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는 고대 제주에서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켰던 소왕국의 이름이자 제주의 옛 이름이다. 12세기 고려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소왕국 형태의 독립 체제를 유지하며 고 씨와 양 씨, 부 씨 이렇게 세 성(三姓)에 의해 통치되었다고 한다. 중국, 일본, 한반도와 해상 무역을 영위하며 동북아시아 여러 국가와 교류하며 성장했다.
지금도 제주도 곳곳에서 탐라국 유적을 만날 수 있고, 길거리 간판에서 ‘탐라’란 표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제주시 원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제주시청 벽면에서도 탐라를 만날 수 있다. 제주시청의 도로 쪽 벽면에 탐라국 개국신화의 주인공인 고, 양, 부, 세 성의 주인공과 그 배필인 삼공주가 그려져 있다. 제주시청 벽화를 감상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탐라의 개국신화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 제주시청에 그려진 탐라국 신화 벽화 ⓒ배재범
▲ 제주시청 벽화 중 탐라국 삼공주 ⓒ배재범
탐라국 삼성(三姓)이 솟아난 삼성혈을 찾아서!제주시청에서 남쪽으로 난 오르막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삼성혈(三姓穴)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이 바로 탐라국 개국 신화가 깃든 삼성혈이다. 입구 안내판에 따르면 탐라국은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良은 뒤에 梁으로 바뀜)’, ‘부을나(夫乙那)’라는 세 신인(神人)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제주의 시조가 되는 이 세 ‘을나’는 독특하게도 땅에서 솟아났다. 한반도의 고조선, 부여, 신라 등 고대국가의 시조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알에서 태어난 것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의 신화인 것이다.
▲ 탐라국 개국신화가 깃든 삼성혈 입구 모습 ⓒ배재범
삼성혈 입구로 들어서면 굵은 소나무, 팽나무, 녹나무 등이 우거진 숲길이 이어져 있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숲길을 걷노라면, 신비로운 신의 세계로 들어온 착각이 든다. 신성한 기운이 감돈다. 이 숲길을 지나 삼성 신인이 솟아난 세 개의 구멍이 있는 모흥혈(毛興穴)에 이르니 하늘이 훤히 드러나는 둥그런 잔디밭이 나타난다. 잔디밭에는 움푹 파인 구덩이가 있고, 그 구덩이 안에는 ‘품(品)’자 모양으로 배열된 세 개의 구멍이 있다.
▲ 탐라국 삼성 신인이 솟아났다는 모흥혈 ⓒ배재범
세 구멍을 둘러싼 울타리 옆에는 비석이 서 있다. 앞면엔 ‘삼성혈’, 뒷면엔 ‘철종 7년(1856)에 다시 건립되었다’고 씌어 있다. 이 비석 앞에는 고·양·부 삼성 신인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이, 그 앞쪽에는 탐라국 삼성 신인의 위패를 모신 삼성전(三聖殿)이라는 건물이 있다.
▲ 탐라국 삼성 신인 위패가 봉안된 삼성전 ⓒ배재범
한반도와는 다른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온 탐라국 개국신화의 주인공인 삼성 신인은 원래 동굴에서 주거했고(穴居) 이것이 신화로 발전하면서 ‘솟아났다’는 이야기로 바뀌었을 터이다. 그 과정에서 삼성혈이라는 장소가 신성한 곳으로 숭배되었고, 여전히 제주시 원도심 한가운데 남아 아련한 옛 신화를 전해주고 있다.
탐라국 삼성 신인이 삼공주를 맞이한 혼인지를 찾아서!
