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친구가 새 자취방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하는 날에 내게 사진을 한 장 보내줬었는데, 빈 방 한가운데에 전기밥솥만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사진이었다. 이게 뭐야?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이사를 할 땐 밥솥을 가장 먼저 집에 들여야 복이 들어온다고 했다며, 시킨 대로 하고 인증사진을 찍은 거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밥솥에 조왕신이 깃들어있는 거냐고 물었다. 친구는 "할머니한테는 그런 것 같아"라고 했다. 그냥 밥솥도 아닌 전기밥솥에 조왕신이라니. 그런데 정말로, 요즘 그 친구는 조금 다른 의미로 일복이 터져서 바쁘지만 나름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다.
▲ 새집에는 밥솥을 가장 먼저 들여야 복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조온윤
우리에게 계승된 정신적 유산
사실 그 친구도 조왕신이라느니 재물복이라느니 하는 미신을 정말로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구의 할머니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친구가 새집에다 밥솥을 먼저 옮겨놓는 수고를 한 건 민속신앙을 믿어서가 아니라, 할머니가 자신에게 물려준 일종의 전통을 따르는 데에 가까웠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가택신이나 조상신 같은 미신 따위는 믿지 않고 전통적인 삶과는 결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의식과 생활 곳곳에는 여전히 전통문화가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민속신앙과 생활양식부터 의식주까지, 전통문화는 공동체가 공유하고 계승하는 모든 정신적 유산이자 한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데에는 문화의 힘이 크다. 우리가 어느 곳 어느 시대에 살고 있든 한민족이라는 집단적 자아를 지닐 수 있는 것도, 한반도의 오랜 역사에 기반한 한문화를 지금까지 계승하고 보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만나는 전통문화, 한국전통문화전당
▲ 한국전통문화전당 전경 ⓒ조온윤
▲ 홍보관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전주 홍보 영상 ⓒ조온윤
전주에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속해서 알리고 또 보존하는 전당인 한국전통문화전당이 있다. 우리 문화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곳 전당에서 한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은 그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한문화의 융·복합 산업화와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문화기관이다. 전당 내에서는 전통을 주제로 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며 한식 조리, 한지 만들기 등의 전통문화 향유 프로그램도 체험해볼 수 있다. 현재 전당에서 진행 중인 전시는 <그림으로 보는 중국 조선족 세시풍속전>으로, 열림동 기획전시실에서 8월 3일까지 이어진다.
▲ ‘그림으로 보는 중국 조선족 세시풍속전’ 안내 ⓒ조온윤
▲ 새해 첫 보름에 다리를 건너는 풍속인 ‘다리밟기’ ⓒ조온윤
중국 조선족 세시풍속전에서는 절기에 따른 다양한 풍속을 민화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중국 조선족은 국적으로는 중국인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은 한문화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 조선족 세시풍속전의 그림들은 사실상 우리나라 풍속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친숙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전주시가 국경을 넘어 한민족의 미풍양속을 계승하고 알리자는 취지로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족이 새로운 삶의 터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문화가 어떻게 계승되고 또 변용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중인 민화 중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시풍속으로는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다리를 건너는 ‘다리밟기’, 섣달그믐날에 집안의 불을 모두 밝히고 밤을 새는 ‘수세’, 여름 장마가 끝난 뒤 책을 햇볕에 말리는 ‘책말리기’ 등이 있다.
▲ 옛날 서적은 습기에 약해서 장마가 끝나면 꺼내 말려야 했다. ⓒ조온윤
▲ 섣달그믐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이 있다. ⓒ조온윤
기획전시 외에도 전당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사랑채와 부엌 등 우리 선조가 생활했던 한옥 내부가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으며, 한옥 모형을 통해 한옥이 어떻게 지어지는지도 단계별로 알아볼 수 있다. 특히 한옥 내부에는 죽부인과 병풍, 소반 같은 옛 생활용품들도 상세하게 구성되어있다.
