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오는 친구가 묻는다. 이번 영화에서 무엇이 좋았냐고. 머뭇거리는 나를 대신해 주연 배우의 연기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감독의 연출을 천재적 재능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화면의 구성을 놓고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친구는 어릴적 영화의 꿈을 꾸다 이제는 직장에서 40대의 후반전을 보내고 있다. 들뜬 그에게 물었다.
"너는 만약 영화 일을 하게 된다면 무엇이 되고 싶어?"
"주연 배우"
"너도 배우지?"
"나는 저 영화에서 박력 있게 문을 여는 '덜컹'이 되고 싶어. 첫사랑을 향해 다가가는, 떨리는 '뚜벅뚜벅'이 되고 싶어"
친구는 미동도 없이 나를 멀거니 바라보다 박장대소했다.
"너는 영화 일을 하다보니 엉뚱해졌구나! 푸하하!"
영화 일을 오래 하다보면 관객의 눈보다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스크린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화면 뒤에 숨겨진 많은 이들의 땀방울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저 독특한 문소리는 어떻게 낸 걸까? 현실에서 보지 못한 괴생명체가 움직이는 소리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그것은 관객이 잘 알 수 없는 영화의 숨소리와 같은 것이다. 스크린에서 듣는 80%의 소리가 촬영장이 아닌 밀폐된 녹음실에서 창조된다. 소리를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 말 그대로 ‘소리 배우’다. 영화의 후반 작업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아티스트(예술가)란 직함으로 붙는다. '폴리아티스트'1가 그들이다.
1.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
영화 속에서 사람 목소리와 음악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진짜처럼 만드는 일을 하는 영화 음향분야 전문가. 폴리 아티스트의 '폴리'는 할리우드 효과음의 전설로 불리는 ‘잭 폴리(Jack Foley)’에서 유래했다. 잭 폴리는 1930년대부터 할리우드 영화의 효과음을 만들었고, 발소리만으로 캐릭터를 표현해 내는 등 천재적인 재능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2002년, 변영주 감독의 영화 <밀애>에서 여주인공의 섬세한 심리가 담긴 소리를 만들기 위해 한 젊은이가 녹음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두려웠다. 폴리 아티스트로서 처음 맡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하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검은 화면에 박힌 본인의 이름을 보고 청년은 희열을 느꼈다.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비록 영화 속이지만 영원히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끌림이 몸을 달뜨게 했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밀애'를 볼 때 발소리를 만들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한강 이남 유일한 폴리 녹음실인 '모노폴리 사운드웍스'의 정성권 대표 이야기다.
▲ 정성권 모노폴리 사운드웍스 대표 ⓒ최근모
정성권 모노폴리 사운드웍스 대표 인터뷰
정성권 폴리 아티스트
2002년 <밀애>를 시작으로 <곡성>, <마이웨이>, <임금님의 사건수첩>, <보통사람>, <불한당>, <사자>, <변신> 등 200여 편의 상업영화 폴리 작업을 맡으며 폴리 아티스트로서 활발히 작업중이다. 2013년 '모노폴리 사운드웍스'라는 폴리 녹음실을 부산에 열었다.
Q. 부산에서 유일한 폴리 녹음실입니다. 언제 회사를 만드셨습니까?
2013년입니다. 그 전에는 프리랜서로 서울에서 폴리 작업을 했습니다. 2001년 남양주시에 있던 영화진흥위원회 폴리실에서 선배들에게 폴리라는 기술을 도제식으로 사사 받았습니다. 당시에 폴리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습니다. 교재도 없고 가르쳐 주는 곳도 없었습니다. 너무 배우고 싶어서 무작정 찾아갔죠. 2013년에 결혼을 하고 부산에서 폴리 녹음실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한강 이남 지역에선 저희가 유일한 폴리 녹음실입니다. 전국적으로는 2번째였고요. 인터넷의 발달로 공간의 제약이 없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화의 후반 작업인 폴리와 CG는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부산에서 작업하고 파일로 전송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폴리 작업한 파일을 웹하드로 보내는 것과 부산에서 보내는 것에 차이가 없으니까요.