수렵생활을 하던 탐라국 삼성 신인들은 현재의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로 떠밀려온 나무궤짝 안에서 나온 삼공주를 맞아 결혼을 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이곳 온평리 ‘혼인지’에 전해진다. 벽랑국에서 왔다고 하는 삼공주는 각각 탐라국 삼성 신인의 배필이 되어 그녀들이 가져온 오곡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 등 여섯 가축으로 농경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 ⓒ배재범
삼성혈, 혼인지에 깃든 신화와 전설은 탐라국 시조의 탄생 이후 바다를 통하여 발달된 외래문화가 유입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성산읍 온평리 넓은 들판의 큰 호수인 혼인지는 지역 주민 사이에서 ‘흰죽’ ‘흰죽물’로 불린다. 웬만한 가뭄에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아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인 1970년만 해도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됐다.
▲ 혼인지 내 삼성 신인과 삼공주가 첫날밤을 보냈다는 동굴 ⓒ배재범
60~70년대 제주가 한국의 하와이로 불리며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던 시절, 제주를 찾은 신혼부부들이 제주 최초의 혼인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전설을 따라 이따금 이곳 혼인지를 찾았다.
탐라국 삼성 신인이 벽랑국 삼공주와 결혼하여 낳은 자손들이 제주 고 씨, 제주 양 씨, 제주 부 씨가 되었다는 탐라국의 신화를 간직한 삼성혈, 혼인지 유적은 볼거리가 풍성한 명승지는 아니다. 하지만 제주의 독특한 아이덴티티을 담은 역사와 신화적 의미가 깃든 장소이기에, 제주를 방문한다면 꼭 한번은 둘러볼 곳이 아닌가 싶다. 삼성혈의 깊은 숲에서는 다른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맑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며 신비로운 신화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도 있다. 또한 혼인지에서는 삼성 신인과 삼공주가 첫날밤을 보냈다는 조그만 동굴에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있다.
탐라국 개국신화를 찾아 떠나는 제주여행
신화가 깃든 삼성혈(제주시 이도1동), 혼인지(서귀포시 온평리)
인문쟁이 배재범
2019-11-01
‘탐라’는 고대 제주에서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켰던 소왕국의 이름이자 제주의 옛 이름이다. 12세기 고려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소왕국 형태의 독립 체제를 유지하며 고 씨와 양 씨, 부 씨 이렇게 세 성(三姓)에 의해 통치되었다고 한다. 중국, 일본, 한반도와 해상 무역을 영위하며 동북아시아 여러 국가와 교류하며 성장했다.
지금도 제주도 곳곳에서 탐라국 유적을 만날 수 있고, 길거리 간판에서 ‘탐라’란 표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제주시 원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제주시청 벽면에서도 탐라를 만날 수 있다. 제주시청의 도로 쪽 벽면에 탐라국 개국신화의 주인공인 고, 양, 부, 세 성의 주인공과 그 배필인 삼공주가 그려져 있다. 제주시청 벽화를 감상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탐라의 개국신화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 제주시청에 그려진 탐라국 신화 벽화 ⓒ배재범
▲ 제주시청 벽화 중 탐라국 삼공주 ⓒ배재범
탐라국 삼성(三姓)이 솟아난 삼성혈을 찾아서!제주시청에서 남쪽으로 난 오르막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삼성혈(三姓穴)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이 바로 탐라국 개국 신화가 깃든 삼성혈이다. 입구 안내판에 따르면 탐라국은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良은 뒤에 梁으로 바뀜)’, ‘부을나(夫乙那)’라는 세 신인(神人)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제주의 시조가 되는 이 세 ‘을나’는 독특하게도 땅에서 솟아났다. 한반도의 고조선, 부여, 신라 등 고대국가의 시조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알에서 태어난 것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의 신화인 것이다.
▲ 탐라국 개국신화가 깃든 삼성혈 입구 모습 ⓒ배재범
삼성혈 입구로 들어서면 굵은 소나무, 팽나무, 녹나무 등이 우거진 숲길이 이어져 있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숲길을 걷노라면, 신비로운 신의 세계로 들어온 착각이 든다. 신성한 기운이 감돈다. 이 숲길을 지나 삼성 신인이 솟아난 세 개의 구멍이 있는 모흥혈(毛興穴)에 이르니 하늘이 훤히 드러나는 둥그런 잔디밭이 나타난다. 잔디밭에는 움푹 파인 구덩이가 있고, 그 구덩이 안에는 ‘품(品)’자 모양으로 배열된 세 개의 구멍이 있다.
