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수천 권의 책을 터치 한 번으로 읽을 수 있는 E-BOOK의 시대. 하지만 여전히 종이책의 매력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사각거리는 종이 특유의 질감과 비릿한 잉크 냄새가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일까?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지만, 아날로그가 주는 ‘감성’과 ‘개성’까지 주기엔 부족하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영혼’이라 부르고 싶다. 영혼이 없는 사람을 ‘무정하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무정한 디지털 시대에 영혼이 담겨 있는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책.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은 ‘책과인쇄박물관’을 방문했다.
책에 영혼을 불어넣는다는 것
책과인쇄박물관 전경 ⓒ백도영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책과인쇄박물관은 경춘선 김유정역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오후 김유정역에 도착하니 동백꽃의 ‘점순이’가 떠올랐다. 박물관으로 향하며 김유정 문학촌과 주변의 자연 풍경을 보며 걸으니 잠시나마 더위도 조금 잊을 수 있었다. 좀 걷고 나니 책 모양으로 외관을 꾸민 책과인쇄박물관에 닿을 수 있었다. 건물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고이 접은 쪽지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사소한 것 하나에도 박물관의 철학이 녹아있는 곳이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묵직한 잉크 냄새는 방문객을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했다. 전시실은 총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는 활판 인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인쇄 기계를, 2층과 3층에는 교과서에서나 보았을 법한 오래된 책과 인쇄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금속 활판 ⓒ김주현
전시실 중 가장 인상 깊은 공간은 용도별, 연도별로 활판 인쇄 기계가 전시되어있는 1층이었다. 금속 활판으로 벽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방문객들을 압도시키기에 충분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전용태 관장의 철학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책에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의 말을 곱씹어 보니 활판과 인쇄 기계들이 무(無)의 상태에 있는 종이에 영혼을 불어넣는 존재처럼 느껴져 박물관에 더욱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전용태 관장이 인쇄 기계를 통해 시범을 보이고 있다. ⓒ백도영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인쇄소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을 보며 조금 생경함을 느꼈다. 과연 이 기계는 무엇에 쓰던 물건인고 하고 말이다. 하지만 박물관 관장인 전용태 씨가 직접 기계를 하나씩 설명하고 직접 시연도 해주어 쉽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설명해주는 인쇄기계들은 나이가 꽤 많아 보였는데, 종이에 영혼을 불어 넣어주느라 많이 고단해 보였다.
잉크를 묻혀 인쇄하는 기계 ⓒ백도영
기계를 이용해 직접 만들어 본 인쇄물 ⓒ백도영
대부분의 인쇄 기계들은 함부로 다루면 위험하기에, 일반 관람객들은 눈으로만 감상해야 했지만, 관장님의 안내에 따라 간단한 엽서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같은 기계여도 누르는 힘과 위치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기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층 인쇄 전시실 ⓒ백도영
2층 고서 전시실 ⓒ백도영
3층 근현대 책 전시실 ⓒ백도영
고서와 근현대 책이 전시되어있는 2층과 3층에는 교과서에서 보았을 법한 책과 인쇄물로 가득했다. 특히 근현대 책이 전시되어있는 3층은 알록달록한 딱지본이 인상적인 곳이었는데, 빨강, 노랑, 초록 등 강렬한 색상의 책들이 오늘날의 책들보다 더 개성 있어 보였다. 또 ‘선데이 서울’과 같은 잡지책들은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던 나조차 그 시절의 감성이 어렴풋 느껴져, ‘세련되지만 촌스러운 옛날 감성’이 왜 유행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상’을 담은 표지와 글씨체를 지금의 책들과 비교하면서 보니 더 재밌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잡지 ⓒ백도영
책을 읽는다는 것
태어나 가장 먼저 읽었던 책이 생각난다. 바로 ‘백설공주’다. 그 책을 무척 좋아해, 거의 외울 정도였다. 어릴 적 읽었던 ‘백설공주’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찰랑거리고 윤기 나는 검은색 머리를 가지고 싶었고 숲속 동물 친구들과 교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앞으로 나는 어떤 책을 읽게 될까? 그리고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게 될까? 기왕이면 ‘무정’하지 않은, 영혼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회학과 언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춘천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있다.
관심있는 키워드는 지역, 문화, 예술, 청년이다.
춘천 청년쌀롱, 아리바우길 걷기, 프로듀스005 등의 문화기획을 하며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한다.
