 동안, 누워있던 작가가 본 천장에는 한지로 감싼 약봉지가 가득 달려 있었다. 주위에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침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약 냄새가 진동했다.
마치 영사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작가의 가슴 속에 틈입한 이 이미지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강렬했다고 한다. 한방에서 약재를 종이로 싸듯, 작가는 삼각형 스티로폼 조각을 한지로 싸서 묶었다. 작가가 어릴 적 아픈 몸을 한약으로 치료한 것처럼, 한지로 싸서 묶은 삼각형 조각을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한 후 화면에 붙여 나갔다. 작가는 한약이 지닌 치유의 힘을 작품의 모티프로 사용하여 한국적인 독특성을 작품에 가미한 것이다.
▲ "Aggregation 950028"(1995) / "Aggregation 950031"(1995) ⓒ김민정
"집합" 시리즈는 다양한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흰색은 우리에게 깨끗함과 순수함, 그리고 정직함을 전하고, 갈색은 땅의 생명력과 포용력을 전달한다.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며 충돌하는 수십 수만의 조각들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캔버스를 채워나간다. 오랜 시간 이어진 고단한 수작업 과정은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기에 투쟁적이기도 하지만, 완성된 세계는 평면을 뛰어넘어 조화를 이루고 마음에 안식을 가져왔다.
색채가 지친 마음을 위로하다
▲ "ONT-017"(1988) / "ONT-87-21"(1987) ⓒ김민정
작가의 1980년대 작품 역시 관람객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랑은 자유롭고 이성적인 색이고, 나뭇잎을 떠오르게 하는 초록은 풍요롭고 휴식을 주는 색이다. 색채는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면서, 명상에 빠져들게 하고, 평화를 안겨주기도 한다.
▲ 뮤지엄 그라운드의 체험 공간(가운데)을 색 변환한 붉은 방(왼쪽)과 푸른 방(오른쪽) ⓒ김민정
가운데 사진은 뮤지엄 그라운드 내 체험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하얀 벽과 바닥으로 둘러싸인 곳에 하얀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이를 붉은 계열의 공간(왼쪽)과 푸른 계열의 공간(오른쪽)으로 바꾸어 보았다. 만일 내가 붉은 방에 있다면, 그리고 푸른 방에 있다면, 각각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자.
붉은 방에 있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시간이 급하게 흘러간다고 느껴져 서둘러 움직인다. 빨간색은 사람에게 자극을 주어 생기를 돌게 하고 활기가 넘치게 만든다. 반면에, 푸른 방에 있으면, 심장박동이 느려지면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고 느껴져 차분하게 행동한다. 파란색은 시원함을 느끼게 하여 진정시키고 집중을 유도한다. 이는 색의 특징과 연상을 이용한 ‘색채 치료(color therapy)’의 한 방법이다. 비슷한 예로, 빨간빛이나 파란빛을 쬐어주는 광선치료는 감각 신경을 촉진 또는 완화하여, 우울증과 불면증, 불안증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색채 치료는 부정적으로 여기던 대상과 짝지어 긍정적 감정을 반복적으로 환기하면 대상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다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심리학자 메리 커버 존스(Mary Cover Jones)의 1924년 치료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피터(peter)라는 3세 소년이 가졌던 흰 토끼에 대한 공포를 이 방법을 이용해 없앴다. 피터가 토끼를 대할 때마다 좋아하는 간식을 같이 주었고, 결국 그는 토끼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시각적인 색을 체험해 보다
▲ 「플라워베리(Flowerberry the Decorator)」 전시 ⓒ김민정
전광영 전시 앞에는 「플라워베리」가 마련되어 있다. 색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꽃과 폴리염화비닐인 PVC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생생하고 선명한 색채를 뿜어내고 있다. 길게 늘어진 색 띠 아래 놓인 의자에 잠시 앉아, 색감이 건네는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자. 즐거운 기분이 들 수도 있고, 오히려 쓸쓸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해묵은 기억이, 전광영 작가가 그랬듯 섬광처럼 번쩍이며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 전시 정보
전시명: 전광영
기간: 2019.8.31.~2019.12.1
○ 공간 정보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샘말로 122 (고기동 400-5) 뮤지엄 그라운드 제2전시실
운영 시간: 화-일요일 10: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 031-265-8200
○ 관련 링크
홈페이지: https://www.museumground.org/
오시는 길: https://www.museumground.org/visit
○ 사진 촬영_김민정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심리학을 전공한 미술관 도슨트. 미술에 심리학을 접목한 <미술로 보는 심리학>을 강의하고 블로그 <미술 감상 심리학>을 운영하면서, 미술 심리에 관심 있는 분들과 소통하려고 노력 중이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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