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여름방학이면 늘 가는 곳이 있었다. 충남 당진 시골 외할머니집이다. 시원한 맞바람이 부는 대청마루는 최고의 피서지였다. 지금의 선풍기, 에어컨 바람과 비교 불가다. 대청마루에 누우면 낮잠이 솔솔 왔다. 외할머니가 쪄주던 옥수수 맛도 잊을 수 없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이 있다. 흐릿하지만 외할머니가 사용하시던 가구 중에 반닫이, 뒤주 같은 가구들이다. 옛날 가구 특유의 자줏빛이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흠집도 많았다. 밤이면 희미한 전등 불빛에 반짝거리던 가구가 눈에 선하다. 무슨 가구였을까? 빛바랜 기억을 더듬어보니 옻칠 가구였다.
옻칠 가구 외에 자개장도 있었다. 동네에서 제법 잘 살던 큰 아버지 집에서 본 가구다. 명절 때 가보면 장롱에 반짝반짝 빛나던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 그 가구가 자개(나전)장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큰아버지 댁 말고는 자개장을 본 기억이 없다. 일반 가정에서는 나무로 만든 장롱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빛바랜 추억 속에서 끄집어낸 나전칠기
▲ 나전으로 만든 각종 공예품 ⓒ이재형
1960,70년대 나전(螺鈿, 자개장)은 부잣집 인기 혼수품이었다. 나전을 풀이하면 소라 라(螺), 비녀 전(鈿) 이다. 조개 속껍질로 문양을 만드는 것이다.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어 가구 표면에 감입시켜 꾸미는 일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시던 말 중 ‘자개박이’, ‘자개박는다’는 말은 모두 나전장에서 비롯한 말이었다. 지금은 TV사극에서나 가끔 볼 뿐이다.
나전칠기(螺鈿漆器)는 나전과 옻칠을 합한 것이다. 옻칠한 나무제품(그릇이나 가구 등)에 조개껍질로 장식까지 한 것이다. 칠공예 장식기법의 하나로 한국 전통문화를 대표한다. 옻칠한 가구도 비싼데 여기에 소라 껍데기로 화려한 장식까지 더했으니 비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래 볼수록 영롱하고 신비한 문양이다. 과거 나전칠기는 양반가 전유물이었다.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 나전으로 만든 행운의 2달러 액자 ⓒ이재형
그럼 나전칠기는 어떻게 유래됐을까? 중국은 진주와 소라 껍데기로 문양을 만드는 나전(螺鈿)으로 유명했다. 일본은 섬나라 특유의 습기에 강한 옻을 이용한 칠기(漆器)를 많이 썼다. 중국의 나전과 일본의 칠기를 결합한 것이 한국의 나전칠기(螺鈿+漆器)다. 두 나라의 장점을 아주 잘 살렸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기술은 세계적이며 또한 독보적이다.
나전과 칠기가 만나면 천년을 간다
‘나전과 칠기가 만나면 천년을 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나전칠기의 생명력은 길다. 나전칠기는 의류, 패물 등을 넣는 함과 궤, 장과 농, 경대와 소반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일상 속에 자리해왔다. 우리 큰아버지 부부가 쓰던 안방에도 화려한 자개(나전)장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 자개장은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 작업 중인 옻칠 장인 장태연 명장 ⓒ이재형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독보적 기술을 자랑하는 우리의 나전칠기!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장태연(60세) 명장을 만나봤다. 그는 15세에 나전칠기를 만드는 지인을 따라 일을 시작하면서 옻칠과 인연을 맺었다. 올해로 옻칠 인생 44년째다. 자개의 화려함과 옻칠의 은은함에 빠져 지금까지 곁눈질 한번 없이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문화재기능인(2767호)’인 동시에 성남시 옻칠공예 명장이다. 최고의 능력을 인정받는 명장 타이틀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았을까?
옻칠 장인의 작업 공간은 멋스런 한옥일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보니 성남시 상대원동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일한다. 아름다운 전통 공예품을 깨끗한 시설에서 만들고 싶어서 입주했다고 한다. 시대가 변한만큼 나전칠기를 만드는 곳도 달라졌다. 작업실 입구부터 옻칠 냄새가 진동한다. 하지만 옻칠은 옻나무에서 나온 천연 재료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다.