한 발자국 뒤에서 사회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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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영혼을 따라
책과인쇄박물관에 가다
인문쟁이 백도영
2019-08-20
“우리가 보는 책들 한 권 한 권은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만든 인쇄공의 영혼과 그것을 꿈꿔왔던 사람들의 영혼이”
_ 책과인쇄박물관 관장 전용태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를 찾다
수백 수천 권의 책을 터치 한 번으로 읽을 수 있는 E-BOOK의 시대. 하지만 여전히 종이책의 매력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사각거리는 종이 특유의 질감과 비릿한 잉크 냄새가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일까?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지만, 아날로그가 주는 ‘감성’과 ‘개성’까지 주기엔 부족하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영혼’이라 부르고 싶다. 영혼이 없는 사람을 ‘무정하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무정한 디지털 시대에 영혼이 담겨 있는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책.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은 ‘책과인쇄박물관’을 방문했다.
책에 영혼을 불어넣는다는 것
책과인쇄박물관 전경 ⓒ백도영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책과인쇄박물관은 경춘선 김유정역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오후 김유정역에 도착하니 동백꽃의 ‘점순이’가 떠올랐다. 박물관으로 향하며 김유정 문학촌과 주변의 자연 풍경을 보며 걸으니 잠시나마 더위도 조금 잊을 수 있었다. 좀 걷고 나니 책 모양으로 외관을 꾸민 책과인쇄박물관에 닿을 수 있었다. 건물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고이 접은 쪽지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사소한 것 하나에도 박물관의 철학이 녹아있는 곳이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묵직한 잉크 냄새는 방문객을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했다. 전시실은 총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는 활판 인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인쇄 기계를, 2층과 3층에는 교과서에서나 보았을 법한 오래된 책과 인쇄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금속 활판 ⓒ김주현
전시실 중 가장 인상 깊은 공간은 용도별, 연도별로 활판 인쇄 기계가 전시되어있는 1층이었다. 금속 활판으로 벽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방문객들을 압도시키기에 충분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전용태 관장의 철학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책에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의 말을 곱씹어 보니 활판과 인쇄 기계들이 무(無)의 상태에 있는 종이에 영혼을 불어넣는 존재처럼 느껴져 박물관에 더욱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전용태 관장이 인쇄 기계를 통해 시범을 보이고 있다. ⓒ백도영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인쇄소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을 보며 조금 생경함을 느꼈다. 과연 이 기계는 무엇에 쓰던 물건인고 하고 말이다. 하지만 박물관 관장인 전용태 씨가 직접 기계를 하나씩 설명하고 직접 시연도 해주어 쉽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설명해주는 인쇄기계들은 나이가 꽤 많아 보였는데, 종이에 영혼을 불어 넣어주느라 많이 고단해 보였다.
잉크를 묻혀 인쇄하는 기계 ⓒ백도영
기계를 이용해 직접 만들어 본 인쇄물 ⓒ백도영
대부분의 인쇄 기계들은 함부로 다루면 위험하기에, 일반 관람객들은 눈으로만 감상해야 했지만, 관장님의 안내에 따라 간단한 엽서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같은 기계여도 누르는 힘과 위치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기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층 인쇄 전시실 ⓒ백도영
2층 고서 전시실 ⓒ백도영
3층 근현대 책 전시실 ⓒ백도영
고서와 근현대 책이 전시되어있는 2층과 3층에는 교과서에서 보았을 법한 책과 인쇄물로 가득했다. 특히 근현대 책이 전시되어있는 3층은 알록달록한 딱지본이 인상적인 곳이었는데, 빨강, 노랑, 초록 등 강렬한 색상의 책들이 오늘날의 책들보다 더 개성 있어 보였다. 또 ‘선데이 서울’과 같은 잡지책들은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던 나조차 그 시절의 감성이 어렴풋 느껴져, ‘세련되지만 촌스러운 옛날 감성’이 왜 유행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상’을 담은 표지와 글씨체를 지금의 책들과 비교하면서 보니 더 재밌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잡지 ⓒ백도영
책을 읽는다는 것
태어나 가장 먼저 읽었던 책이 생각난다. 바로 ‘백설공주’다. 그 책을 무척 좋아해, 거의 외울 정도였다. 어릴 적 읽었던 ‘백설공주’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찰랑거리고 윤기 나는 검은색 머리를 가지고 싶었고 숲속 동물 친구들과 교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앞으로 나는 어떤 책을 읽게 될까? 그리고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게 될까? 기왕이면 ‘무정’하지 않은, 영혼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만나고 싶다.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사회학과 언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춘천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있다. 관심있는 키워드는 지역, 문화, 예술, 청년이다. 춘천 청년쌀롱, 아리바우길 걷기, 프로듀스005 등의 문화기획을 하며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한다. 한 발자국 뒤에서 사회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중이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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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속 심리학- 보편적 예술에 대한 소고
인문쟁이 김민정
소외된 자의 지게꾼, 시인 김신용
인문쟁이 최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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