▲ 탐라국 삼성 신인이 솟아났다는 모흥혈 ⓒ배재범
세 구멍을 둘러싼 울타리 옆에는 비석이 서 있다. 앞면엔 ‘삼성혈’, 뒷면엔 ‘철종 7년(1856)에 다시 건립되었다’고 씌어 있다. 이 비석 앞에는 고·양·부 삼성 신인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이, 그 앞쪽에는 탐라국 삼성 신인의 위패를 모신 삼성전(三聖殿)이라는 건물이 있다.
▲ 탐라국 삼성 신인 위패가 봉안된 삼성전 ⓒ배재범
한반도와는 다른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온 탐라국 개국신화의 주인공인 삼성 신인은 원래 동굴에서 주거했고(穴居) 이것이 신화로 발전하면서 ‘솟아났다’는 이야기로 바뀌었을 터이다. 그 과정에서 삼성혈이라는 장소가 신성한 곳으로 숭배되었고, 여전히 제주시 원도심 한가운데 남아 아련한 옛 신화를 전해주고 있다.
탐라국 삼성 신인이 삼공주를 맞이한 혼인지를 찾아서!
수렵생활을 하던 탐라국 삼성 신인들은 현재의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로 떠밀려온 나무궤짝 안에서 나온 삼공주를 맞아 결혼을 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이곳 온평리 ‘혼인지’에 전해진다. 벽랑국에서 왔다고 하는 삼공주는 각각 탐라국 삼성 신인의 배필이 되어 그녀들이 가져온 오곡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 등 여섯 가축으로 농경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 ⓒ배재범
삼성혈, 혼인지에 깃든 신화와 전설은 탐라국 시조의 탄생 이후 바다를 통하여 발달된 외래문화가 유입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성산읍 온평리 넓은 들판의 큰 호수인 혼인지는 지역 주민 사이에서 ‘흰죽’ ‘흰죽물’로 불린다. 웬만한 가뭄에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아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인 1970년만 해도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됐다.
▲ 혼인지 내 삼성 신인과 삼공주가 첫날밤을 보냈다는 동굴 ⓒ배재범
60~70년대 제주가 한국의 하와이로 불리며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던 시절, 제주를 찾은 신혼부부들이 제주 최초의 혼인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전설을 따라 이따금 이곳 혼인지를 찾았다.
탐라국 삼성 신인이 벽랑국 삼공주와 결혼하여 낳은 자손들이 제주 고 씨, 제주 양 씨, 제주 부 씨가 되었다는 탐라국의 신화를 간직한 삼성혈, 혼인지 유적은 볼거리가 풍성한 명승지는 아니다. 하지만 제주의 독특한 아이덴티티을 담은 역사와 신화적 의미가 깃든 장소이기에, 제주를 방문한다면 꼭 한번은 둘러볼 곳이 아닌가 싶다. 삼성혈의 깊은 숲에서는 다른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맑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며 신비로운 신화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도 있다. 또한 혼인지에서는 삼성 신인과 삼공주가 첫날밤을 보냈다는 조그만 동굴에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있다.
○ 공간 정보
- 삼성혈
주소 : 제주도 제주시 삼성로 22
운영 시간 : 매일 09:00 -18:00
홈페이지 : http://www.samsunghyeol.or.kr
- 혼인지
주소 :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혼인지로 39-22
운영 시간 : 매일 08:00 -17:00
홈페이지 : http://m.blog.naver.com/jejuhoninji
○ 사진 촬영_배재범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탐험하고 알리는 인문쟁이가 되어 20대에 품었던 인문학도의 꿈을 다시 꾸고 싶은 50대 아저씨입니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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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토스, 미래로 스파이크
인문쟁이 김은영
생과 사를 사유하는 양지바른 산책길
인문쟁이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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