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도 더 된 고풍스러운 공간에 1980년대에 태어난 작가 5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젊은 작가들의 2019년 작품들은 현대적 사물을 소재로 삼았는데, 오랜 역사 속 공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감상하는 동안 관람객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느낀다.
이희준은 <비에이> 시리즈에서 눈 내리는 도시 풍경을 ‘추상화(abstraction)’하였다. 추상화란, 어떤 사물이나 문제에서 중요한 핵심 부분만을 추려내는 것을 말한다. 미술에서 추상화라고 부르는 그림도 비슷한 뜻을 지닌다. 사물이나 풍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본질을 점이나 선, 면, 또는 색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일컫는다. 만일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그릴 때, 어떤 이는 하얀 눈이 내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고, 이희준 작가처럼 선과 색으로 단순화하여 묘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시 풍경을 추상적으로 캔버스에 담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왼쪽 그림에서 오른쪽 그림으로 가면서 나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한다. 나무줄기, 가지, 잎 등의 구체적인 형태는 점점 없어진다. <꽃핀 사과나무>라는 제목을 알기 전에는 무엇을 그렸는지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나뭇가지가 뒤엉켜 뻗은 모습이 선으로 집약되어 있고, 맨 오른쪽 그림에서는 주로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표현되어 더욱 간결해졌다.
나무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볼 때와 나무를 선과 색을 이용하여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볼 때, 느낌은 같을까? 아니면 다를까? 구체적으로 표현한 그림(몬드리안의 <저녁; 붉은 나무>)에서는 ‘나무’라는 사물이 인식되자마자,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나무는 줄기와 가지로 된 식물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물론, 나무와 관련된 감정이나 추억 등이 함께 연상된다. 반면에,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림(몬드리안의 <꽃핀 사과나무>)에서는 각기 방향과 기울기가 다른 선과 면에 시감각이 먼저 반응할 것이다.
생물 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림을 감상할 때 망막을 통해 전달된 시각 정보는 뇌의 1차 시각 피질에서 처리된다. 이때 수직선이나 수평선, 또는 사선에 개별적으로 지정된 신경 세포가 자극된다. 이렇게 추상화는 다양한 선들의 각기 다른 배열에 따라 일차적으로 반응하기에, 대상을 인식하면서 주관적인 개념이 떠오르는 구상 풍경화를 감상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미적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몬드리안의 추상 작품들은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빨강과 파랑, 노랑, 하양, 검정의 5가지 색으로 이루어진다. 그림을 보면 가로세로 선들과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면들이, 캔버스 밖으로까지 뻗어 나가며 확장되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몬드리안은 “자연의 겉모습은 바뀌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사물의 구체적인 특징이 주관적 감정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사물의 본질과 순수성을 감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그는 자연의 실제 형태와 색채가 기본 요소인 직선과 최소한의 색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희준의 작품 제목 비에이는 일본 북해도의 작은 도시 이름으로, 그가 지난 겨울 이 지역을 여행할 때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작가는 출력한 사진에서 희미해지는 기억의 흔적을 더듬으며 인상적인 부분을 재구성하고, 복사하고, 확대한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여행을 다녀오면 작가와 같은 작업 과정을 거친다. 추억을 떠올리며 휴대폰의 포토갤러리에 저장된 사진을 삭제하거나, 편집, 또는 확대 축소하여 가공한 이미지를 SNS에 올린다.
이러한 도시인의 여행 방식은 일상생활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세부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부유하는 듯한 얇은 감각들로 삶이 구성된다. 이들이 살아가는 현대 도시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가상 세계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수도 있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많은 정보를 접할 수도 있다. 그러나 SNS 화면에 손가락 터치로 간단하게 공감을 표시하며 서로의 관계를 이어나가기도, 끊어버리기도 한다. 또한, 이미 머릿속은 과부화되어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정보를 빠르게 훑어볼 수 있을 뿐이다. 가볍게 스치듯 지나치는 현대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은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보인다.
미술관 속 심리학- 추상 풍경
서울 시립 남서울미술관 「불안한 사물들」 관람
인문쟁이 김민정
2019-09-17
▲ 서울 시립 남서울미술관 / 「불안한 사물들(The Unstable Objects)」 포스터 ©김민정
▲ 미술관의 역사가 기록된 「미술관이 된 구 벨기에영사관」 상설전 ©김민정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 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불안한 사물들」을 관람하였다.
서울 시립 남서울미술관은 원래 대한제국 시기인 1905년 서울시 중구에 벨기에영사관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1982년에 현재 위치로 옮기며 복원되었고, 2004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이 되었다.
▲ 참여 작가 권아람, 김경태, 최고은, 허우중의 작품 일부(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민정
100년도 더 된 고풍스러운 공간에 1980년대에 태어난 작가 5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젊은 작가들의 2019년 작품들은 현대적 사물을 소재로 삼았는데, 오랜 역사 속 공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감상하는 동안 관람객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느낀다.
추상화로 표현된 풍경
▲ 참여 작가 이희준의 <비에이(Biei)> 시리즈 일부 ©김민정
이희준은 <비에이> 시리즈에서 눈 내리는 도시 풍경을 ‘추상화(abstraction)’하였다. 추상화란, 어떤 사물이나 문제에서 중요한 핵심 부분만을 추려내는 것을 말한다. 미술에서 추상화라고 부르는 그림도 비슷한 뜻을 지닌다. 사물이나 풍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본질을 점이나 선, 면, 또는 색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일컫는다. 만일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그릴 때, 어떤 이는 하얀 눈이 내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고, 이희준 작가처럼 선과 색으로 단순화하여 묘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시 풍경을 추상적으로 캔버스에 담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풍경을 추상화하려고 시도했던 피트 몬드리안의 나무 그림들을 보자.