▲ 장태연 명장이 일하는 현대식 아파트형 공장 ⓒ이재형
옻칠 장인 장태연 명장을 만나다
Q. 옻칠과 인연을 맺은지 올해로 44년입니다. 주로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초기에는 (교자)상과 옷장을 만들었죠. 그런데 요즘 디자인이 세련된 현대식 가구들이 나오면서 상과 옷장은 인기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옻칠 도마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도마에 옻칠을 한 것은 제가 최초입니다. 옻칠 도마는 모양도 좋지만 세균 번식을 막아주기 때문에 위생적으로도 훌륭합니다. 주부들에게 인기죠. 방수, 방부, 방충, 방열 등의 효과가 뛰어납니다. 나전칠기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죠. 요즘은 나전칠기로 스피커도 만들죠. 현대 문물에 전통적 요소를 더한 작품입니다.
▲ 도자기처럼 보이지만 나전으로 만든 스피커다. ⓒ이재형
Q. 지금까지 만든 것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나전칠기는 나무에 나전, 즉 조개 껍데기를 감압시켜서 만들죠. 그런데 나전이 아니라 나무를 넣어 만든 제품(목상감기법이라고 한다)을 제가 최초로 시도했어요. 백화점에 이런 방식으로 가구를 만들어서 납품했는데 상당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고가이기 때문에 판로에 한계가 있었죠. 그렇지만 지금까지 만든 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도 만들라고 하면 누구보다 잘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Q. 앞으로 꼭 펼치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전칠기를 세계화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위스키 브랜드인 조니워커에서 러브콜이 왔죠. 나전을 새겨넣은 위스키병을 만들었습니다. 조니워커 사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만드는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더군요. 결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조니워커 위스키병 뿐만 아니라 나전칠기를 현대화해서 만든 제품들이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도록 할 것입니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어렵죠. 하지만 하나하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듭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 있잖아요. 한국적인 자부심으로 장태연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 영국의 조니워커가 의뢰한 나전을 새긴 위스키병 ⓒ이재형
나전칠기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다
장태연 명장이 오랜 시간 땀과 열정으로 만든 나전칠기 공예품을 찬찬히 둘러봤다. 나전으로 만든 보석함부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행운의 2달러 나전기념품, 와인박스 등이다. 나전의 빛깔이 화려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나전의 빛과 색이 변한다. 측면에서 볼 때와 위에서 아래로 볼 때가 각각 다르다.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나전은 만든이에 따라 각기 다른 개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보는 이의 감각에 따라 빛과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빛과 색의 다채로운 변화에 신비함마저 느껴진다.
옻나무하면 여름철 보양식 옻닭이 생각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가구를 만들 때 옻나무를 사용했다. 옻나무 목재가 아니라 그 진액을 이용했다. 즉 옻칠가구는 옻나무액을 칠해서 만든 가구다. 고려 팔만대장경이 800년 넘는 시간에도 원형을 유지한 비결 역시 바로 이 옻칠 때문이라고 한다. 표면에 옻을 칠하면 단순히 광택만 나는 것이 아니다. 옻이 형성한 견고한 막이 소재의 내구성을 증가시켜 주기 때문에 물건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 최초로 옻칠 도마를 만든 장태연 명장 ⓒ이재형
나전칠기 장인들이 또 다른 천년 잇는다
나전칠기는 백골(白骨, 나무틀), 칠기, 자개, 이 세 가지를 조합해서 만든다. 백골에 옻칠을 입히고 건조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 뒤, 자개를 톱으로 일일이 오려서 표면에 문양을 넣는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옻칠을 해서 완성한다. 기계가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다. 아주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일까, 그 전통을 계승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옻칠가구를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다. 5G를 논하는 이 빠른 시대에 누가 옻칠가구를 만들어서 쓰겠는가! 박물관에나 가야 구경한다. 그런데 장태연 명장이 운영하는 공장에는 옻칠가구가 많다. 요즘은 주로 도마, 숟가락, 그릇, 보석함, 와인박스, 컵 등 못 만드는 게 없다.
