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라는 표현이 있다. 생물에 주로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사물을 대상으로도 자주 쓰인다. 사물에게 던지는 ‘죽었다’는 표현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죽은 ○○’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고, 이를 되살리자는 취지의 일들이 벌어졌다. 대전 대덕구 한남로 88번길에서도 그렇다. 이 길(路)은 죽은 지 오래되었다. 아마 ‘상권이 죽었다’라는 표현에 익숙할 것이다. 죽었다는 것은 과거에 살아 있었다는 의미도 된다. 애당초 죽어있는 곳이라면 ‘되살리자’라는 표현도 사용되지 않았을 터. 이곳에 50년을 산 주민의 말을 각색하면 이렇다.
▲ 축제장 입구 ⓒ노예찬
“70년대와 80년대 한남대 바로 아랫마을이었던 88번길은 많은 학생이 자주 오가면서 번성하고 있었다. 한남대 정문에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고, 점심과 저녁을 먹기에 괜찮은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한남대 근처가 개발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상가들이 더 가까운 위치에 등장했다. 10분이나 걸어야 했던 것이 이제는 3분~5분이면 충분했다. 학생의 편리함은 88번길에게 악재였다. 더 가깝고, 더 새로운 장소를 원하는 학생들이 더 멀고, 더 낡은 음식점을 일부러 찾아갈 리 없었다. 학생의 발길이 끊기고 유등천 건너편에는 둔산동이라는 신도시가 생겼다. 88번길에 살던 사람들도 마을을 떠났다. 주택은 점점 사라지고 창고와 공장이 들어섰다. 이제는 창고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음식점을 찾았다. 가게들은 학생들의 입맛과는 먼 중후한 식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생명력을 점점 잃어갔다. 그렇게 88번길은 학생을 잊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대전 대덕구는 이곳을 다시 주목했다. <북적북적 오정&한남 청춘스트리트>라는 이름으로 한남대와 88번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 거리를 되살리기 위한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생의 참여를 통해 죽은 거리를 살리는 것이 목표였다. 옛날처럼 팔팔하고 북적북적한 거리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축제, 8월 31일 벌어진 ‘팔캉스’였다.
▲ 축제 골목길 ⓒ노예찬
상생 그리고 축제
▲ 주민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다. ⓒ노예찬
주민은 의외로 무심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민은 극소수였고, 대부분 무심했다. 어떤 주민은 “여기에 학생이 오겠어?”라며 시작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나의 ‘죽은’ 장소를 살리기 위해서는 주민의 협조가 필요하다. 적극성은 바라지 않더라도 동조하고, 관심을 보내주기만 해도 효율성은 높아진다. 이 축제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극소수의 참여 주민들 덕분이었다. 참여 의사를 밝힌 주민은 매주 모여 회의를 했다. 그리고 행사에 쓰일 물품들과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축제 당일, 한산했던 88번길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차 없는 거리가 되었고, 여러 부스가 생겼으며 가게들은 일제히 손님에게 판매할 음식을 내놓았다. 거리의 하늘에는 전구가 반짝이고, 길의 입구에는 ‘여기에서 축제가 열리구나’ 생각할 수 있는 큰 문이 생겼다. 동네 주민은 물론이고, 근처 마을 사람까지 축제의 장으로 몰려들었다.
▲ 어린이들이 딱지접기와 딱지치기를 체험하고 있다. ⓒ노예찬
미술을 중심으로 한 체험공간이 축제 오후와 저녁의 주된 콘텐츠였다. 동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풍경(風磬)만들기, 물감 화살쏘기, 네일아트, 딱지치기 등의 체험 공간이 길거리에 마련되었다. 유독 눈에 띈 것은 대학생 자원봉사자였다. 근처 한남대에서 봉사 지원을 나온 대학생들은 어린아이들과 합을 맞추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행사 안내 등의 역할을 수행하여 축제를 일방적인 방향이 아닌, 상생이라는 의미로 확장시켰다.
