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 내부는 평범했다. 큼지막한 기둥이 들어서 있는 걸 보니 건물의 대략적인 나이가 짐작되었다. 평범함을 멀리하고 과감하게 화려함을 선택한 듯하다. '우주'와 '로봇', '바다'라는 거시적인 방제를 붙여 진귀한 것들을 잔뜩 넣어 놓았다. 이에 무덤덤한 사람들은 적어도 건물의 역사만큼 나이가 있을 것이다.
▲ 과학교육원의 수많은 수상 내역 ⓒ강태호
춤추는 로봇보다 신기했던 건 한쪽 벽에 붙은 낡은 게시판이었다. 여기에는 1965년부터 2000년까지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수많은 사람의 얼굴과 이름이 있었다. 학생과 더불어 과학교사까지 다채로운 연구주제로 창의성을 인정받은 것.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 우주과학실 입구 ⓒ강태호
▲ 지구와 달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모형 ⓒ강태호
‘우주과학실’에는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광활한 은하계와 이름이 생소한 별자리, 또 두 번째 지구를 찾으려 했던 모형 우주선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함께 견학 온 선생님은 질문을 받느라 바쁘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태양은 어디에 있어요?’ ‘우주는 얼마나 커요?’ ‘우주선은 얼마에요?’ 등 엉뚱한 질문을 쏟아냈다. 이 질문에 시원스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본 질문이지만 왜 아무도 그 답을 찾지 않았을까.
한 아이는 손을 들며 우주인이 되겠다고 큰소리 쳤다. 옆에 있던 친구는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우주인은 절대 못된다며 비아냥거렸다. 아이들의 티 없는 농담에 과학실 내부에 웃음꽃이 폈다. 내심 부러웠다. 호기심 많을 나이에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특별한 일이다. 학창시절 과학관에 조금 더 자주 왔더라면, ‘통장 잔고’에 연연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모형 우주 로켓, 태극마크가 그려진 나로호에 시선이 쏠린다. ⓒ강태호
호기심은 창의력의 바탕이다. 어릴 적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성년이 되어도 어떤 분야에서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가리키는 우주 로켓이 이를 증명한다. 로켓을 제작한 사람들은 분명 유년시절의 호기심을 간직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에디슨만큼 지겨운 실험을 반복하며 자신만의 행성을 찾아간 ‘철학자’이자 ‘탐험가’다.
‘아폴로11호’, ‘컬럼비아호’ 등 유명한 우주 탐사선은 많다. 개인적으로 ‘디스커버리호’에 끌린다. 우주 탐사선에 관한 선생님의 설명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귀동냥했다. 구소련의 인공위성 프로젝트인 스푸트니크 대신 1969년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1930-2012)의 달 착륙 내용을 먼저 설명했다. 동서 냉전체제 속 우주 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뒤진 미국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아폴로11호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당시 한화로 약 100조 원을 투입한 대규모 프로젝트. 당시 여러모로 인류에 큰 충격을 준 대사건이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계기로, 인류의 우주에 대한 상상의 크기는 비약적으로 커졌다.
▲ 미래탐험선 입구,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공간 ⓒ강태호
선생님은 아폴로11호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나로호’를 가리켰다. 섭섭하게도 디스커버리호를 지나쳐버렸다. 영화 <마션>이나 <인터스텔라> 같은 명작이 탄생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개척자 디스커버리호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닌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끝가지 가고 싶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당시 쿡이 운영했던 배의 이름이 ‘디스커버리’였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쿡이 타던 배의 이름을 빌어 디스커버리호의 이름을 지은 것. 우주 곳곳을 항해하겠다는 NASA의 의지가 담겨 있다.
디스커버리호의 첫 비행은 1984년 8월 30일.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해 물자를 전달하고 우주를 유영하며 정거장을 보수하는 임무를 맡았다. 결과는 대성공. 자신감을 얻은 개발자들은 이후 수십 번을 오가며 항해를 멈추지 않았다. 타국의 우주비행사도 태워 보냈으며, 통신위성도 쏘아 올렸다. 이 위성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새로운 소식도 안방에 신속히 전달할 수 있었다.
참고로 디스커버리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990년, ‘허블 우주 망원경’을 지구 상공 610km에 올려놓았던 일이다. 이를 통해 태양계 너머 은하계의 다른 영역도 관찰할 수 있었고, ‘슈퍼 지구’의 존재도 탐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스커버리호는 현재 30년의 여행을 마친 뒤 워싱턴DC 근처의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서 휴식 중이다. 우주인과 우주선 개발자를 꿈꾸는 많은 청소년에게 영감을 주었던 디스커버리호. 설명을 듣던 아이들도 이 위대한 개척자의 이야기를 꼭 알았으면 했다.