나전칠기 장인 중 백골, 칠기, 자개 모든 것을 다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백골, 칠기, 자개 중 한 가지를 한다. 장태연 명장은 이 중 옻칠 장인이다. 44년 동안 옻칠만 해온 그에게도 옻칠공예는 여전히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한다. 여기에 나전기법까지 더해지면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3개월 이상 걸린다. 수정하고 반복하다보면 그 이상 걸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정말 땀과 열정의 산물이다.
▲ 나전과 칠기가 만나 또 다른 천년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이재형
나전칠기는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고가다. 고가의 나전칠기 가구로는 생존이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게 나전전칠기 공예품이다. 장태연 명장도 옻칠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과거처럼 여러 날 고된 작업으로 만드는 옻칠가구 대신 일반인이 보다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공예품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서울 인사동 쌈지골목에도 옻칠의 대중화를 꿈꾸는 젊은 공예가들이 많다. 각종 그릇은 물론 머그잔, 열쇠고리, 수저, 보석함 등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나전칠기가 시대에 맞춘 명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나마 옻칠과 나전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게 다행스럽다.
나전칠기는 1천 년이 넘는 시간을 우리와 함께 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현대화, 산업화의 흐름에 떠밀려, 몇 안되는 나전칠기 장인들의 손에서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 중이다. 그나마 나전칠기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고 있는 장인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전칠기를 세계적 명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장태연 명장! 나전칠기 장인들의 손에서 나전과 칠기가 만나 또 다른 천년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이재형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17년째 살고 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생활을 했고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낸 후 요즘은 아내와 어디론가 여행 떠나기를 좋아한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말처럼. 은퇴 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발히 하며 ‘갑분싸’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생 2모작을 인문쟁이와 함께 하면서 여행과 인문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 세계에서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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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과 칠기가 만나면 천년을 간다
옻칠 명장 장태연을 만나다
인문쟁이 이재형
2019-08-13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이면 늘 가는 곳이 있었다. 충남 당진 시골 외할머니집이다. 시원한 맞바람이 부는 대청마루는 최고의 피서지였다. 지금의 선풍기, 에어컨 바람과 비교 불가다. 대청마루에 누우면 낮잠이 솔솔 왔다. 외할머니가 쪄주던 옥수수 맛도 잊을 수 없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이 있다. 흐릿하지만 외할머니가 사용하시던 가구 중에 반닫이, 뒤주 같은 가구들이다. 옛날 가구 특유의 자줏빛이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흠집도 많았다. 밤이면 희미한 전등 불빛에 반짝거리던 가구가 눈에 선하다. 무슨 가구였을까? 빛바랜 기억을 더듬어보니 옻칠 가구였다.
옻칠 가구 외에 자개장도 있었다. 동네에서 제법 잘 살던 큰 아버지 집에서 본 가구다. 명절 때 가보면 장롱에 반짝반짝 빛나던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 그 가구가 자개(나전)장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큰아버지 댁 말고는 자개장을 본 기억이 없다. 일반 가정에서는 나무로 만든 장롱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빛바랜 추억 속에서 끄집어낸 나전칠기
▲ 나전으로 만든 각종 공예품 ⓒ이재형
1960,70년대 나전(螺鈿, 자개장)은 부잣집 인기 혼수품이었다. 나전을 풀이하면 소라 라(螺), 비녀 전(鈿) 이다. 조개 속껍질로 문양을 만드는 것이다.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어 가구 표면에 감입시켜 꾸미는 일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시던 말 중 ‘자개박이’, ‘자개박는다’는 말은 모두 나전장에서 비롯한 말이었다. 지금은 TV사극에서나 가끔 볼 뿐이다.
