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에서부터 한류 스타 거리인 ‘케이-스타 로드(K-Star Road)‘가 이어진다. 한류 문화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이 거리를 조성할 때, 존 버거맨도 참여했다. 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 그림 속 캐릭터가 하나둘씩 튀어나와 즐거운 거리 산책을 동행해 줄 것만 같다. 이 흥겨운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 「펀 팩토리: 슈퍼스타 존 버거맨(Fun Factory: Superstar John Burgerman)」을 전시 중인 ’M 컨템포러리‘로 가 보자.
거리 낙서는 1960년대 후반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에 사는 흑인과 소수민족 젊은이에게서 시작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그들은, 사회 불평등과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을 낙서로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그들의 즉흥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거리의 예술가들은 낙서나 만화 같은 하위문화도 전통 미술과 클래식 음악처럼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중이 좋아한다고 수준이 낮다며 무시 받는 풍조가 불합리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미술관에 갈 수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상위 계층만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그래피티 아트는 예술의 ‘보편성(universality)’이 강조되면서 보통 사람도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예술로 확대되었다.
존 버거맨의 <베르겐 거리의 여인들>이 한 예다. 그는 20세기 거장으로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스페인, 1881~1973)의 그림 <알제의 여인들>이 경매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역발상으로 싼 가격의 작품을 만들었다. 유명 작가의 그림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역시 돈 많은 일부 특정 계층만이 미술을 즐기고 소유할 수 있다'며 예술에 냉소적으로 된다. 얼굴 없는 거리 화가로 알려진 뱅크시(Banksy, 영국, 1974~)는 예술 시장의 구조적 부조리를 비판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 <소녀와 풍선>이 경매장에서 거래될 것을 예견하고 작품을 준비했다. 2018년 이 작품이 한화로 약 15억 원에 낙찰될 때, 미리 설치해 놓은 분쇄기로 찢겨 나가게 하여 경매장 안을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그래피티 아트가 시각적 청량제 역할만 하는 것일까? 오히려 관광 유치를 하거나 유료 전시를 열며 거리 예술 작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현상이, 한편으로는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자주 제기되는 그래피티 아트에 관한 비판적 관점을 살펴보자.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범법자이다?
범죄 심리학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에서는 유리창이 깨져 있는 조금 더러운 공간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면, 점점 더 많은 유리창이 깨지고 쓰레기와 낙서가 생겨 결국 우범지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작은 무질서를 방치하면,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쓰레기’가 얼마 없더라도 꼭 치워야 하고, 사소한 낙서라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피티 아트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키스 해링(Keith Haring, 미국, 1958~1990)은 지하철 벽 검은 종이판에 하얀 분필로 그림을 그리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허락을 받지 않고 공공장소에 낙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한밤중에 몰래 작업하고, 경찰에게 들키면 재빨리 도망간다. 본인 소유가 아닌 재산을 훼손하고 타인의 장소에 침입하는 행위는 위법하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예술품이나 공공시설,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거나 손상하는 행위인 ‘반달리즘(vandalism)’으로도 여겨진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벽에 그림을 그렸어도, 누군가에게는 동네를 지저분하고 어수선하게 만드는 ‘낙서’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피티 아트는 창의적이고 보편적인 예술일까? 전시를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그래피티 아트에 대한 시각을 정리해 보자.
전시장에는 존 버거맨이 대중과 함께 하는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마련한 체험 코너 <컬러링 존>이 있다. 관람객이 자유롭게 탁자와 바닥에 색칠하며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공간이다. 그는 대중과 소통과 공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는 그래피티 아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유쾌하고 장난기 가득한 그의 작품에, 사람들이 반응하며 호기심을 갖는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종종 접근하기 어려운 심각한 사회적 쟁점을 재치와 유머로 표현해낸다. 무관심한 대중이 평소 생각해 보지 않는, 골치 아픈 무거운 주제를 쉽고 가볍게 풀어낸다. 거리 낙서가 보편적 예술로서 자리를 잡으려면, 일단 부담 없이 보통 사람의 시선을 붙잡아야 한다. 논쟁할 때 눈 맞추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떠올려 보면, 행인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대화 기술은 정말 감탄할 만하다.
미술관 속 심리학- 보편적 예술에 대한 소고
M 컨템포러리 「펀 팩토리: 슈퍼스타 존 버거맨」 관람
인문쟁이 김민정
2019-08-15
압구정 로데오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존 버거맨(John Burgerman, 영국, 1979~)의 낙서 작품 <두들링(doodling)>을 만날 수 있다. 유리판에 빼곡하게 그려진 캐릭터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압구정 로데오역 2번 출구에 그려진 존 버거맨의 <두들링>(2015) ©김민정
출구에서부터 한류 스타 거리인 ‘케이-스타 로드(K-Star Road)‘가 이어진다. 한류 문화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이 거리를 조성할 때, 존 버거맨도 참여했다. 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 그림 속 캐릭터가 하나둘씩 튀어나와 즐거운 거리 산책을 동행해 줄 것만 같다. 이 흥겨운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 「펀 팩토리: 슈퍼스타 존 버거맨(Fun Factory: Superstar John Burgerman)」을 전시 중인 ’M 컨템포러리‘로 가 보자.
