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게 계속 되던 가을장마와 긴장 속에 몰아친 한바탕 가을 태풍이 지나간 제주는 물색도, 하늘빛도 한껏 파랑이다. 어찌 저런 파랑이 있을까 곱씹으며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문득 만나게 되는 제주 해녀박물관! 넓은 해녀광장이 시원한 품을 내주고 해녀박물관의 뒤로 펼쳐진 하늘 배경은 바다만큼 푸르다. 맨몸으로 ‘바다밭’을 일구던 제주 해녀의 마음이 저토록 푸르게 시리진 않았을까?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위치한 제주 해녀박물관은 해녀들의 삶과 개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6년에 조성되었다. 특히 이 일대는 1932년 일제의 수탈에 맞서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벌인 전국 최대 규모의 해녀 항일운동이 일어나며 민족자존의 역사를 만들었던 곳이다. 제주에서도 해녀가 가장 많이 살고 있어 일명 ‘해녀 마을’로도 불린다.
▲ 제주 해녀박물관 전경 ⓒ성기낭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해녀 설치물을 마주한다. 제주 해녀를 주제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온 설치미술가 이승수 작가의 작품이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처럼 제주 해녀를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하루하루 숨 한 줌에 의지해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넘나들었을 제주 해녀! 고단한 듯 걸터앉은, 허리를 짚고 선, 바다 깊이 자맥질하는 해녀의 모습을 따라 전시실을 둘러본다.
▲ 이승수 작가의 로비 설치물 ⓒ성기낭
제1전시실에는 해녀의 집과 그녀들의 세간을 통해 제주 해녀의 생활상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나 아기구덕1이 눈길을 끈다. 물질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던 제주 해녀의 일상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정겨움과 측은한 마음이 동시에 느껴진다. 투박한 제주 음식 문화 속에는 바닷바람이 짜게 밴 듯하다. 믿을 것은 자신 뿐, 위험한 물질을 하려면 해녀들은 언제나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신에게 의지해야 했다. 바닷가 해신당과 잠수굿에는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그녀들의 간절한 마음이 함께 헤엄친다.
1) 제주도에서 아기를 눕혀 재우는 요람을 이르는 말
제2전시실로 옮겨가면 제주 해녀들의 바다 일터와 역사,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알 수 있는 전시물이 그득하다. 숨비소리2와 함께 바다 밖으로 나와 언 몸을 녹이던 불턱3을 중심으로 테왁 망사리4, 눈5, 빗창6 등의 작업 도구들, 광목 한 겹으로 만들어 입었던 전통 해녀복 물소중이에는 거친 제주 바당(바다의 제주어)의 흔적이 또렷하다.
제3전시실에서는 해녀들이 전하는 다양한 모습이 영상을 통해 소개된다. 첫 물질의 두려움과 설렘, 상군해녀7의 넉넉함과 출향 물질의 외로움, 이제는 자부심으로 남은 과거 물질에 대한 회고까지, 살아 있는 유산인 제주 해녀의 인터뷰가 마음에 진한 울림을 준다. 물질 중에 출산을 해야 할 만큼 서글펐던 생의 척박함도 배둥이8의 옹알이에 잠시 잊을 수 있었으리라.
3층 전망대 창으로 해녀의 바다가 푸르게 들이친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그 어디쯤에 해녀들이 살아낸 시간이 오롯이 반짝인다.
2)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에 떠올라 참던 숨을 휘파람같이 내쉬는 소리
3)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고 노출을 피하기 위해 만든 곳. 물질을 하다가 나와서 불을 피우며 쉬거나 옷을 갈아입는다.
4) 해녀가 채취한 해물 따위를 담아 두는 그물로 된 그릇
5) 그물 따위에서 코와 코를 이어 이룬 구멍
6) 주로 전복을 따는 데 쓰는 도구. 자루의 끝을 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말총으로 만든 끈을 달아 놓는다.
7) 물질을 가장 잘하는 해녀로 존경과 대우를 받는다.
