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군산, 포항, 부산, 대구, 다섯 도시를 생각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바로 ‘적산가옥’! 이 다섯 도시는 원도심에 방치되어 있던 적산가옥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지역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도심재생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그들이 버리고 간 주택, 즉 ‘적’들이 버리고 간 주택을 적산가옥이라고 한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적들의 주택, 적산가옥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옛 제주읍성을 중심으로 삼은 제주 원도심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시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다소 올드한 느낌의 구 시가지가 되었다. 이곳에도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적산가옥을 포함한,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주택들이 남아있다.
개발의 손길 피해 보존된 제주의 적산가옥
▲ 제주의 적산가옥 가는 길, 관덕정 ⓒ 배재범
제주국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동문시장 방향으로 10분여 달리다 보면 관덕정을 만날 수 있다. 제주 원도심은 제주목관아가 자리 잡았던 관덕정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으며 수많은 유적들이 이곳에 밀집되어 있다. 관덕정 앞 도로를 건너면 제주의 대표적인 적산가옥으로 알려진 오래된 일본식 2층 주택이 있다. 현재는 원 소유주의 이름을 딴 ‘순아커피’라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외관은 다소 수리한 흔적이 있지만 내부는 일제 강점기 건축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당시 일본인 가옥들은 대부분 1층이 상가, 2층은 주택이었다.
▲ 1층에서 바라본 제주의 적산가옥 ⓒ 배재범
2층의 구조가 몹시 궁금했다. 카페 1층 구석에 자리를 잡고 후다닥 커피를 주문한 뒤 곧장 2층으로 향했다. 삐걱삐걱 좁다란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오래된 긴 복도가 나타나고 복도를 따라 일본식 격자 문양의 문과 다다미방이 다닥다닥 줄지어 섰다. 세월의 때가 쌓인 마루, 다다미방과 미닫이문이 예사롭지 않다. 카페 주인장의 큰어머니였다는 이 가옥의 원 소유주 ‘순아 할머니’의 손때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이 주택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제주 4.3사건 등 힘겹고 고단했던 제주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 모진 세월을 버틴 후 순아 할머니는 고향을 등진 채 일본으로 떠났지만 타향살이 내내 제주를 그리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한다. 반드시 제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로 관덕정 앞에 위치한 이 적산가옥을 구입했고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 제주의 적산가옥 2층으로 올라가는 삐걱삐걱 복도 ⓒ 배재범
▲ 제주의 적산가옥 2층 마루 그리고 다다미방 ⓒ 배재범
일본식 주택양식과 제주 전통양식이 혼합된 ‘고씨 주택’
제주 동문시장 건너편 산지천을 따라 바다 방향으로 걷다 보면 길 안쪽에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독특한 외관의 ‘고씨 주택’을 만날 수 있다. 제주가 기와집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 것은 일본식 기와를 들여온 이후부터라고 한다. 제주 전통가옥은 지붕이 대체로 초가였으며,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가 서로 마주 보는 一자형 평면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고씨 주택은 이러한 제주 전통가옥의 보편을 따르면서도 지붕은 초가 대신 기와를, 안채 내부는 긴 복도가 있는 일본식 주택양식을 적용했다.
▲ 제주 고씨 주택 가는 길, 산지천 ⓒ 배재범
고씨 주택은 2014년 탐라문화광장 조성 사업 때 잠시 철거될 위험에 놓였다. 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는 일본과 제주의 주택이 절충된, 고씨 주택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높이 평가해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복원된 고씨 주택은 2018년 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의 계획에 따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고씨 주택은 지난 4월부터 제주사랑방과 제주 책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 제주의 일제강점기 가옥, 고씨 주택 입구 ⓒ 배재범
▲ 일제강점기 주택 양식을 간직한 고씨 주택 안채 ⓒ 배재범
제주사랑방은 동호회 모임, 취미 활동 등 다양한 모임장소로 활용되고, 제주책방은 일반도서와 제주특별자치도가 발간한 간행물 중 제주의 문화, 역사, 자연을 주제로 수집된 제주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1945년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적들의 주택인 ‘적산가옥’. 광복 후 주택이 부족했던 시절 일시적으로 재사용되다가 대부분 우리 주거문화와 차이가 있어 점차 소실되었지만, 이제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알리는 근대문화유산이자 이른바 ‘Negative Heritage’로 활용 중이다. 적산가옥은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한국과 일본의 주택양식이 절충된 옛 주택들도 보존의 가치가 인정되어 도시재생사업 등의 소재가 된다. 일제강점기 우리 겨레의 아픔을 품은 채 견뎌온 이 주택들에는 선조의 삶과 우리의 전통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100년의 시간여행을 한 이 주택들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100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탐험하고 알리는 인문쟁이가 되어 20대에 품었던 인문학도의 꿈을 다시 꾸고 싶은 50대 아저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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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일제강점기 가옥에서 떠나는 100년의 시간여행!