▲ 모노폴리 스튜디오 내부 ⓒ최근모
Q. 모노폴리가 소리를 만드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영화에서 나는 소리를 원래부터 있었던 소리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움’이 우선이죠. 폴리로 만들기 힘든 소리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저 소리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지?'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폴리 아티스트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예상 외의 대답일 수 있는데... 소리를 만들 때입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순간적인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쾌감을 느낍니다. 성취감 같은 것이 밀려옵니다. 창작자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 폴리 아티스트는 몸의 액션을 통해 소리를 만들기에 늘 '바쁘다' ⓒ최근모
Q. 좋은 소리를 만드는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저희는 배우가 연기한 화면을 보고 그에 맞춰 소리를 만듭니다. 배우는 카메라를 보고 연기를 합니다. 폴리 아티스트는 배우가 연기한 영상을 보고 도구와 몸의 액션을 통해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배우의 감정을 빨리 캐치해야 합니다. 거기에 몰입해서 배우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 나와야 좋은 소리가 생겨납니다. 단순히 그런 척 한다면 좋은 소리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배우가 느끼는 감정과 연기가 폴리 아티스트의 작업과 바로 연결되어 있죠.
▲ 배우가 영화에서 신은 신발에 따라 다양한 소리가 난다 ⓒ최근모
Q. 17년을 폴리 아티스트로 일해 왔습니다. 어떤 직업적 어려움을 느끼셨습니까?
몇 해 전,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서울의 후배 폴리 아티스트와 얘기를 하다 보니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더군요. 한 편을 끝내고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때 '다시 시작'이라는 중압감이 작용하나 봅니다. 내가 이번 작업에서 소리를 잘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런 공포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200여 편의 작업을 해왔어도 두려움은 똑같습니다. 그만큼 더 좋은 소리에 대한 집착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나 봅니다. '이번 소리 좋은데!' 이런 평을 들으면 한순간에 그런 고통도 보람과 성취감으로 탈바꿈합니다. 그 맛에 계속 폴리 작업을 하는 것 같습니다.
▲ 무사에게 검이 있다면 폴리 아티스트에게는 녹음 마이크가 있다 ⓒ최근모
Q. 폴리 아티스트로서 바람이 있다면요?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는 1960년에 개봉을 했습니다. 59년 전의 작품이지만 요즘도 영화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롭습니다. 임권택 감독님이 일흔 후반에 연출한 '화장'을 보셨는지요? 저는 그 작품을 임감독님의 이름을 지우고 보면 젊은 감독이 연출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선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제 바람도 그런 것입니다. 일반인은 경험 못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흔적 같은 것 말입니다. 2002년 변영주 감독님의 <밀애>를 시작으로 폴리 아티스트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엔딩 타이틀에 제 이름 석자가 남아 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42년이 되어도, 미래의 스무 살의 청춘들이 그 작품을 볼 수도 있겠지요?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기에 사라지지만 영화는 저보다 더 오랫동안 남을 겁니다. 좋은 작품에 제 흔적을 남기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 영화 속 배우의 감정에 몰입하여 소리를 만든다 ⓒ최근모
Q. 모노폴리의 동료와 기억에 남는 고객을 소개해주세요.
폴리 아티스트는 혼자서는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합이 잘 맞는 숙달된 레코딩 엔지니어가 있어야 합니다. 저희 회사의 최완규 실장님이 제겐 그런 분입니다. 제일 잘 통하고 이해를 많이 해주십니다. 한마디로 합이 잘 맞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게 무엇보다 큰 장점입니다.
▲ 모노폴리 사운드웍스 최완규 실장
고객으로는 <곡성>의 나홍진 감독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후반 사운드 회의를 몇 번이나 가졌습니다. 그런 경우는 드물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작업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꼼꼼하시고 많은 것을 요구하셨죠. 어려운 작업이라 힘들었지만 성취감이 컸던 작품입니다. 배울 게 많은 감독님이십니다.