8) ‘물질을 하다가 배에 올라 낳은 아기’를 일컫는 말
▲ 안녕을 기원하는 잠수굿 장비 ⓒ성기낭
▲ 해녀의 쉼터 불턱 ⓒ성기낭
▲ 재현해 놓은 해녀 작업장 ⓒ성기낭
▲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녀의 바다 ⓒ성기낭
바다를 닮은 사람들 - 제주 해녀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주 해녀 어업은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기계 장치 없이 맨몸으로 수심 10m 내외를 오가며, ‘물질’이라는 특수 노동을 이어온 제주 해녀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 정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그런 해녀가 제주에 가장 많고, 제주에서 비롯되어 각지로 퍼졌다는 의미에서 '제주 해녀'로 구분지어 부른다.
제주 해녀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거 제주 경제의 주역이었고, 강인한 여성의 상징이면서도, 그 고되고 팍팍한 일상은 후대에게 권할 만한 자산이 될 수 없었다. 고령의 해녀들을 끝으로 한때 그 맥이 끊기는 듯 했지만, 제주 해녀들의 원초적 어로 방식과 동료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정신, 해녀들의 신앙과 의례 등 독특한 삶의 방식이 큰 관심을 받으면서, 최근 해녀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2018년부터 매해 9월 셋째 주 토요일을 해녀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해녀 축제도 올해로 12번째를 맞았다. 가까운 곳에 제주 해녀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끄는 곳이 있다하여 발길을 옮긴다.
▲ 해녀 공동체 관련 전시물 ⓒ성기낭
해녀의 삶을 담은 한 끼 - '해녀의 부엌'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동쪽으로 10여 분, 눈앞에 그림 같은 우도가 펼쳐진 종달리 바닷가에서 ‘해녀의 부엌’을 만난다. 여느 바닷가 동네마다 하나쯤 있을 법한 이 공간은 20여 년 전 생선을 경매하던 활선어 위판장으로 지어진 곳이다. 판매가 주춤해 문을 닫은 후 어둡고 인적이 드문 창고로 방치되던 이곳이 제주 해녀 다이닝 공간으로 다시 생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의 어촌계 해녀들과 청년 예술인들의 진지한 고민 덕분이었다.
“저는 이곳 종달리 출신이에요. 고등학교까지는 제주에서 보냈고 대학교를 육지로 갔지요. 어린 시절부터 해녀 삼춘들을 이웃으로, 친척으로 뵙다 보니까 해녀 문화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해녀 삼춘들의 주 생산물이 뿔소라인데 70%가 일본으로 수출되는 바람에 그간 국내 소비는 너무 적었어요. 그래서 제주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브랜드화 해서 고령화가 진행중인 해녀들의 소득 창출에 도움이 되고자 이 공간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_ 해녀의부엌 대표 김하원
▲ 우도가 내다보이는 해녀의 부엌 앞마당 ⓒ성기낭
▲ '해녀의 부엌' ⓒ성기낭
제주 해녀의 정성스러운 삶을 보고 듣고 맛보다
김하원 대표는 제주 해녀 삼촌들을 단순히 보여주기 식이 아닌, 이들의 삶과 문화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어 늘 아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전공인 연기를 접목하여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제주 해녀 삼춘들의 삶을 꾸밈없이 담담히 풀어내고자 한다. 크게 변형하지 않은 공간에서 해녀들의 소품을 이용해 눈앞에서 펼치는 공연은 방문객들을 금세 몰입하게 한다. 짧은 공연이지만 제주 해녀의 삶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공연이 끝나면 88세 최고령 권영희 해녀가 직접 잡아온 해산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조금 더 젊은 67세 고봉순 해녀가 뿔소라 손질에서 내장 색깔로 암수 구분하는 방법, 해산물 군소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해녀 삼춘들한테 군소가 단연 인기 1위인 이유, 제주 잔칫상에는 군소가 절대 빠지지 않는 이유 등을 알려 준다. 제주 사람이면서도 그 맛깔난 이야기에 곧장 빠져든다. 관광객들에게는 더 말해 무엇할까!