▲ 천체 관측실 내부에 비치된 허블 우주 망원경의 실사용 모델 일부 ⓒ강태호
▲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촬영한 갖가지 사진 ⓒ강태호
우주선 이야기가 꽤 재밌었나 보다. 아폴로호와 나로호 이야기를 듣고 우주선을 타보고 싶다며 손을 드는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은 비슷한 분위기를 내고자 모형 우주선실과 천체 관측실로 향했다.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천체 투영기가 주는 웅장함을 느꼈을 것이다. 마음속에 우주를 담은 그들의 호기심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
아이들이 반드시 우주를 알아야 한다거나, 위대한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세계를 느끼고자 과학관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호기심이 점점 커지다 보면 자신이 개척해야 할 길이 정해진다. 아인슈타인도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이전에 지극히 단순한 호기심이 자신을 이끌었다고 한다.
"우주에 대한 깊은 생각이 나에겐 하나의 해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존경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비밀을 밝히는 일을 추구하면서 내면의 자유와 평안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_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생각』 중에서
관람이 끝난 뒤, 교통이 불편한 이곳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유를 알았다. 자신의 아이가 훌륭한 과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부모의 기대감, 또는 아이들 스스로 장차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까지, 아무래도 좋다. 잃어버린 호기심을 자극하고 창의력을 일깨워주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내가 항해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아폴로호와 디스커버리호를 보면서 잃어버린 호기심을 되찾고 싶었다. 우주로 날아가고픈 열망은 이제 없지만 마음이 닿는 곳으로 위대한 항해를 할 생각이다. 30년 동안 디스커버리호에 승선했던 모든 우주인이 지었을 행복하고 기대에 찬 표정을 나도 갖고 싶다. 그 끝에는 항상 상상하는 것 이상이 있었다.
강태호는 인문학집필연구소 한주서가 대표 작가이다. 제10회 해양문학상에 입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입상작인 중편소설 <바다 몬스터>는 문장 아래 문장을 숨겨놓았다며 호평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천 만 영화 속 부산을 걷는다》가 있으며 기획출판, 첨삭, 글쓰기 강의 등으로 ‘글’의 매력을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또한 관광, 인권, 문화제 등 공기관에서 주관하는 SNS 기자단에 참여하며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자 노력 중이다. 망각된 역사를 알리려는 의지가 강해 인문학적으로 어떤 해석을 풀어낼지 앞으로가 기대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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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항해를 시작하며
부산광역시 과학교육원
인문쟁이 강태호
2019-10-04
▲ 부산광역시 과학교육원 전경 ⓒ강태호
▲ 80년대 건축물의 상징인 권위주의적 기둥이 눈에 띈다. ⓒ강태호
과학관 내부는 평범했다. 큼지막한 기둥이 들어서 있는 걸 보니 건물의 대략적인 나이가 짐작되었다. 평범함을 멀리하고 과감하게 화려함을 선택한 듯하다. '우주'와 '로봇', '바다'라는 거시적인 방제를 붙여 진귀한 것들을 잔뜩 넣어 놓았다. 이에 무덤덤한 사람들은 적어도 건물의 역사만큼 나이가 있을 것이다.
▲ 과학교육원의 수많은 수상 내역 ⓒ강태호
춤추는 로봇보다 신기했던 건 한쪽 벽에 붙은 낡은 게시판이었다. 여기에는 1965년부터 2000년까지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수많은 사람의 얼굴과 이름이 있었다. 학생과 더불어 과학교사까지 다채로운 연구주제로 창의성을 인정받은 것.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 우주과학실 입구 ⓒ강태호
▲ 지구와 달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모형 ⓒ강태호
‘우주과학실’에는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광활한 은하계와 이름이 생소한 별자리, 또 두 번째 지구를 찾으려 했던 모형 우주선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함께 견학 온 선생님은 질문을 받느라 바쁘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태양은 어디에 있어요?’ ‘우주는 얼마나 커요?’ ‘우주선은 얼마에요?’ 등 엉뚱한 질문을 쏟아냈다. 이 질문에 시원스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본 질문이지만 왜 아무도 그 답을 찾지 않았을까.
한 아이는 손을 들며 우주인이 되겠다고 큰소리 쳤다. 옆에 있던 친구는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우주인은 절대 못된다며 비아냥거렸다. 아이들의 티 없는 농담에 과학실 내부에 웃음꽃이 폈다. 내심 부러웠다. 호기심 많을 나이에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특별한 일이다. 학창시절 과학관에 조금 더 자주 왔더라면, ‘통장 잔고’에 연연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모형 우주 로켓, 태극마크가 그려진 나로호에 시선이 쏠린다. ⓒ강태호
호기심은 창의력의 바탕이다. 어릴 적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성년이 되어도 어떤 분야에서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가리키는 우주 로켓이 이를 증명한다. 로켓을 제작한 사람들은 분명 유년시절의 호기심을 간직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에디슨만큼 지겨운 실험을 반복하며 자신만의 행성을 찾아간 ‘철학자’이자 ‘탐험가’다.
‘아폴로11호’, ‘컬럼비아호’ 등 유명한 우주 탐사선은 많다. 개인적으로 ‘디스커버리호’에 끌린다. 우주 탐사선에 관한 선생님의 설명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귀동냥했다. 구소련의 인공위성 프로젝트인 스푸트니크 대신 1969년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1930-2012)의 달 착륙 내용을 먼저 설명했다. 동서 냉전체제 속 우주 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뒤진 미국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아폴로11호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당시 한화로 약 100조 원을 투입한 대규모 프로젝트. 당시 여러모로 인류에 큰 충격을 준 대사건이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계기로, 인류의 우주에 대한 상상의 크기는 비약적으로 커졌다.