Q. 12월까지 상업영화 작업들이 이어진다고 들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저예산 독립영화나 학생 단편영화 작업도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최실장님과 예전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일이 없어서 힘든 것보다 일이 많아서 힘든 게 낫다'고 말입니다. 몸은 피곤해도 아침에 나올 때 내 일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애니메이션, 광고, 게임에도 폴리는 필요합니다. 폴리가 쓰이는 영역에는 언제든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만큼 폴리 일은 많은데 인력이 없어서 맡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폴리 시장은 국내시장도 충분하지만 해외시장에도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 영화에서 쓰인 폴리를 들어보면 저희 모노폴리가 만드는 소리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폴리는 국가나 지역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일본의 폴리 비용을 비교해보면 국내 시장도 충분히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로 폴리 시장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성권 폴리 아티스트가 작업한 한국영화 ⓒ최근모
Q. 국내 대표 폴리 아티스트가 10명 내외라고 들었습니다. 젊은 후배 폴리 아티스트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국내 학교나 교육기관에 전문적인 폴리 아티스트를 가르치는 곳이 없습니다. 제가 처음 배울 때가 2001년이었습니다. 그전에도 폴리를 하는 선배님들은 계셨습니다. 단지 배울 곳이 없었기에 저도 남양주에 있던 영화진흥위원회에 무작정 찾아가 도제식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환경이 젊은 후배 폴리 아티스트의 양성을 더디게 했습니다. 지금 폴리 시장은 더욱 커졌는데 실제로 이 일을 하는 폴리 아티스트는 너무 적습니다. 저희도 일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지만 그것을 소화해줄 인력이 없습니다. 국내 폴리 시장과 동아시아 시장의 일을 맡기 위해선 무엇보다 젊은 폴리 아티스트 인력을 교육하고 양성해야 합니다. 대학생 일자리 창출에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폴리 시장입니다.
▲ 17년차 폴리 아티스트와 폴리를 배우는 학생은 한 공간에서 소리로 이어진다 ⓒ최근모
Q. 2019년 이후, 정성권 폴리 아티스트의 꿈은 무엇입니까?
동남아시아에서 폴리하면 모노폴리를 떠올리게 하고 싶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유명 영화에 폴리로서 단독 크레딧을 올리는 것입니다. 부산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역 대학생에게 취업의 문이 좁습니다. 동아시아 폴리 시장에 진출하여 부산 청년들에게 폴리 아티스트로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제 꿈입니다. 부산은 폴리와 CG 부문에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물리적 제약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영화 사운드 후반 작업의 성장 가능성이 큰 곳이 부산입니다. 새로운 폴리 시장이 열리면 부산 지역 대학생 취업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공적 부문에서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전문 폴리 녹음시설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사운드 후반 작업 인력양성을 전문적으로 하게 된다면 국내 시장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시장의 폴리 수요를 부산에서 유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부산영상위원회 '맞춤형 영화영상 전문인력 양성 워크숍Ⅱ 사운드 후반 작업 실무과정'에 참가한 부산 지역 대학생들과 함께 ⓒ최근모
Q. 폴리 아티스트가 꿈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영화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에서 찾지 마십시오. 영화만큼 더 좋은 교본은 없습니다. 그 안에 담긴 소리를 유심히 듣고 분석하기 바랍니다. ‘어떻게 저런 소리를 만들었을까?’, ‘나라면 저 소리를 어떻게 만들까?’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늘 말하지만 모든 답은 영화 안에 있습니다. 저는 처음 폴리를 배울 때, 지하철에서 걸어 다니는 시민들의 발소리를 유심히 들었습니다. 특이한 구두를 신고 가는 분이 내는 발걸음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관찰합니다.
최완규 실장은 어떤 곳이든 공간에 들어가면 손뼉을 쳐본다고 한다. 되돌아오는 공진 소리를 통해 공간의 구조를 유추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부창부수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끝없이 수련해야 한다. 영화의 숨소리를 만드는 그들을 통해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소리를 듣지 못했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소리 말이다.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심장박동의 울림이 정성권 폴리 아티스트의 손바닥에 놓여있다. 그의 설레는 소리의 꽃이 부산에 활짝 피기를 바란다.