▲ 공연 '어멍이 해녀' ⓒ'해녀의 부엌'
▲ 고봉순 해녀의 해산물 이야기 ⓒ성기낭
해녀들의 이야기 시간이 끝나면 드디어 해녀의 밥상이 차려진다. 그때그때 해녀 삼촌들이 채취해오는 재료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 제주의 바람과 물과 햇빛을 담뿍 담은 신선한 재료로 종달리 해녀 삼춘들이 직접 요리를 해준다. 톳흑임자죽을 비롯해 견과류 톳밥에 뿔소라 꼬지, 군소 샐러드, 성게 미역국과 빙떡, 갈치조림과 돼지고기 수육, 온갖 야채쌈꽃 등,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해녀 삼촌들의 실감나는 이야기가 재료마다 들어차서일까? 메뉴 하나하나의 정성된 맛을 충분히 음미하는 방문객들의 얼굴에 만족감이 넘친다.
마음까지 풍족한 한 끼를 먹고 나면 마지막 순서로 해녀 인터뷰가 이어진다. 식사가 끝날 즈음 질문지를 미리 받은 최고령 권영희 해녀님이 직접 답변해주신다. 해녀가 되고 싶다는 어린 꼬마의 질문에 “너무 어려워서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특별한 노하우가 있냐는 질문에는 “그런 건 없어. 그냥 열심히 하는 거야. 먹고 살려니까. 아이들은 키워야 되고. 그러니까 한 거지.”와 같이 조금은 투박하지만 진솔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듣고 나니 외려 제주 해녀의 고단한 삶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 해녀가 직접 차리는 맛있고 정성스러운 한 끼 음식 ⓒ성기낭
▲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해녀들 ⓒ성기낭
제주 해녀의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다
“다행히 직년 12월에 개관한 이후 줄곧 만석이 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하죠. 9월 15일부터 한 달간 리모델링을 하고 10월에 다시 뵐 예정이에요. 크게 달라지는 건 없고 현재 주말 컨텐츠를 평일까지 확장하려니까 공연 무대 등을 조금 손보는 정도입니다. 제주에는 이런 유휴 공간들이 많은데 그곳을 ‘해녀의 부엌’처럼 제주 해녀의 삶과 독특한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는 공간으로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 나가고 싶어요. 해녀 분들에게는 응원이 되고 우리 청년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런 공간이 되도록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야지요.”
_ '해녀의 부엌' 대표 김하원
한 순간 방심이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에 물질은 언제나 신중할 수밖에 없다. 바다에 해산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도 바다는 늘 해녀의 숨만큼만 허락한다.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절제의 삶! 말 못할 어려운 작업 환경 속에서도 공동 작업을 하고 소득을 공동으로 나누는 나눔과 배려의 공동체 문화! 자연과 공존하며 삶을 일구어 온 제주 해녀 문화의 진면목이 현재 우리들 삶의 모습 속에 더욱 우뚝하다.
제주어에 ‘배지근하다’는 말이 있다. ‘묵직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는 의미이다. 해녀의 부엌이 애초에 가졌던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를 진솔하게 알리고 싶다’는 그 묵직함을 끝까지 잊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다양한 재미와 감동의 감칠맛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야말로 배지근한 제주 해녀 복합문화공간으로 마을의 해녀 삼춘들과 청년들의 낡은 듯 신선한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자맥질하길 응원한다.
▲ '해녀의 부엌' 전 스텝의 인사 ⓒ성기낭
○ 공간 정보
*제주 해녀박물관
주소 :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관람 시간 : 09:00 ~ 18:00
매표시간 : 09:00 ~ 17:00
어린이해녀관 : 09:00 ~ 17:00
휴관일 : 1월1일, 설날, 추석,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 성인(25~64세) 개인1,100원 단체 800원 / 청소년(13~24세) 및 군인 개인 500원 단체 300원
*해녀의 부엌(9월 현재)
주소 :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 해안로 2265
운영 : 매주 금,토,일 타임제 -1부 12:00 -2부 17:30(러닝타임 약 100분,예약제)
아이들과 책으로 만나며 동화에 나옴직한 캐릭터 연구에 홀로 낄낄거리길 즐긴다. 언젠가 이 캐릭터들이 이야기 속을 휘저을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고 또 의심하기를 반복한다. 책의 어느 한 지점, 아이들과 함께 빵 터지는 그 유쾌한 순간의 행복감에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호기심 많은 어른이다. 뒤늦게인문에 스며든 호기심을 한껏 채울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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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로 삶을 긷다 - 제주 해녀 이야기
해녀박물관 옆 해녀의 부엌
인문쟁이 성기낭
2019-10-11
지루하게 계속 되던 가을장마와 긴장 속에 몰아친 한바탕 가을 태풍이 지나간 제주는 물색도, 하늘빛도 한껏 파랑이다. 어찌 저런 파랑이 있을까 곱씹으며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문득 만나게 되는 제주 해녀박물관! 넓은 해녀광장이 시원한 품을 내주고 해녀박물관의 뒤로 펼쳐진 하늘 배경은 바다만큼 푸르다. 맨몸으로 ‘바다밭’을 일구던 제주 해녀의 마음이 저토록 푸르게 시리진 않았을까?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위치한 제주 해녀박물관은 해녀들의 삶과 개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6년에 조성되었다. 특히 이 일대는 1932년 일제의 수탈에 맞서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벌인 전국 최대 규모의 해녀 항일운동이 일어나며 민족자존의 역사를 만들었던 곳이다. 제주에서도 해녀가 가장 많이 살고 있어 일명 ‘해녀 마을’로도 불린다.