▲ 미래탐험선 입구,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공간 ⓒ강태호
선생님은 아폴로11호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나로호’를 가리켰다. 섭섭하게도 디스커버리호를 지나쳐버렸다. 영화 <마션>이나 <인터스텔라> 같은 명작이 탄생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개척자 디스커버리호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닌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끝가지 가고 싶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당시 쿡이 운영했던 배의 이름이 ‘디스커버리’였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쿡이 타던 배의 이름을 빌어 디스커버리호의 이름을 지은 것. 우주 곳곳을 항해하겠다는 NASA의 의지가 담겨 있다.
디스커버리호의 첫 비행은 1984년 8월 30일.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해 물자를 전달하고 우주를 유영하며 정거장을 보수하는 임무를 맡았다. 결과는 대성공. 자신감을 얻은 개발자들은 이후 수십 번을 오가며 항해를 멈추지 않았다. 타국의 우주비행사도 태워 보냈으며, 통신위성도 쏘아 올렸다. 이 위성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새로운 소식도 안방에 신속히 전달할 수 있었다.
참고로 디스커버리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990년, ‘허블 우주 망원경’을 지구 상공 610km에 올려놓았던 일이다. 이를 통해 태양계 너머 은하계의 다른 영역도 관찰할 수 있었고, ‘슈퍼 지구’의 존재도 탐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스커버리호는 현재 30년의 여행을 마친 뒤 워싱턴DC 근처의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서 휴식 중이다. 우주인과 우주선 개발자를 꿈꾸는 많은 청소년에게 영감을 주었던 디스커버리호. 설명을 듣던 아이들도 이 위대한 개척자의 이야기를 꼭 알았으면 했다.
▲ 천체 관측실 내부에 비치된 허블 우주 망원경의 실사용 모델 일부 ⓒ강태호
▲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촬영한 갖가지 사진 ⓒ강태호
우주선 이야기가 꽤 재밌었나 보다. 아폴로호와 나로호 이야기를 듣고 우주선을 타보고 싶다며 손을 드는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은 비슷한 분위기를 내고자 모형 우주선실과 천체 관측실로 향했다.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천체 투영기가 주는 웅장함을 느꼈을 것이다. 마음속에 우주를 담은 그들의 호기심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
아이들이 반드시 우주를 알아야 한다거나, 위대한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세계를 느끼고자 과학관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호기심이 점점 커지다 보면 자신이 개척해야 할 길이 정해진다. 아인슈타인도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이전에 지극히 단순한 호기심이 자신을 이끌었다고 한다.
"우주에 대한 깊은 생각이 나에겐 하나의 해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존경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비밀을 밝히는 일을 추구하면서 내면의 자유와 평안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_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생각』 중에서
관람이 끝난 뒤, 교통이 불편한 이곳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유를 알았다. 자신의 아이가 훌륭한 과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부모의 기대감, 또는 아이들 스스로 장차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까지, 아무래도 좋다. 잃어버린 호기심을 자극하고 창의력을 일깨워주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내가 항해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아폴로호와 디스커버리호를 보면서 잃어버린 호기심을 되찾고 싶었다. 우주로 날아가고픈 열망은 이제 없지만 마음이 닿는 곳으로 위대한 항해를 할 생각이다. 30년 동안 디스커버리호에 승선했던 모든 우주인이 지었을 행복하고 기대에 찬 표정을 나도 갖고 싶다. 그 끝에는 항상 상상하는 것 이상이 있었다.
무엇일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 참고 자료
마지막 여행 떠나는 디스커버리호 / 더 사이언스타임즈 기사 / 링크
허블 우주 망원경 / 위키백과 / 링크
아폴로11호 / 네이버 지식백과 / 링크
도서 『아인슈타인의 생각』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공간 정보
주소 : 부산 연제구 토곡로 66 (부산광역시 과학교육원)
운영시간 : 10:00 ~ 17:30 * 지정 휴무일 제외
○ 관련링크
홈페이지 : http://www.bise.go.kr
오시는길 : http://www.bise.go.kr/sub.php?MenuID=358
○ 기타
연락처: 051-750-1217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강태호는 인문학집필연구소 한주서가 대표 작가이다. 제10회 해양문학상에 입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입상작인 중편소설 <바다 몬스터>는 문장 아래 문장을 숨겨놓았다며 호평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천 만 영화 속 부산을 걷는다》가 있으며 기획출판, 첨삭, 글쓰기 강의 등으로 ‘글’의 매력을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또한 관광, 인권, 문화제 등 공기관에서 주관하는 SNS 기자단에 참여하며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자 노력 중이다. 망각된 역사를 알리려는 의지가 강해 인문학적으로 어떤 해석을 풀어낼지 앞으로가 기대된 작가이다.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위대한 항해를 시작하며'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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