▲ M 컨템포러리 / 「펀 팩토리 : 슈퍼스타 존 버거맨」 전시 입구 ©김민정
존 버거맨의 두들링처럼, 거리나 지하철 벽에 스프레이나 마커 등을 이용해 낙서 그림을 그리는 거리 예술을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라고 한다. 그래피티는 원래 ‘긁어서 새긴다’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래피티 아트는 예술이다?
▲ 전시장 내부 벽을 가득 채운 낙서 ©김민정
거리 낙서는 1960년대 후반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에 사는 흑인과 소수민족 젊은이에게서 시작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그들은, 사회 불평등과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을 낙서로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그들의 즉흥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거리의 예술가들은 낙서나 만화 같은 하위문화도 전통 미술과 클래식 음악처럼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중이 좋아한다고 수준이 낮다며 무시 받는 풍조가 불합리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미술관에 갈 수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상위 계층만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그래피티 아트는 예술의 ‘보편성(universality)’이 강조되면서 보통 사람도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예술로 확대되었다.
▲ 작업하는 존 버거맨을 촬영한 동영상 일부 ©김민정
그래피티 아트가 널리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날카롭고 예리한 세태 풍자에 재미와 후련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반자본주의, 반전, 탈권위, 환경오염 등 다양한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작품에 담는다.
▲ (좌) 존 버거맨 <베르겐 거리의 여인들>(2015) ©김민정 / (우) 뱅크시 <소녀와 풍선> ©뱅크시 홈페이지
존 버거맨의 <베르겐 거리의 여인들>이 한 예다. 그는 20세기 거장으로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스페인, 1881~1973)의 그림 <알제의 여인들>이 경매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역발상으로 싼 가격의 작품을 만들었다. 유명 작가의 그림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역시 돈 많은 일부 특정 계층만이 미술을 즐기고 소유할 수 있다'며 예술에 냉소적으로 된다. 얼굴 없는 거리 화가로 알려진 뱅크시(Banksy, 영국, 1974~)는 예술 시장의 구조적 부조리를 비판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 <소녀와 풍선>이 경매장에서 거래될 것을 예견하고 작품을 준비했다. 2018년 이 작품이 한화로 약 15억 원에 낙찰될 때, 미리 설치해 놓은 분쇄기로 찢겨 나가게 하여 경매장 안을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그래피티 아트가 시각적 청량제 역할만 하는 것일까? 오히려 관광 유치를 하거나 유료 전시를 열며 거리 예술 작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현상이, 한편으로는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자주 제기되는 그래피티 아트에 관한 비판적 관점을 살펴보자.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범법자이다?
범죄 심리학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에서는 유리창이 깨져 있는 조금 더러운 공간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면, 점점 더 많은 유리창이 깨지고 쓰레기와 낙서가 생겨 결국 우범지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작은 무질서를 방치하면,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쓰레기’가 얼마 없더라도 꼭 치워야 하고, 사소한 낙서라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아라리오 뮤지엄 컬렉션 중 <드로잉 더 라인- 키스 해링의 자화상>(1990) 동영상 일부 ©김민정
그래피티 아트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키스 해링(Keith Haring, 미국, 1958~1990)은 지하철 벽 검은 종이판에 하얀 분필로 그림을 그리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허락을 받지 않고 공공장소에 낙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한밤중에 몰래 작업하고, 경찰에게 들키면 재빨리 도망간다. 본인 소유가 아닌 재산을 훼손하고 타인의 장소에 침입하는 행위는 위법하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예술품이나 공공시설,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거나 손상하는 행위인 ‘반달리즘(vandalism)’으로도 여겨진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벽에 그림을 그렸어도, 누군가에게는 동네를 지저분하고 어수선하게 만드는 ‘낙서’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피티 아트는 창의적이고 보편적인 예술일까? 전시를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그래피티 아트에 대한 시각을 정리해 보자.
보편적 예술로서 그래피티 아트
▲ 전시장 체험 코너 <컬러링 존> ©김민정
전시장에는 존 버거맨이 대중과 함께 하는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마련한 체험 코너 <컬러링 존>이 있다. 관람객이 자유롭게 탁자와 바닥에 색칠하며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공간이다. 그는 대중과 소통과 공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는 그래피티 아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 웹사이트에 업로드한 존 버거맨 작품 일부 ©김민정
유쾌하고 장난기 가득한 그의 작품에, 사람들이 반응하며 호기심을 갖는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종종 접근하기 어려운 심각한 사회적 쟁점을 재치와 유머로 표현해낸다. 무관심한 대중이 평소 생각해 보지 않는, 골치 아픈 무거운 주제를 쉽고 가볍게 풀어낸다. 거리 낙서가 보편적 예술로서 자리를 잡으려면, 일단 부담 없이 보통 사람의 시선을 붙잡아야 한다. 논쟁할 때 눈 맞추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떠올려 보면, 행인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대화 기술은 정말 감탄할 만하다.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심리학을 전공한 미술관 도슨트. 미술에 심리학을 접목한 <미술로 보는 심리학>을 강의하고 블로그 <미술 감상 심리학>을 운영하면서, 미술 심리에 관심 있는 분들과 소통하려고 노력 중이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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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상상 속으로 풍덩
인문쟁이 김지원
책의 영혼을 따라
인문쟁이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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