나전칠기(螺鈿漆器)는 나전과 옻칠을 합한 것이다. 옻칠한 나무제품(그릇이나 가구 등)에 조개껍질로 장식까지 한 것이다. 칠공예 장식기법의 하나로 한국 전통문화를 대표한다. 옻칠한 가구도 비싼데 여기에 소라 껍데기로 화려한 장식까지 더했으니 비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래 볼수록 영롱하고 신비한 문양이다. 과거 나전칠기는 양반가 전유물이었다.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 나전으로 만든 행운의 2달러 액자 ⓒ이재형
그럼 나전칠기는 어떻게 유래됐을까? 중국은 진주와 소라 껍데기로 문양을 만드는 나전(螺鈿)으로 유명했다. 일본은 섬나라 특유의 습기에 강한 옻을 이용한 칠기(漆器)를 많이 썼다. 중국의 나전과 일본의 칠기를 결합한 것이 한국의 나전칠기(螺鈿+漆器)다. 두 나라의 장점을 아주 잘 살렸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기술은 세계적이며 또한 독보적이다.
나전과 칠기가 만나면 천년을 간다
‘나전과 칠기가 만나면 천년을 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나전칠기의 생명력은 길다. 나전칠기는 의류, 패물 등을 넣는 함과 궤, 장과 농, 경대와 소반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일상 속에 자리해왔다. 우리 큰아버지 부부가 쓰던 안방에도 화려한 자개(나전)장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 자개장은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 작업 중인 옻칠 장인 장태연 명장 ⓒ이재형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독보적 기술을 자랑하는 우리의 나전칠기!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장태연(60세) 명장을 만나봤다. 그는 15세에 나전칠기를 만드는 지인을 따라 일을 시작하면서 옻칠과 인연을 맺었다. 올해로 옻칠 인생 44년째다. 자개의 화려함과 옻칠의 은은함에 빠져 지금까지 곁눈질 한번 없이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문화재기능인(2767호)’인 동시에 성남시 옻칠공예 명장이다. 최고의 능력을 인정받는 명장 타이틀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았을까?
옻칠 장인의 작업 공간은 멋스런 한옥일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보니 성남시 상대원동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일한다. 아름다운 전통 공예품을 깨끗한 시설에서 만들고 싶어서 입주했다고 한다. 시대가 변한만큼 나전칠기를 만드는 곳도 달라졌다. 작업실 입구부터 옻칠 냄새가 진동한다. 하지만 옻칠은 옻나무에서 나온 천연 재료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다.
▲ 장태연 명장이 일하는 현대식 아파트형 공장 ⓒ이재형
옻칠 장인 장태연 명장을 만나다
Q. 옻칠과 인연을 맺은지 올해로 44년입니다. 주로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초기에는 (교자)상과 옷장을 만들었죠. 그런데 요즘 디자인이 세련된 현대식 가구들이 나오면서 상과 옷장은 인기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옻칠 도마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도마에 옻칠을 한 것은 제가 최초입니다. 옻칠 도마는 모양도 좋지만 세균 번식을 막아주기 때문에 위생적으로도 훌륭합니다. 주부들에게 인기죠. 방수, 방부, 방충, 방열 등의 효과가 뛰어납니다. 나전칠기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죠. 요즘은 나전칠기로 스피커도 만들죠. 현대 문물에 전통적 요소를 더한 작품입니다.
▲ 도자기처럼 보이지만 나전으로 만든 스피커다. ⓒ이재형
Q. 지금까지 만든 것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나전칠기는 나무에 나전, 즉 조개 껍데기를 감압시켜서 만들죠. 그런데 나전이 아니라 나무를 넣어 만든 제품(목상감기법이라고 한다)을 제가 최초로 시도했어요. 백화점에 이런 방식으로 가구를 만들어서 납품했는데 상당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고가이기 때문에 판로에 한계가 있었죠. 그렇지만 지금까지 만든 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도 만들라고 하면 누구보다 잘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Q. 앞으로 꼭 펼치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전칠기를 세계화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위스키 브랜드인 조니워커에서 러브콜이 왔죠. 나전을 새겨넣은 위스키병을 만들었습니다. 조니워커 사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만드는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더군요. 결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조니워커 위스키병 뿐만 아니라 나전칠기를 현대화해서 만든 제품들이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도록 할 것입니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어렵죠. 하지만 하나하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듭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 있잖아요. 한국적인 자부심으로 장태연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 영국의 조니워커가 의뢰한 나전을 새긴 위스키병 ⓒ이재형
나전칠기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다
장태연 명장이 오랜 시간 땀과 열정으로 만든 나전칠기 공예품을 찬찬히 둘러봤다. 나전으로 만든 보석함부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행운의 2달러 나전기념품, 와인박스 등이다. 나전의 빛깔이 화려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나전의 빛과 색이 변한다. 측면에서 볼 때와 위에서 아래로 볼 때가 각각 다르다.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나전은 만든이에 따라 각기 다른 개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보는 이의 감각에 따라 빛과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빛과 색의 다채로운 변화에 신비함마저 느껴진다.