영화의 숨소리를 창조하는 공간, 모노폴리
폴리 아티스트를 만나다
인문쟁이 최근모
2019-09-24
▲ 모노폴리 사운드웍스에서 소리를 만든 한국영화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친구가 묻는다. 이번 영화에서 무엇이 좋았냐고. 머뭇거리는 나를 대신해 주연 배우의 연기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감독의 연출을 천재적 재능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화면의 구성을 놓고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친구는 어릴적 영화의 꿈을 꾸다 이제는 직장에서 40대의 후반전을 보내고 있다. 들뜬 그에게 물었다.
"너는 만약 영화 일을 하게 된다면 무엇이 되고 싶어?"
"주연 배우"
"너도 배우지?"
"나는 저 영화에서 박력 있게 문을 여는 '덜컹'이 되고 싶어. 첫사랑을 향해 다가가는, 떨리는 '뚜벅뚜벅'이 되고 싶어"
친구는 미동도 없이 나를 멀거니 바라보다 박장대소했다.
"너는 영화 일을 하다보니 엉뚱해졌구나! 푸하하!"
영화 일을 오래 하다보면 관객의 눈보다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스크린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화면 뒤에 숨겨진 많은 이들의 땀방울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저 독특한 문소리는 어떻게 낸 걸까? 현실에서 보지 못한 괴생명체가 움직이는 소리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그것은 관객이 잘 알 수 없는 영화의 숨소리와 같은 것이다. 스크린에서 듣는 80%의 소리가 촬영장이 아닌 밀폐된 녹음실에서 창조된다. 소리를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 말 그대로 ‘소리 배우’다. 영화의 후반 작업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아티스트(예술가)란 직함으로 붙는다. '폴리아티스트'1 가 그들이다.
1.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
영화 속에서 사람 목소리와 음악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진짜처럼 만드는 일을 하는 영화 음향분야 전문가. 폴리 아티스트의 '폴리'는 할리우드 효과음의 전설로 불리는 ‘잭 폴리(Jack Foley)’에서 유래했다. 잭 폴리는 1930년대부터 할리우드 영화의 효과음을 만들었고, 발소리만으로 캐릭터를 표현해 내는 등 천재적인 재능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2002년, 변영주 감독의 영화 <밀애>에서 여주인공의 섬세한 심리가 담긴 소리를 만들기 위해 한 젊은이가 녹음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두려웠다. 폴리 아티스트로서 처음 맡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하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검은 화면에 박힌 본인의 이름을 보고 청년은 희열을 느꼈다.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비록 영화 속이지만 영원히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끌림이 몸을 달뜨게 했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밀애'를 볼 때 발소리를 만들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한강 이남 유일한 폴리 녹음실인 '모노폴리 사운드웍스'의 정성권 대표 이야기다.
▲ 정성권 모노폴리 사운드웍스 대표 ⓒ최근모
정성권 모노폴리 사운드웍스 대표 인터뷰
정성권 폴리 아티스트
2002년 <밀애>를 시작으로 <곡성>, <마이웨이>, <임금님의 사건수첩>, <보통사람>, <불한당>, <사자>, <변신> 등 200여 편의 상업영화 폴리 작업을 맡으며 폴리 아티스트로서 활발히 작업중이다. 2013년 '모노폴리 사운드웍스'라는 폴리 녹음실을 부산에 열었다.
Q. 부산에서 유일한 폴리 녹음실입니다. 언제 회사를 만드셨습니까?
2013년입니다. 그 전에는 프리랜서로 서울에서 폴리 작업을 했습니다. 2001년 남양주시에 있던 영화진흥위원회 폴리실에서 선배들에게 폴리라는 기술을 도제식으로 사사 받았습니다. 당시에 폴리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습니다. 교재도 없고 가르쳐 주는 곳도 없었습니다. 너무 배우고 싶어서 무작정 찾아갔죠. 2013년에 결혼을 하고 부산에서 폴리 녹음실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한강 이남 지역에선 저희가 유일한 폴리 녹음실입니다. 전국적으로는 2번째였고요. 인터넷의 발달로 공간의 제약이 없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화의 후반 작업인 폴리와 CG는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부산에서 작업하고 파일로 전송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폴리 작업한 파일을 웹하드로 보내는 것과 부산에서 보내는 것에 차이가 없으니까요.