제주 적산가옥
인문쟁이 배재범
2019-09-03
목포, 군산, 포항, 부산, 대구, 다섯 도시를 생각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바로 ‘적산가옥’! 이 다섯 도시는 원도심에 방치되어 있던 적산가옥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지역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도심재생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그들이 버리고 간 주택, 즉 ‘적’들이 버리고 간 주택을 적산가옥이라고 한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적들의 주택, 적산가옥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옛 제주읍성을 중심으로 삼은 제주 원도심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시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다소 올드한 느낌의 구 시가지가 되었다. 이곳에도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적산가옥을 포함한,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주택들이 남아있다.
개발의 손길 피해 보존된 제주의 적산가옥
▲ 제주의 적산가옥 가는 길, 관덕정 ⓒ 배재범
제주국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동문시장 방향으로 10분여 달리다 보면 관덕정을 만날 수 있다. 제주 원도심은 제주목관아가 자리 잡았던 관덕정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으며 수많은 유적들이 이곳에 밀집되어 있다. 관덕정 앞 도로를 건너면 제주의 대표적인 적산가옥으로 알려진 오래된 일본식 2층 주택이 있다. 현재는 원 소유주의 이름을 딴 ‘순아커피’라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외관은 다소 수리한 흔적이 있지만 내부는 일제 강점기 건축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당시 일본인 가옥들은 대부분 1층이 상가, 2층은 주택이었다.
▲ 1층에서 바라본 제주의 적산가옥 ⓒ 배재범
2층의 구조가 몹시 궁금했다. 카페 1층 구석에 자리를 잡고 후다닥 커피를 주문한 뒤 곧장 2층으로 향했다. 삐걱삐걱 좁다란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오래된 긴 복도가 나타나고 복도를 따라 일본식 격자 문양의 문과 다다미방이 다닥다닥 줄지어 섰다. 세월의 때가 쌓인 마루, 다다미방과 미닫이문이 예사롭지 않다. 카페 주인장의 큰어머니였다는 이 가옥의 원 소유주 ‘순아 할머니’의 손때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이 주택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제주 4.3사건 등 힘겹고 고단했던 제주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 모진 세월을 버틴 후 순아 할머니는 고향을 등진 채 일본으로 떠났지만 타향살이 내내 제주를 그리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한다. 반드시 제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로 관덕정 앞에 위치한 이 적산가옥을 구입했고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 제주의 적산가옥 2층으로 올라가는 삐걱삐걱 복도 ⓒ 배재범
▲ 제주의 적산가옥 2층 마루 그리고 다다미방 ⓒ 배재범
일본식 주택양식과 제주 전통양식이 혼합된 ‘고씨 주택’
제주 동문시장 건너편 산지천을 따라 바다 방향으로 걷다 보면 길 안쪽에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독특한 외관의 ‘고씨 주택’을 만날 수 있다. 제주가 기와집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 것은 일본식 기와를 들여온 이후부터라고 한다. 제주 전통가옥은 지붕이 대체로 초가였으며,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가 서로 마주 보는 一자형 평면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고씨 주택은 이러한 제주 전통가옥의 보편을 따르면서도 지붕은 초가 대신 기와를, 안채 내부는 긴 복도가 있는 일본식 주택양식을 적용했다.
▲ 제주 고씨 주택 가는 길, 산지천 ⓒ 배재범
고씨 주택은 2014년 탐라문화광장 조성 사업 때 잠시 철거될 위험에 놓였다. 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는 일본과 제주의 주택이 절충된, 고씨 주택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높이 평가해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복원된 고씨 주택은 2018년 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의 계획에 따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고씨 주택은 지난 4월부터 제주사랑방과 제주 책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 제주의 일제강점기 가옥, 고씨 주택 입구 ⓒ 배재범
▲ 일제강점기 주택 양식을 간직한 고씨 주택 안채 ⓒ 배재범
제주사랑방은 동호회 모임, 취미 활동 등 다양한 모임장소로 활용되고, 제주책방은 일반도서와 제주특별자치도가 발간한 간행물 중 제주의 문화, 역사, 자연을 주제로 수집된 제주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1945년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적들의 주택인 ‘적산가옥’. 광복 후 주택이 부족했던 시절 일시적으로 재사용되다가 대부분 우리 주거문화와 차이가 있어 점차 소실되었지만, 이제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알리는 근대문화유산이자 이른바 ‘Negative Heritage’로 활용 중이다. 적산가옥은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한국과 일본의 주택양식이 절충된 옛 주택들도 보존의 가치가 인정되어 도시재생사업 등의 소재가 된다. 일제강점기 우리 겨레의 아픔을 품은 채 견뎌온 이 주택들에는 선조의 삶과 우리의 전통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100년의 시간여행을 한 이 주택들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100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촬영 ⓒ배재범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탐험하고 알리는 인문쟁이가 되어 20대에 품었던 인문학도의 꿈을 다시 꾸고 싶은 50대 아저씨입니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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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청춘을 응원하는 따뜻한 보금자리
인문쟁이 김정은
집이 집을 품다? 집이 기억을 품다!!
인문쟁이 성기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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