▲ 제주 해녀박물관 전경 ⓒ성기낭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해녀 설치물을 마주한다. 제주 해녀를 주제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온 설치미술가 이승수 작가의 작품이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처럼 제주 해녀를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하루하루 숨 한 줌에 의지해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넘나들었을 제주 해녀! 고단한 듯 걸터앉은, 허리를 짚고 선, 바다 깊이 자맥질하는 해녀의 모습을 따라 전시실을 둘러본다.
▲ 이승수 작가의 로비 설치물 ⓒ성기낭
제1전시실에는 해녀의 집과 그녀들의 세간을 통해 제주 해녀의 생활상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나 아기구덕1이 눈길을 끈다. 물질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던 제주 해녀의 일상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정겨움과 측은한 마음이 동시에 느껴진다. 투박한 제주 음식 문화 속에는 바닷바람이 짜게 밴 듯하다. 믿을 것은 자신 뿐, 위험한 물질을 하려면 해녀들은 언제나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신에게 의지해야 했다. 바닷가 해신당과 잠수굿에는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그녀들의 간절한 마음이 함께 헤엄친다.
1) 제주도에서 아기를 눕혀 재우는 요람을 이르는 말
제2전시실로 옮겨가면 제주 해녀들의 바다 일터와 역사,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알 수 있는 전시물이 그득하다. 숨비소리2와 함께 바다 밖으로 나와 언 몸을 녹이던 불턱3을 중심으로 테왁 망사리4, 눈5, 빗창6 등의 작업 도구들, 광목 한 겹으로 만들어 입었던 전통 해녀복 물소중이에는 거친 제주 바당(바다의 제주어)의 흔적이 또렷하다.
제3전시실에서는 해녀들이 전하는 다양한 모습이 영상을 통해 소개된다. 첫 물질의 두려움과 설렘, 상군해녀7의 넉넉함과 출향 물질의 외로움, 이제는 자부심으로 남은 과거 물질에 대한 회고까지, 살아 있는 유산인 제주 해녀의 인터뷰가 마음에 진한 울림을 준다. 물질 중에 출산을 해야 할 만큼 서글펐던 생의 척박함도 배둥이8의 옹알이에 잠시 잊을 수 있었으리라.
3층 전망대 창으로 해녀의 바다가 푸르게 들이친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그 어디쯤에 해녀들이 살아낸 시간이 오롯이 반짝인다.
2)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에 떠올라 참던 숨을 휘파람같이 내쉬는 소리
3)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고 노출을 피하기 위해 만든 곳. 물질을 하다가 나와서 불을 피우며 쉬거나 옷을 갈아입는다.
4) 해녀가 채취한 해물 따위를 담아 두는 그물로 된 그릇
5) 그물 따위에서 코와 코를 이어 이룬 구멍
6) 주로 전복을 따는 데 쓰는 도구. 자루의 끝을 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말총으로 만든 끈을 달아 놓는다.
7) 물질을 가장 잘하는 해녀로 존경과 대우를 받는다.