▲ 모노폴리 스튜디오 내부 ⓒ최근모
Q. 모노폴리가 소리를 만드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영화에서 나는 소리를 원래부터 있었던 소리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움’이 우선이죠. 폴리로 만들기 힘든 소리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저 소리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지?'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폴리 아티스트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예상 외의 대답일 수 있는데... 소리를 만들 때입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순간적인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쾌감을 느낍니다. 성취감 같은 것이 밀려옵니다. 창작자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 폴리 아티스트는 몸의 액션을 통해 소리를 만들기에 늘 '바쁘다' ⓒ최근모
Q. 좋은 소리를 만드는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저희는 배우가 연기한 화면을 보고 그에 맞춰 소리를 만듭니다. 배우는 카메라를 보고 연기를 합니다. 폴리 아티스트는 배우가 연기한 영상을 보고 도구와 몸의 액션을 통해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배우의 감정을 빨리 캐치해야 합니다. 거기에 몰입해서 배우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 나와야 좋은 소리가 생겨납니다. 단순히 그런 척 한다면 좋은 소리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배우가 느끼는 감정과 연기가 폴리 아티스트의 작업과 바로 연결되어 있죠.
▲ 배우가 영화에서 신은 신발에 따라 다양한 소리가 난다 ⓒ최근모
Q. 17년을 폴리 아티스트로 일해 왔습니다. 어떤 직업적 어려움을 느끼셨습니까?
몇 해 전,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서울의 후배 폴리 아티스트와 얘기를 하다 보니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더군요. 한 편을 끝내고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때 '다시 시작'이라는 중압감이 작용하나 봅니다. 내가 이번 작업에서 소리를 잘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런 공포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200여 편의 작업을 해왔어도 두려움은 똑같습니다. 그만큼 더 좋은 소리에 대한 집착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나 봅니다. '이번 소리 좋은데!' 이런 평을 들으면 한순간에 그런 고통도 보람과 성취감으로 탈바꿈합니다. 그 맛에 계속 폴리 작업을 하는 것 같습니다.
▲ 무사에게 검이 있다면 폴리 아티스트에게는 녹음 마이크가 있다 ⓒ최근모
Q. 폴리 아티스트로서 바람이 있다면요?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는 1960년에 개봉을 했습니다. 59년 전의 작품이지만 요즘도 영화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롭습니다. 임권택 감독님이 일흔 후반에 연출한 '화장'을 보셨는지요? 저는 그 작품을 임감독님의 이름을 지우고 보면 젊은 감독이 연출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선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제 바람도 그런 것입니다. 일반인은 경험 못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흔적 같은 것 말입니다. 2002년 변영주 감독님의 <밀애>를 시작으로 폴리 아티스트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엔딩 타이틀에 제 이름 석자가 남아 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42년이 되어도, 미래의 스무 살의 청춘들이 그 작품을 볼 수도 있겠지요?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기에 사라지지만 영화는 저보다 더 오랫동안 남을 겁니다. 좋은 작품에 제 흔적을 남기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 영화 속 배우의 감정에 몰입하여 소리를 만든다 ⓒ최근모
Q. 모노폴리의 동료와 기억에 남는 고객을 소개해주세요.
폴리 아티스트는 혼자서는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합이 잘 맞는 숙달된 레코딩 엔지니어가 있어야 합니다. 저희 회사의 최완규 실장님이 제겐 그런 분입니다. 제일 잘 통하고 이해를 많이 해주십니다. 한마디로 합이 잘 맞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게 무엇보다 큰 장점입니다.
▲ 모노폴리 사운드웍스 최완규 실장
고객으로는 <곡성>의 나홍진 감독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후반 사운드 회의를 몇 번이나 가졌습니다. 그런 경우는 드물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작업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꼼꼼하시고 많은 것을 요구하셨죠. 어려운 작업이라 힘들었지만 성취감이 컸던 작품입니다. 배울 게 많은 감독님이십니다.