해가 지자 거리에 미리 설치한 전구들이 빛을 뽐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길거리를 생각하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음침함보다는 밝고 찬란한 느낌이 강했다. 큰 길에서 작은 골목길까지 이어진 이 전구들은 새로운 야경을 만들어냈다. 이어지는 행사는 길거리 공연이었다. 광대, 현대무용 그리고 댄스까지 선보인 무대는 길거리라는 배경이 적절하게 어울렸다. 무대 다른 편에서는 가게 음식과 맥주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거리의 첫 축제를 즐겼다.
▲ 한 아이가 풍경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 ⓒ노예찬
다만 아쉬운 점은 특색의 부재(不在)였다. 지속적인 도시재생을 위한 축제라면 다음에도 진행할 수 있는 특별한 개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 ‘팔캉스’는 ‘88번길’이라는 이름만 내건 채 다른 축제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구성을 택했다. 이름을 통한 개별성은 그렇게 유익하지 못했고, 먹고 즐기는 축제에 그쳤다는 것이다. 또한 한남대와 연계 방안을 구성한다면서 개강도 하지 않은 방학 기간인 8월 31일에 축제를 개최한 것은 행정적 착오가 아닐까?
이러한 이해하기 힘든 문제의 해결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여 다음 축제와 <북적북적 오정&한남 청춘스트리트>를 이어나간다면 주민들과 학생들의 상생, 그리고 도시재생은 결실을 볼 것이다.
오늘도 초심을 잡는다. 나는 왼쪽이 현저하게 부족했지만, 그것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왼손은 조금씩 나의 오른손을 파고들었다. 나의 두 손이 깍지를 낀 것 처럼, 아무런 느낌없이. 처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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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이 죽은 옛 대학가를 되살릴 수 있을까?
대전 한남로 88번길 팔캉스 축제
인문쟁이 노예찬
2019-10-17
죽은 길을 살리자
‘죽었다’라는 표현이 있다. 생물에 주로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사물을 대상으로도 자주 쓰인다. 사물에게 던지는 ‘죽었다’는 표현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죽은 ○○’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고, 이를 되살리자는 취지의 일들이 벌어졌다. 대전 대덕구 한남로 88번길에서도 그렇다. 이 길(路)은 죽은 지 오래되었다. 아마 ‘상권이 죽었다’라는 표현에 익숙할 것이다. 죽었다는 것은 과거에 살아 있었다는 의미도 된다. 애당초 죽어있는 곳이라면 ‘되살리자’라는 표현도 사용되지 않았을 터. 이곳에 50년을 산 주민의 말을 각색하면 이렇다.
▲ 축제장 입구 ⓒ노예찬
“70년대와 80년대 한남대 바로 아랫마을이었던 88번길은 많은 학생이 자주 오가면서 번성하고 있었다. 한남대 정문에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고, 점심과 저녁을 먹기에 괜찮은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한남대 근처가 개발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상가들이 더 가까운 위치에 등장했다. 10분이나 걸어야 했던 것이 이제는 3분~5분이면 충분했다. 학생의 편리함은 88번길에게 악재였다. 더 가깝고, 더 새로운 장소를 원하는 학생들이 더 멀고, 더 낡은 음식점을 일부러 찾아갈 리 없었다. 학생의 발길이 끊기고 유등천 건너편에는 둔산동이라는 신도시가 생겼다. 88번길에 살던 사람들도 마을을 떠났다. 주택은 점점 사라지고 창고와 공장이 들어섰다. 이제는 창고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음식점을 찾았다. 가게들은 학생들의 입맛과는 먼 중후한 식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생명력을 점점 잃어갔다. 그렇게 88번길은 학생을 잊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대전 대덕구는 이곳을 다시 주목했다. <북적북적 오정&한남 청춘스트리트>라는 이름으로 한남대와 88번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 거리를 되살리기 위한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생의 참여를 통해 죽은 거리를 살리는 것이 목표였다. 옛날처럼 팔팔하고 북적북적한 거리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축제, 8월 31일 벌어진 ‘팔캉스’였다.