▲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저녁; 붉은 나무>(1908~1910), <회색 나무>(1911), <꽃핀 사과나무>(1912) ©Wikimedia
왼쪽 그림에서 오른쪽 그림으로 가면서 나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한다. 나무줄기, 가지, 잎 등의 구체적인 형태는 점점 없어진다. <꽃핀 사과나무>라는 제목을 알기 전에는 무엇을 그렸는지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나뭇가지가 뒤엉켜 뻗은 모습이 선으로 집약되어 있고, 맨 오른쪽 그림에서는 주로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표현되어 더욱 간결해졌다.
나무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볼 때와 나무를 선과 색을 이용하여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볼 때, 느낌은 같을까? 아니면 다를까? 구체적으로 표현한 그림(몬드리안의 <저녁; 붉은 나무>)에서는 ‘나무’라는 사물이 인식되자마자,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나무는 줄기와 가지로 된 식물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물론, 나무와 관련된 감정이나 추억 등이 함께 연상된다. 반면에,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림(몬드리안의 <꽃핀 사과나무>)에서는 각기 방향과 기울기가 다른 선과 면에 시감각이 먼저 반응할 것이다.
▲ 뇌의 1차 시각 피질 ©Wikipedia
서로 다른 방향과 기울기를 가진 선을 담당하는 각각의 특정 신경 세포가 존재한다.
생물 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림을 감상할 때 망막을 통해 전달된 시각 정보는 뇌의 1차 시각 피질에서 처리된다. 이때 수직선이나 수평선, 또는 사선에 개별적으로 지정된 신경 세포가 자극된다. 이렇게 추상화는 다양한 선들의 각기 다른 배열에 따라 일차적으로 반응하기에, 대상을 인식하면서 주관적인 개념이 떠오르는 구상 풍경화를 감상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미적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 몬드리안 <구성 2>(1929), <적색과 회색, 청색, 황색, 흑색의 마름모 구성>(1924~1925) ©WikiArt
이후 몬드리안의 추상 작품들은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빨강과 파랑, 노랑, 하양, 검정의 5가지 색으로 이루어진다. 그림을 보면 가로세로 선들과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면들이, 캔버스 밖으로까지 뻗어 나가며 확장되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몬드리안은 “자연의 겉모습은 바뀌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사물의 구체적인 특징이 주관적 감정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사물의 본질과 순수성을 감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그는 자연의 실제 형태와 색채가 기본 요소인 직선과 최소한의 색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현대 도시의 추상성을 담아낸 추상화
▲ 이희준 <비에이 no.107, no.108> ©김민정
이희준의 작품 제목 비에이는 일본 북해도의 작은 도시 이름으로, 그가 지난 겨울 이 지역을 여행할 때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작가는 출력한 사진에서 희미해지는 기억의 흔적을 더듬으며 인상적인 부분을 재구성하고, 복사하고, 확대한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여행을 다녀오면 작가와 같은 작업 과정을 거친다. 추억을 떠올리며 휴대폰의 포토갤러리에 저장된 사진을 삭제하거나, 편집, 또는 확대 축소하여 가공한 이미지를 SNS에 올린다.
이러한 도시인의 여행 방식은 일상생활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세부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부유하는 듯한 얇은 감각들로 삶이 구성된다. 이들이 살아가는 현대 도시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가상 세계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수도 있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많은 정보를 접할 수도 있다. 그러나 SNS 화면에 손가락 터치로 간단하게 공감을 표시하며 서로의 관계를 이어나가기도, 끊어버리기도 한다. 또한, 이미 머릿속은 과부화되어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정보를 빠르게 훑어볼 수 있을 뿐이다. 가볍게 스치듯 지나치는 현대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은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보인다.
에필로그
▲ 이희준 <어 쉐이프 오브 테이스트(A Shape of Taste) no.110, no.111)>(2019, 세화 미술관 「팬텀 시티(Phantom city)」 전에서) ©김민정
이희준의 다른 작품 <어 쉐이프 오브 테이스트> 시리즈는 작가가 서울 거리를 걸으며 수집한 도시 풍경 이미지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 도시 풍경은 어떤 형태와 색깔을 지니고 있을까? 빈 종이에 한 번 그려보려고 한다.
○ 전시
전시명: 「불안한 사물들」
기간: 2019.6.26.~2019.9.22. *매주 월요일 휴관
○ 공간 정보
주소: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 (남현동)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운영시간: 평일(화-금) 10AM~8PM, 토∙일∙공휴일 10AM~6PM
문의: 02-598-6246~7
○ 관련 링크
홈페이지: http://sema.seoul.go.kr/?gbn=ORG03
오시는 길: http://sema.seoul.go.kr/it/artinfo/southart/getMap
○ 사진 촬영_김민정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심리학을 전공한 미술관 도슨트. 미술에 심리학을 접목한 <미술로 보는 심리학>을 강의하고 블로그 <미술 감상 심리학>을 운영하면서, 미술 심리에 관심 있는 분들과 소통하려고 노력 중이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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