8) ‘물질을 하다가 배에 올라 낳은 아기’를 일컫는 말
▲ 안녕을 기원하는 잠수굿 장비 ⓒ성기낭
▲ 해녀의 쉼터 불턱 ⓒ성기낭
▲ 재현해 놓은 해녀 작업장 ⓒ성기낭
▲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녀의 바다 ⓒ성기낭
바다를 닮은 사람들 - 제주 해녀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주 해녀 어업은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기계 장치 없이 맨몸으로 수심 10m 내외를 오가며, ‘물질’이라는 특수 노동을 이어온 제주 해녀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 정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그런 해녀가 제주에 가장 많고, 제주에서 비롯되어 각지로 퍼졌다는 의미에서 '제주 해녀'로 구분지어 부른다.
제주 해녀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거 제주 경제의 주역이었고, 강인한 여성의 상징이면서도, 그 고되고 팍팍한 일상은 후대에게 권할 만한 자산이 될 수 없었다. 고령의 해녀들을 끝으로 한때 그 맥이 끊기는 듯 했지만, 제주 해녀들의 원초적 어로 방식과 동료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정신, 해녀들의 신앙과 의례 등 독특한 삶의 방식이 큰 관심을 받으면서, 최근 해녀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2018년부터 매해 9월 셋째 주 토요일을 해녀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해녀 축제도 올해로 12번째를 맞았다. 가까운 곳에 제주 해녀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끄는 곳이 있다하여 발길을 옮긴다.
▲ 해녀 공동체 관련 전시물 ⓒ성기낭
해녀의 삶을 담은 한 끼 - '해녀의 부엌'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동쪽으로 10여 분, 눈앞에 그림 같은 우도가 펼쳐진 종달리 바닷가에서 ‘해녀의 부엌’을 만난다. 여느 바닷가 동네마다 하나쯤 있을 법한 이 공간은 20여 년 전 생선을 경매하던 활선어 위판장으로 지어진 곳이다. 판매가 주춤해 문을 닫은 후 어둡고 인적이 드문 창고로 방치되던 이곳이 제주 해녀 다이닝 공간으로 다시 생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의 어촌계 해녀들과 청년 예술인들의 진지한 고민 덕분이었다.
“저는 이곳 종달리 출신이에요. 고등학교까지는 제주에서 보냈고 대학교를 육지로 갔지요. 어린 시절부터 해녀 삼춘들을 이웃으로, 친척으로 뵙다 보니까 해녀 문화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해녀 삼춘들의 주 생산물이 뿔소라인데 70%가 일본으로 수출되는 바람에 그간 국내 소비는 너무 적었어요. 그래서 제주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브랜드화 해서 고령화가 진행중인 해녀들의 소득 창출에 도움이 되고자 이 공간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_ 해녀의부엌 대표 김하원
▲ 우도가 내다보이는 해녀의 부엌 앞마당 ⓒ성기낭
▲ '해녀의 부엌' ⓒ성기낭
제주 해녀의 정성스러운 삶을 보고 듣고 맛보다
김하원 대표는 제주 해녀 삼촌들을 단순히 보여주기 식이 아닌, 이들의 삶과 문화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어 늘 아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전공인 연기를 접목하여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제주 해녀 삼춘들의 삶을 꾸밈없이 담담히 풀어내고자 한다. 크게 변형하지 않은 공간에서 해녀들의 소품을 이용해 눈앞에서 펼치는 공연은 방문객들을 금세 몰입하게 한다. 짧은 공연이지만 제주 해녀의 삶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공연이 끝나면 88세 최고령 권영희 해녀가 직접 잡아온 해산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조금 더 젊은 67세 고봉순 해녀가 뿔소라 손질에서 내장 색깔로 암수 구분하는 방법, 해산물 군소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해녀 삼춘들한테 군소가 단연 인기 1위인 이유, 제주 잔칫상에는 군소가 절대 빠지지 않는 이유 등을 알려 준다. 제주 사람이면서도 그 맛깔난 이야기에 곧장 빠져든다. 관광객들에게는 더 말해 무엇할까!