옻나무하면 여름철 보양식 옻닭이 생각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가구를 만들 때 옻나무를 사용했다. 옻나무 목재가 아니라 그 진액을 이용했다. 즉 옻칠가구는 옻나무액을 칠해서 만든 가구다. 고려 팔만대장경이 800년 넘는 시간에도 원형을 유지한 비결 역시 바로 이 옻칠 때문이라고 한다. 표면에 옻을 칠하면 단순히 광택만 나는 것이 아니다. 옻이 형성한 견고한 막이 소재의 내구성을 증가시켜 주기 때문에 물건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 최초로 옻칠 도마를 만든 장태연 명장 ⓒ이재형
나전칠기 장인들이 또 다른 천년 잇는다
나전칠기는 백골(白骨, 나무틀), 칠기, 자개, 이 세 가지를 조합해서 만든다. 백골에 옻칠을 입히고 건조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 뒤, 자개를 톱으로 일일이 오려서 표면에 문양을 넣는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옻칠을 해서 완성한다. 기계가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다. 아주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일까, 그 전통을 계승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옻칠가구를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다. 5G를 논하는 이 빠른 시대에 누가 옻칠가구를 만들어서 쓰겠는가! 박물관에나 가야 구경한다. 그런데 장태연 명장이 운영하는 공장에는 옻칠가구가 많다. 요즘은 주로 도마, 숟가락, 그릇, 보석함, 와인박스, 컵 등 못 만드는 게 없다.
나전칠기 장인 중 백골, 칠기, 자개 모든 것을 다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백골, 칠기, 자개 중 한 가지를 한다. 장태연 명장은 이 중 옻칠 장인이다. 44년 동안 옻칠만 해온 그에게도 옻칠공예는 여전히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한다. 여기에 나전기법까지 더해지면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3개월 이상 걸린다. 수정하고 반복하다보면 그 이상 걸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정말 땀과 열정의 산물이다.
▲ 나전과 칠기가 만나 또 다른 천년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이재형
나전칠기는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고가다. 고가의 나전칠기 가구로는 생존이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게 나전전칠기 공예품이다. 장태연 명장도 옻칠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과거처럼 여러 날 고된 작업으로 만드는 옻칠가구 대신 일반인이 보다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공예품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서울 인사동 쌈지골목에도 옻칠의 대중화를 꿈꾸는 젊은 공예가들이 많다. 각종 그릇은 물론 머그잔, 열쇠고리, 수저, 보석함 등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나전칠기가 시대에 맞춘 명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나마 옻칠과 나전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게 다행스럽다.
나전칠기는 1천 년이 넘는 시간을 우리와 함께 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현대화, 산업화의 흐름에 떠밀려, 몇 안되는 나전칠기 장인들의 손에서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 중이다. 그나마 나전칠기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고 있는 장인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전칠기를 세계적 명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장태연 명장! 나전칠기 장인들의 손에서 나전과 칠기가 만나 또 다른 천년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장소 정보
2018, 2019 [인문쟁이 4,5기]
이재형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17년째 살고 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생활을 했고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낸 후 요즘은 아내와 어디론가 여행 떠나기를 좋아한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말처럼. 은퇴 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발히 하며 ‘갑분싸’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생 2모작을 인문쟁이와 함께 하면서 여행과 인문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 세계에서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나전과 칠기가 만나면 천년을 간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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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성기낭
무더운 여름, 상상 속으로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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