▲ 전통적인 생활공간이 생생하게 재현되어있다. ⓒ조온윤
▲ 한옥이 지어지는 과정 1, 2, 3, 4 단계 ⓒ조온윤
열림동에는 다양한 한식을 실제처럼 제작해놓은 전주음식모형 전시실도 있다. 김치부터 젓갈, 나물, 찌개 등의 한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실 한쪽 벽면에는 전주의 한식 명인이 제작한 폐백상과 회갑상도 있는데, 회갑상에 오르는 찬의 가짓수는 40여 개가 넘는다. 이렇게 음식을 높이 괴는 상을 고배상(高排床)이라고 부른다.
▲ 다양한 한식 모형들. 실제 음식을 전시해놓은 것 같다. ⓒ조온윤
▲ 회갑상은 먹지 않고 바라만 본다고 해서 망상(望床)이라고도 부른다. ⓒ조온윤
전당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전당 홍보관에는 윷점 운세뽑기와 전통문양 엽서 만들기 등의 간단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있다. 윷점 운세뽑기 체험에서는 커다란 윷가락을 던져 나온 결과에 따라 올 한해의 운세를 점쳐볼 수 있다. 비록 이번 방문 때는 체험해볼 수 없었지만 예약을 통해 전당 내 한지산업지원센터에서 한지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 윷가락을 던져서 운세뽑기를 하고 있다. ⓒ조온윤
관람을 끝내고 전당을 나서기 전에 윷점 운세뽑기를 해보았다. 결과는 윷가락이 세 개 뒤집어진 걸이었고, 결과지에는 대어입수(大漁入水)라고 쓰여있었다. ‘큰 물고기가 물에 든다’는 말로, 올 한해 큰 재물이 들어온다는 의미였다. 과연 운세가 적중할까. 민속신앙을 숭배하던 때와는 멀어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쩌면 전기밥솥에 깃들어있을지도 모를 조왕신처럼, 이 윷점도 정말로 복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
도시에서 만나는 전통문화
한국전통문화전당
인문쟁이 조온윤
2019-07-30
지난 봄에 친구가 새 자취방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하는 날에 내게 사진을 한 장 보내줬었는데, 빈 방 한가운데에 전기밥솥만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사진이었다. 이게 뭐야?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이사를 할 땐 밥솥을 가장 먼저 집에 들여야 복이 들어온다고 했다며, 시킨 대로 하고 인증사진을 찍은 거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밥솥에 조왕신이 깃들어있는 거냐고 물었다. 친구는 "할머니한테는 그런 것 같아"라고 했다. 그냥 밥솥도 아닌 전기밥솥에 조왕신이라니. 그런데 정말로, 요즘 그 친구는 조금 다른 의미로 일복이 터져서 바쁘지만 나름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다.
▲ 새집에는 밥솥을 가장 먼저 들여야 복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조온윤
우리에게 계승된 정신적 유산
사실 그 친구도 조왕신이라느니 재물복이라느니 하는 미신을 정말로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구의 할머니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친구가 새집에다 밥솥을 먼저 옮겨놓는 수고를 한 건 민속신앙을 믿어서가 아니라, 할머니가 자신에게 물려준 일종의 전통을 따르는 데에 가까웠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가택신이나 조상신 같은 미신 따위는 믿지 않고 전통적인 삶과는 결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의식과 생활 곳곳에는 여전히 전통문화가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민속신앙과 생활양식부터 의식주까지, 전통문화는 공동체가 공유하고 계승하는 모든 정신적 유산이자 한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데에는 문화의 힘이 크다. 우리가 어느 곳 어느 시대에 살고 있든 한민족이라는 집단적 자아를 지닐 수 있는 것도, 한반도의 오랜 역사에 기반한 한문화를 지금까지 계승하고 보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만나는 전통문화, 한국전통문화전당
▲ 한국전통문화전당 전경 ⓒ조온윤
▲ 홍보관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전주 홍보 영상 ⓒ조온윤
전주에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속해서 알리고 또 보존하는 전당인 한국전통문화전당이 있다. 우리 문화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곳 전당에서 한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은 그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한문화의 융·복합 산업화와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문화기관이다. 전당 내에서는 전통을 주제로 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며 한식 조리, 한지 만들기 등의 전통문화 향유 프로그램도 체험해볼 수 있다. 현재 전당에서 진행 중인 전시는 <그림으로 보는 중국 조선족 세시풍속전>으로, 열림동 기획전시실에서 8월 3일까지 이어진다.