▲ 공연 '어멍이 해녀' ⓒ'해녀의 부엌'
▲ 고봉순 해녀의 해산물 이야기 ⓒ성기낭
해녀들의 이야기 시간이 끝나면 드디어 해녀의 밥상이 차려진다. 그때그때 해녀 삼촌들이 채취해오는 재료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 제주의 바람과 물과 햇빛을 담뿍 담은 신선한 재료로 종달리 해녀 삼춘들이 직접 요리를 해준다. 톳흑임자죽을 비롯해 견과류 톳밥에 뿔소라 꼬지, 군소 샐러드, 성게 미역국과 빙떡, 갈치조림과 돼지고기 수육, 온갖 야채쌈꽃 등,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해녀 삼촌들의 실감나는 이야기가 재료마다 들어차서일까? 메뉴 하나하나의 정성된 맛을 충분히 음미하는 방문객들의 얼굴에 만족감이 넘친다.
마음까지 풍족한 한 끼를 먹고 나면 마지막 순서로 해녀 인터뷰가 이어진다. 식사가 끝날 즈음 질문지를 미리 받은 최고령 권영희 해녀님이 직접 답변해주신다. 해녀가 되고 싶다는 어린 꼬마의 질문에 “너무 어려워서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특별한 노하우가 있냐는 질문에는 “그런 건 없어. 그냥 열심히 하는 거야. 먹고 살려니까. 아이들은 키워야 되고. 그러니까 한 거지.”와 같이 조금은 투박하지만 진솔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듣고 나니 외려 제주 해녀의 고단한 삶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 해녀가 직접 차리는 맛있고 정성스러운 한 끼 음식 ⓒ성기낭
▲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해녀들 ⓒ성기낭
제주 해녀의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다
“다행히 직년 12월에 개관한 이후 줄곧 만석이 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하죠. 9월 15일부터 한 달간 리모델링을 하고 10월에 다시 뵐 예정이에요. 크게 달라지는 건 없고 현재 주말 컨텐츠를 평일까지 확장하려니까 공연 무대 등을 조금 손보는 정도입니다. 제주에는 이런 유휴 공간들이 많은데 그곳을 ‘해녀의 부엌’처럼 제주 해녀의 삶과 독특한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는 공간으로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 나가고 싶어요. 해녀 분들에게는 응원이 되고 우리 청년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런 공간이 되도록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야지요.”
_ '해녀의 부엌' 대표 김하원
한 순간 방심이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에 물질은 언제나 신중할 수밖에 없다. 바다에 해산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도 바다는 늘 해녀의 숨만큼만 허락한다.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절제의 삶! 말 못할 어려운 작업 환경 속에서도 공동 작업을 하고 소득을 공동으로 나누는 나눔과 배려의 공동체 문화! 자연과 공존하며 삶을 일구어 온 제주 해녀 문화의 진면목이 현재 우리들 삶의 모습 속에 더욱 우뚝하다.
제주어에 ‘배지근하다’는 말이 있다. ‘묵직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는 의미이다. 해녀의 부엌이 애초에 가졌던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를 진솔하게 알리고 싶다’는 그 묵직함을 끝까지 잊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다양한 재미와 감동의 감칠맛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야말로 배지근한 제주 해녀 복합문화공간으로 마을의 해녀 삼춘들과 청년들의 낡은 듯 신선한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자맥질하길 응원한다.
▲ '해녀의 부엌' 전 스텝의 인사 ⓒ성기낭
○ 공간 정보
*제주 해녀박물관
주소 :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관람 시간 : 09:00 ~ 18:00
매표시간 : 09:00 ~ 17:00
어린이해녀관 : 09:00 ~ 17:00
휴관일 : 1월1일, 설날, 추석,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 성인(25~64세) 개인1,100원 단체 800원 / 청소년(13~24세) 및 군인 개인 500원 단체 300원
*해녀의 부엌(9월 현재)
주소 :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 해안로 2265
운영 : 매주 금,토,일 타임제 -1부 12:00 -2부 17:30(러닝타임 약 100분,예약제)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아이들과 책으로 만나며 동화에 나옴직한 캐릭터 연구에 홀로 낄낄거리길 즐긴다. 언젠가 이 캐릭터들이 이야기 속을 휘저을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고 또 의심하기를 반복한다. 책의 어느 한 지점, 아이들과 함께 빵 터지는 그 유쾌한 순간의 행복감에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호기심 많은 어른이다. 뒤늦게인문에 스며든 호기심을 한껏 채울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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