Q. 12월까지 상업영화 작업들이 이어진다고 들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저예산 독립영화나 학생 단편영화 작업도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최실장님과 예전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일이 없어서 힘든 것보다 일이 많아서 힘든 게 낫다'고 말입니다. 몸은 피곤해도 아침에 나올 때 내 일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애니메이션, 광고, 게임에도 폴리는 필요합니다. 폴리가 쓰이는 영역에는 언제든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만큼 폴리 일은 많은데 인력이 없어서 맡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폴리 시장은 국내시장도 충분하지만 해외시장에도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 영화에서 쓰인 폴리를 들어보면 저희 모노폴리가 만드는 소리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폴리는 국가나 지역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일본의 폴리 비용을 비교해보면 국내 시장도 충분히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로 폴리 시장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성권 폴리 아티스트가 작업한 한국영화 ⓒ최근모
Q. 국내 대표 폴리 아티스트가 10명 내외라고 들었습니다. 젊은 후배 폴리 아티스트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국내 학교나 교육기관에 전문적인 폴리 아티스트를 가르치는 곳이 없습니다. 제가 처음 배울 때가 2001년이었습니다. 그전에도 폴리를 하는 선배님들은 계셨습니다. 단지 배울 곳이 없었기에 저도 남양주에 있던 영화진흥위원회에 무작정 찾아가 도제식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환경이 젊은 후배 폴리 아티스트의 양성을 더디게 했습니다. 지금 폴리 시장은 더욱 커졌는데 실제로 이 일을 하는 폴리 아티스트는 너무 적습니다. 저희도 일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지만 그것을 소화해줄 인력이 없습니다. 국내 폴리 시장과 동아시아 시장의 일을 맡기 위해선 무엇보다 젊은 폴리 아티스트 인력을 교육하고 양성해야 합니다. 대학생 일자리 창출에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폴리 시장입니다.
▲ 17년차 폴리 아티스트와 폴리를 배우는 학생은 한 공간에서 소리로 이어진다 ⓒ최근모
Q. 2019년 이후, 정성권 폴리 아티스트의 꿈은 무엇입니까?
동남아시아에서 폴리하면 모노폴리를 떠올리게 하고 싶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유명 영화에 폴리로서 단독 크레딧을 올리는 것입니다. 부산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역 대학생에게 취업의 문이 좁습니다. 동아시아 폴리 시장에 진출하여 부산 청년들에게 폴리 아티스트로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제 꿈입니다. 부산은 폴리와 CG 부문에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물리적 제약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영화 사운드 후반 작업의 성장 가능성이 큰 곳이 부산입니다. 새로운 폴리 시장이 열리면 부산 지역 대학생 취업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공적 부문에서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전문 폴리 녹음시설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사운드 후반 작업 인력양성을 전문적으로 하게 된다면 국내 시장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시장의 폴리 수요를 부산에서 유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부산영상위원회 '맞춤형 영화영상 전문인력 양성 워크숍Ⅱ 사운드 후반 작업 실무과정'에 참가한 부산 지역 대학생들과 함께 ⓒ최근모
Q. 폴리 아티스트가 꿈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영화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에서 찾지 마십시오. 영화만큼 더 좋은 교본은 없습니다. 그 안에 담긴 소리를 유심히 듣고 분석하기 바랍니다. ‘어떻게 저런 소리를 만들었을까?’, ‘나라면 저 소리를 어떻게 만들까?’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늘 말하지만 모든 답은 영화 안에 있습니다. 저는 처음 폴리를 배울 때, 지하철에서 걸어 다니는 시민들의 발소리를 유심히 들었습니다. 특이한 구두를 신고 가는 분이 내는 발걸음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관찰합니다.
최완규 실장은 어떤 곳이든 공간에 들어가면 손뼉을 쳐본다고 한다. 되돌아오는 공진 소리를 통해 공간의 구조를 유추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부창부수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끝없이 수련해야 한다. 영화의 숨소리를 만드는 그들을 통해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소리를 듣지 못했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소리 말이다.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심장박동의 울림이 정성권 폴리 아티스트의 손바닥에 놓여있다. 그의 설레는 소리의 꽃이 부산에 활짝 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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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인문쟁이 5기]
반갑습니다. 가치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최작가입니다. 영화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과 전시를 좋아합니다.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스토리를 채굴하는 성실한 광부가 되겠습니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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