▲ ‘그림으로 보는 중국 조선족 세시풍속전’ 안내 ⓒ조온윤
▲ 새해 첫 보름에 다리를 건너는 풍속인 ‘다리밟기’ ⓒ조온윤
중국 조선족 세시풍속전에서는 절기에 따른 다양한 풍속을 민화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중국 조선족은 국적으로는 중국인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은 한문화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 조선족 세시풍속전의 그림들은 사실상 우리나라 풍속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친숙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전주시가 국경을 넘어 한민족의 미풍양속을 계승하고 알리자는 취지로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족이 새로운 삶의 터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문화가 어떻게 계승되고 또 변용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중인 민화 중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시풍속으로는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다리를 건너는 ‘다리밟기’, 섣달그믐날에 집안의 불을 모두 밝히고 밤을 새는 ‘수세’, 여름 장마가 끝난 뒤 책을 햇볕에 말리는 ‘책말리기’ 등이 있다.
▲ 옛날 서적은 습기에 약해서 장마가 끝나면 꺼내 말려야 했다. ⓒ조온윤
▲ 섣달그믐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이 있다. ⓒ조온윤
기획전시 외에도 전당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사랑채와 부엌 등 우리 선조가 생활했던 한옥 내부가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으며, 한옥 모형을 통해 한옥이 어떻게 지어지는지도 단계별로 알아볼 수 있다. 특히 한옥 내부에는 죽부인과 병풍, 소반 같은 옛 생활용품들도 상세하게 구성되어있다.
▲ 전통적인 생활공간이 생생하게 재현되어있다. ⓒ조온윤
▲ 한옥이 지어지는 과정 1, 2, 3, 4 단계 ⓒ조온윤
열림동에는 다양한 한식을 실제처럼 제작해놓은 전주음식모형 전시실도 있다. 김치부터 젓갈, 나물, 찌개 등의 한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실 한쪽 벽면에는 전주의 한식 명인이 제작한 폐백상과 회갑상도 있는데, 회갑상에 오르는 찬의 가짓수는 40여 개가 넘는다. 이렇게 음식을 높이 괴는 상을 고배상(高排床)이라고 부른다.
▲ 다양한 한식 모형들. 실제 음식을 전시해놓은 것 같다. ⓒ조온윤
▲ 회갑상은 먹지 않고 바라만 본다고 해서 망상(望床)이라고도 부른다. ⓒ조온윤
전당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전당 홍보관에는 윷점 운세뽑기와 전통문양 엽서 만들기 등의 간단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있다. 윷점 운세뽑기 체험에서는 커다란 윷가락을 던져 나온 결과에 따라 올 한해의 운세를 점쳐볼 수 있다. 비록 이번 방문 때는 체험해볼 수 없었지만 예약을 통해 전당 내 한지산업지원센터에서 한지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 윷가락을 던져서 운세뽑기를 하고 있다. ⓒ조온윤
관람을 끝내고 전당을 나서기 전에 윷점 운세뽑기를 해보았다. 결과는 윷가락이 세 개 뒤집어진 걸이었고, 결과지에는 대어입수(大漁入水)라고 쓰여있었다. ‘큰 물고기가 물에 든다’는 말로, 올 한해 큰 재물이 들어온다는 의미였다. 과연 운세가 적중할까. 민속신앙을 숭배하던 때와는 멀어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쩌면 전기밥솥에 깃들어있을지도 모를 조왕신처럼, 이 윷점도 정말로 복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
▲ 윷점의 결과는 대어입수 ⓒ조온윤
○ 공간정보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현무1길 20
전화번호 : 063-281-1500
운영시간 : 09:00~22:00
전시 관람료 : 무료
○ 관련링크
홈페이지 : http://www.ktcc.or.kr/
○ 사진촬영_ⓒ조온윤
장소 정보
2019 [인문쟁이 5기]
생활 속에서 틈틈이 시를 쓰며 지냅니다.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한 곳을 좋아합니다.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멈춰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침묵과 정지. 그런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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