▲ 축제 골목길 ⓒ노예찬
상생 그리고 축제
▲ 주민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다. ⓒ노예찬
주민은 의외로 무심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민은 극소수였고, 대부분 무심했다. 어떤 주민은 “여기에 학생이 오겠어?”라며 시작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나의 ‘죽은’ 장소를 살리기 위해서는 주민의 협조가 필요하다. 적극성은 바라지 않더라도 동조하고, 관심을 보내주기만 해도 효율성은 높아진다. 이 축제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극소수의 참여 주민들 덕분이었다. 참여 의사를 밝힌 주민은 매주 모여 회의를 했다. 그리고 행사에 쓰일 물품들과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축제 당일, 한산했던 88번길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차 없는 거리가 되었고, 여러 부스가 생겼으며 가게들은 일제히 손님에게 판매할 음식을 내놓았다. 거리의 하늘에는 전구가 반짝이고, 길의 입구에는 ‘여기에서 축제가 열리구나’ 생각할 수 있는 큰 문이 생겼다. 동네 주민은 물론이고, 근처 마을 사람까지 축제의 장으로 몰려들었다.
▲ 어린이들이 딱지접기와 딱지치기를 체험하고 있다. ⓒ노예찬
미술을 중심으로 한 체험공간이 축제 오후와 저녁의 주된 콘텐츠였다. 동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풍경(風磬)만들기, 물감 화살쏘기, 네일아트, 딱지치기 등의 체험 공간이 길거리에 마련되었다. 유독 눈에 띈 것은 대학생 자원봉사자였다. 근처 한남대에서 봉사 지원을 나온 대학생들은 어린아이들과 합을 맞추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행사 안내 등의 역할을 수행하여 축제를 일방적인 방향이 아닌, 상생이라는 의미로 확장시켰다.
해가 지자 거리에 미리 설치한 전구들이 빛을 뽐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길거리를 생각하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음침함보다는 밝고 찬란한 느낌이 강했다. 큰 길에서 작은 골목길까지 이어진 이 전구들은 새로운 야경을 만들어냈다. 이어지는 행사는 길거리 공연이었다. 광대, 현대무용 그리고 댄스까지 선보인 무대는 길거리라는 배경이 적절하게 어울렸다. 무대 다른 편에서는 가게 음식과 맥주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거리의 첫 축제를 즐겼다.
▲ 한 아이가 풍경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 ⓒ노예찬
다만 아쉬운 점은 특색의 부재(不在)였다. 지속적인 도시재생을 위한 축제라면 다음에도 진행할 수 있는 특별한 개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 ‘팔캉스’는 ‘88번길’이라는 이름만 내건 채 다른 축제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구성을 택했다. 이름을 통한 개별성은 그렇게 유익하지 못했고, 먹고 즐기는 축제에 그쳤다는 것이다. 또한 한남대와 연계 방안을 구성한다면서 개강도 하지 않은 방학 기간인 8월 31일에 축제를 개최한 것은 행정적 착오가 아닐까?
이러한 이해하기 힘든 문제의 해결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여 다음 축제와 <북적북적 오정&한남 청춘스트리트>를 이어나간다면 주민들과 학생들의 상생, 그리고 도시재생은 결실을 볼 것이다.
▲ 광대 공연과 관중들. ⓒ노예찬
▲ 사람들로 가득한 골목길 축제 야경 ⓒ노예찬
사진 촬영 ⓒ노예찬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오늘도 초심을 잡는다. 나는 왼쪽이 현저하게 부족했지만, 그것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왼손은 조금씩 나의 오른손을 파고들었다. 나의 두 손이 깍지를 낀 것 처럼, 아무런 느낌없이. 처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쓰자.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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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일 있는’ 별관측소
인문쟁이 백도영
이웃의 이야기 담아내는 작품 공장 <예술공장 두레>
인문쟁이 원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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